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화
-집행유예 나올 거다. 그러면 후쿠오카 사관학교로 가라.
사고를 친 자신에게 떨어진 아버지의 그 선고가 시작이었다.
장영준은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그때의 말이 마치 인두로 지져진 것처럼 뇌리에 남았다.
대한민국의 후기지수를 서양에서는 온실 속 화초라 부르며 얕잡아 보았다.
아니, 얕잡아 본다는 단어는 좀 안 맞다.
실제로 한국의 후기지수는 지극히 평화로운 세상에서 소꿉놀이를 쳐하고 있었으니 최소 한 수, 평균적으론 두세 수는 낮춰 보아야 한다.
어릴 적부터 마약, 칼, 총에 맞서 싸워야 하는 서양도 그렇고 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아 그야말로 생존 경쟁을 해야 하는 중국도 한국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무림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일본이었다.
마치 중국과 서양을 반반씩 섞은 듯한 환경.
서양처럼 정부와 법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스며 있으나 조금만 그늘진 곳으로 가면, 서늘한 칼날이 목에 와 닿는다.
후쿠오카 사관학교는 찬란한 양지만큼이나 내부에 어두운 그늘이 있는 학교였다.
"그래. 네가 장 상의 아들이라고?"
처음 만난 순간 압도당했다.
카자카미 가문의 히로토라고 했다.
방계라고 하지만 카자카미의 성을 가진 그는 장영준을 본능의 단계에서부터 찍어 눌렀으니 이런 인간을 또 압도한 김도진의 존재가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좋은 활약을 기대하지."
카자카미 가문의 방계 히로토의 수하로 장영준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됐다.
그리고 장영준은 너무나 멍청하게도 첫 명령을 하달받을 때까지만 해도, 안일했다.
빠각!
"끄어어억!"
"썩어빠진 돼지 새끼와 같구나."
뻐어어어억!
조금 안이하게 생각하여 처리한 일로 처절한 구타를 당했고 비명을 내지르면 짐승 취급을 받으며 더 가혹한 체벌을 받아야 했다.
그의 삶이 시궁창에 처박혔음을 그제서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이었고 조금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온몸이 쇠창살에 꿰뚫리는 듯한 고통을 당했다.
허나 그것이 '당연하다'고 모두가 말했다. 아버지마저도.
이곳의 법칙은, 한국과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그마저도 '행복한 나날'이 되는, 진실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불행이 장영준을 덮쳐왔다.
카자카미 히로토가 성씨를 박탈당하고 유폐되었다.
'…하, 하하?'
올라가는 입꼬리를 순간 제어하지 못했다.
그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자가 원수였던 김도진에게 당하여 나락에 처박혔다.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버지가?'
그의 아버지가 카자카미 히로토에 의해 목이 베여 죽었다는 소식에 잠시 천국에 갔던 기분은, 그리고 그의 운명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보호자가 사라졌다.
아버지와 이혼했던 어머니는 그와의 인연 자체를 끊어 버렸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가장 미워하고 또 저주하였던 카자카미 히로토의 '보호'마저 잃게 되면서 그는 진정으로 천애고아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 막막함을 무어라 해야 할까.
무엇 하나 보이지 않고 단 한 걸음조차 내딛지 못하는 그때의 감정을.
그때부터가 진정한 지옥의 시작이었다.
"한국에서는 이 고데기란 게 유행한다면서?"
치이이이익!
"끄으으으읍!"
고데기의 열을 체크한다며 그의 온몸을 지지던 작은 악마의 패거리들이 있었다.
그저 입을 다물고 있는 것보다 악문 잇새로 새어 나오는 비명을 즐기던 자들.
"얘는 귀엽지만 얘가 싼 똥은 더러운 걸. 배변 봉투는 귀찮으니까, 쥰이 먹어."
"……예?"
"이거, 잘라."
스각.
"끄아각."
예고도 없이 터무니없는 소리에 한 번 반문했다는 죄로 한쪽 귀가 잘렸고 비명을 내지르면 시끄럽다는 이유로 턱을 걷어차이고 몇 개나 되는 이가 부러졌다.
"얘보다 쥰 네가 더 하찮다는 걸 아직도 모르다니, 교육이 이렇게나 힘들어서야 데리고 있지 못하겠는걸?"
피투성이가 된 입으로. 덜걱거리는 턱으로.
처업, 처업.
"우엑. 더러워."
나가요시 쥰이 된 장영준은 그렇게 사람 이하로 살았다.
"그래, 천마를 상대로 용감하게 싸웠다고?"
"과분한 말씀입니다."
카자카미 본가 깊숙한 곳의 전통식 거실.
엎드린 장영준의 벗은 등에는 화려한 색의 나비가 그려져 있다.
이레즈미(入れ墨).
겉보기에는 그저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이 문신은 작은 악마가 수없이 가한 학대의 흔적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지지고, 쑤시고, 긁어내고.
그 모든 것들이 상체를 온통 뒤덮은 이레즈미에 가려졌고 작은 악마는 이렇게 문신을 한 장영준을 '나비(蝶. チョウ)'라고 불렀다.
그 작은 악마를 딸로 둔 자가, 부복한 장영준의 앞에 있는 남자다.
카자카미 우에토.
카자카미 노보루가 말년에서야 얻은 '재능 있는 아들'.
그리고 카자카미 가문이 정계에 내세운 중의원 후보.
또, 그리고.
갈 곳 없는 버려진 족보없는 개새끼를 거두어 딸의 애완동물로 던져 준 '은인'이었다.
그 은인의 발이,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뻐억!
입을 얻어맞고 장영준이 성대하게 나뒹굴었다.
피와 함께 이빨이 몇 개나 튀어 후두둑, 바닥에 흩뿌려졌다.
"패배하여 카자카미 가문의 이름을 더럽혔으나 용맹함을 보아 용서하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물러가도록."
다시 부복하여 인사하고서 장영준이 바깥으로 나갔고 안에는 흩뿌려진 장영준의 이빨들이 남았다.
이미 몇 번이나 부러져 인간의 것이 아닌 보철물로 만든 이빨이.
그리고 교대하듯, 단아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자 둘이 다소곳한 몸가짐으로 안에 들어섰다.
파르르…….
숨기지 못한 두려움이 옷자락 안에 감춘 떨림으로 묻어난다.
카자카미 우에토는 거기에 만족스러워 하며 웃다가.
쫘아아악!
"아아아아악!!"
짐승이 되었다.
'내것이 되었어야 했다.'
그의 취향대로 꾸민, 정확히는 '서소담 코스프레'를 한 여자들을 난도질하며 카자카미 우에토는 생각했다.
서소담.
카자카미 가문의 개가 되었어야 할 암산서가의 후계자.
태생이 천하여 처로 들이지는 못할 천것이었으나 총애하여 첩실로 들일 생각이었다.
잘 길들여 딸에게 주었던 애완동물처럼 곁에 두고 예뻐할 생각이었거늘.
빠각.
"끄읍. 끄으으으읍."
손에 넣지 못할 것이 되고 말았다.
콰드드드득!
"끄르륵."
평생 가지고 싶어한 것 중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없었거늘.
그래서 그런지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고 공허함만이 커졌다.
'하지만.'
"아아아아아악!!"
가능성이 생겼다.
다시는 갖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것을 가질 수 있는 희망이.
퍼억!
후드득.
핏물 위에 더러운 욕망이 흩뿌려졌다.
카자카미 우에토는 토해낸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얼굴로 옷을 추슬렀고.
[속보입니다. 천마신교의 천마 김도진이 카자카미 가문의 답청문과 암산서가에 대한 착취를 고발하는 기자 회견 자리를 만들어……]
"…뭐라?"
소리를 가리기 위해 틀어두었던 TV에서 흘러나오는, 흘리지 못해 소리가 되어 파고든 내용에 두 눈을 크게 떴다.
* * * *
-장하직의 아내는 결혼 생활이 지독하게도 불행했거든.
남편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아들마저도 폭력을 행사했다고 나지윤은 말했다.
-그러니까 장하직이 죽고 나서 일본에 있던 아들과도 아예 연을 끊었던 거야.
이후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장영준을 카자카미 가문의 후계자인 우에토가 거두어들여 딸의 애완동물로 주었다.
"보통 미친놈이 아니네."
-응. 하지만 똑똑하게 미친놈이었지.
철저하게 굴복시켜 더러운 것을 자르는 칼로 삼았다.
그리고 상휘무사(上揮武士)의 자리로 당근을 주었다.
카자카미 가문이 직접 거두지 않고 가신가문인 스미하라가의 무사로 두었다.
스미하라가의 무사는 세 등급으로 나뉘니 하련무사와 중진무사 위에 상휘무사를 두었고 상휘무사는 독자적으로 수하를 둘 수 있으며 제법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도 있었다.
장영준은 그러니까 그렇게나 지독한 애완동물로 살면서 또 동시에 상휘무사로서 호화로운 삶을 살기도 했었던 거다.
'한패'가 되었다.
그래서 우에토는 장영준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정성들여 학대하여 그것이 당연하도록 만들었고 동시에 보상으로 그 외의 시간에는 '셀럽'이 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완벽하게 굴복한 애완견이 되었다, 고.
하지만 오산이었다.
-복수를 도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카자카미 히로토의 배후에 카자카미의 본가가 있다는 걸 알고 그 죗값을 묻기 위해 조사하던 중에 접촉하였던 장영준의 눈을 나지윤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카자카미 가문이 너무나 거대한 괴물이 되어 외부에서는 공략할 틈을 찾기 어려웠던 시기에 접촉한 내부자에게 나지윤은 목숨을 걸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장영준은 가볍게 답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말이 아니라 태도.
목숨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는, 삶을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둔 '척'이 아닌 진짜에 나지윤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배팅하였고.
"그럼, 시작할까?"
-그래.
마침내 그 죗값을 묻기 위한 계획을 시작하게 되었다.
* * * *
총선을 앞두고 술렁이던 일본을 뒤집어 놓는 기사가 떴다.
천마 김도진이.
카자카미 가문에게.
답청문과 암산서가를 착취한 것에 대한 죄를 묻는 기자 회견을 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야? 카자카미 가문이 뭘 했다고?
-나 이거 기억해. 카자카미 히로토라는 방계가 저지른 죄였고 이례적으로 노보루 상이 직접 사과하고 보상까지 했던 건데.
-? 뭐야. 이미 사과하고 보상까지 한 일이라고? 그게 왜 지금 다시 나와?
-오보 아니야? 천마가 직접 기자 회견을 한다는 것부터가 좀 이해가 안 되는데.
처음에는 대체로 의아함이었다.
이미 끝난 일이었으니까.
하물며 김도진은 바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는 여러 접점이 있었지만 천마로서는 접점이 아예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일본과의 연이 희미했기에 더욱 의아했다.
다음은 의심이었다.
-아직도 이런 더러운 수작을 하는 구태의 상징들이 남아 있나보네.
-아니, 이런 수작으로 정말 카자카미 가문에 흠집을 낼 수 있을 거라 보는 건가www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고 조금 비틀어서 상대 후보의 가문을 비방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
허나.
[암산서가의 소가주 서소담, 답청문의 나지윤 입국.]
천마신교의 핵심 인사이자 천마와 가까운 인물인 서소담과 나지윤이 '피해자'로서 직접 일본에 입국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뭐야. 이게 진짜라고? 진짜?
-무슨 일이야 이게. 천마신교가 일본에 싸움을 거는 건가?
기사가 뜨고 과거의 일이 자세하게 재조명 되었다.
방계 가문이 오랜 세월 수작을 부려 답청문과 암산서가를 착취하고 이내 부정적인 방법으로 한국에 진출하려 했었던 불미스런 사건이 있었고 이례적으로 가문의 수장인 카자카미 노보루가 공식적인 사과까지 했었던 일.
단순한 무림의 일이 아니라 국가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로 카자카미 가문은 일본 전체에도 사과를 했었다.
그리고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이제와서 다시 그 일을, 천마가 된 김도진이 끄집어낸 것이었다.
[카자카미 가문. "갑작스러운 일이라 신중하게 파악 중"]
카자카미 가문에서는 확실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그저 파악중이란 태도를 취한 가운데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고 기자 회견의 장소와 시간이 확정되었다.
오만해진 천마가 카자카미 가문에, 그것을 넘어 일본에 시비를 거는 것이다.
아니다. 천마가 언제 허튼 소리를 한 적이 있던가. 분명히 무언가가 있어 기자 회견까지 연 것이다.
연일 인터넷이 달아오르고 그에 비례하여 기자 회견에 대한 관심이 끝없이 치솟는다.
그 시기에, 세이전주 나지윤이 선언했다.
"떳떳하다면 회견장으로 나오세요. 박살을 내 드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