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화
레너 공방은 미국 최대의 공방이다.
-레너 공방? 나 지금 넘버 원 공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대표가 무형독 간부였던 게 들통나면서 토막난 게 레너 공방 아닌가? 자 쓰레기죠?
-레기견 새끼들 아직도 존앤집스 시절 표 들고 와서 헛소리하는데 야 임마. 니들 프리미엄 라인 점유율 '기타(others)'따리라고 ㅋㅋㅋㅋㅋㅋ
-이새끼들 지들이 나대면 나댈수록 레너 공방 부끄럽게 한다는 걸 지들만 모름 ㅋㅋㅋㅋ
커뮤니티에서의 반응만 보면 믿기 힘들지만, 레너 공방은 여전히 미국 최대의 공방이 맞았다.
미국은 막대한 자본과 자원, 그리고 인재를 바탕으로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인프라를 갖추었으니 세계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대장장이의 나라였고 그중 선두가 존앤집스 공방이었다.
존앤집스 공방은 업계 최대 규모의 시설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업계 최고의 기술 또한 보유하고 있었으니 존앤집스의 공산품은 전 세계로 수출함은 물론이요 국가에도 납품할 정도였다.
그런 회사였으니 당연히 인재가 몰렸고 특히 명품이라고 하면 개중에서도 '이름값'이 있는 존앤집스 공방의 물건을 선호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최고이면서 최대.
존앤집스는 전 세계 대장장이 업계의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그 존앤집스의 '왕좌'를 위협하는 초신성이 등장하였으니 한국의 명장 우벽진이었다.
우벽진은 눈(雪) 시리즈로 세계 경매 시장에서 최고가를 경신하였고 이후로도 성공가도를 달리며 존앤집스에게서 '최고'를 빼앗아 버렸다.
그러던 중에 존앤집스의 두 대표 중 한 명으로 전면에 나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존 스미스가 무형독의 간부임이 들통나며 회사가 완전히 나락에 처박힌 것이다.
존앤집스는 결국 존 스미스의 존재를 지우고 나머지 한 명의 대표, 레너 집스의 이름만을 남겨 레너 공방이 되었고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모든 광고를 내리고 숨을 죽인다.
큰 기업의 경우 무엇보다 '브랜드 가치'가 중요하기에 다방면으로 그 가치를 제고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이 시기는 오히려 그 노력이 역효과가 날 것이었기에 침묵을 택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레너 공방이 한물 갔다 생각한 사람들이 많은 것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프리미엄 라인이 완전히 죽어 버린 건 맞아."
빔 프로젝터를 통해 띄운 커다란 화면 앞에 선, 아름다운 금발 머리카락을 올려 묶고 커다란 안경을 쓴 화려한 미녀가 말했다.
세미 정장 차림으로 프로페셔널한 이미지를 더한 그녀는 한유아다.
도진을 앞에 두고 그녀가 말을 잇는다.
"명장의 물건을 찾는 사람들은 돈이 아니라 가치를 더 중요하게 보잖아? 그런 사람들이 존앤집스의 물건을 찾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죠."
"레너 공방이 되었어도 그건 다를 바가 없으니까 레너 공방의 프리미엄 라인 점유율은 채 1%도 되지 못해. 하지만! 공산품 쪽의 점유율은 거의 타격이 없어."
우선 브랜드를 지운다.
그리고 할인율을 높이면 '시장'은 퀄리티도 높은데 가격이 싼 물건을 선택하는 게 당연했다.
레너 공방은 그렇게 함으로써 마진은 줄었지만 여전히 공산품 쪽에서의 점유율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안경 너머 한유아의 사파이어보다 예쁜 눈동자가 빛났다.
"여기서 마진을 속이고 있다는 걸 발견했어."
자료가 바뀌었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눈에 익어 도진도 읽을 수 있게 된 표에는 한유아의 말대로 마진을 조작한 정황이 드러나 있었다.
실제로 줄은 것보다 더 많이 마진이 줄은 것으로 조작하고 그 차액만큼을 빼돌렸다.
"평범하게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볼 수도 있는 표야. 레너 공방 같은 덩치의 기업은 오히려 안 하는 게 이상하지. 문제는 이거야."
한유아의 손가락이 자금의 흐름을 표시한 표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레너 공방이 조작을 통하여 숨긴 돈이 어디로 흘렀는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는."
"응. 이 정도면 거의 확신이지?"
* * * *
숨 죽이고 있던 레너 공방은 댓글 전쟁으로 인해 언급되는 빈도가 늘었다.
이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자숙 중인 레너 공방이 요즘 업계 최고로 인정받으며 외적으로도 확장을 시작한 명성공방의 라이벌이라는 이미지까지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대로만 가면 돈 안 들이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었을 텐데 잘 가다가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세간에서 말하는 '잼민이 테러범'으로 인해 레너 공방의 이미지에, 말이다.
댓글 전쟁이 수면 위로 올라와 언론에서도 언급되면서 레너 공방에 득이 되던 댓글 전쟁이 안 좋은 쪽으로 반전하고 말았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주주들에 의해 배임으로 고발당할 지경이 되었다.
여기서 레너 공방의 인재들이 묘수를 내었으니 슈퍼스타 B에서 입장과 방안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슈퍼스타 B는 특성상 참가자들이 작품의 완성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으니 그 사이사이에 여러가지 콘텐츠를 끼워 넣었는데 이번엔 여기에 협찬을 포함하여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레너 공방의 이야기를 편성하도록 협의했다.
이로써 이미지 쇄신에 성공하면 악재를 호재로 바꿀 수 있었으니 네티즌들 또한 신의 한 수라고까지 칭찬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끌게 만드는 기사가 떴으니.
-아니 천마가 레너 공방엘 왜 가?;;
천마 김도진이, 그것도 우서진과 클로에를 데리고 레너 공방 본사에 간다는 것이었다.
우서진과 클로에는 그럴 수 있었다.
슈퍼스타 B의 흥행 돌풍 중심에는 이 두 사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천마 김도진은 참가자가 아니었으니 왜, 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누군가가 이렇게 답했다.
-바른 엔터 대표자너..
-...엥?
-슈퍼스타 B 제작 스튜디오가 바른 엔터 거니까 흥행 때문에 나올 수도 있는 거지 뭐. 요즘 엔터 대표가 예능 나오는 게 특이한 것도 아니고 말야.
-...그런가?
-그랬던가?
-그런 거 같기도?
아리송해 하는 이들이 적지는 않았으나 여론은 결국 환영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김도진하면 이미 소천마조차 아니었던 시절부터 안티체리와 레드슈의 '매니저'로 예능 치트키였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협의 끝에 촬영이 시작되었으니 레너 공방 본사.
"여기가 레너 공방 본사구나. 진짜 크네."
"그죠? 규모는 진짜 업계 최고예요."
카메라 앞에서 감탄하는 도진과 그 옆에서 부연하는 우서진이다.
"클로에네도 엄청 크다면서?"
"예. 하지만 저희는 수작업 중심이라 이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구나."
그리고 도진의 시선에 담담하게 설명하는 클로에까지 세 사람이 오늘 레너 공방을 방문하는 멤버였다.
평범하게 차려입은 도진과 달리 양옆에 선 우서진과 클로에는 시선을 확 잡아끄는 차림이다.
'미녀들이 절대로 옆에 서고 싶지 않은 미인 1위'인 우서진은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가죽 소재의 대미지 자켓을 시작으로 한 마초적인 차림이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미스매치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여기에 비해 금발에 새하얀 피부의 클로에는 청순가련함을 극대화하는 화이트 블라우스에 네이비 스커트, 그리고 쉬폰 가디건으로 코디를 완성했다.
-와.. 뭐냐. 오늘 클로에 여신 모드임?
-진짜 미쳤다. 클로에 폼 머ㅜ냐;;;
-안 꾸며도 예쁜 사람이 꾸미면 이 정도가 되는구나..
-..? 님들 왜 클로에만 칭찬함. 우서진 무시함?
-아니, 이건 클로에 칭찬할 수밖에 없지;;
-?
-우서진이랑 대비되는데도 폼이 안 죽잖아;;; 이게 말이 됨?
-아..ㅋㅋㅋㅋㅋㅋㅋ
녹화이지만 현장감을 더해주는 '톡 윈도우'가 화면 아래 떠 네티즌들의 웅성거림을 전한다.
"저건 뭐 하는 거야?"
"저건……."
"그렇구나. 오, 저건 근데 엄청 크네?"
"대량 생산 때문입니다."
"그래?"
"예."
주로 도진이 무언가를 보고 감탄하거나 물으면 우서진과 클로에가 대답하는 식이었다.
그리 특별한 그림은 아니었으나 레너 공방의 웅장함을 배경으로 하여 도진과 우서진, 클로에가 더해지니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칠 정도의 콘텐츠가 되었다.
그렇게 충분히 화면을 딴 일행은 드디어 레너 공방이 준비한 자리로 이동, 레너 공방에서 나온 사람들과 마주앉게 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레너 공방의 오피스 디렉터 오서 랄프입니다."
대표로 나선 것은 갈색 머리카락에 중년의 서양 남성이었다.
대장장이인 듯 울끈불끈한 몸이 양복 너머로도 드러났으나 부드러운 미소가 문과적인 이미지를 입혔다.
"반갑습니다. 바른 엔터 대표이지만 오늘은 인터뷰어로 나온 김도진입니다."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예, 맞습니다. 저희 레너 공방의 침묵이 사건을 키운 것은 아닌가 내부에서도 침통해 하는 직원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 변명을 하자면 불미스런 일로 자숙하고 있는 저희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든,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레너 공방을 대표하여 말하는 오서 랄프의 언변은 수준급이었다.
그 수준급의 언변으로 문과의 인재들이 써 준 대본을 완급을 조절하여 말하니 대단한 호소력을 가진다.
"저희는 여전히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침묵은 범죄에 대한 동조라는 말도 있으니 필요하다면 조심스레 의견을 표출하는 선에서의 목소리만큼은, 여러분들이 허락하신다면 내도록 하겠습니다."
매끄러운 인터뷰에 도진은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청자로서 그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특별한 장면 없이 랄프 오서는 준비한 내용을 다 발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난한 인터뷰의 끝자락에서 도진이 말했다.
"오늘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능했다면 레너 대표님을 뵙고 싶었는데 역시, 신비인이시라 그런지 쉽지 않네요."
랄프 오서는 하하 웃었다.
"저희도 좀 아쉽습니다. 저희도 대표님을 직접 뵙는 게 정말 어렵거든요. 하필 중요한 일로 출장을 가셔서……."
"다음에는 꼭,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리 말하고 헤어지는 것으로 촬영은 끝이 났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은근히 도진과 옷자락이 스치는 거리를 유지하며 걷던 클로에가 물었다.
"스승님."
"응, 클로에."
"레너 공방을 의심하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한데 어찌 그를 흔들지 않으셨는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천마 김도진하면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 이름값을 바탕으로 하는 거침없는 언변으로 사람을 두들기는 걸로도 유명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질문에 도진이 씨익 웃으며 답해 주었다.
"그게 더 나았거든."
"그 말씀은?"
"그렇게 해야, 그놈이 내가 눈치 못 챘다고 착각을 할 테니까."
* * * *
촬영을 끝내고 개인실로 돌아온 랄프 오서가 조이고 있던 넥타이를 풀었다.
"후우."
그리고 가볍게 숨을 내쉬는 그의 얼굴이, 마치 숨과 함께 부드러움이 빠져 나간 듯 날카로워졌다.
완전히 이미지가 바뀌어 위험한 날붙이와 같은 얼굴이 된 그가 특수 제작된 휴대폰을 들었다.
그 휴대폰으로 연락한 건.
"예, 대표님."
대표. 레너 집스였다.
-어떻게 되었지?
무뚝뚝한 목소리에 랄프 오서가 보고한다.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우리 교를 알아챌 수 있는 요소를 완벽하게 배제하고 철저하게 공방만을 보여 주었으니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敎).
그것은 천마신교를 말함이었으니 랄프 오서는, 천마신교의 이단이었다.
그리고 그 랄프 오서를 밑에 두고 명령하는 레너 집스야말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정체가 탄로나지 않은 무형독의 간부.
이 세계에 흩어진 이단 세력의 최상위에 있는 자였던 것이다.
그 레너 집스가 말했다.
-절대 방심하지 말고 최대한 경계해라.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예!"
이야기를 끝낸 레너 집스 쪽에서 통화를 끊었다.
그렇게 끊기기 전, 랄프 오서의 귀에 희미하게 저쪽 무림의 언어가 들렸다.
말 자체는 유창하지만 발음의 부분에서 조금 어색함이 묻어났다.
그 어색함에 랄프 오서의 눈살이 찌푸려지며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린다.
'하등한 일본놈들 같으니라고.'
그의 상관인 레너 집스의 은밀한 출장지는, 바로 일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