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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02화 (702/741)
  • 702화

    LA는 떠오르는 미국 대장장이계의 수도였다.

    관련 법과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으로 미국 최대의 공방이었던 존앤집스 공방의 본사가 있던 곳이었는데 여기에 존앤집스가 몰락한 뒤 명성공방이 들어서면서 더욱 그런 면이 부각되었다.

    명성공방은 LA에 스며들기 위하여 도시에 많은 공헌을 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그린스미스 파크였다.

    대장장이들을 위한, 그리고 동시에 시민들을 위한 대장장이와 숲의 공존을 테마로 공원을 조성하였으니 그 가운데엔 대단한 규모의 공방을 품은 공연장이 있어 대장장이 업계의 행사가 있을 때 자주 사용되곤 했다.

    그 공방, 그린스미스 공방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인이 걸어 나오니 우서진이었다.

    질끈 묶은 머리에 마초적인 이미지가 강한 대장장이 차림임에도 외모로 인해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런 우서진의 뒤에서.

    휘이익-

    "Hey, sexy!"

    휘파람을 불며 우서진을 부르는 이가 있었으니 진한 이목구비에 각진 턱의 남성이었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거친 인상의 미남.

    떡 벌어진 어깨와 큰 키를 가진 그는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었는데 그것이 조금 과하여 좋은 외모임에도 비호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곁에 몇 명이나 되는 추종자들을 거느린 그의 부름에 우서진이 우뚝 멈추어 서서는 뒤돌아 보았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며 자신을 부른 남자를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테오도르. 경고하는데,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가면 아주 아픈 꼴을 보게 될 거야."

    서늘하고도 무거운 기세를 두른 경고.

    웬만한 이라면 움찔하여 물러났겠으나 테오도르는 그러지 않았다.

    가소롭다는 얼굴로 입꼬리를 올리고선 받아쳤다.

    "앙칼진데! 난 그런 타입이 맘에 들더라고! 내 밑에 깔려 앙앙댈 때 더 매력적이거든!"

    하하하하!

    그의 추종자들이 곁에서 크게 웃어댔다.

    테오도르가 기세를 타선 지껄였다.

    "오해하지마. 난 양성애자니까! 호텔에서 알몸으로 서로를 알아가자고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꾸우웅-!!

    "……."

    소리를 높이던 테오도르와 그 추종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서늘한 기세가, 우서진이 밟은 진각을 중심으로 하여 일대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뚜벅. 뚜벅.

    우서진이 천천히, 그러나 거대한 기세를 담아 한 걸음씩 걸어 테오도르의 앞에 섰다.

    "우리나라엔 이런 격언이 있어.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라는 말이야."

    순간 압도되었던 테오도르의 눈썹이 움찔했다.

    "건방진."

    "아니. 건방진 건 너야. 여기에 또 무례하지. 그런 미친개에게 대련을 신청할 건데, 꼬리를 말 텐가? 그러면 봐 주지."

    "개소리!!"

    버럭 소리치는 테오도르의 모습에 우서진이 계획대로, 라는 얼굴로 웃었다.

    지켜보던 이들이 둥글게 거리를 벌리면서 판을 만들었다.

    안 그래도 오가는 이들이 많은 그린스미스 공원이었는데 오늘은 특히 수 배는 되는 이들이 있다 보니 구경꾼으로 광장이 가득 채워졌다.

    아차 싶었지만 엎질러진 물이라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는 테오도르를 마주하여 우서진이 한 번 더 도발했다.

    "허접한테 선공을 양보하는 게 도리겠지. 안 피할 테니까 한 번 공격해 봐."

    "…게이 새끼가!"

    내뱉듯 외친 테오도르가 사양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꽉 쥔 주먹에 담긴 기세가 가녀린 선의 우서진을 그대로 으스러뜨릴 것만 같았고.

    뻐어어억!!

    우서진은 그 주먹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꺄아아악!"

    "No!!"

    그나마 얼굴이 아닌 복부라고 하지만 복부 또한 인간의 급소가 아니었던가.

    테오도르의 주먹이 우서진의 복부에 정통으로 때려박히자 지켜보던 이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심지어 주먹을 내지른 당사자인 테오도르마저 피하기는커녕 방어 자세조차 취하지 않은 우서진의 행동에 당황하며 굳어 버렸다.

    그리고 그 당황은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던 우서진의 고개가 들리고 두 눈이 마주한 순간 더 커져 버렸으니.

    "게이는 아무래도 너인 거 같은데?"

    "뭐, 뭐라고?"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솜주먹일 리가 없으니까 말야?"

    "……!!"

    테오도르가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충격이 화가 되어 얼굴이 시뻘개져 무어라 외치려는 순간.

    "다음은 내 차례네?"

    뻐어어어억!!

    소리를 낼 틈도 주지 않고 우서진의 주먹이 테오도르의 배에 때려박혔다.

    "……!!!"

    아가리를 쩌억 벌리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소리를 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충격에 섞여 빠져 나가 버렸기에.

    거구가 무너지고 뒤늦게 새우처럼 몸을 만 채 끄으으, 소리를 내었다.

    "뭐야. 겨우 한 방에 끝이야? 허우대만 멀쩡하지 약골이었잖아?"

    우서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도발하였지만 테오도르는 쉽사리 일어서지 못했고 '대련'은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나 버렸다.

    애초에 테오도르의 실력은 감히 우서진을 도발할 수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주제 파악을 못한 양아치를 우서진이 참교육한 내용이지만 조금 범위를 넓히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있다.

    우선 테오도르가 양아치긴 하지만 뇌를 빼놓고 우서진에게 시비를 걸 만큼 멍청하게 자라도록 둘 가문의 태생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엄격하게 엘리트 교육을 시키는 명문의 아들이었다.

    그 배움 때문에라도 뒤를 생각하여 무모하게 우서진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 게 정상이었으니 이런 일이 일어난 건 그를 부추긴 유무형적인 무형독의 영향이다.

    가깝게는 추종자랍시고 곁에 붙어 있는 놈들, 멀게는 사회와 인터넷에서의 여론이니 당장 지금 인터넷에 올라온 우서진의 참교육 동영상에 대한 반응만으로도 테오도르를 부추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뭐야. 또 우서진이 누굴 때린 거야?

    -장난 좀 쳤다고 정색하면서 폭력이라니. 하여간 농담이 안 통하는 동양인이야.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거겠지. 사실은 레너 공방을 밀어내려고 아등바등하는 중인데 겉으로는 이미 LA를 먹은 척하고 있으니까 말야 ㅋㅋㅋ

    -잠깐만. 저 새끼 지금 게이를 비하한 건가?

    -동양놈답게 사고가 꽉 막히고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게 너무 역겨워, 나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반응들이었다.

    물론 그런 반응들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우서진을 옹호하고 테오도르를 욕하는 반응이 더 많았다.

    하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반응이 적지 않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였으니 무형독이 '댓글 부대'를 운용하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 자체는 단순하고도 간단했다.

    명성공방이 정식으로 LA에 간판을 내걸고 진출하던 시기.

    우서진을 포함한 명성공방을 비방하고 혐오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분위기를 조장하기 시작했다.

    -레너 공방이 버젓이 있는데 LA에 공방을 차린다고?

    -미국의 자존심 레너 공방을 두고 명성공방 물건 쓰는 매국노 있냐?

    -미국의 자존심이 동양놈들에게 체면을 구기게 둬선 안 되는 거잖아. 앞으로 명성공방 물건 쓰는 놈 있으면 나는 사람 취급을 안 할 거야.

    개소리로 치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이런 논조에 동의하면서 세력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세력은 소수라 해도 '목소리가 큰' 소수이니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는 거다.

    여기에 이르면 작전은 2단계로 진입하여 제3자에게 피해자마저 나쁜놈으로 인식되게 만든다.

    -저 병신 새끼들 또 헛소리하네. 같은 미국인이라는 게 부끄럽다.

    -부끄러운 건 동양놈들에게 나라를 팔아먹는 너희야.

    -뻐킹. 그냥 너희 다 시끄러우니까 닥쳐! 어느 쪽이든 시끄럽게 하지 말란 말이야.

    -그냥 쓰고 싶은 거 쓰면 되지 왜 항상 명성공방과 레너 공방은 이렇게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면서 싸우는 거야?

    -몰라? 쟤들 다 돈 받고 댓글 알바하는 놈들이야.

    처음엔 관심이 없거나 싸우는 자들을 한심하게 여기던 분위기가 목소리 큰 소수로 인해 싸움이 지속되고 번지면, 그 공간에 있던 제3자는 가해자만이 아닌 피해자마저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무형독이 원하는 게 이것이었고 명성공방에 대한 물타기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레너 공방을 지지하며 분탕질을 하는 댓글 부대에 맞서 싸우는 이들마저 제3자들은 곱게 보지 않게 되었고 싸잡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게 됐고 결국, 마주치면 무조건 감정 싸움으로 번졌으니 이는 명성공방에게 지극히 좋지 않은 방향이었다.

    단체에게 있어 이미지는 지극히 중요한 요소다.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니까.

    간단히 선거에 대입해도 좋다.

    표를 던질 많은 이들이 공약은 물론이요 그 사람 자체에도 관심이 없는 상황이라고 할 때 표를 가르는 건 결국 '이미지'니까.

    명성공방도 다르지 않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성공방은 그렇기에 이미지가 중요한 거대한 단체였고 나아가서는 천마신교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

    무형독 입장에서는 명성공방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영향력이 커지는 걸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으니 이렇게 추잡하지만 효과적이고 또 대처하기 까다로운 형태로 수작을 걸었던 것이다.

    댓글 등을 포함한 커뮤니티에서의 공작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맞서서 댓글로 싸우는 건 오히려 역효과다.

    애초에 그런 싸움으로 인한 '시끄러움'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게 무형독의 목적이다.

    아예 꼬투리를 주지 않는다?

    거대한 단체인 명성공방에겐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애초에 없던 꼬투리도 만들어 잡을 거다.

    이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택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더 만만히 보고 때리는 게 세상 이치지 않던가.

    -정말 더러운 놈들이구먼. 간신배마냥 뒷구멍에 숨어서 키보드질이라니.

    우벽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인 상황에 씩씩 열을 피워올리며 망치를 꽉 쥐었다.

    맘같아선 이 망치로 깡, 대가릴 찍어 버리고 싶은데 찍어 버릴 놈이 숨어서 보이질 않으니 분출하지 못한 열이 머리 위로 오르기만 할 뿐이다.

    순항했어야 할 일이었다.

    명성공방에 대한 여론은 지극히 좋았고 사전 조사에서도 긍정적인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는데.

    여기에 그린스미스 공원을 조성하고 또 여러가지 이벤트에 행사까지 열면서 명성공방은 성공적으로 LA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거늘.

    -명성공방 물건을 사는 건 미국에 대한 배신 행위다!

    -명성공방 물건 쓰면 학교에서 왕따당하는데 몰랐냐?

    뭔 되도 안한, 터무니없는 개소리로 시작된 분탕질이 이제는 명성공방 기사만 났다 하면 달라붙으면서 흙탕물을 튀기는 것이다.

    놈들은 명성공방이 이런 '노이즈 마케팅'으로 미국 1위였던 레너 공방에 들러붙어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 든다고 주장하는데 그야말로 개소리다.

    오히려 평판이 나락으로 갔던 레너 공방이 이런 분탕질로 인해 올려치기 되고 있는 형국이란 말이다.

    억울함에 우벽진은 가슴을 퍽퍽 쳤고 명성공방으로서도 이런 류의 수작질에 대항할 뾰족한 수가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저쪽 세계, 무림의 일로 바쁜 중에도 미국을 찾은 도진이 이런 제한을 한 것이다.

    -오디션을 하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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