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화
"이것도 변명해 봐, 이 씹새끼야."
해냈다.
비수를 꽂듯 선언하며 나지윤은 생각했다.
이 비수를 꽂기 위하여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나 방계를 천대하는 카자카미 가문의 히로토가 그 많은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뒷배가 있어야 했고 그 뒷배는 큐슈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을 시작으로 하여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카자카미의 본가일 것이 또 당연했다.
허나 당연한 것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한 과정이 참 지난했다.
천마신교 세이전의 전주가 되었을 때에야 겨우 결정적인 문건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그때엔 또 다른 장벽이 나지윤을 막아섰다.
말을 말이라 하는데 그것을 인정받지 못한다.
오히려 사슴을 말이라 하는 자의 말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는 기괴한 세계.
카자카미 가문이 그런 기괴한 세계인 '정계(政界)'에까지 입성하고 만 것이다.
일본은 나라의 권력마저도 거대 문파에 넘어가기 일보직전이 되었다.
재계와 무림을 넘어 거대 문파가 나라의 권력까지 쥐기 위해 행동에 나섰고 이내 정계의 진흙탕에 나뒹굴었으니 나지윤이 쥐게 된 '결정적인 문건'마저 더 이상 결정적이지 않게 된 것이다.
졍계의 난투극에서 서로에 대한 공격은 일상이다.
문제는 그 일상이 된 공격이 나지윤이 쥔 '비리'와 다르지 않다는 거다.
비리를 비리로 받아치고 부정하고 또 부정하며 사실이 거짓이 되고 또 거짓이 사실이 되는, 그래서 피곤해진 시민들이 이내 외면해 버리는 것이 정계의 싸움이었고 카자카미 가문은 그 싸움의 중심에 있었다.
설령 나지윤이 천마신교 세이전의 전주라는 신분으로 문건을 공개하여도 파문이 일지언정 금새 몰아치는 진흙에 뒤덮여 치명적인 한 수가 되지 못할 자리에 도달해 버린 것이다.
한국이 아닌 일본, 외국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나지윤은 포기하지 않았다.
될 때까지.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기필코 해야 할 일이었고 마침내 '내부자'와 접촉하여 진흙으로도 덮지 못할 구멍을 내어 버렸다.
"모함이다!!"
발악하는 카자카미 우에토를 보았다.
그 오물로 된 갑옷에 구멍을 뚫었으니 이제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만들 차례다.
그러기 위해선 저 오물보다 더러운 놈을 붙잡아야 했고.
"다음은, 맡길게."
"응."
나지윤은 그 역할을 또 한 명의 친구에게 맡겼다.
서소담.
친구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또 한 명의 친구.
그리고 나지윤만큼이나 저 오물보다 더러운 놈에게 볼일이 있는 친구다.
내가 여기까지 했으니 남은 건 양보해야지. 대신.
"확실하게 해 줘."
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할 만큼 확실한 마무리를 나지윤은 부탁하였고.
파지직-
"응. 맡겨 줘."
번개를 두른 소담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실하게 약속하였다.
* * * *
사박.
조용히, 그러나 그 무엇보다 명확한 존재감으로 걷는 소담이 무인들에 둘러싸인 카자카미 우에토를 마주하였다.
도진과 마주할 때는 보여준 적이 없는, 질적으로 완벽하게 다른 시선이 카자카미 우에토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들었다.
스르릉-
"각오해. 더러운 짐승."
칼을 뽑아 겨누는 소담의 모습에 더러운 놈의 얼굴이 더욱 더러워진다.
그러면서도 쉴 새 없이 눈깔을 뒤룩뒤룩 굴리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
그리고 이내 주둥이를 연다.
"불쾌하고 또 굴욕적이군. 이렇게나 충격적인 수작을 벌여서까지 나를 끌어내리려는 조직적인 행태에 충격을 금할 수가 없어."
이 지경이 되어서까지 정말로, 정말로 뻔뻔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런 뻔뻔한 수작으로 또 시선을 모으는 것만큼은 악마의 재능이라 할 만하다.
"하다못해, 당신을 꺾어서라도 이 울분과 모욕을 씻겠다!"
밑밥을 착실히 깐다.
어떻게든 도진의 개입을 막고 빠져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지껄이는 거다.
뻔한 수작이지만 그 전체를 소담이 다 짐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파지지직-!
저 더러운 짐승을 깨부수면, 모든 게 소용없는 수작이 될 것이었으니까.
"…선수는 양보하지."
정말로, 이 와중에도!
파앗!
소담의 검이 빛살을 그렸다.
단순하지만 빠른 검을 카자카미 우에토는 피하는 대신 강하게 받아쳤다.
쐐애애애액!!
귀에 거슬릴 정도로 난폭한 바람 소리가 카자카미 우에토의 검에 실려 소담의 검을 때렸다.
까아앙-!
싸아아악!
그리고 충돌음과 함께 파생된 바람의 칼날이 소담을 덮친다.
보이지 않는, 그러나 날카로운 '기세의 칼날'이었다.
타앗!
소담은 그 칼날을 피해 멀찍이 물러나야 했고 그 자리엔 어느새 카자카미 우에토의 검이 뻗어 있었다.
쐐애애애애액!!
다시 한 번, 거슬리는 바람 소리.
싸아아아악!
그리고 칼날.
마치 보이지 않는 칼날 폭풍이 소담만을 노리고 미친듯이 몰아치는 형국이었다.
신풍인(神風刃).
'카마이타치(かまいたち).'
어느새 번들거리는 눈으로 소담을 훑는 카자카미 우에토가 익힌 신풍회 직계의 오의(奧義)다.
검에 깃든 내공을 묘리에 따라 휘두름으로써 실재가 되는 기세에 실어 내기가 깃든 수많은 칼날, 검풍(劍風)을 발생시키는 무공.
현실을 넘어선 신비이니 진무(眞武)의 극치라 할 만하다.
그 진무의 극치가 소담을 포위하여 옴짝달싹조차 하지 못하게 자리를 선점하여 위협하고 있었다.
소담의 움직임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실제로 그러했다.
'암산서가의 무공따윈 이미 다 분석해 두었지.'
사실상 손에 넣었던 가문이었다.
답청문도, 암산서가도.
최대한 저항하였다지만 입 안에 삼킨 가문들이었고 무공에 대한 분석 또한 충분히 해 두었다.
'그래. 그리로 가겠지. 그리고 다음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유린하듯이.
카자카미 우에토는 음습한 얼굴로 칼을 휘둘러 소담을 붙잡으려 들었다.
이렇게 된 것. 그 이를 부수어 입가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주마.
'지금……!!'
그 더러운 욕망을 분출할 최적의 순간을 잡은 카자카미 우에토의 검이 쏘아졌고.
꽈아아앙!
"컥!"
상정한 것을 아득히 넘어선 속도와 힘이 담긴 반격에 추하게 바닥을 나뒹굴어야 했다.
먼지투성이가 된 카자카미 우에토는 다급히 몸을 굴러 거리를 확보한 뒤 고개를 들었고.
"더러워."
한없이 더러운 것을 보는 경멸하는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암산서가의 무공을 너 같이 더러운 인간이 다 파악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무공(武功)은 기술과 육체에 마음(心)이 깃듦으로써 완성된다.
카자카미 우에토는 암산서가의 무공을 다 안다 생각했지만 그것은 마음이 깃들지 않은 그저 껍데기뿐인 무술에 불과했다.
때문에 지금, 소담의 진심이 깃든 무공에 반격당하여 바닥을 나뒹군 것이다.
빠드득-
카자카미 우에토가 이를 갈며 일어섰다.
"기고만장하구나."
잘난듯이. 잘난듯이 말하지만 또 다른 무공을 접목하여 더 강한 힘을 얻었을 뿐인 년이.
그리 생각하는 카자카미 우에토였다.
이미 다 파악한 무공이었는데 거기에 변수였던 천마신교의 무공이 더해졌기에 당한 것이다.
한데 그걸 가지고 잘난듯이 지껄이다니.
카자카미 우에토는 참을 수 없었고.
두웅-!
숨겨두었던 한 수를 꺼내들었다.
구구구구궁-!
카자카미 우에토의 기세가 폭풍이라도 만난듯 요동쳤다.
있을 수 없는, 비정상적인 내공의 증가로 인한 것이었다.
그 이유를 소담은 대번에 꿰뚫어 보았다.
'초월공.'
이미 알고 있었다.
도진이 유지은과의 실습으로 토벌했던 개미굴에서부터 시작하여 카자카미 히로토까지 익히고 있던, 일순간 가진 힘을 증폭시켜 주는 무공.
그 무공의 가장 개량된 것을 카자카미 우에토가 시전한 것이다.
콰과과과과과-!
육체에서 새어 나와 미쳐 날뛰는 기세의 한가운데.
번들거리는 눈의 카자카미 우에토가 말했다.
"지금 나는, 경계를 넘어선 영역에 있다."
콰아아아아아!!
선언과 동시에 칼날 폭풍이 몰아쳤다.
앞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의 칼날 폭풍은 또한 담긴 내공마저도 격이 달랐다.
그만큼이나 되는 힘과 수의 칼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제어 하에 소담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차단한다.
'쭉정이들과 나는 다르다.'
이것은 카자카미 가문이 무형독에게서 받은 반쪽짜리였던 초월공을 수많은 마루타들을 이용한 실험을 토대로 극한까지 개량하여 완성한 무공이다.
꼬투리를 잡힐 일이 없었고 위험한 부작용 또한 없었으니 얼마든지 수련할 수 있었고 카자카미 우에토는 이 힘에도 익숙하고 또 능숙했다.
시간 제한이 있다지만 지금 이 순간, 무공이 유지되는 동안 카자카미 우에토는 분명히 경계를 넘어선 곳에 발을 걸쳤다.
그 영역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 서소담과 절대적인 격차를 만들었단 말이다!
꽈과과과광!!
결코 피하지 못할 막대한 내공이 담긴 날카로운 칼날을 서소담은 힘겹게 쳐냈다.
선로(仙路).
특유의 무수한 검로를 그리는 검공으로 칼날들을 아직은 쳐내고 있었으나 오래가지 못할 것이었다.
'난도질해 주마.'
그리고 감히 나를 비난하던 그 아름다운 입을 짓밟아.
꽈과과광!
"……!!"
다시 한 번.
카자카미 우에토는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충격에 생각이 끊기고 한 발 물러나고 말았다.
지이이이…….
뇌전이 흐르고 있었다.
지극히 아름다운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충직하게 따르듯.
그리하여 무수한 검의 길이 선명해졌다.
진(震) 선로(仙路).
뇌전으로 선명해진 무수한 검의 길의 시작에 선 소담이 깊이 숨을 내쉬었다.
처음이었다. 실전에서, 오의에 진천공의 뇌기를 최대한 깃들인 것은.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가문이 준 무공의 정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그 사람과 자신을 이어주는 무공의 정수.
그 두 가지가 하나되어 소담의 의지에 따라 펼쳐져 있다.
이것이라면.
할 수 있다.
타앗!
무수한 길 중 하나를 따라 소담이 내달린다.
벼락만큼 빠른 쇄도에 카자카미 우에토가 다급히 검을 휘둘렀고.
꽈과과과과광!!
폭풍의 칼날은 뇌전에 갈가리 찢겨 감히 그 앞을 막지 못했다.
"끅!"
카자카미 우에토는 경악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분명히 경계를 넘어선 영역에서 확실한 전능감을 느끼고 있는데!
꽈르르르르릉!!
"끄으아아아아아!!"
그것이 착각이라고 선언하는 듯한 벼락의 세례가 주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거짓말이다!!'
"끼이야아아아아아앗!!"
그 고통을 부정하듯, 발악하듯 최대한 고함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으나.
꽈아아아아앙!!
한줄기 거대한 벼락이 그 저항을 깨부수며 하찮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이이이이…….
'아.'
무수한 길에 담긴 무수한 벼락의 파도가 휑하니 열린 카자카미 우에토를 꿰뚫듯 휩쓴다.
빠지지지지지직!!
"끄으아르라그르르륵."
무수한 뇌전에 뚫린 카자카미 우에토는 말로 성립하지 않는 기괴한 소리를 내뱉다 이내 저항에 실패하여 그 소리마저 내지 못하고 벌벌 떨다가.
털푸덕.
주르르르르…….
바지춤으로 지린내를 풍기며 나뒹굴었다.
그 모습을 경멸하는 눈으로 내려다 보며 소담이 다시 한 번, 몇 번이고 반복한 말을 던졌다.
"더러워."
* * * *
[속보! 카자카미 우에토, 치안국에 수감됐다!]
카자카미 우에토가 치안국에 수감돼 버렸다.
그리고 카자카미 가문의 모처.
레너 집스와 한유성을 마주한 카자카미 노보루가 지극히 불길한 기세를 끈적하게 흩뿌리며 말했다.
"…나가요시 쥰. 그놈을 죽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