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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11화 (711/741)

711화

나비 문신 무인과 도진이 마주보았다.

도진은 옅게 웃고 있는 얼굴인데 나비 문신 무인의 얼굴은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다.

평범한 이라면, 그리고 평범한 상황이라면 아주 어색했을 텐데 도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꽤나 많이 이미지가 달라지셨네요? 장영준 씨."

오랜만에 만났다는 뉘앙스와 장영준이라는 이름에 뒤로 물러서 있던 스태프들이 의아해했다.

놀랍게도 그들을 핍박하던 '사무라이'와 아는 사이인 듯한 것도 그렇고 '일본인'을 한국식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민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천마와 아는 사이에 저런 특이한 인물이라면 어디선가는 그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데…….

그러나 그들은 아무리 고민해도 장영준이란 이름에 관해 떠올릴 수 없었으니 사실은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장영준. 그는 영화로 따지면 한 번이라도 이름이 불리는 것만으로도 특별할 만큼의 '삼류 양아치 엑스트라'였으니까.

아직 도진이 숭무고의 1학년이었던 때.

그리고 아직 상미가 숭무고에 입학하기 전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 엮였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양아치짓을 하던 고등학교 2학년이 바로 장영준이었다.

이윽고 시린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던 꽃과 같았던 상미에게 눈독을 들이고 수작을 부리다 도진에게 제대로 걸렸고 오성 그룹 법무팀의 나성보 변호사가 나서면서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이후 조용히 일본으로 도피 유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은 게 마지막이었는데.

그 한국인 장영준이, 상체를 뒤덮은 이레즈미가 특징적인 사무라이 '쵸 상'이 되어 도진의 앞에 나타났다.

뿌득-

"…여기는 일본이야. 일본어로 말해."

이를 간 장영준은 도진의 말에 답하는 대신 일본어로 그렇게 말했다.

도진은 어깨를 으쓱이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여기는 일본이었죠. 그러면 다시 인사할게요. 오랜만입니다, 장영준 씨."

오랜만입니다(お久しぶりです). 깔끔한 일본어로 다시 인사한 도진이었으나 장영준의 얼굴은 전혀 펴지지 않았다.

인사를 무시하고선 선고한다.

"이곳은 치안유지법에 따라 요시찰 구역입니다. 그리고 쿠사나기 공방은 내란 의심을 받고 있는 요주의 단체. 그들과 접촉한 당신들은 조사에 응해야만 합니다."

"글쎄요. 제가 알고 있는 거랑은 좀 차이가 있네요?"

"차이가 있다?"

"네. 제가 이래봬도 바른 엔터 대표잖아요? 일본에 대해서도 꽤 공부했단 말이죠.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이런 식으로 의심만으로 강제로 연행해 갈 권한 같은 건 아직은, 문파의 무인들에겐 없단 말이죠?"

그래. '아직은' 그런 권한을 거대 문파들은 가지지 못했다.

그러니까 도진의 지적은 정확했다.

허나 장영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을 잔뜩 굳힌 채 기세를 일으켰다.

"궤변으로 신풍회에 협조하기를 거부하겠단 말입니까?"

"제 말을 궤변으로 취급하는 장영준 씨가 궤변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내 이름은! 나가요시 쥰이다!"

"오, 그랬었군요. 개명하신 건 몰랐네."

유들유들한 태도다. 사람의 화를 돋구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장영준은, 아니 나가요시 쥰은.

철컥-

칼에 손을 얹었다.

"순순히 따르지 않겠다면 무력을 행사하겠다."

그리고 경고했다.

'뭐, 뭐죠.'

'그러게. 미친 건가?'

그 경고에 도진의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스태프들이 눈으로 그런 대화를 나눴다.

처음엔 장영준의 협박에 잠시 패닉에 빠졌으나 곧 도진의 등을 보고서 바로 안정과 여유를 되찾은 두 사람이었다.

그래. 그들과 함께 있는 사람이 바로 천마(天魔)였다.

조금 과장을 보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다른 사람은 다 건드려도 세상에서 두 사람, 미국의 대통령과 천마신교의 천마는 절대 건드려선 안 된다고.

그게 '조금의 과장'을 보탠 것일 만큼 천마 김도진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력(武力)이라면 오히려 그 말마저 부족한 것이 천마 김도진인데.

'무력을 행사하겠다고?'

어이가 없어서 이런 상황임에도 순간 뿜을 뻔 했다.

"주변을 경계하라."

타다다다닷-

장영준의 말에 따라 도열해 있던 무인들이 원을 만들어 퇴로를 봉쇄했다.

칼을 꺼내진 않았으나 무인들이 주변을 둘러싼 위협적인 상황임에도 두 스태프는 그리 긴장이 되지 않았다.

이미 도진의 기세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으니까.

차라리 코끼리를 둘러싼 개미가 수백 배는 위협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했다.

"월권 행위가 아닐까 싶은데요."

"사무라이는 정의를 행사함에 있어서 망설이지 않는다!"

'허.'

터무니없다.

그리고 어이도 없었다.

천마의 앞에서 그런 소릴 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러했고 심지어 그들을 둘러싼 일본의 무인들마저 장영준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진짜 비웃고 있는 거 아니야?'

두 스태프의 눈에 피식거리는 일본 무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묘한 상황에서 도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무고한 사람을 핍박하겠다면 저항하지 않을 수 없죠. 하지만 제가 더 고수인 거 같으니까…… 한 삼초 정도는 양보해 드리죠."

삼초(三招). 그러니까 세 번의 공격을 받아주겠다는 소리에 장영준이 다시 한 번 뿌득 이를 갈고선 내공을 끌어올렸다.

"후회할 것이다."

스으-

칼 손잡이를 쥔 장영준의 팔 근육이 불끈거리고 몸이 낮춰졌다.

사냥감을 향해 도약하기 전 맹수와 같은 자세다.

신엽도(迅獵刀).

신풍회가 휘하의 무인들에게 하사하는 무공 중 하나로 발도술(拔刀術)부터 시작하는 무공이다.

본래 발도술은 세간의 인식과 달리 주로 기습 등을 위해 사용되던 기술이지 '일격필살의 강력한 필살기'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무공(武功)이 더해지면서 창작물 속에서나 볼 수 있던 필살기로서의 발도가 현실이 되었다.

신엽도는 그 필살기로서의 발도를 담은 무공이었는데 장영준은 도진의 '양보'를 받아들여 대놓고 초식을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슥-

마치 방아쇠를 당기듯 장영준의 몸이 수축한다.

스으으-

온다.

찰나에 강요되는 긴장감. 그리고 그 긴장감 속에서 거리가 어긋난다.

꽈앙!

터지는 화약과도 같은 돌진과 돌진보다 빠른 발도. 그것은 본래 닿았어야 할 속도보다 '아주 조금 더' 빠르다.

고정된 상체에 시선이 집중되게 만들고 은밀히 신발과 바짓자락에 가려진 발가락을 이용하여 극히 미세한, 그러나 치명적인 거리의 단축 후에 이루어진 발도이기 때문이다.

마치 지평선처럼 하늘과 땅을 가르는 이치가 담긴 한 수는 위협적었다.

그 칼끝을 마주한 것이 천마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파악!

칼끝은 허공을 갈랐다.

빗나간 게 아니라 처음부터 허공을 벤 것처럼.

장영준의 발도에 비하면 정지한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느리고도 사소한 움직임으로 도진은 칼끝을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보았는데, '어떻게' 움직였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미지의 공포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까득!

장영준은 이를 악물고 초식을 연계하였다.

내뻗은 칼이 주는 반동을 고스란히 이용하여 팔과 상체를 당기며 칼을 내리그었다.

여기서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여 범위를 넓히는 것이 요결로 도진의 상체를 범위 안에 넣었다.

따앙!

꽈드득!

"……!!"

굳이, 도진은 그 칼의 면을 가볍게 두드림으로써 방어했다.

어디까지나 도진을 기준으로 한 표현이었기에 그 힘을 감당하는 장영준의 얼굴은 필사적이 되었으며 뼈와 근육 또한 비명을 내질렀다.

포탄을 정면에서 받아쳐도 이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특히나 손목에 부담이 가는 초식을 구사하고 있었기에 검을 놓칠 뻔 했고 감각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나 가벼운 단 한 수에.

위험하다.

본능이 경고하였고 장영준은 그 경고를.

꽝!

무시했다.

위험한 순간에 오히려 한 발을 내딛는다.

언뜻 멋있어 보이지만 아니다.

그것은 자폭이었다.

패배할 순간에 역으로 달려들어 양패구상을 노리는 한 수였다.

빠져야 할 순간에 앞으로 진각을 내딛어 몸을 날린다.

상리에 맞지 않은 행동에 상대가 당황하는 찰나의 순간을 노리고 반사적으로 행할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고서.

빡!

장영준의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세 번째 초식.

몸을 날려 양패구상을 노리는 칼끝을 역시나 아무렇지 않게 피한 도진의 손등이 콧잔등을 친 것이었다.

첫 번째 초식은 피했고 두 번째 초식은 방어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초식을 피함으로써 삼초의 양보는 끝이 났으니 '사소한 공격'으로 마무리지은 것이다.

"아."

한 가지 변수는 그 충격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하게 장영준의 이빨 하나가 날아들었다는 거다.

도진이 작게 당황한, 미안해하는 목소리를 낸 이유였고 그 이빨은 구석에 떨어져 어딘지 모를 곳을 나뒹굴었다.

털푸덕!

그리고 기절한 장영준의 몸 또한 바닥을 나뒹굴었다.

너무나 당연한 대결의 결과였다.

"더 해야 하나요?"

도진의 시선은 기절한 장영준이 아닌 이곳을 둘러싼 무인들의 리더에게로 향했다.

언뜻 보면 장영준을 제외하면 다 같은 복장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그만이 예외로 무복에 장식 하나를 더 달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겉으로는 장영준인 듯 보였던 이 무리의 실질적인 리더가 바로 그였다.

도진의 시선에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 리더가 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폐를 끼쳤다.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앞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덤벼들었던 장영준의 행동을 더욱 의미없게 만들었다.

"그렇군요. 아! 촬영 협조와 관련해서 신풍회 지부에 문의하라고 하던데. 그것도 그럼 잘못된 정보였을까요?"

"그 부분에 관해서는 부디 신풍회 지부에 들려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사과와 함께 긍정적으로 협조에 관하여 논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리하도록!"

"하잇!"

그의 명령에 따라 무인들이 신속하게 움직여 장영준을 회수, 떠나갔다.

도진의 귀가 그렇게 떠나가는 이들의 섭음술 안에 갇힌 목소리를 들었다.

-이 녀석, 형편없이 깨졌습니다.

-푸크크! 우리의 춍(チョン), 용맹했지만 실력이 부족했습니다.

-어이, 중간에 두 글자가 빠졌다구!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줄이는 게 더 부르기 쉽지 않습니까? 효율적이고.

-크크큭. 그건 부정할 수 없군.

-하지만, 마지막의 그 이빨 암기는 대단했습니다.

-천마마저 놀라게 하다니, 과연 춍입니다!

-하하하핫!

"돌아가죠."

"알겠습니다."

장영준과 함께 왔던 무인들, 신풍회의 무인들이 사라지고 도진도 몸을 돌렸다.

* * * *

바른 엔터 일본 지사로 돌아온 도진은 스태프들과 헤어져 조용한 업무실에 혼자 앉아 통신을 연결했다.

-어땠어?

"심하게 당했더라고. 불쌍할 만큼."

대화에서 생략된 주어는 다름 아닌 장영준이었다.

-우리 천마님의 입에서 양아치가 불쌍하다는 단어가 나올 정도인 걸 보니 심하긴 심했던 모양이야.

"직접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도진의 신안(神眼)은 많은 것을 꿰뚫어 본다.

그 신안으로 본 장영준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그렇게 될 정도로 당했으니까.

스윽-

도진의 손에 그의 '이빨'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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