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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18화 (718/741)
  • 718화

    현대의 보안 체계는 무림이 존재하기에 역으로 사람이 아닌 기계에 대한 의존이 더욱 커져 있었다.

    사람의 감각은 속일 수 있어도 기계의 감각은 다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심지어 경계를 넘어선 영역에 있는 무인도 다르지 않았으니 외따로이 경치 좋은 곳에 떨어져 있는 별장에 숨어든 배군(背君) 한유성 또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 경보를 울려야만 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듯한, 조경에 이용된 식물들이 마치 미로처럼 배치되어 있는 정원의 한가운데서 한유성은 앞을 막아서는 이를 마주하였으니 아주 잘 알고 있는 여자였다.

    정장 무복을 구김 하나 없이 단정하게 차려입은 중단발의 차분한 미녀.

    정돈된 외모가 매력적인 그녀는 천마신교 총괄우부의 부부주(府副主) 민지서였다.

    민지서.

    어린 시절 한유아에 의해 구원받아 그녀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으로 줄곧 그녀의 비서를 자처하였으니 한유아가 총괄우부를 맡은 지금도 우부의 2인자로 수많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세간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천마신교의 실권자였으나…….

    한유성은 민지서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 날카로운 시선은 민지서의 어깨 너머 조경수를 꿰뚫고 있었으니 거기에 그녀가 있었다.

    "하찮기 짝이 없는 은신이구나."

    스으-

    은은한 달빛만으로도 찬연하게 빛나는 금발을 질끈 묶은 한유아가 그늘 뒤에서 나와 민지서의 곁에 섰다.

    한유아와 민지서.

    두 사람이 이곳 안가를 지키는 천마신교의 핵심이었다.

    그것을 감각을 통하여 확신한 한유성은 한껏 잔학성을 드러내며 비죽 웃은 것이다.

    한유아와 민지서는 분명히 손꼽히는 경지의 무인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경계 내부'에서의 기준이었지 경계를 넘어선 자신과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을 가르는 지평선만큼이나 절대적인 격차가 있었기에.

    경보가 울리고, 천마신교에까지 정보가 전해지며 타임 어택이 시작된 지금, 무형독의 정보망을 피해 나타났음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무언가를 더 준비하고 방비를 하긴 했을 거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다.

    천마가 태양권가 쪽에 있다는 걸 확인했고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한유아와 민지서이니까.

    "…아쉽지만, 2분 안에 짓이겨 주마."

    2분 안에 끝내고 빠져나가면 준비한 것이 무엇이 되었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두웅-

    쓸데없는 힘의 낭비 없이 그저 넓고 무겁게 퍼져 나가는 진각의 여파가 닿기도 전에 한유성의 신형이 민지서의 앞에 들이닥쳤다.

    탁한 금빛이 어린 손이 민지서의 심장을 뜯어내기 위해 그 가슴을 뚫으려 들었고.

    꽈아아앙!

    찬란한 금빛이 어린 손이 그 중간에 끼어들어 폭음을 일으키며 한유성의 의도를 차단했다.

    충돌의 여파를 지근거리에서 다 해소하지 못한 민지서가 힘겹게 균형을 유지하며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한유성의 명치를 노린다.

    균형을 잡기 위해 뒤로 강하게 내딛은 오른발에서 시작된 힘을 허리에서 어깨를 거쳐 증폭하여 왼손의 끝에 실었다.

    거대한 힘이 한 점에 집중되어 철판이라도 뜷을 것 같았으나 한유성은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이유가 없었다.

    콰앙!

    뿜어져 나오는 내기가 '호신강기'가 되어 민지서의 공격을 정면에서 부숴 버린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민지서는 크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한유성의 오른손은 그렇게 비게 된 공간을 가로질러 한유아를 노렸다.

    노리며 생각했다.

    '네년들은 어차피 가축이다.'

    천마신교에 있다고 해서, 금화가 무너졌다고 해서 이것들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한유아도 민지서도 결국 금화가 기르던, 그러니까 내가 기르던 가축이었는데.

    주인이 목줄을 놓쳤다고 해서 세상이 제것인양 이렇게 날뛰는 것이다!

    고오오오오오-!

    가축은 배우지 못하는, 무형독의 절기 위에 이룩한 금화 무공의 정수가 펼쳐진다.

    가축에게 알려줄 생각이었다.

    주인과 가축 사이의 격차를.

    이제는 오직 나만이 펼칠 수 있는 금화의 정수가 가축에게 주어졌던 도금된 쓰레기, '황익무(凰翼舞)'를 처참하게 부숴 버리는 당연한 세상의 이치를……!

    꽈아아앙-!!

    "……!!?"

    한유성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결코, 결코 있을 수 없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 벌어졌기에.

    한유성의 한 수가.

    한유아의 한 수에 막혔다.

    경계를 넘어선 한유성이 펼친 금화의 진무가 한유아의 황익무에 막힌 것이다.

    "무슨 개……!!"

    참지 못하고 소리치려던 한유성의 호흡의 틈을 놓치지 않고 물러섰던 민지서가 찔렀다.

    한유성은 즉시 반응하여 손을 떨쳤다.

    제아무리 호흡의 틈을 찔렸다지만 얼마든지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겐 있었고 부족한 호흡만으로도 충분할 만큼의 격차가 있었다.

    그러나.

    꾸우웅-!

    "……!"

    반탄력이 상정한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민지서의 공격이 한유성을 한순간이나마 경직시킬 정도로.

    그리고 그 경직의 틈을 한유아가 노린다.

    우우웅-

    한유아가 발현한 찬란한 금색의 기세가 실재가 되어 그 아름다운 손에 어렸다.

    그 기운 또한 한유아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건방진 년이이이이잇!!"

    한유성이 분노하여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꽈아아아앙!!

    막대한 기운을 줄기줄기 내뿜으며 후려친 한유성의 손을 한유아는 뚫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여력을 다 해소하지 못하고 주우욱 밀려남으로써 열세를 보였다.

    "흐응."

    하지만 한유아는 씨익 웃었다.

    너무나 아름답게. 그리고 또 후련하게.

    "뭘 쳐웃는 거냐."

    "건방지게."

    "주제 파악을 못하는 거냐?"

    분노를 쏟아내며 한유성이 덤벼들었다.

    자제하지 않고 발산하는 내공의 기세는 가히 폭풍과 같아서 한유아와 민지서를 휩쓸어 흔들리게 만들었다.

    꽈앙! 꽈앙! 꽈아아아앙!!

    두 사람의 합공은 필사적으로, 그래 필사적으로 한유성의 틈을 노리고 또 허를 찌르며 분전하였으나 한유성을 뚫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꽈아아아아앙-!!

    뚫리지도 않았다.

    2분. 그것은 이미 지나 버린지 오래다.

    한유성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고 한유아는 아하핫, 웃었다.

    "후련하네, 진짜."

    "맨날 생각했거든. 이렇게 아주 속이 뻥 뚫리게 치고박는 거."

    "아주 그 역겨운 면상을 쎄게 때려 버리고 싶었는데."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응응. 그렇지? 저렇게 재수없잖아. 응."

    빠득-

    "…기어오르지 마라."

    "뭐어? 범죄자라 그런지 잘 안 들리는데에?"

    "건방진 년들이!!"

    꽈아아아아앙-!!

    남김없이 기운을 폭발시키며 한유성이 짐승처럼 덤벼들었다.

    한유아와 민지서는 여유 있는 얼굴로, 그러나 실제로는 온 힘을 다하여 그에 맞섰다.

    꽈앙! 꽈앙! 꽈과과과광!!

    그야말로 인간의 몸으로 태풍에 맞서는 것만 같았다.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필사적이었고 휩쓸려 찢기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다.

    그리고, 무너지지 않는다.

    "어째서 버티는 거냐! 왜!!"

    꽝! 꽝! 꽈과광!!

    분에 못이겨, 경계를 넘어섰음에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해 호흡이 끊긴 한유성이 훌쩍 물러난다.

    호흡이 끊길 때까지 몰아쳤음에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호흡이 끊겨 물러나는 그 틈을 한유아도 민지서도 여력이 없어 노리지 못했기에 잠시 소강 상태가 되었다.

    그 소강 상태를 이용하여 한유아는 입을 열었다.

    "왜 우리가 쓰러지지 않는지 궁금해?"

    "……."

    한유성의 시선을 한유아가 당당히 마주한다.

    정답은 간단했다.

    한심한 한유성이 경계 너머의 그 혹독한 세상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어 있는 동안, 한유아와 민지서는 나아갔기 때문이다.

    한유아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도진을 따라서.

    민지서는 그렇게 도진을 따라잡기 위해 멈추지 않는 한유아의 곁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천마신교의 무공이 더해졌다.

    껍데기뿐이던 무공에 한유아와 민지서의 피와 땀이 속을 채웠고 이치가 깃들었다.

    비로소 온전해진 무공은 더 단단해졌고 더 끈질겨졌으니 절대적인 경지의 격차에도 한유성에 맞서는 두 사람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준 것이다.

    하지만 한유아는 그 간단한 정답을 말해 주지 않았다.

    대신.

    "그건 네가 아주 한심한 도라지 뿌리만도 못한 놈이기 때문이야."

    "……뭐라?"

    "내가 매일 상대하는 게 우리 교주님이란 말야. 천마에 비하면 네 건 그냥 산들바람에도 흐늘흐늘거리는 도라지 뿌리의 솜털마냥 약해 빠진 공격인데, 오히려 너무 약해서 내가 힘조절을 해야 할 거 같다고. 한심한 놈아."

    "……."

    한유성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얼굴이 되었다.

    그로 인해 일순 안의 내용물이 다 쏟아진 것 같았고 그 비어 버린 속을.

    "감히이이이이이이!!"

    분노가 가득 채워 버렸다.

    "찢어 죽여 주마아아아아아아앗!!"

    완전히 미쳐 버려 덤벼든다.

    다시 한 번 폭풍이 두 사람을 휩쓸었다.

    한유아와 민지서는 힘을 합쳐 난폭한 한유성의 기세에 휩쓸리지 않도록 버텼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씩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온 힘을 다하여 버티는 입장이었다.

    잘 '버티는' 것이었지 결코 역전을 노릴 수 없을 만큼 경계의 격차는 컸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한계가 오고 만다.

    한유성에겐 아직 여력이 있었고 전력을 다 했던 두 사람은 조금씩 힘이 빠진다.

    그리하여 드러나는 두 사람의 파탄에 미쳐 날뛰던 한유성의 이성이 돌아왔다.

    스으으-

    추악하게 일그러지는 입꼬리는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상징이다.

    그나마 분노에 휩쓸려 날뛰던 한유성이었기에 쏟아내는 무공의 깊이가 부족하였고 그것을 노릴 수 있었는데 이제, 한유성이 짐승이 아닌 이성을 가진 사냥꾼이 되어 두 사람을 찢으려 들 것이었다.

    그 여유를 즐기며 한유성이 말했다.

    "그냥은 죽이지 않을 거다."

    한유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흐응. 안 도망가도 돼?"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래봐야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으나 지금의 10분은 평상시의 하루에 준하는 치명적인 손실이다.

    "네년들을 찢어 죽일 여유는 충분하다."

    "헤에."

    겉으로는 여유를 보이는 한유아의 눈이 일순 깊어졌다.

    숨기고 있는 한 수를 방금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안 될 텐데."

    "무슨 헛소, 리, 를……?"

    한유성의 말이 뚝뚝 끊겼다.

    인성과는 별개로 경계를 넘어선 무인인 한유성은 이 자리에서 가장 감각이 뛰어난 무인이다.

    그 무인의 감각이, 여기서 결코 느껴져서는 안 될 기척을 감지해냈다.

    아직은 멀다.

    그러나 마치 하늘에 뜬 해와 같이 너무나 거대하여 차라리 다 인지하지 못할 존재감이 세상을 가득 채우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너무나 빠르게.

    '이런 미, 친.'

    한유아는 우뚝 멈추어 선 한유성의 모습에 이윽고 기다리던 이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후.

    짧고 강하게 호흡을 내뱉고서 한유아가 다시 손에 금빛을 둘렀다.

    "야. 한유성."

    그리고 한때 오빠였던, 그러나 단 한 번도 가족인 적이 없었던 역겨운 인간을 겨누고서 도발했다.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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