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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96화 (696/741)
  • 696화

    [오성 건설, 횡령 건으로 긴급 임원 회의 소집.]

    [공식 발표는 임원 회의 후 회견을 가질 것으로 알려져…….]

    금화가 해체된 뒤로 재계 서열 1위로 올라선 오성의, 그것도 핵심 계열사인 오성 건설에서 일어난 커다란 횡령 사건은 당연하게도 수많은 기사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여기에 관련된 핵심 인물이 다른 사람도 아닌 '천마의 친구' 오대용이었기에 더더욱.

    [오성 건설 쉬르네폴리아 지사의 대표 오대용, 아내 주정아 이사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 탑승.]

    횡령 사건이 알려졌을 때 이미 오성 건설은 발빠르게 움직여 대응하고 있었다.

    즉시 임원 회의가 소집되었으며 그에 응하여 한국 땅을 밟은 오대용과 주정아, 세 사람의 주위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한 가지 특별한 것은 그렇게 몰려든 기자들이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카메라 렌즈의 방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임신을 한 주정아를 고려하여 조심하는 것이었다.

    그 행동에 오대용이 웃으며 감사를 표하고선 취재에 응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저도 임원 회의에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 지금으로선 특별한 말씀은 드리지 못할 것 같네요."

    "이번 임원 소집이 오성 건설 내 주도권 싸움으로 인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조금 민감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오대용은 전혀 빼지 않고서 말했다.

    "오성이란 곳이 원래 험난한 곳이잖아요? 어쨌든 그런 부분이 빠질 순 없는 거겠죠."

    과연 젊은 세대.

    기자는 그렇게 감탄했고 오대용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도 결국은 회의를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공식 발표 외에도 따로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숨기지 않을 테니 회의 뒤에 뵙겠습니다."

    흔히 사건이 터진 뒤 취재 현상에서 볼 수 있는 '한 말씀만 더!' 같은 소리나 우르르 뒤따르는 풍경은 없었다.

    오대용은 깔끔하게 인터뷰 후 주정아와 함께 떠났고 기자들은 아쉬운 대로, 그러나 동시에 기대를 가지고 회의 후 있을 인터뷰를 준비하며 기사를 올렸다.

    공항을 나온 세 사람은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오성 건설의 본사가 있는 서울의 중심가로 향했다.

    대한민국의 수도. 그 중심가의 화려한 빌딩숲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거대한 '성채'.

    제국이라 불리는 오성 그룹 내에서도 핵심 계열사인 오성 건설의 본사는 그렇게나 대단한 위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어릴 적엔, 목을 꺾어야 간신히 그 꼭대기를 볼 수 있었던 빌딩이었고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는데.

    오대용은 이제 그 성채에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주정아와 함께 개선하는 장군처럼 들어섰다.

    내부는 조금 어수선하지만 그 안에서도 오성 특유의 칼같은 규율이 느껴진다.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오대용은 주정아와 함께 당당하게 나아갔고 이내, 한 차원 더 무겁고 진한 분위기가 내려앉은 공간에 도착하였으니 회의장 앞이었다.

    오성의 핵심 계열사에서도 중책을 맡은 이들이 모여 있다.

    철저하게 실력주의인 오성의 중심에 도달한 이들이 결코 평범할 수는 없었으니 좋지 않은 일로 모인 그들의 존재감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오대용에게 호의적이고 또 일부는 적대적이다.

    중요한 건 정작 그 안에 오대용의 의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으니 그들은 그저 오대용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를 고려하여 판단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정글.

    그리고 이 정글 안에 강자로 군림하는 것이 오대용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오대용은 물론이요 오성아에게도 무관심했던 사람들.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아버지, 회장님의 인정과 그럼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제국 내에서의 성공에 더 열성적이었으니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오성아와 오대용에 실망하였고 자식들에게서 마음이 떠났다.

    오대용과 오성아가 부모님과 멀어진 이유였다.

    그런 부모님과 정글에서 치열하게 대립하는 이들 중 한 명이 둘째 큰아버지, 오대용의 아버지의 둘째 형이었다.

    그리고 그 둘째 큰아버지의 셋째가.

    "조금 늦었네? 이렇게 얼굴 보는 건 오랜만이야?"

    오대용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남자, 오무기였다.

    웃는 얼굴의 그는 그러나 마주하는 이에게 불길한 위압감을 주는 인상이다.

    눈꼬리가 살짝 처졌지만 가늘고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상대를 짓누르는 듯한 시선이 그렇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저 시선에 그렇게나 주눅이 들었었다.

    -내가 삼촌이란 말야. 알겠어?

    -응, 삼촌.

    -응이라니! 예라고 해야지! 다시 대답해.

    -네, 삼촌.

    세 살.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나이 차이였고 내려다보는 시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서웠다.

    스윽-

    "……."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주하는 시선은 평행하다. 아니, 오히려 오대용이 조금 더 높다.

    날카롭고 위협적인 시선은 단단하게 단련된 오대용의 앞에서 오히려 그 첨단의 예리함을 잃고 무뎌지는 듯 했다.

    "네. 오랜만이네요, 삼촌."

    똑같은 존댓말이지만 오무기는 과거와 달리 전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그래서 웃고 있던 표정을 바꾸어 찌푸리며 말했다.

    "좋지 않은 일로 온 건데 표정이 너무 좋다? 이렇게 늦은 것도 그렇고 영 책임감이 보이지 않는데?"

    대번에 분위기를 바꾸어 위협하지만 오대용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처음과 같은 단단함으로 받아쳤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상쓰고 인사할 이유가 있나요? 게다가 늦다니요? 오히려 30분 일찍 왔는데요?"

    "뭐? 이 새끼가……."

    "이 새끼라뇨. 말조심하세요. 어디 감히 상스런 소릴 함부로 하시는 거죠?"

    "뭐!"

    "시끄럽다."

    한소리에 바로 발작하려던 오무기를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억눌렀다.

    그 소리에 오무기가 놀랍게도 대번에 터뜨렸던 화를 억눌렀으니 목소리의 주인은 그의 아버지, 오성 건설의 부사장 오태재였다.

    오무기와 오대용이 후계로서 거론되고 있다지만 그건 아직 먼 미래다.

    지금은, 아직은 그들의 부모 세대가 오성의 주류였으니 오태재는 그 주류에서도 중심에 있는 인물이었다.

    오태재는 흘끗 오대용과 그 곁의 주정아를 보고선 자신의 아들에게 다시 시선을 주었다.

    "이런 자리에서 경솔하게 언성을 높이다니. 못났구나."

    "…죄송합니다, 아버지."

    평소 웬만한 일엔 절대 터치하지 않는 아버지였으나 회사의 일에 한해서만큼은 엄격하여 무른 부분이 없었기에 오무기는 즉시 꼬리를 내렸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오태재가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회의 후 주먹으로 풀도록."

    주먹.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였으니 무공으로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사자군 오군성의 무공을 전수받은 오성 직계들 사이의 독특한 가법(家法)으로 무공 또한 오군성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되었기에 가법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언뜻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오태재의 발언 또한 여러가지 의도가 깔린 의도된 발언이었다.

    '할 만하다 생각한다 이거지.'

    앞서의 배경으로 오성은 가장 근본적인 힘, 무력(武力)에 대한 평가를 상당히 크게 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무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 또한 업무 능력만큼이나 크게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되는데 오태재는 자신의 아들이 오대용을 그렇게 무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근래 강력한 후계 후보로 떠오른 오대용을 무력으로 압도한다면 오무기의 평가는 크게 오를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오태재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발언이었다.

    오무기 또한 아버지와 같은 생각인듯 비죽 웃으며 있다 보자 말하고선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대용은 그 뒷모습을 보며 후, 웃었고 그런 그의 어깨를 친구가 툭 쳤다.

    "들어가자."

    "…그래."

    고리타분한 절차를 생략하기로 유명한 오성의 회의답게 대번에 중심 안건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오무기가 발언했다.

    "일개 직원이 감히, 대(大) 오성의 공금을 50억이나 횡령하여 도주한 사건입니다. 자금의 흐름에 문제가 생기는 등 금전적인 손해도 물론 크지만 그 이상으로! 오성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이 무엇보다 큰 죄입니다."

    돈은 둘째다. 진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은 오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보는 절대적이어야 할 오성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

    그를 논하는 오무기의 발언에 모두가 동의한 데서 오성에 대한 과할 정도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자부심이 가져올 분노를 감당해야 할 죄인을 논한다.

    "쉬르네폴리아 지사 소속의 직원입니다. 오대용 대표의 잘못을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무기는 그 죄인으로 오대용을 지목했고 오대용은 즉시 받아쳤다.

    "이의 있습니다."

    손을 들고 일어나 발언한다.

    "도주한 직원의 소속은 쉬르네폴리아 지사이나 실질적으론 본사, 정확히는 해외영업지원부의 지휘를 받고 있었습니다."

    오대용의 말에 오무기는 심기가 불편한 얼굴이 되었으나 말을 끊지 않았고 오대용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는 쉬르네폴리아 지사가 아닌 해외영업지원부가 강력하게 건의하여 이루어진 일이었고 쉬르네폴리아 지사는 이로 인해 쉬르네폴리아 지사 소속임에도 한국 부서의 일에 관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횡령한 직원의 관리 소홀은 제가 아닌 해외영업지원부에 물어야 할 일입니다."

    이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명백하게 오대용의 주장이 맞는 것이었다.

    해외영업지원부. 정확히는 그곳을 맡은 오무기가 오대용을 견제할 목적으로 강력하게 주장하여 쉬르네폴리아 지사를 전담한 3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르네폴리아 지사가 아닌 해외영업지원부의 지휘를 받는 비효율적인 구조가 됐으니까.

    이를 잘 알고 있는, 바보가 아닌 오무기는 예상했다는 얼굴로.

    "반론 있는가?"

    "예. 있습니다."

    준비한 무기를 즉시 꺼내 들었다.

    삐빅.

    오무기가 빔 프로젝터를 조작하자 누군가의 사진이 크게 띄워졌다.

    사진에는 평범한 인상의, 그저 피부가 좀 탄 것만이 특징인 남자가 찍혀 있었고 그는.

    "쉬르네폴리아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의 사진입니다. 한국이 아닌, 쉬르네폴리아의 지사에서 근무하던 직원이죠. 그리고 이 직원이."

    씨익, 오무기가 심장에 칼을 박아넣는 듯한 얼굴로 선언한다.

    "도주한 직원을 돕고 횡령을 지시한 이번 사건의 주동자입니다."

    "……."

    "……."

    회의장의 시선이 오대용에게로 집중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오대용은 결코 관리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까.

    오무기도 어느 정도 책임을 지긴 해야겠지만 그 이상으로 오대용에게 치명적인 사안이었다.

    '어쩐지.'

    '이래서였구먼.'

    참석한 이들은 이제서야 의문이 풀린 얼굴이다.

    오대용의 반론은 사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무기가 적극적으로 일을 주도하였으니 분명히 준비한 한 수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게 이것이었던 거다.

    한국 지사의 직원은 미끼이자 행동 요원이었을 뿐 '진짜'는 쉬르네폴리아 지사 내에 숨어 있었다.

    심지어 그것을 파악도 못하고 있었다면 이보다 무능할 수가 없었…….

    "알고 있습니다."

    "뭐?"

    "저 직원에 관해서는 이미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뭔……."

    오무기가 생각도 못한 반격에 옆구리를 찔린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이에 관해서는 저희 지사의 사외이사께서 설명을 해 드릴 겁니다."

    "사외이사?"

    사외이사? 이 자리엔 주정아뿐인데 주정아는 사외이사가 아닌데. 사외이사는…….

    거기까지 생각한 이들의 눈이 어느 순간 '세 번째 인물'에 멈춘다.

    "……."

    "……."

    "……어?"

    거짓말처럼, 세 번째 인물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보다 더 거짓말 같았던 건 그 인물의 '별호'였다.

    "천, 마……?"

    천마가 씨익 웃으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쉬르네폴리아 지사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김도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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