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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03화 (703/741)

703화

전생에서 도진이 죽기 전 세상은 말 그대로 오디션판이었다.

무언가 하나가 성공하니 우후죽순 똑같은 레퍼토리에 이름만 다른 오디션이 TV만 틀면 나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대부분이 성공하였다.

당연하게도 1절 2절을 넘어 소위 말하는 '뇌절'이 몇 년이나 이어졌고 언제까지 오디션 프로그램만 할 거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는데 그래도 또 프로그램이 새로 나올 정도로 오디션 프로그램은 검증된 소재였고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도진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은 그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성기였다.

정확히는 미국에선 검증된 소재였고 한국에서는 막 광풍이 몰아치는 시기.

그래서 도진은 생각한 것이다.

까를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까를 압살해 버릴 만큼 엄청난 빠를 만들어 버리는 건 어떨까 하고.

그리고 판을 키워서 아예 제3자들마저 당사자로 만들어 버리는 거다.

이 생각을 도진은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했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당장 합시다.

그리하여 도진의 생각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어 실현되었으니 바로.

[바른 엔터테인먼트. 넷비전과 합작하여 대국민 대장장이 오디션 '슈퍼스타 B' 개최한다!]

슈퍼스타 B, Blacksmith.

대국민 오디션의 개최였다.

그것도 미국에서, 대장장이의.

연예계가 아닌 대장장이 업계의 오디션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긍정적인 참신함이 되어 주었다.

[슈퍼스타 B(블랙스미스), 명장 우벽진이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참가!]

[슈퍼스타 B, 명장 우벽진의 손자이자 천마의 동생 우서진이 도전자로 참전!]

[슈퍼스타 B, 프랑스의 공주님이자 천마의 제자 클로에 덴젤 참가. 우서진과 경쟁 하나?]

방송 초기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심사위원과 참가자들을 모집하였으니 명성공방과 덴젤 공방 참가자들의 소식이 언론을 통해 퍼져 나갔다.

여기에 넷비전을 통하여 무료 공개됨으로써 전세계에서의 접근성까지도 확보되었으니 초반의 주목을 통한 흥행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예상대로 슈퍼스타 B는 미국 전역은 물론이요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고 그 기세가 본선에 이를 때까지 오로지 우상향 곡선만을 그렸으니 우벽진 명장은 감탄하여 말한 것이다.

"자네, 연예계 사업을 해도 되겠어?"

"저 이미 연예 기획사 대표잖습니까."

"어, 그러네?"

그래. 도진은 연예 기획사 대표였다. 바른 엔터테인먼트의.

그것도 그냥 이름만 달고 있는 게 아니라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일 잘하는 대표다.

당장 이번 슈퍼스타 B만 해도 일차원적으로 무형독을 엿먹일 목적만을 가지고 계획한 게 아니었으며 그냥 이름빨로, 운으로만 성공시킨 것도 아니었으니 도진이 열일을 했다.

전폭적인 신뢰와 은혜로운 연봉을 주며 실무를 맡긴 전문가들과의 거듭된 회의를 거쳐 프로그램을 구상하였고 외적으로는 프로그램의 런칭을 위하여 발로 뛰었다.

호진이 덕분에 인연을 맺은 세계적인 OTT 기업의 대표인 크리스토프 뒤몽과 협의하여 전 세계 배급을 성사시켰고 원활한 업무를 위하여 과감하게, 아예 바른 엔터 미국 지사와 제작 스튜디오를 이곳 LA에 세워 버리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젊은 친구들이 자네는 천마가 아니라 그냥 연예 기획사 대표를 했어도 크게 성공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지."

그리 말하는 우벽진은 상당히 흡족한 얼굴이다.

자신의 뮤즈가 된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무인이 내놓은 방안이 아주 통쾌하게 무형독의 수작을 깨부숴 주었으니까.

슈퍼스타는 빠와 까를 동시에 미치게 한다고 했던가.

이 상황에 써도 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빠와 까가 다 미쳐 날뛰는 걸 요즘 내내 보고 있는 우벽진이었다.

예전엔 진짜 우물 안의, 그러나 우물 주변 집들을 다 소음공해에 시달리게 만든 싸움이었다.

명성공방이 어쩌고 레너 공방이 어쩌고 하는데 그 내용의 여부를 떠나 관심도 없는 걸 고래고래 소수가 떠들어 대니 듣는 제3자들이 그냥 다 닥치라고 이를 가는 형국.

정작 명성공방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욕을 먹고 비호감이 되어 가는 상황이라 우벽진으로선 어디 하소연도 설명도 못하고 가슴만 쳐야 했는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떻게?

우물 주변은 물론이요 아예 마을 전체가 그 싸움의 당사자가 되어 버리는 걸로.

-미국인이면 레너 공방 물건 쓰자고!

-너 이 새끼 레너 공방 쁘락치지?

-? 미국인이 레너 공방 물건 쓰자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쁘락치냐.

-개소리 하네. 너 같은 놈이 한둘인 줄 아냐. 누구 미는지 솔직하게 불어라.

-???????;;;

-걍 누구 민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새꺄!

-;;;돌겠네.

무형독이 수작을 걸면 싸움판이 벌어지는 건 똑같다.

다만 이제는 그 싸움판이 전쟁터가 된다.

마치 FPS 게임이 4:4, 8:8뿐이던 시절에서 100명을 넘어 200명 이상이 참전하는 그런 느낌.

그냥 시끄럽다고 하던 이들도 하도 난리니까 흘끗 보다가 그대로 휩쓸려 함께 싸우는 거다.

슈퍼스타 B에는 명성공방과 덴젤 공방만 있는 게 아니다.

레너 공방, 그리고 레너 공방과 연계하고 있는 공방의 참가자들 또한 적지 않았으니 당장 우서진에게 시비를 걸었던 테오도르부터가 레너 공방과 인연이 있는 대장장이였다.

여기에 참가자뿐 아니라 협찬 등 다방면으로도 레너 공방은 슈퍼스타 B와 얽혀 있으니 소수였던 '분탕'이 양지로 올라와 광범위하게 이슈가 돼 버린 것이다.

그럼으로써 왜 싸우는지, 진실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명성공방에 씌워졌던 누명을 벗을 수 있었고 오히려 열렬한 팬들을 폭넓게 확보하게 됐다.

우벽진이 엄지를 치켜든 이유였고 우서진은 그 옆에서 자신이 칭찬받은 듯 어깨를 으쓱였다.

"심사위원은 재밌으시구요?"

이야기를 돌려 도진이 물었다.

우벽진은 코를 쓱 훔치고선 말했다.

"처음엔 그놈들 미워서 수락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잘 한 일이다 싶어."

그 말대로, 우벽진은 처음 심사위원 제의를 받았을 땐 그런 생각이 더 강했다.

오직 그 이유로 수락한 건 아니었지만 괘씸한 무형독 놈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생각이 달라졌다.

"열정 가득한 후배들이 많았는데, 그 후배들에게 주어져야 할 기회가 적다는 걸 알았지."

빛나는 원석들이 많았다.

그 원석들이 울고 또 웃으면서 노력하는 모습들에서 우벽진 또한 많은 걸 느끼고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한 소중한 어떤 것마저 깨달을 수 있었다.

"잘 됐네요."

씨익 웃는 도진과 관련하여 궁금했던 것 하나가 풀린 우벽진이다.

'모든 삶이 깨달음이라더니, 이런 거였군.'

삶 그 자체가 깨달음이라는 이야기를 도진은 하곤 했었다.

요즘 심사위원을 맡고서 도전자 후배들을 보며 얻는 게 많은 우벽진은 이제야 그 말을 알 것 같다.

"서진이 넌 어때?"

"힘들지만 뭐, 그만큼 좋아."

우서진 또한 그런 할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었다.

힘들기는 정말로 힘들다.

경쟁이 주는 수많은 것들도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쓰나미와 같이 자신을 덮치는 관심의 무게 또한 쉽사리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당하고 또 극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찬란했기에.

우서진 또한 밝게 웃을 수 있었다.

"좋네."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온 이유 중 하나를 말했다.

"우 명장님."

"응?"

"레너 공방 관련해서 말인데요."

* * * *

노을이 지는 저녁.

도진은 명성공방을 나와 엔터테인먼트 거리로 향했다.

LA는 대장장이의 도시로도 유명하지만 그 전부터 영화의 도시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엔터테인먼트 산업 도시였다.

그런 도시답게 LA의 엔터테인먼트 거리는 화려하고 또 거대했다.

바로 그 거리에 바른 엔터테인먼트 미국 지사 건물이 자리해 있었으니 다른 화려하고 또 거대한 건물에 꿀리지 않는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이 건물은 사실 오래 전부터 바른 엔터에서 점찍어 두었던 신축 빌딩이다.

바른 엔터 미국 지사가 단지 슈퍼스타 B 때문에 전격적으로 들어선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 더 내용이 있다.

빠르게 진행한 건 맞지만 구상과 미국 지사 계획 자체는 상당히 전부터 있었으니 미국에서도 크게 성공한 안티체리와 레드슈, 이은지 그리고.

"대표님!"

안에 들어서는 도진을 격하게 반기는 풍성한 애쉬블론드 머리카락의 미녀가 그 이유였다.

레서 밀리나.

잘 나가는 하이틴 스타였던 그녀는 우연히, 그리고 불행하게도 존 스미스와 얽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사실은 실험쥐 신세였지만 겉으로는 무형독의 간부 자리에 있었던 존 스미스는 은밀하지만 확실하게 레서 밀리나의 목을 조이려 들었으니 그 위협을 도진이 막아줌으로써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때 선언한 것이다.

-그렇네요. 만약 미국에서의 활동이 충분한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지사를 세울 것 같네요.

-알겠어요, 도진. 그렇다면 그 메리트, 내가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바른 엔터 미국 지사를 세울 메리트를 그녀가 만들어 내겠다고.

그리고 그녀는 결국 약속을 지켰으니 바른 엔터가 미국 지사를 추진할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주었고 이제는 바른 엔터 미국 지사의 '삼신기(三神器)' 중 한 명으로 활약해 주고 있었다.

"레서. 평소에도 예뻤지만 오늘은 더 눈부시네요."

도진의 칭찬에 레서가 씨익 웃었다.

"오늘은 안 꾸미면 여배우 체면이 위험할 테니까요!"

"하하. 그럴 리가요."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준비를 마치고 스태프들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대기하고 있던, 연예인들이 타는 밴에 올라 어딘가로 향했으니 LA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콘서트홀이었다.

에몬트홀.

이곳에서 공연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미국에서는 일류와 그 아래로 급을 나누었는데 당장 10년 전만 해도 동양인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곳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지금 동양의 가수들이 무대를 채우고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었으니 바른 엔터 미국 지사의 삼신기 중 하나, 소속 가수들이다.

세계적인 가수로 성장해 버린 안티체리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레드슈, 아시아의 여왕이라고까지 불리는 이은지.

여기에 도진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기대와 함께 조금은 걱정하게 만드는 신예 그룹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여동생 유진이가 포함된 걸그룹이다.

바른 엔터 1호 연습생이었던 유진이는 바른 엔터의 차세대를 이끌 걸그룹으로 데뷔했다.

그 과정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아이들과의 마찰도 있었고 오빠가 무려 천마란 이유로 과도한 관심과 무게를 짊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도진은 자연스런 거리를 유지하고 개입하지 않았다.

그것이 옳았으니까.

그리고 유진이는 훌륭하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또 이겨내면서 그룹의 리더로 데뷔, 성공적인 아이돌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으니 이번 무대가 그 결실 중 하나였다.

도진은 오늘 연예 기획사 대표로서 또 레서 밀리나와 함께 이번 공연의 특별 게스트로서, 무엇보다 오빠로서 그 공연을 지켜볼 예정이었다.

자연스레 평소보다 조금은 감각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척과 온갖 소리들이 밀려들었다.

그 안에.

-예. 폭탄 설치 완료했습니다.

…도저히 그냥 흘려낼 수가 없는 소리가, 섭음술로 내부에 가둔 목소리가 있었다.

"왜 그러세요, 대표님?"

우뚝 멈춰선 도진의 곁에서 레서 밀리나가 물었다.

도진이 그녀에게 웃어주며 말했다.

"들어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생긴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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