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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06화 (706/741)

706화

사람들은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니 무림에서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누구인가'에 대해 논하는 건 지극히 평범하고 또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지금 시대에 그 천하제일인이 누구인가로 싸우는 일은 없었으니 김도진, 천마(天魔)가 천하제일인임을 누구도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소되지 못한 논쟁의 불씨는 여중제일인(女中第一人)이 누구인가로 넘어갔는데, 여기서 차세대 여중제일인이 누구인가에 관해 논의할 때 첫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소검후(小劍后) 유지은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심지어 남녀를 통틀어 그 세대를 압도하는 천재였던 검봉(劍鳳) 유지은은 비록 1년 후배였던, 당시 소천마라 불리던 김도진으로 인해 조금 빛이 바래고 말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재능이 격하된 건 아니었으니 여전히 동시대 최고였고 이내 차세대 여중제일인이 될 것이라 인정받은 여검수에게만 부여되는 소검후란 별호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 소검후가, 밤늦게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무장한 무인들과 LA의 부촌에 위치한 저택에 들이닥쳤으니 소란이 일어나는 게 당연했고 저택의 주인인 중년의 금발 남성이 당황하여 잠옷 차림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일입니까?!"

"에몬트홀에 폭탄을 설치하고 협박한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게 무슨?"

남성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얼굴로 멍해졌으나 유지은은 망설이지 않고 저택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저택을 경호하던 무인들이 반사적으로 한 발 내딛었지만.

스으으…….

그들은 그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은연중 일대를 뒤덮는 유지은의 기세가,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소검후라더니…….'

'이건 그 정도가 아니잖아!'

기세에 기운을 실어 실재하는 위협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건 소검후라 불리는 유지은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기예였다.

문제는 그 위협이 그들이 감히 상상조차 못할 경지에 있었다는 거다.

노골적이지 않았다.

그저, 압도적이었다.

너무나 차원이 다른 영역에 있어서 오히려 '대항'이라는 단어조차 성립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게, 천재…….'

무형독이 설친다지만 그래도 충분히 태평성대라 부를 수 있는 시대.

그들은 그런 시대였기에 실력을 보일 일이 없었던 유지은의 말도 안 되는 성장의 편린을 엿보고 압도당했으니 그저 멈추어설 수밖에 없었고 생각했다.

소검후는 사실 소검후가 아니라 이미 검후가 되어 있었다고.

그리고 그렇게 경호 무인들을 제압한 유지은은 아무런 방해 없이 범인의 방문을 두 동강 내고 진입, 어두컴컴한 방을 은은하게 비추는 온갖 전자기기로 가득한 가운데 있던 10대 소년을 붙잡은 것이다.

[천마와 소검후의 합작. 10대의 위험한 테러를 제압!]

천마와 소검후의 연계는 당연히 화제가 되었고 도진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뒤처리를 위해 온 유지은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고마워요, 선배. 덕분에 쉽게 해결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 내 덕분이지?"

겸양의 말 대신 조금 더 거리를 좁히며 예쁘게 웃는 모습에 도진 또한 스윽 웃었다.

"네, 맞아요. 선배 덕분이에요."

일이 이렇게나 쉽게 풀린 건 조금의 과장도 없이 유지은의 공이 큰 게 맞았다.

유지은은 정의검가(正義劍家)의 금지옥엽이자 차기 가주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명문 중 명문인 정의검가는 또한 주무대인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가로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총기와 폭발물, 그리고 테러 청정국이라 불리는 곳이다 보니 일정 이상의 무력과 장비를 필요로 하는 일이 드물었다.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의 무가(武家)는 외국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의검가는 그것이 미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대한민국보다 더 치안 유지 계약을 맺은 무가의 재량권이 넓고 강력했기에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슈퍼스타 B의 예상을 넘어선 대흥행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LA의 치안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고 여러가지 이유로 마침 유지은이 정의검가 LA 지부에 머물고 있었다.

도진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바로 유지은에게 전화를 걸어 정의검가에 테러 대처에 관한 협력을 요청했고 유지은이 즉시 움직여 준 것이었다.

그리고 일은……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허무하리만치 쉽게 해결되었다.

테러범의 협박 전화를 추적하는 것부터가 그랬다.

제법 단단히 준비를 했는데 채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위치가 특정되었고 심지어 그곳은 에몬트홀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었다.

애초에 폭탄의 위치 확인과 기폭 명령을 내리기 위해 정보 송수신 기능을 넣어두었으니 이것부터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부분이다.

당시엔 너무 빈틈이 많아 다른 숨겨진 게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잡은 범인이 10대의 아이인 걸 보고선 바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허술한 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의 허술한 범행은 도진이 폭탄을 무력화함으로써 거칠 것이 없어졌고 유지은이 현지의 테러대응팀과 함께 나서서 즉시 범인을 체포, 조사가 진행 중이다.

"어떻게 되고 있어요?"

벤치에 나란히 앉아 도진이 물었다.

유지은은 도진이 건넨 음료를 홀짝이며 답했다.

"꽤 세게 처벌을 받을 거 같아. 이 나라는 테러 같은 데 민감하니까."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를 통해 밝혀진 이번 사건은 성숙하지 못한 10대의 '치기'였다.

소년은 슈퍼스타 B의 광팬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시에, 무형독의 댓글 공작에 휩쓸리고 심취한 반(反) 명성공방파이기도 했다.

요즘 슈퍼스타 B는 명성공방의 우서진과 덴젤 공방의 클로에가 상승세에 있었고 나름 라이벌 포지션에 있던 레너 공방 쪽 대장장이들이 죽을 쑤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러던 차에 지지하던 테오도르가 그린스미스 광장에서 우서진에게 크게 창피를 당하기까지 하였으니 소년의 속이 뒤집힌 것이다.

그 화를 풀 곳을 찾다 눈에 띈 것이 다름 아닌 동양인 가수들이 공연하게 된 에몬트홀이었다.

명성공방을 건드리는 건 무리였지만 공연을 위해 수많은 아르바이트생이 드나드는 에몬트홀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생각이 짧은 10대는 재능과 돈을 좋지 못한 곳에 쓰고 말았다.

"정말로 터뜨릴 생각은 없었다지만 그런 걸 설치하고 심지어 터뜨리려는 시도를 실제로 하고 말았으니까 참작의 여지가 없대."

"그렇죠."

취미로 몰래 폭탄을 만든 건 돈으로 어떻게 무마할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그 폭탄을 테러와 협박에 쓴 건, 나아가 그것을 정말로 터뜨리려 했던 건 제아무리 성숙하지 못한 10대라 하여도 용서받을 수 없었다.

"반성하고 새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말야."

그리고 잠시의 텀이 있고서 도진이 말했다.

"선배, 그새 또 실력이 느셨네요."

"응. 열심히 했거든. 어서 칭찬해!"

"하하. 장하네요, 우리 선배."

가벼운 듯 하지만 도진의 칭찬은 진심이었다.

유지은. 희대의 재능을 개화해 나가고 있는 천재.

그녀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여서 도진에게도 항상 자극이 되었다.

과거 그녀는 스스로의 날개를 두려워 하였고 나아가는 속도를 두려워 하였다.

고독해서. 그리고 더 나아갈 의미를 찾지 못해서.

세상은 온통 흑백이어서 그녀에게 의미가 되어 주지 못했다.

그 세상에서 재능의 인도에 따라 나아갈수록 모든 것이 빛을 잃고 홀로 동떨어진 감각이 그녀가 마음껏 날개를 펼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세상에, 처음으로 색을 입혀준 것이 도진이었다.

흑백인 세상에서 홀로 색이 있던 사람.

그리고 그 색을 자신의 세상에까지 입혀준 사람.

그래서 유지은의 세상의 중심에는 도진이 있게 되었다.

유지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후배."

"네, 선배."

"칭찬과 보답의 의미로 나와 데이트하도록 해!"

* * * *

유지은과의 데이트는 상당히 즐겁고 또 유익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부딪쳐 오는 유지은과의 대련으로 흠뻑 땀을 흘렸다.

그렇게 몸을 움직인 뒤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서 여유롭게 걷다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 맛있게 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경치 좋은 카페에서 디저트까지 즐겼다.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화술도 부쩍 늘은 유지은과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밤이 되었고 바른 엔터 미국 지사로 돌아온 도진은 편한 차림으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업무, 도진의 앞 커다란 모니터를 이번 사건과 관련한 자료들이 가득 채웠다.

사건 자체는 해결됐지만 그로 인한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그 여파 중 도진의 시선이 향하는 건 수면 위로 떠오른 명성공방과 레너 공방의 팬들이 벌이는 '댓글 전쟁'이었다.

[10대의 끔찍한 테러의 원인은 과도한 팬심?]

[혐오를 부르는 부르는 댓글 전쟁. 이대로 두어도 되는가?]

명성공방과 레너 공방으로 나뉘는 댓글 전쟁은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팬보이들의 대립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한데 그 팬보이 중 한 명이, 그것도 금수저 10대가 에몬트홀 폭탄 테러라는 사회를 뒤집어놓은 일을 벌이면서 수면 위로 공론화된 것이다.

-인종 차별할 때부터 알아봤는데 이 새끼들 정말 사회부적응자네.

-박멸해야 하는 건 동양인이 아니라 레너 공방의 차별주의자들 아니냐?

-이때다 싶으니까 헛소리하는 너희들부터 박멸해야 하지 않을까?

…일이 이쯤되면 좀 사그라들 법도 한데, 댓글창은 더욱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무형독이 장작을 넣은 건 아니야.

"그래?"

도진의 시선이 또 다른 모니터에 띄워진 나지윤의 얼굴로 향했다.

-이런 시기에 괜히 나섰다가는 꼬리가 밟힐 수도 있거든.

그러니까 이건 놈들이 직접 벌인 일이 아니라 놈들이 벌인 분탕질에 휩쓸린 이들의 독자적인 싸움이었고 무형독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도 확산이 되었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레너 공방 아니냐?

-?

-저 지랄하는 것들이 신봉하는 게 레너 공방이잖아. 그러니까 레너 공방이 나서서 입장만 제대로 발표했어도 폭탄 잼민이 같은 건 안 나왔을 거 아냐.

-듣고 보니 그렇네?

-레너 공방이 씹새끼였네?

대표적으론 이런 의견이었다.

-무형독은 레너 공방을 추켜세우는 식으로 명성공방과 대립각을 만들고 싸움을 부추겼지. 그런데 그 레너 공방이 잘못됐다는 여론이 우세해지면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하거든.

방향을 잡고 선동해야 할 무형독이 빠진 탓에 이런 쪽으로도 여론이 움직인 것이었다.

그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무형독이 움직이지 않을까 살피는 사이.

[레너 공방, 슈퍼스타 B에서 논란에 대해 말한다!]

비난의 화살이 향한 레너 공방의 기사가 떴다.

그것도 근래 화제의 중심이 된 슈퍼스타 B와 얽힌 기사가.

-? 엥?

-슈퍼스타 B가 왜 나옴?

-나쁘지 않은 선택 같은데?

-ㅇㅇ 뭐 홈페이지나 기사로만 입장 발표해봐야 사실 식상하고 화제성도 없잖아. 오히려 슈퍼스타 B에서 길게 이야기하는 게 진짜 신의 한 수 같은데?

의아해 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눈치 빠른 이들이 의도를 읽어내고 신의 한 수라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도진은, 웃었다.

"이걸 이렇게 해 주네."

레너 공방의 이 발표가 도진이 원하던 그림을 그리는 데에 큰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직접 갈 거지?

"어.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인 도진은 다음날 즉시 슈퍼스타 B 제작팀과 협의에 들어갔고 원하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사가 떴다.

[(슈퍼스타 B) 천마 김도진. 바른 엔터 대표로 우서진, 클로에 덴젤과 함께 레너 공방 본사 방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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