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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13화 (713/741)

713화

사아아아-

스쳐가는 바람으로 숲이 그윽한 연주를 한다.

카자카미 가문 소유의 나무의 바다, 수해(樹海) 속에 앉은 카자카미 노보루가 두 눈을 감고 그 연주를 즐겼다.

세상 사람들에게 감춘 그의 진신절기는 이 수해의 연주가 주는 지극한 이치를 바탕으로 하여 쌓아올린 것이니 그가 특히나 아끼는 것이었다.

마음의 소란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그 연주에 몸을 맡기고 있자니.

저벅.

조화를 깨는 손님의 기척에 눈을 뜨고 말았다.

"…한유성."

나직한 노보루의 부름에 불청객, 한유성은 굳이 소리 내어 답하지 않았다.

카자카미 가문의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짓이었으나 이 안하무인의, 인류를 배신했다 욕먹는 어린 배군(背君)은 버릇이 없어 그런 무례를 태연하게 저지른다.

배군 한유성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 되었다.

머리는 어두운 금색으로 물들였고 얼굴은 눈코입의 위치와 모양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그 차이가 '금군 한유성'을 아는 사람들이 결코 동일인이라 생각지 못할 만큼 달라진 외모를 만들었으니 한유성이 일본을 활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서벅.

그리고 또 한 명 손님이 들어선다.

거구의 서양인 남성, 중년인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나이가 많은 레너 집스다.

손님이 다 모였으니 카자카미 노보루는 숲과 바람의 연주를 감상하기를 멈추고 상체를 일으켰다.

"좋지 않은 일로 모이게 돼서 유감이야."

"……쯧."

먼저 말을 꺼낸 카자카미 노보루와 못마땅한 기색으로 혀를 차는 한유성이다.

카자카미 노보루도 레너 집스도 그런 한유성의 태도가 내심 못마땅했으나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가진 기반을 모두 잃고 인류의 배신자가 되어 버린 한심한 쓰레기.

그러나 본신의 무공과 함께 아직은 쓸모가 있어 내치지 않은 놈을 상대로 의미없는 심력 소모를 하지 않으려는 거다.

"알아보았나?"

그래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레너 집스에게 카자카미 노보루는 고개를 젓고선 말했다.

"조사를 해봤는데 확실한 건 없어."

말하는 카자카미 노보루의 시선이 한 켠의 TV로 향했다.

곧 시작될 천마의 기자 회견을 실시간으로 중계하여 송출하고 있다.

"다들 동의한 대로 조금 무리를 했지. 꼬리 정도는 밟힐 각오를 하고 돈을 옮겼고 예상대로 천마신교가 덥석 물었어."

나지윤이 카자카미 가문을 물어뜯기 위해 들러붙어 있던 건 이미 일상이었다.

한유성의 뒷구멍을 이용한 만큼 한유아의 시선을 다 피하지 못할 것도 예상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도대체가 뭘 믿고 이러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나지윤은 결코 자신이 당했던 일이 카자카미 히로토가 독단으로 벌인 일이라 믿지 않았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였고 결국 천마신교 세이전의 정보력으로 그 뒤에 있던 '본체'가 카자카미 우에토, 카자카미 본가라는 걸 알아 버리고 말았다.

그걸 확신할 수 있는 정보들을 얻고 말았단 말이다.

큰일이라고? 아니다. 그건 큰일이 되지 못한다.

카자카미 가문은 이제, 그런 게 큰일이 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었으니까.

카자카미 노보루가 휴대폰을 들었다.

-예, 아버님.

듬직한 아들 우에토가 공손히 전화를 받았다.

TV 너머 천마와 대치하고 있음에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아들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잘 하리라 믿는다, 아들아."

-예. 아버지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

천마가, 나지윤이 무얼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일본이다.

이미 반쯤은 자신의 것이 된 제국.

그것이 무엇이든 받아쳐 줄 것이다.

카자카미 노보루의 시선이 꿰뚫을 듯 TV를 응시하고 있었다.

* * * *

후쿠오카 카자카미 공원.

큐슈의 패자인 카자카미 가문이 만든 카자카미의 위세를 보여주는 드넓은 공원이다.

그 넓은 공원을 가득 채운 사람들 사이를, 천마 김도진과 순뢰가인 서소담 그리고 세이전주 나지윤이 걸어 나간다.

무수한 시선과 그 시선들 사이사이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카메라까지.

'방역 조치'로도 막지 못한 인파와 관심을 받으며 세 사람은 당당하게 웃었다.

"이날이 왔네."

도진의 말에 나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야 할 날이었지."

군자의 복수는 아니지만 십 년도 짧다 생각했던 목표였다.

답청문의,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소중한 모두의.

복수를 하기 위하여 나지윤은 쉼없이 달려왔고 이내 오늘이 온 것이다.

나지윤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고 존재감 또한 평소와 달리 명확하다.

본래 정보 단체에 속한 사람이란 결코 특출나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나지윤은 그 철칙을 지키며 살아왔으니 존재가 알려졌음에도 별호 하나 없이 지금껏 그저, '세이전주'로서만 지내온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다.

카자카미에 죗값을 묻기 위하여 오늘만큼은 세이전주가 아닌 나지윤으로서, 양지에서 소리칠 것이다.

도진은 그런 나지윤의 모습에, 그리고 또한 양지로 나온 암산서가를 대표하여 그 존재감을 원없이 풀어놓고 있는 소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을 기억한다.

도진의 전생에서 '답청문'은 존재하지 않았고 '암산서가'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양지로 나오지도 못한 채 답청문은, 그 단말마조차 세상에 흘리지도 못한 채 사라졌을 것이다.

암산서가 또한.

유일하게 양지에서 빛이 났던 비봉은 처참하게 또 잔혹하게.

스러지고 말았었다.

"이 가녀리고 작고 예쁜 애를 괴롭힐 데가 어딨다고 말야."

"응? 헤헤……."

곁에서 당당하게 걷던 소담이 도진의 말에 잠시 표정이 녹아 헤헤 웃고 만다.

나지윤은 하, 하고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야. 나는?"

"넌 나보다 공부 잘하잖아."

"뭐, 이 미친놈아?"

"푸크큭."

도진이 푸하하 웃었다.

좋다.

전생과 달리 바로잡은 이번 생의 지금이.

나지윤은 멋지고 대단하며 의지할 수 있는 친구 녀석이었고 동경 속 다른 세상의 소담 또한 지금 곁에서 함께 걷고 있으며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우리가 전당포는 안 하지만 말야."

"그래."

"응."

저쪽에서 아주 뻔뻔하고 당당하게 마주선 놈이 보인다.

"금이빨 빼고 다 씹어 먹어 버리자."

도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 * *

카자카미 가문의 어둠을 폭로하기 위한 기자 회견이 시작되었다.

다만 회견의 성격이 조금 바뀌어 떳떳하다면 나오라 했던 나지윤의 도발에 응하여 카자카미 가문의 후계자 카자카미 우에토가 나옴으로써 일방적 회견이 아닌 논쟁의 자리가 되었다.

마주 앉은 자리에서 나지윤이 먼저 발언했다.

"암산서가와 답청문의 착취에 앞장섰던 카자카미 히로토의 배후에 당신, 카자카미 우에토가 있었음을 인정하십니까?"

"…당신이라니, 표현을 삼가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인정하십니까?"

"아주 불쾌하군요.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우려 들면서 그런 무례한 태도라니.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그 태도부터 지적하고 싶습니다."

시작부터 날카로웠다.

나지윤은 이미 칼을 뽑아든 채 카자카미 우에토를 겨누었고 우에토는 그 칼날을 막는 방패 뒤에서 나지윤을 비난했다.

카자카미 우에토의 비난을 완벽하게 흘려 버리며 나지윤이 스크린에 자료를 띄웠다.

"카자카미 히로토. 카자카미 가문의 방계로 출신 때문에 겉돌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히로토를 본가의 우에토가 발탁, 밀어주어 후쿠오카 사관학교의 장학생으로 꽂았습니다."

"…표현 곳곳에 다분히 의도적인 부분이 느껴지는군요."

"본래 카자카미 히로토는 후쿠오카 사관학교에 입교할 자격이 부족했습니다. 그걸 장학생으로까지 꽂아 주고 밀어 주기 위하여 힘을 썼으니 이것들이 그 증거입니다."

이윽고 스크린에 나지윤이 말한 증거들이 표시되었다.

장학생 선발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수를 준 부분들.

심사관들과 우에토 휘하 인물들과의 석연치 않은 만남들.

이후 장학생 선발 기준의 변경 등.

속된 말로, 그러나 명확하게 한 마디로 하여 '빼박'이었다.

빼도 박도 못할 명백한 증거.

허나 카자카미 우에토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교묘하게 잘 끼워 맞춘 내용이군요. 잘 봤습니다."

"끼워 맞췄다?"

"예. 끼워 맞춘 자료들이군요. 조사해 보면 알 것입니다. 제가 히로토를 추천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 그대로 능력이 있음에도 기회를 잡지 못했던 인재를 위한 선의였습니다. 비록 제 눈이 잘못되어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났으나 그 선의까지 의심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카자카미 가문을 지지하는, 우에토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의 함성이었다.

…나지윤은 웃었다.

"그렇군요. 한데, 그러면 이건 뭔가요?"

화면이 바뀌었다.

나지윤이 든 손 서류뭉치의 내용이 표시된 것이었다.

"카자카미 우에토 당신의 명의, 그리고 당신이 이용한 차명 계좌의 자금 흐름입니다."

"……."

"선의로 한 추천이 전부였다면 왜. 당신과 당신의 휘하에서 운용한 자금이 여기로 흘렀을까요?"

카자카미 히로토를 장학생으로 밀기 위하여 사용했던 자금 내역.

그리고 카자카미 히로토가 저질렀던 답청문과 암산서가에 대한 온갖 수작을 위해 필요했던 것들을 지원한 내역이 명명백백하게 나지윤이 제시한 자료에 나타나 있었다.

심지어, 히로토를 이용하여 소담을 첩실로 들이기 위한 계획마저도 표시되어 있었으니 소담의 카자카미 우에토를 보는 시선에는 살을 에일 정도의 싸늘함이 묻어났다.

"……."

"……."

낮은 온도의 침묵이 내려앉아 퍼져 나간다.

체크 메이트.

그런 단어가 떠오르고 마는 침묵이다.

허나.

씨익-

당사자인 카자카미 우에토가 당당하게 웃음으로써 분위기가 일변한다.

"잘 만든 조작물이군요."

"…조작이다?"

"예. 조작입니다. 보는 순간 바로 알겠네요. 이렇게나 조잡스런 증거물이라니. 이런 걸 제시하는 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마신교의 지낭인 것이 당황스럽군요."

카자카미 우에토는 나지윤이 제시한 자료를 또, 조작이라 말했다.

당당하게.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지록위마(指鹿爲馬)라 했던가.

얼토당토않은 것을 우겨 지켜보는 이들을 속이려 드는 것이 딱 그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얼토당토않은 일이 일어났다.

우우우우우-!

"우에토를 모함하지 마라!!"

"무슨 의도로 우에토를 모함하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우에토를, 오히려 주변에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 당연하다는 얼굴로 우에토는 당당하게 웃는다.

"나는 당신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나를 모함하려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세간에서는 말하더군요. 천마신교가, 일본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이번 기자 회견을 열었다고."

"일본을 우습게 보지 마라!!"

"누구와 결탁해서 이런 짓거릴 하는 거냐!!"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건, 설령 천마가 적이라 하여도 나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것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하.

나지윤은 웃었다.

눈이 하나뿐인 세계에서는 눈이 둘인 사람이 비정상이라고 했던가.

그런 세계에 떨어진 것만 같다.

그러나, 그래.

예상대로였다.

이렇게나 명확하고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했음에도 카자카미 우에토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증거마저도 부정하고 무마해 버릴 힘과 위치를, 카자카미 가문은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 카자카미 가문을 시민들이 지지하기까지 한다.

천하의 세이전주 나지윤이 지금껏 행동에 나서지 못했던 이유였다.

그렇게, 몇 년이나 인내하면서 괴물의 심장을 찌르기 위해 기다리던 나지윤이었으니 오늘 이 자리가 만들어진 이유는 명백하다.

나지윤이 시린 미소로 물었다.

"카자카미 우에토."

"무엇입니까?"

"이빨, 좋아하십니까?"

"……."

카자카미 우에토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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