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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08화 (708/741)

708화

슈퍼스타 B에 대한 관심과 흥행에 더욱 장작을 넣은 에몬트홀 테러 사건이 있고서 얼마 뒤.

도진은 정의검가의 미국 분가(分家)에 공식적으로 방문하였다.

분가. 쉬운 단어로 바꾸자면 회사의 지사 같은 느낌이다.

다만 정의검가의 미국 분가는 오히려 본가보다 더욱 크고 화려한 규모였으니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본격적으로, 크게 활동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요즘엔 소검후 유지은의 본격적인 활동과 더불어 천마신교와의 끈끈한 인연이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 기세가 거세고 드높았다.

그리고 오늘.

[정의검가. 천마신교와 명성공방이 함께하는 협약 체결!]

도진과 우서진이 방문한 정의검가 미국 분가에서 천마신교와 명성공방, 정의검가가 더욱 굳건한 관계가 될 협약을 체결하는 행사가 열렸다.

세 집단이 한 울타리 내의, 혈맹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관계라는 건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오늘의 행사는 그 관계를 명문화함으로써 사회적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관계를 선포하는 자리가 되었다.

천마 김도진, 소검후 유지은, 여기에 미룡(美龍)이라 불리던 우서진의 체결식은 지극히 평범했으나 그 여파는 결코 평범하지 않아 온갖 기사와 반응을 이끌어냈다.

-전세계원탑 문파랑 전세계원탑 공방에 전세계원탑 재능러의 체결식;;

-그렇게 말하니까 존나 대단해 보이네.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대단한 거 맞음 ㅋㅋㅋㅋ

-잠깐만. 근데 저게 다 한국인이잖아?..

-미국이 부러워하고 중국이 경악하며 일본이 두려워하는 조합;;

-국뽕이 차오른다.. 캬 ㅋㅋㅋㅋㅋ

-그거 앎? 한유아까지 해서 저거 전부다 숭무고 동창회임ㅋㅋㅋ

-엌ㅋㅋㅋ 그러고 보니 잠룡 패밀리네.

-잠룡이 숭무고만 다 해 먹는 게 아니라 미국까지 다 해먹네;;;

호들갑을 떠는 반응도 있었으나 그게 마냥 호들갑이 아닐 만큼 이번 협약이 가지는 의미는 컸다.

새삼 천마신교가 미국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거대하다는 걸 인식시켜 준 것이다.

정의검가는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미국에서 손꼽히는 무가(武家)였으며 명성공방의 대장장이 업계에서의 위상이야 말할 것도 없다.

천마신교? 천하제일인이 교주로 있는 천하제일의 문파로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으니 이 세 곳이 함께한다면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게 만든다.

직간접적으로 그 영향을 받게 될 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박수를 친 이유였고 도진과 유지은, 그리고 우서진은 해가 지고도 한참이나 손님을 상대해야만 했다.

"끄으으으응."

늦은 밤.

유지은이 편한 차림으로 쭈욱 기지개를 켰다.

피로는 없었으나 행사가 끝나고 손님들에게서 해방된 기분을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자리에 앉으니 테이블을 중심으로 오늘 행사를 함께한, 세간에서 말하는 '잠룡 패밀리'가 둘러앉아 있다.

도진과 한유아, 우서진.

그녀까지 네 사람이 행사가 끝나고 조촐하게 뒤풀이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치익-

맥주 한 캔을 따고 건배. 한 모금 마신다.

그러면서 맥주캔에 거진 가려진 작은 얼굴 위 유지은의 두 눈이 도진에게로 향했다.

이 와중에도 캔콜라를 고수하는 후배의 모습에 시선이 갔다.

"모이니까 좋네."

말문을 연 유지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쁘니까 말야."

말을 받은 건 그녀의 동기인 한유아다.

자연스레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학생 때는 아무 걱정없이 깽판치고 다닐 수 있었는데."

"나는 아니었거든?"

사실상 폭력 서클이었던 당시 숭무고의 집행부를 뒤집어 놓았던 두 사람이다.

이 자리엔 없는 또 다른 동기인, 한창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 폭룡 류대현까지 해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를 썼었다.

"그래도 그때 재밌지 않았어?"

"그거야……."

당시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맥주에 이어 소주, 양주까지 술이 쭉쭉 넘어갔다.

"어른이 된다는 거, 어릴 때 생각했던 거랑은 좀 다른 느낌이야."

그리고 억누르지 않은 알콜로 인해 미약하나마 술기운이 도는 가운데 유지은이 말했다.

거기에 동의하는 건 이번에도 한유아였다.

"그러게. 어영부영, 그렇게 되어가는 느낌이야."

두 사람의 이야기에 도진도 고개를 끄덕인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선배들도 그런 거 보니까, 전부 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서진이 넌 어때?"

"나는 아직 모르겠어. 그냥…… 좋은 거 같아."

두루뭉술한 대답이었지만 공감할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 자리의 모두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현재에 충실하니 좋다는 거다.

다만 그저, 그것과는 별개로 어릴 적 생각하던 어른이라 불릴 나이가 되었음에도 어릴 적과 다르지 않다는 감각이 여러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얼마전 그런 생각을 했었던 도진이 말했다.

"대용이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대용이? 아."

"그러네. 그럴 수 있겠네."

가정을 이루고 곧 아빠가 될 오대용이다.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건, 과연 무언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문득 도진이 술잔을 들었다.

유지은이 물었다.

"어? 술 마시게?"

"네."

"갑자기? 왜?"

한유아와 우서진도 시선을 향했고 도진은 가볍게 웃었다.

"그냥요. 한 잔 해보고 싶어서? 어른답게?"

"에이. 그게 뭐야."

그러면서도 어느새 곁에서 유지은이 양주를 따라 주었고 도진은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결론은.

"역시. 맛없네요."

그랬다.

유지은이 쿡쿡 웃었다.

"우리 후배는 평생 아이 입맛으로 살겠네."

"뭐, 나쁠 건 없죠."

어깨를 으쓱이는 도진에게 유지은이 은근한 눈빛이 되어 말했다.

"모르지. 대용이처럼 아빠가 되면, 우리 후배도 술이 맛있어질지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도진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리고 말한다.

"그런데 그러려면…… 연애부터 해야죠."

"……!"

"……."

유지은과 한유아의 눈동자에 빛이 스쳐갔다.

* * * *

다음날 오전.

가벼웠던 어제의 자리와 달리 제법 진지한 분위기가 깔린 가운데 영상으로 연결된 나지윤 등 천마신교의 핵심이 모인 회의에서 도진이 말했다.

"짐작했던 게 맞았어요. 레너 공방은, 무형독이었어요."

제법 충격적인 내용이었으나 술렁임은 없었다.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심할 요소는 충분히 있었다.

존 스미스에게만 포커스가 집중되었는데 과연 레너 집스는 정말로 아무런 관련이 없었을까.

의심하는 게 당연했고 유심히 지켜보았다.

허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확신할 만한 요소를 찾지 못했고 이쯤 되면 의심을 거둘만도 했지만…… 무언가가 자꾸 걸렸다.

그리고 얼마 전.

도진이 두 눈으로 레너 공방이 무형독임을 확인하면서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멈추지 않고 발전하는 도진은 기어코 철저하게 감춘 무형독의 흔적마저 꿰뚫어 볼 수 있는 눈과 감각을 갖추었으니 그것으로 레너 공방 곳곳에 스며 있는 '증거'들을 잡아낸 것이다.

이를테면 오서 랄프.

그는 레너 집스의 심복으로 당연하게도 무형독이 갖추고 있던 것들 중 제법 쓸 만한 무공을 익히고 있었고 관련한 특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은 제아무리 도진이라 하여도 작정하고 꽁꽁 감춘 내부를 꿰뚫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가능해졌으니 적당한 명분으로 레너 공방 본사를 방문하였고 의심하던 것들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형독의 간부였던 한유성이 피해자인 척 이를 갈면서 레너 공방을 감시했으니 그때 많은 걸 은폐했던 거야.

나지윤의 말대로였다.

설마 금화의 부회장이, 심지어 피해를 보았던 이가 무형독의 간부일 거라곤 모두가 상상도 하지 못했고 그 입장을 이용하여 한유성과 레너 집스는 존 스미스와 관련하여 드러날 수 있는 무형독의 부분을 모조리 은폐했다.

지금까지 레너 집스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꽁꽁 숨은 레너 집스는 댓글 부대를 동원해서 레너 공방에 이득이 되도록 여론을 조작했다.

명성공방을 깎아내리고 레너 공방을 올려치기하는 형태로 말이다.

"음흉한 놈이야, 진짜."

유지은의 말대로였다.

-그 음흉한 놈이 관리하던 자금이 어디로 흐르는지 유아 선배와 함께 찾아냈습니다.

발언하는 나지윤의 옆에 놓인 모니터로 여러 자료가 떴다.

복잡한 걸 다 생략하고 한 마디로 하면.

"…카자카미 가문이네."

-네. 카자카미 가문입니다.

유지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지윤의 입꼬리가 날카로웠다.

* * * *

-카자카미 가문의 주도로 일본에서는 아주 큰 변화와 혼란이 일어나고 있죠.

"정무일치."

우서진이 중얼거렸다.

정무일치(政武一致). 온 세계의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지금 일본이 소란스러운 이유를 네 글자로 설명하는 말이었다.

강대국이었던 일본은 그러나 세계 시류에 탑승하지 못하고 변방으로 밀려난 감이 있었다.

그 책임을 카자카미 가문이 구태가 만연한 기존 의원들에게 돌리며 일본을 뜯어 고쳐야 한다 목소리를 높인 것이 '정무일치론'의 시작이었고 나라 전체가 들썩이게 됐다.

정무일치론은 간략히 말해 경지에 이른 무림인, 압도적으로 뛰어난 '초인'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였는데 이 논리를 거대 문파들이 지지하면서 일본 전체가 흔들렸다.

지금의 일본은 그 체제가 막부 시대로 회귀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거대 문파가 곧 재벌이었고 근거지에서 정부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 거대 문파들이 정무일치론을 지지하면서 대대적으로 여론을 이끌었고 여기에 일본 국민들마저도 다수가 지지를 보냈다.

-얼마 남지 않은 일본 총선의 결과가 이미 나왔다고들 말하죠. 실제로 사실상 거대 문파에서 나온 후보들의 당선이 확정돼 있어요. 거대 문파가 일본을 장악하는 거죠.

그것은.

"무형독이 이쪽 세계를 장악하려 했던 거랑 비슷하네."

-네. 그거예요.

선들이 이어져 그림이 된다.

흩어진, 그러나 와해되지 않은 천마신교의 이단이 세계 곳곳에서 벌인 온갖 범죄들.

그 범죄로 얻은 수익은 여러 단계를 거쳐 일본의 카자카미 가문으로 흘렀다.

카자카미 가문은 그 자금을 이용하여 일본을 뒤흔들었으니 내각, 국회의 장악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잠적한 한유성, 정체를 감추고 있던 레너 집스, 그들과 이어진 카자카미 가문까지.

-무형독의 잔당은 일본을 먹으려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을 앞두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세이전주."

그렇게 묻는 도진의 시선에는 미국 최대의 기업을 넘어 한 나라의 문제가 엮인, 아득한 규모의 사건임에도 나지윤이 당연히 답을 알 것이란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 믿음의 대상인 나지윤은 언제나 그렇듯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자.

답은 지체없이 나왔다.

그리고 답하는 나지윤의 입꼬리는 평소와 달리 날카로웠으니 카자카미 가문은 나지윤에게, 그리고 소담에게도.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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