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화
카자카미 우에토의 동요는 지극히 찰나의 희미한 흔들림이었으나 찰나를 길게 늘여 보는 무림인들이 적지 않은 이 시대에서 그것은 크나큰 틈이 되었다.
그러니까 적나라하다, 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여 버린 카자카미 우에토를 마주하여 나지윤이 씨익 웃었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카자카미 우에토가 건치를 좋아한다는 건 비밀도 아닐 텐데."
"……."
그리고 화면에는 카자카미 우에토가 출연했던 방송의 자료들이 흘러나왔다.
-아! 이건 제법 특이합니다. 상대를 볼 때 이를 먼저 보신다니.
-예. 웃을 때 보이는 건치에 먼저 눈이 가더군요.
-아, 웃을 때! 그렇죠. 그럴 수 있죠.
카자카미 우에토는 이성을 볼 때 입, 그 안에 있는 치아에 먼저 시선이 간다고 발언했었다.
뭐 특이하다면 특이했지만 딱 거기까지로 특별히 이슈가 된 적도 없던 내용인데.
사람들은 지금껏 잘해 오던 카자카미 우에토가 왜 이런 별 거 아닌 내용에 틈을 보인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신색을 회복한 카자카미 우에토가 말했다.
"이 자리는 저의 취향을 논하기 위한 자리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갑자기 왜 논지에서 벗어난 이야길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유요? 이것 때문에요."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훅, 카자카미 우에토의 명치를 파고든다.
뻐억!
통렬한 소리였다.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의 입을 걷어차는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게 하는 잔혹한 소리.
그리 좋지 않은 화질이었으나 부복한 사람의 입을 걷어차는 것이 카자카미 우에토라는 걸 알아보는 데에는 그리 문제가 없는 영상이었다.
후두둑.
피 묻은 잇조각이 바닥에 나뒹굴고 입가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인물은 깊이 고개 숙여 감사를 표시하고선 나갔다.
"……."
"……."
카자카미 우에토가 일순 뇌가 멈춰 버린 듯한 얼굴이 되었다.
회견장을 둘러싼 이들 또한 얼어붙은 듯 침묵하는 가운데 슥슥, 사용인들이 들어와 내부를 정리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핏자국을 포함하여 구타의 흔적을 지우는 사용인들은 그러나 나뒹구는 이만큼은 손대지 않았다.
그것을 손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세심하고 또 신중하게, 이를 제외한 것들을 정리하고서 바깥으로 나갔다.
"이를 정말 좋아하시나봐요. 사용인분들도 이를 안 치우시는 거 보니."
"무슨."
"아, 알고 있습니다. 원래 그렇죠. 자기가 좋아하고 또 소중히 하는 건 남에게 맡기지 않는 거잖아요?"
"무슨 소리를!"
"더 있습니다."
뻐억!
후두둑.
빠각!
카자카미 우에토가 부복한 이들의 입을 걷어차 피 묻은 이를 흩날리는 영상이 몇 개나 더 재생되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불길한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당사자인 카자카미 우에토는.
"그렇군요."
오히려 차분한 얼굴이 되었다.
"무사들에 대한 저의 부족한 훈계를 문제삼으려는 의도였군요."
"훈계?"
"예. 훈계입니다. 인정합니다. 가혹하고 또 잔인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
"당시의 부족한 저는 조금 과격하였고 의욕이 앞서 어느 정도 잘못된 방법을 사용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모든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카자카미 우에토는 당당하게, 막힘없이 그런 소릴 했다.
"하지만 그들과 저는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사과하였고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더욱 큰 유대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없다, 고.
카자카미 우에토는 주장하였다.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인데.
그 소리가 먹히는 것이 바로 이곳.
카자카미의 영지였다.
한순간의 가십거리야 되겠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결코 되지 못한다.
마치 정치권의 대스타에게 그를 헐뜯는 내용이 몇 개나 따라다니는 것처럼.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카자카미 우에토였기에 오히려 당당하게 역공을 하였다.
"불법촬영물이군요. 이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럽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증거물을 찾으려 했던 겁니까?"
도대체 이걸 어떻게 찍었는지, 어떻게 확보했는지 모르겠어서 속으로야 복잡했지만 그것을 전혀 티내지 않고 카자카미 우에토는 우선 역공했다.
나지윤은 피식 웃으며 간단히 답했다.
"찍은 건 내가 아닙니다."
"그러면?"
"당신의 업보입니다."
"무슨 개소리를."
-아아아아아악!!
타이밍을 잡아 분기탱천하여 외치려던 카자카미 우에토의 행동이 우뚝 멎었다.
얼어붙었다.
화면 속에, 결코 찍혀선 안 될 것이 찍혀서 재생되고 있었다.
"……."
"……."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모두가 말을 잃었다.
그래서 너무나 선명하게 귓가를 파고드는 끔찍한 소리가 눈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정보를 더 명확하게 만들었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한국의, 숭무고의.
그 교복이 난도질당하고, 입가가 피투성이가 되고, 교복보다 더 온몸이 처참하게 너덜너덜해지는 참혹한 모습의 여자였다.
그 여자의 모습은, 서소담을 닮아 있었다.
저도 모르게 눈을 돌리게 만드는, 차라리 스너프 필름(Snuff film)이라 해야 할 영상 속에서 카자카미 우에토가 짐승처럼 욕망을 토해냈다.
그런 영상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에서, 넷에서 열여섯으로.
계속 분열하여 동시에 재생되었다.
"…쓰레기 새끼."
그리고 서소담의 경멸에 가득찬 싸늘한 목소리가 현장을 꿰뚫었다.
나지윤이 말했다.
"이를 참 좋아하셔서 그런가. 절대로 나뒹구는 이를 바로 치우지 않으셨더군요. 그 이가, 당신의 행동을 기록했습니다."
'이가? 어떻게? 뭘?'
평소 기민하게 돌아가던 머리가 전혀 돌지 않아 카자카미 우에토는 상황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아직 '이 시대'에는 익숙하지 않은 기술과 방법에 충격에 휩싸인 사람들도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한 가지는 명확하였다.
-그래, 히로토. 암산서가 작업은 잘 되고 있어?
"카자카미 우에토."
-뿌드드드드득!!
"……."
"이것도 변명해 봐, 이 씹새끼야."
이번만큼은.
카자카미 우에토가 자신있게 입을 놀리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한 방이라는 것이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무형독의 남은 간부 중 한 명 한유성이 중얼거렸다.
"씨발……. 좆됐네."
* * * *
-아아아아악!
"저게 뭐야."
-빠각!
-뿌드드드득.
"우, 우에에에엑!"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얼어붙었고 누군가는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안에 든 것을 게워내고 말았다.
그만큼이나, 도저히 눈뜨고 보기 힘든 잔혹한 짓거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모함이다. 모함이야!!"
카자카미 우에토는 일단 그렇게 외치고 보았지만 누구도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애초에, 아까같이 뻔뻔하게 지껄이는 걸로는 안 될 만큼 영상의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산 채로 이를 뽑고, 난도질하고, 범하고, 희열을 느끼는 모습까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곧 치안국의 경찰과 무인들이 들이닥쳤다.
"영상을 멈추십시오!!"
그리고 터져 나온 외침에 카자카미 우에토의 정신이 일부 돌아온다.
'그, 그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치며 카자카미 우에토가 정신을 꽉 붙들었다.
마침 달려온 자들이 자신의 편인 거 같으니까.
"카자카미 우에토! 연행에 협조하십시오!"
"……."
…아니었다. 이들은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천마신교'의 편이었다.
"지금 출처 불명의 음해 자료를 근거로 나를 연행하겠다는 말입니까?"
우선 요령에 따라 대처하며 그들을 살폈다.
'…쿄야마 놈들인가!'
쿄야마 의원.
거대 문파로의 권력 이동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의원들의 중심에 있는 자였다.
할 수 있다면 제거했겠지만 오히려 일을 어렵게 만들 거라는 판단으로 놔두었던 자였거늘 하필 이럴 때!
"출처에 대해선 내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뒤로, 누군가가 등장하여 말한다.
쿠사나기 이치로.
한 팔을 잃고 퇴장하였던 과거 일본을 대표하던 후기지수의 선언에 또 주변이 동요한다.
"신변 보호를 위해 이 자리가 아닌 보안이 보장되는 조사 공간에서 발언할 테니 같이 가시지요. 카자카미 우에토."
"…헛수작을!!"
카자카미 우에토가 버럭 외치며 칼에 손을 얹었고 그것이 신호였던 듯 카자카미 가문의 무인들이 주위로 몰려들어 기세를 일으켰다.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얼토당토않은 모함으로 격리하여 나를 제거하려는 그 수작을!!"
드드드드-
핏대를 세우며 외치는 카자카미 우에토가 내공을 일으켜 기세를 줄기줄기 흩뿌린다.
언뜻 이성을 잃은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무조건, 벗어나야 한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영상은 치명적이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결코 드러나선 안 될 개인적인 시간이 드러나 순간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이 지경이 되었지만 그래도.
만회할 수 있다.
이곳은 일본이다.
아버지의, 그리고 미래엔 자신의 것이 될 제국.
카자카미의 제국에서 카자카미의 이름으로 안 될 것은 없다.
저 영상마저도 '조작'이 될 것이며 자신에 대한 음해로 만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은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했다.
여기서 잡히면 안 된다.
다행히 오늘 이 자리에 대동한 무인들은 카자카미의 최정예다.
문제는.
'…….'
카자카미 우에토의 시선이 조심스레 한곳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절대적인 절망.
천마(天魔)가 있었다.
'뿌리칠 수 있을까.'
아니. 안 된다.
카자카미 우에토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였다.
천마 김도진.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제는 정말로, 도저히 그 끝을 짐작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이미 몇 년 전에 허공답보니 허공섭물이니 하는 상상 속에만 있던 터무니없는 수법을 보여 주었었다.
무공에 입문하고 얼마나 지났다고 그런 걸 보여 주던 놈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그 안에 도대체 뭘 더 품고 있을지 무저갱을 들여다보는 듯하여 소름이 돋는다.
그러니까 결코 무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고기방패를 세워야 한다.'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던 카자카미 우에토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지만 그래도 세월을 들여 다독여 온 지지층이 대번에 증발하진 않는다.
곳곳에 배치해 두었던 바람잡이들을 이용하여 지지층을 결집시켜 방패로 세우고 빠져 나간다.
어렵겠지만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사이 저쪽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필요할 경우 치안국은 일본의 무림맹이 인정한 무림 단체의 무인에게 공무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치안국의 경찰과 무인들은 당연하게도 감히 카자카미 가문의 무인에 댈 수 없었다.
실력자들이 모두 거대 문파에 흡수되고 남은 쭉정이들만이 치안국에 남았으니까.
그리고 이 지경임에도, 큐슈의 지배자인 카자카미 가문의 우에토가 협조를 거부하면 치안국은 '무력으로' 공권력을 행사해야만 했다.
그래서 치안국의 무인은 이렇게 말한 것이다.
"관련 법에 따라 천마신교에 협조를 요청드리겠습니다."
카자카미 우에토의 예상대로 치안국은 천마신교에 협조를 요청했다.
일본의 무림맹이 인정한 무림 단체의 무인에게 공무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본래는 거대 문파가 유리하게 쓸 수 있도록 한 조항이었는데 이렇게 역으로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끄득-
카자카미 우에토는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
천마가 나오면, 계획한 대로 대번에 치고 나갈 생각이었다.
사박-
'어?'
하지만 앞으로 나선 건 천마가 아니었다.
혼란의 한복판임에도 그 단아함과 깊은 아름다움이 결코 퇴색되지 않는 미인.
파지직-
그 아름다움에 번개마저 따르는 듯한 무인.
암산서가의 소가주, 서소담이 도진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싸늘한 얼굴로 검을 들었다.
스르릉-
"각오해. 더러운 짐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