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화
회의가 끝나고 오성 건설에서 일어난 50억 횡령 사건의 기자 회견이 진행되었다.
오성 그룹 내에서도 실세인 오성 건설의 부사장 오태재가 직접 단상에 서서 발언했다.
"바할라의 쉬르네폴리아 지사와 한국 본사 사이를 연결하는 해외영업지원부의 3팀과 관련한 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그 원인이 해외영업지원부를 지휘하는 오무기 전무임을 또 확인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오무기 전무님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오무기 전무에게는 관리 감독의 책임 또한 물을 것이며 해당 내용에 대해서도 결정 즉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감정을 거세한 듯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말하는 오태재의 모습에 현장은 물론이요 내용을 지켜본 네티즌들 또한 술렁였다.
-와.. 저 정도는 돼야 오성에서 부사장 하는구나;;
-오무기가 아들 아님?;;
-맞음.
-근데 자기 아들 조지는 내용을 저렇게 담담하게 발표한다고?;
-오성이 정글이라드만 진짜였네
이번 사건이 커지게 된 원인인, 큰 목소리를 내었던 오무기 전무가 오히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몰락하게 되었다.
제아무리 재능이 있는 직계라도 웬만한 공적이 아닌 이상 만회하지 못할 크나큰 실책을 회견장에서 인정하고 선언하였으니 오무기가 다시 오성의 중심을 노리는 건 지난한 일이 되었으며 이는 오무기를 밀던 오태재에게도 뼈아픈 손해였다.
허나 오태재는 그것을 철저한 포커페이스로 감내하며 직접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했으니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진짜, 까다로운 사람이야."
오대용은 도진과 함께 한 자리에서 콜라를 홀짝이며 그렇게 푸념했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야, 오대용이가 콜라 마시는 거 보니까 재밌네."
"끄응……."
오대용은 술을 제법 좋아했다.
정확히는 그리 꺼리지 않던 것이 쉬르네폴리아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주 접하다 좋아하게 된 케이스다.
가끔 과하게 마시면 주정아에게 등짝을 맞곤 했지만 그럼에도 흥이 오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던 인간이었는데…….
"정아가 술 먹고 오지 말래?"
"어. 술냄새 역하대."
임신한 주정아가 술냄새가 역하다고 하니 꼼짝없이 술을 끊게 됐다.
"푸크크큭."
"웃지! 마!"
술을 시키지 못하고 함께 소주잔에 콜라를 따라 마시는 모습이 제법 재밌어 도진이 큭큭 웃었다.
그리고 앞서의 푸념으로 돌아간다.
"오태재 부사장. 만만치 않아 보이긴 하더라."
오대용은 자의든 타의든 오성의 중심에서 살아야 했고 그것은 곧 오태재 부사장과 같은 자들과의 갈등을 선택한 것이었다.
채 서른도 되지 못한 나이.
도진은 아직 '아이'인 오대용이 그런 갈등에 힘들어 하고 있는 걸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걸 선호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감내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더더욱.
"광현 고모부도 뜬금없이 밥 한 번 먹자고 하시고 말야."
광현 고모부라면 오광현이다.
재능의 '가치'를 보는 금융맨.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오광현이었기에 재능을 이긴 오대용의 모습에 흥미를 가진 모양이었다.
자신의 편을 늘려야 하는 오대용의 입장에서 중도이면서 꽤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오광현의 접촉은 반길 만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또 마냥 긍정적이기만은 한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흥미였으니까.
오대용에게는 그 흥미를 기반으로 하여 오광현과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숙제가 생긴 거다.
친척인데. 남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 오성의 중심에서 살아가기로 한 오대용의 업이었으니 아이에겐 과한 이야기다.
힘들어 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언젠가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언제 보기로 했어?"
"내일 보자고 하셨는데 미뤘어."
"왜?"
"내일은 정아 병원 같이 가야 돼."
"아. 그건 미뤄야지."
그러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아이였던 오대용의 얼굴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으니까.
어릴 적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도저히 그럴 거 같지 않지만 나도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될 거라는 생각.
하지만 도진은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몸은 커졌는데 알맹이는 아이 그대로였다.
어릴 적 보던 어른이던 부모님과 같은 모습이 되지 못했고 그건 새로운 삶을 살며 더욱 나이를 먹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결국, 그런 걸까.
'아이가 어른이 되는 건,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대용이 그런 도진을 뚱한 얼굴로 본다.
"왜?"
그 물음에 도진이 흥, 웃었다.
"우리 대용이가 술을 못 마시니까 내가 한 번 마셔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뭐, 임마?"
"요새 인성질하는 게 유행이라더라고."
"와, 인성."
* * * *
"그래서, 어땠어?"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 순간 분위기가 조금 진지해졌다.
오대용의 물음에 도진이 콜라를 넘기고선 답했다.
"없었어."
"…다행이네."
도진의 답에 오대용이 안도했다.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갈등하고 대립하는 관계라지만 그래도, 그래도 친인척이다.
그 친인척 안에 무형독이 스며든 이가 없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오대용과 주정아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도진이 이 자리에 사외이사의 이름으로 함께 온 건 혹여 이번 일과 관련하여 도주한 횡령범들을 도운, 무형독이 스며든 이가 오성의 임원들 중 있는 건 아닐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도진 또한 멈추어 있지 않았다.
무형독, 천마신교의 이단들을 상당수 보았고 신안(神眼)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기운을 꽁꽁 감추어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으니 판별을 위하여 함께 온 것이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적어도 오늘 보았던 이들 중에 무형독이 스며든 이는 없었다.
"오 회장님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시니 쉽사리 수작을 걸 수 없었던 거지."
오성의 회장. 사자군 오군성.
그는 무형독에 한 번 속은 적이 있었다.
천외천(天外天)이란 이름의, 경계를 넘어선 이들의 모임에 들었는데 거기에 스며든 무형독의 수작에 당한 것이다.
늦지 않게 그것을 알고 도진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뒤 무형독을 깨부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 어설프게 손을 뻗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남은 건 도망치는 놈들이네."
"어."
두 명의 횡령범.
지금 그들을 천마신교에서 추적하고 있다.
도진이 직접 온 이곳에서의 수확은 없었으니 그쪽에서 적어도, 몸통까지는 안 되더라도 그들과 접촉하는 꼬리라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놈들을 놓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바할라 쪽에서의 추적 팀에는 사신의 손녀, 장소유가 함께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채 이틀도 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한쪽은 성공, 다른 한쪽은 실패였다.
* * * *
바할라에서의 추적 팀은 26시간의 차이가 있던 횡령범을 밀항 전에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아무렇지 않게 연차를 내고 조용히 도주했던 횡령범은 중간에 변장을 하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인물과 바꿔치기를 했다.
대기하고 있던 인물은 쉬르네폴리아 관광을 온 일본의 관광객이었다.
쉬르네폴리아 특유의 얼굴을 가리는 복장으로 바꿔치기한 횡령범은 그의 신분으로 일본으로 넘어간다.
인상착의가 비슷한 횡령범이 밀항에 성공했다면 일본에서 그의 신분으로 무형독의 공작원이 되어 활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신분을 잃은 일본인은 그러나 무법자로 문제없이 무형독의 공작원으로 남쪽 나라에서 활동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횡령범은 밀항에 실패했고 바꿔치기 했던 일본인 공작원 또한 붙잡힘으로써 그가 활동하던 일본 내 무형독 또한 색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렇게 성공한 바할라에서의 경우와 달리 한국에서 도주한 횡령범을 붙잡는 데엔 실패했다.
포털 때문이었다.
한국의 횡령범은 잡히기 일보직전 포털을 이용하여 저쪽 세계로 도주한 것이다.
한국의 추적 팀은 횡령범이 이용한 포털이 닫히기 전 그곳에 도착했지만 포털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불안정한 포털'이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포털은 불안정한 공간과 이어진다.
그리고 불안정한 공간은 '붕괴하기 직전의 시공간'이다.
이 불안정한 포털에 진입하여 돌아온 이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으니 무형독의 유인에 진입하였던 이들 중 단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추적에 실패하였으나 비난 받거나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버림패였던 거네."
도진의 말에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던 세이전주 나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횡령 사건의 주동자는 처음부터 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지령을 내린 자가 임무를 완수한 뒤 죽으라고 했고 횡령범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망설임없이 실행했다.
…이래서 광신도는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가치와 선악의 판단조차 하지 않으며 맹목적으로 목숨까지 걸고 충성하니까.
무형독이자 이단 세력은 불안정한 시공간와 연결되는 포털을 여는 '술법'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포털 시스템을 다 해석하지 못한 천마신교도 가능한 술법이자 기술이다.
문제는 불안정한 시공간을 포털과 연결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자극이 되어 당장 시공간을 붕괴시킬 수 있는 목숨을 확률에 거는 미친 짓이라 하지 못하는 거다.
연결만 해도 그러니 사람이 오가는 자극에도 붕괴의 위험이 커지는 게 당연하다.
놈들은 그 기술로 횡령범의 입을 영구히 막아 버렸다.
그렇게 혼자 남게 된, 바할라에서 체포당한 횡령범을 강도 높게 심문하였으나 이쪽도 소득은 없었다.
광신도답게 결코 입을 열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입을 연다 해도 그리 유용한 정보를 얻지도 못했을 거다.
바꿔치기 말고는 무형독의 이렇다 할 개입이 전혀 없었으니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장소유까지 함께 갔는데 허무하리만치 쉽게 횡령범이 잡혀 버렸다.
최소한의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인 수준의 조치만이 있었으니 무형독이 책정한 횡령범의 가치가 딱 그 정도까지였다는 말이다.
바할라가 어떤 곳인지, 어떤 이들이 있는지를 생각하면 아예 잡으라고 던져준 꼴이었다.
결국 이쪽에서는 소득을 전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추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톡. 토독.
나지윤이 패널을 조작하여 어떤 화면을 띄웠다.
외국어와 그래프 등, 문외한에겐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워지는 자료들로 화면이 가득했다.
"사람은 끊어냈지만 돈은 끊어내지 못했거든. 그놈들은."
다름 아닌 범인들이 횡령한 50억을 추적한 자료였다.
횡령범에게서는 얻지 못한 단서를, 바로 여기서 나지윤은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흔적이 미국으로 이어졌어. 무려 금화가 쓰던 차명 계좌를 거쳐서 말이야."
그것도 아주 큰 단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