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697화 (697/741)

697화

김도진.

'천마(天魔)'라는 두 글자로 수식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인.

그리고 그 간결한 두 글자 별호 안에 천하제일인, 진나라의 무공(武公), 천마신교의 교주 등 수많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오성 건설 쉬르네폴리아 지사의 사외이사 또한 그 많은 신분 중 하나였다.

"……."

"……."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멍하니 천마를 응시한다.

'왜 저게 여기서 나와?'

'천마가 왜 여기 있어?'

산전수전 공중전에 우주전까지 겪었다 자부하는 그들이지만 멍하니 입을 벌리는 걸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천마의 등장은 완벽하게 예상 밖이었다.

쉬르네폴리아 지사의 사외이사.

그 직함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애초에 떡하니 공개된 걸 모르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천마가 사외이사 자격으로 함께 올 거라는 정보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거지?'

바로 이 순간까지 천마가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그들을 충격으로 몰아 넣은 가장 큰 이유였다.

결국 누군가가 물었다.

"저……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도진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참석했습니다. 30분 일찍 와서요."

"?"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처음부터 있었다고? 근데 왜 몰랐지?

"제가 좀 존재감이 없는 편이기는 합니다."

뭔 개소리야.

천마가 존재감이 없다니. 어이가 없어서 소리내어 그렇게 말할 뻔 했다.

"공항에서부터 같이 내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죠."

그랬다.

공항에서부터 '세 사람'이었고 쭉 함께였다.

"…이야기가 새는 것 같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아득해지던 이들의 정신과 회의장 내의 분위기를 바로잡은 건 오태재 부사장이었다.

과연. 오성의 중심에서도 중직에 앉을 만한 능력은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발언하겠습니다."

찰칵.

빔 프로젝터가 도진에 의해 화면이 바뀌었다.

오무기가 띄웠던 직원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가 표시되었다.

"해당 직원은 간단히 말해 한국 지사와의 소통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입사한 지는 4년 정도 되었고 지극히 평범한 직원이었죠."

"하지만 횡령 사건이 발생한 시기에 맞춰 연차를 내고선 사라진 직원이 있다는 걸 파악,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직원이 이단의 교리에 심취하여 무형독에 가담하였음을 확인했습니다."

"저희는 이걸 어제 파악하였고 오대용 대표에게 이 부분에 대해선 잠시 함구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오태재 부사장의 질문에 도진이 옅게, 그러나 날카롭게 웃으며 답했다.

"혹시 파악하지 못한 내통자가 더 있을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오태재는 도진의 그 말에 동요하지 않았다. 오무기가 움찔, 못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도진은 굳이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내통자가 더 있을 가능성. 그건 오성 내부를 의심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날카롭게 묻는 오태재를 마주하여 도진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

오태재가 눈살을 찌푸렸고 회의장 내에 반발하는 기색이 어렸다.

제아무리 천마라 하여도 오성 내부를 의심하고 있다는 발언에는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 전 포교자가 붙잡혀 쉬르네폴리아에 수감되었습니다."

갑자기 나온 다른 이야기에 다시 시선이 도진에게 집중되었다.

"포교자는 이단의 교리를 설파하고 또 세뇌하여 무형독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부여받은 이들입니다."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무형독은 세력을 늘리는 수단 중 하나로 '이단의 교리를 설파하여 세뇌하는' 악질적이고 까다로운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그 역할을 맡은 자들을 포교자라 하였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쉬르네폴리아에서 근무하던 그 직원이 수감된 포교자에게 세뇌된 사람이었다는 걸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그랬다.

뒤늦게서야, 그러나 세이전과 바할라가 협력하지 않았다면 밝혀내지 못했을 만큼 은밀한 연결고리였다.

성민혁과 성지인에 의해 생포된 포교자는 수감된 처지에서도 이단의 교리를 다른 수감자들에게 설파하려 들었고 결국 독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처지에서도 어떤 방법을 썼는지, 지사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지령을 내린 것이다.

"오무기 전무께서는 이 직원이 주동자라고 하셨는데 아닙니다."

도진의 말에 오무기가 감히 따져묻지는 못하고 시선만을 보냈다.

"아마 메일의 내용을 근거로 오무기 전무께서 그렇게 추정하신 것 같습니다만."

프로젝터를 통하여 도주한 두 직원이 주고받은 메일 내용이 표시된다.

쉬르네폴리아에 있던 직원이 이렇게 저렇게 하면 자금을 빼돌릴 수 있을 거다 세세하게 말하는 내용과 언제 실행하라는 내용을 보냈고 한국에 있던 직원이 거기에 따라 일을 실행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은 반대입니다."

"반대라고 하시면?"

"한국 지사의 직원이 자료를 모아 보내면 쉬르네폴리아 지사의 직원이 방법을 강구하여 보내는 역할이었던 겁니다. 쉽게 말해 보조였던 거죠."

바뀌는 프로젝터의 화면이 도진의 말을 증명해 주었다.

회사의 컴퓨터가 아닌 쉬르네폴리아 쪽 직원의 개인용 컴퓨터를 복원하여 찾아낸 자료였다.

도진이 쐐기를 박았다.

"그러니까, 3팀 직원이 자료를 빼돌리는 걸 파악하지 못했던 한국의 해외영업지원부가 근본적인 이번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리 말하고 도진이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오무기의 얼굴이 여유를 잃은 채 눈동자가 흔들렸고 오태재의 포커페이스에도 약하게 금이 가 있었다.

그만큼 도진의 발언은 치명적이었다.

주동자니 보조니 하기 이전의 이야기다.

쉬르네폴리아에서 근무하던 직원은 회사가 아닌 개인의 공간에서 개인의 컴퓨터로 일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근무하던 직원은 회사에서 회사의 정보를 빼돌리고 결국 회사의 전산망에 접근하여 횡령을 하였다.

즉. 오무기는 회사 내에서 부정을 저지르던 직원을 꽤나 오랜 시간 파악하지 못한 치명적인 실책을 범하고 만 것이다.

오대용은 그걸 깨닫고 평정심을 잃은 오무기에게 추가타를 넣는다.

"자료를 보니 저희보다 먼저 해당 직원에 관해 파악하신 거 같은데, 그러면 언질을 해 주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그랬다면 조금 더 빠르게 대처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서로 반목한다지만 오성을 위하는 부분에서만큼은 협력하는 걸로 저는 알고 있었는데요."

"……."

"이쪽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함구했습니다. 쉬르네폴리아 지사의 어디까지를 믿을 수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도주하는 직원의 뒤를 추적하고 있으니 대처에 관한 부분도 당장 문제의 여지는 없을 것 같군요."

대답하지 못한 오무기를 대신하여 오태재가 발언했다.

그러나 회의장 내의 여론은 오대용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였다.

"과실에 관해선 어느 정도 결론이 난 것 같군요. 그럼, 다음은 해결책에 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잘잘못을 따지고 싸우는 데서 끝나는 한심한 곳들과는 다르게 오성의 회의는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대용은 이에 관해서도 준비했다.

"몸통을 찾기 위해 저희 또한 도주한 직원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본사와는 별개로 말이지요."

"예. 천마신교에서, 추적을 하고 있습니다."

"음."

"바할라만이 아닌 한국 쪽도 천마신교와 연계하여 도주한 직원들과 빼돌린 자금을 추적하고 있으며 저 또한 회의가 끝나는 대로 합류할 예정이니 훼손된 오성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성과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태재와 오무기 쪽도 나름의 연줄과 힘을 동원하고 있다지만 천마신교에 대자니 아무래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태재는 실책을 인정해야만 했다.

'경솔했군.'

아들만큼이나 자신도 조급했고 조급함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지고 말았다.

동생에게 밀려 부회장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고 그것이 응어리로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응어리를 풀고자 아들을 밀어주고 있었는데 시궁창에서 갑자기 떠오른, 천마의 친구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오대용을 과하게 의식하였고 그 때문에 허술한 아들의 계책을 쓸 만하다 판단하여 악수를 두었다.

'…….'

성격에야 조금 하자가 있다지만 재능만큼은 인정하였던 아들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심한 꼴을 보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정신 차려라.

흠칫.

싸늘한 전음에 오무기가 어깨를 떨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생활에는 웬만해선 터치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이나 갖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충분한 지원을 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일'에 지장을 준다면 세상에 다시 없을 잔혹한 '훈육'을 감당해야만 했다.

일에 너무나 큰 지장을 준 이번 실책으로 얼마나 가혹한 훈육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그 훈육을 피하려면 어떻게든 만회를 해야 했고 그 방법은…….

오무기가 이를 악물었다.

오태재는 그 모습에 더 말하지 않고 지켜만 보았고 등으로 시선을 느끼며 오무기가 움직였다.

"오대용."

회의장을 나와 주정아, 도진과 걷던 오대용이 오무기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네, 삼촌."

"…대련장으로 따라와."

* * * *

회의 내용의 정리와 기자 회견이 조금 뒤로 밀리게 되었다.

오무기와 오대용의 대련 때문에.

오성의 직계, 그리고 직계와 밀접한 관계인 이들이 모인 가운데 대련장 위에 무복으로 갈아입은 오대용과 오무기가 대치하고 있었다.

"천마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대련장을 내려다 보는 도진의 곁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정장을 깔끔하게 갖춰 입었으나 무투가로서의 기질이 강한 중년인이었다.

외모는 우락부락한 상남자인데 목소리와 표정은 또 천상 사람을 상대하는 부드러운 영업맨의 것이라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오광현. 오성의 금융 부문 계열사인 오성 카드의 핵심 인사로 중도파.

그리고 기업인이지만 그 이상으로 무공을 좋아하는 인물이라는 걸 도진은 바로 떠올렸다.

"누가 이길지 말씀인가요."

"예."

오광현은 궁금해하고 있었다.

"무기는 재능이 있는 무인입니다."

오무기와 오대용은 둘 다 A-2, 절정에 이른 무인이었다.

도진의 주변에 규격 외의 인물들이 있어서 그렇지 사실 20대에 절정만 해도 세계 단위의 천재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나 되는 천재들의 세계에서 오대용은 '범재(凡才)'가 되고 만다.

범재. 평범한 사람.

오대용은 기준을 넘지 못한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그것을 가르는 건 '재능'이다.

질문한 오광현이 말하는.

오대용의 아버지 오주형이, 할아버지 사자군이 실망하게 만들었던.

오태재와 오무기가 의도와 달리 참패한 상황에서 만회의 기대를 걸게 만든.

그런 재능이 없는 오대용이 오무기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 묻는 것이었다.

도진은 오광현의 물음에 모이는 주변의 시선을 느끼며 옅게 웃었다.

"재능. 그렇네요. 말씀하신 재능이란 건, 저런 거겠죠?"

천마의 신안(神眼)이 오대용에게 쇄도하는 오무기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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