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717화 (717/741)
  • 717화

    일본을 뒤집어 놓은 천마신교는 일이 다 끝나지 않았으나 일단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번 카자카미의 스캔들 하나에만 집중하기엔 모두들 그 외에도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지윤은 말할 것도 없고 도진 또한 천마신교의 교주로서, 또 바른 엔터의 대표로서 추진하고 있는 슈퍼스타 B 시즌 2의 업무만 해도 적지 않은 양이 쌓여 있었다.

    그러니까 카자카미의 일에 더해 본래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느라 몸이 두 개여도 바쁜 나날을 보내던 도진은 어느 날 시간을 만들어 소담과 함께 친구를 만났으니 오대용 주정아 부부였다.

    "어서 와라."

    무려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맞이를 하는 오대용의 모습에 도진이 와, 하고 감탄했다.

    "낯설다, 대용아."

    "시끄러, 임마."

    태도는 툴툴거리고 있었지만 그런 태도와 달리 상당히 잘 어울렸으니 그 모습에 제법 익숙해진 분위기가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어서들 와."

    안에 들어서니 웃으며 반겨주는 주정아가 있다.

    전에 보았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배가 불러 있어 소담의 시선을 붙잡았다.

    "괜찮아?"

    "조금 몸이 무겁긴 한데, 괜찮아."

    씨익 웃으며 말하는 주정아는 행복해 보였다.

    아예 대놓고 안절부절못하며 옆에서 위성마냥 맴도는 오대용의 지극정성이 그녀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선명했다.

    "야. 이거 봐라. 예쁘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다 불쑥 오대용이 내민 건 초음파 사진이었다.

    메신저의 프로필로 해 놓은 걸 도진과 소담이 이미 보았던.

    "응, 예쁘네. 두상부터가 범상치 않아."

    "크으, 그렇지? 우리 정아 닮아서 벌써부터 예쁘다니까."

    "아이 참."

    오대용의 어깨를 찰싹 때리는 주정아였으나 그녀 또한 얼굴에 숨기지 못한 뿌듯함이 묻어 나와 마주앉은 도진과 소담은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이런데 애가 아장아장 다니면 자지러지겠다, 너희들."

    "에헤헤."

    부정하지 않는 모습에 도진과 소담은 따라가기를 포기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좋아하셔?"

    화제를 바꾸어 묻는 도진의 말에 주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청 좋아하시더라. 할아버지가 특히 그러셨어."

    주정아의 할아버지라고 하면 호군자(虎君子) 주대운이다.

    별호에 '군자'가 들어갈 만큼 부드럽고도 진중한 인물이었는데 손녀의 부른 배 앞에서 손을 어쩌지 못하는 모습에 참지 못하고 웃었다고, 주정아는 웃으며 말해 주었다.

    그리고 오대용 또한.

    "…좋아하시더라."

    그렇게 말했다.

    "그래?"

    "응."

    오늘 도진이 이렇게 시간을 내어 두 사람을 만나러 온 건, 두 사람이 정말로 오랜만에 한국에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오랜만에 한국에 온 건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양가의 어른들을 뵙기 위해서였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으니 오대용과 부모님 사이의 관계였다.

    제국을 거머쥐기 위해 자식들마저도 등한시하였던 오대용의 부모님.

    당연히 사이는 좋을 수가 없었고 이번 만남 또한 그리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조금, 공허하신 거 같더라고."

    바로 얼마 전 횡령 사건 때만 해도 그런 티가 나지 않았는데 바로 어제 본 부모님이 자신의 앞에서 휑한 속내를 드러냈다고 오대용은 말했다.

    "모르겠어. 무슨 생각을 하셨던 건지. 그런데 나쁘지는 않은 거 같아."

    회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 자식마저 내팽개치고 일에 몰두하였던 부모님이 이제서야 조금 욕심을 버리고 다른 가치를 찾으려 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 계기가 자신과 정아의 사랑의 결실인 것 같아서.

    오대용은 나쁘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좋네."

    "그래."

    짙고 섬세한 감정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하고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오대용이 갑자기 일어나 주정아의 뒤에 섰다. 그리고는.

    스윽-

    주정아의 두 귀를 자신의 손으로 덮었다.

    "왜에?"

    주정아가 애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행동의 이유를 물었다.

    오대용은 주정아의 두 귀를 덮은 그대로 답했다.

    "조금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할 거라서. 우리 소중이랑 정아는 들으면 안 되잖아."

    "아이, 참."

    "……."

    "……."

    도진과 소담의 두 눈이 마주했다.

    '저럴 거면 왜 귀를 막은 걸까.'

    '그러게……. 근데 좀 부럽다.'

    소리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오대용이 말했다. 섭음술로.

    -태양권가. 카자카미 가문이랑 한통속인 거 같아.

    * * * *

    "맞아. 태양권가는 무형독, 그러니까 카자카미 가문이랑 손을 잡았어."

    오대용을 포함하여 모인 자리에서 나지윤이 말했다.

    태양권가가 무형독이라고, 확정해서.

    태양권가(太陽權家).

    대한민국의 명문 무가이자 재벌로 그 위세가 대단했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실력만 받쳐준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단한 이들만이 모인다는 숭무고의 집행부를 노릴 수 있으며 또 일진으로 행세할 만큼.

    하지만 그 권세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야기였으니 태양권가의 후계자였던 권민국이 도진과 엮이면서 숭무고에서 제명되었고 후계자 구도까지 흔들리게 되면서 가문과 그룹 전체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 일로 잠시 세상이 시끄러웠고 얼마 후 태양권가는 세간에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으며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던 거다.

    "조용히 일본 쪽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거야."

    극도로 나빠진 이미지가 한국에서의 사업을 어렵게 했다.

    때문에 레너 공방이 했던 것과 비슷한 수법으로 태양 그룹의 흔적을 지우고 물건을 팔았지만 이래서야 높은 수익을 내기가 힘들었다.

    바로 그런 때에 접근해 온 것이, 카자카미 가문이었던 거다.

    "카자카미는 입지가 어려웠던 권민국에게 손을 내밀었고 권민국은 그 손을 잡았어."

    반쯤은 도박이었다.

    이대로는 후계자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고 지지 기반이 되던 사업체들도 부침을 겪고 있었으니까.

    침몰할 바엔 모험을 하겠다는 생각이었고 그 모험은 성공했다.

    "태양 그룹은 일본으로 진출했어. 카자카미 가문과 손을 잡았으니 순항했고 오히려 예전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지."

    그럼으로써 망하기 일보직전이었던 계열사가 오히려 대박을 터뜨렸고 권민국은 다시 한 번 공고한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태양 그룹의 '부활'은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니 단 한 건의 광고조차 태양권가에서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뭘 잡은 거야?"

    도진이 물었다.

    아직까지는, 이것만으로는 태양권가가 무형독의 일원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엮여 있다고 해서 다 의심하다간 끝이 없다.

    그러니까 나지윤은, 그리고 오대용은 확신할 만한 무언가를 붙잡았다는 거다.

    도진의 물음에 오대용이 답했다.

    "카자카미의 암살자들이 태양 그룹의 배를 타고 한국으로 넘어올 거야."

    무형독에 단단히 벼르고 있던 오군성이 오성의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잡은 정보였다.

    그렇게 넘어오는 암살자들이 무얼 노리고 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장영준의 입을 막겠다 이거네."

    "맞아."

    천마신교는 일본과의 공조 하에 장영준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국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 정보가 새어 나가 카자카미 가문이 암살자를 보냈으니 여기에 태양권가가 협조했다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며 도진은 둘이 한패라는 명확하고도 자세한 정보가 정리된 서류를 눈으로 훑다가 어느 대목에서 잠시 멈추었다.

    도진이 무엇 때문에 멈추었는지 잘 아는 나지윤이 말했다.

    "한 번 연락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

    * * * *

    며칠 뒤.

    군홍무가의 둘째 무진혁은 서울 외곽으로 '출장'을 나갔다.

    세간에는 기사 한 줄 나지 않은 모임에 참석을 한 것이었는데 기사 한 줄 나지 않은 것 치고는 그 규모와 면면이 엄청나게 화려했다.

    다름 아닌 태양권가이자 태양 그룹의 후계자, 권민국이 정식으로 부회장 자리에 취임하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 취임식에 무진혁은 태양 그룹에 협력하는 협력사의 임원 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군홍무가는 천마신교에 협조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으니 그 천마신교의 교주인 김도진과 원수지간인 태양권가의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그건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이다.

    이쪽 업계가 원래 그렇다.

    감정은 감정이고 사업은 사업이다.

    정치판에서 대립하는 의원들끼리 공적인 자리에서 개새끼 소새끼하며 싸우다가도 점심시간에 함께 나가 형님 아우하며 밥을 같이 먹는 것처럼.

    사업하는 사람들끼린 이득이 된다면 감정을 뒤로 미루고 얼마든지 계약서에 싸인을 하는 것이다.

    부산항에도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군홍무가가 일본과 부산을 오가는 적지 않은 물량을 취급하는 태양 그룹과의 계약에 싸인한 건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이 새끼들이 그런 걸 취급하려 했다 이거지…….'

    연회장을 느긋하게 걸으며, 얼굴에 전혀 티를 내지 않으며 무진혁은 속으로 태양권가를 씹었다.

    김도진이 말해 주었다.

    태양권가는 무형독과 협력하고 있었고 암살자를 군홍무가 소유의 화물선에 태워 한국으로 보내려 하고 있다고.

    아주 등줄기가 다 서늘해지는 정보였다.

    이걸 전혀 모르고 있다가 사건이 터지고서야 알았다면 얼마나 골치가 아팠을지 상상하기도 두려울 지경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거, 기회다.'

    무진혁은 군홍무가의 둘째다.

    가문에서는 둘째 도련님이고 회사에서는 '실장님'이라 불렸다.

    실장. 말이 좋아 실장이지 사실상 오너 가문의 자제라 낙하산으로 꽂아주었다는 내용이 함축된 게 실장이란 말이다.

    무진혁은 이 실장님이란 호칭을 버리고 번듯한 자리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럴 만한 기회가 오지 않아 벼르고만 있었는데 바로 그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 일에 주도적으로 나서서 공을 세우자.

    다름 아닌 천마신교와 연계하여 진행하는 일이니 아주 큰 걸 해낼 수 있을 테고 그거라면 번듯한 자리 하나 정도는 당당하게 쟁취해낼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티나지 않게, 그러나 꼼꼼하게 연회장을 둘러본 무진혁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씨발…….'

    무진혁은 눈치가 없지 않았다.

    숭무고에 입학했을 만큼 천재라 불리기에 부족하지 않은 머리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볼 수 있었다.

    이곳 연회장이, 철저하게 겉보기에만 연회장이었지 숨막힐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한 것을.

    태양권가, 카자카미 가문, 천마신교.

    세세하게 언급하자면 경찰에 심지어 야쿠자까지.

    누구 하나 작은 불씨만 던져도 '쾅!' 터져 버릴 것만 같은 화약고에 지금 자신이 서 있다는 걸, 무진혁은 깨닫고 만 것이다.

    '오면 안 되는 곳이었잖아…….'

    * * * *

    서울 외곽의 연회장이 화약고라는 걸 무진혁이 깨달았을 즈음.

    아주 은밀하게 움직이는 경계를 넘어선 무인이 있었으니 장영준을 죽이기 위해 몰래 한국으로 넘어와 있던 한유성이었다.

    한유성은 감정과는 별개로 카자카미 노보루가 뒤집은 패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권가는 나름 중요한 패였다.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해 주었으며 수입 또한 적지 않았던.

    가능하다면 잃고 싶지 않았을 패였고 그렇기에 천마신교의 눈을 붙잡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당장 천마부터가 행사장 근처에 있다는 걸 확인했다.

    장영준이 숨어 있는 인천 외곽까지는 하늘이라도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는 한 한유성이 일을 다 끝내고 유유히 빠져나갈 때까지 올 수 없는 거리가 확보됐다.

    그래서 한유성은 자신있게 장영준이 숨어 있는 안가에 침입하였고 기다리고 있던 상대를 보고서.

    "…네가 기다리고 있었구나?"

    한쪽 입꼬리를 여유있게 끌어올려 잔학한 곡선을 만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