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693화 (693/741)

693화

쉬르네폴리아에서도 돋보이는 외관을 자랑하는 5성급 호텔.

그 최상층의 스카이 라운지에 입점한 '파트리시아'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최고급 레스토랑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종사하는 이들 또한, 최고급 서비스를 실수없이 VIP에게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 누가 오든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들이.

"……."

"……."

두근두근.

빨라지는 심장의 속도를 다 억누르지 못하고 들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을 엄격하게 컨트롤해야 할 상급자들 또한 조금은 흥분한 티가 나고 말았으니 무려 손님이, 천마를 필두로 한 천마의 지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포부문의 문주인 벽태웅에 오성 건설의 젊은 대표인 오대용만 해도 파트리시아에서 VVIP로 모셔야 할 만큼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한데 여기에 진나라의 여황인 위서린이 저쪽 세계의 전설인 사신의 손녀 장소유와 함께 방문하여 합류하였고 그 뒤로 서소담, 윤상미, 약리지에 성민혁과 성지인까지.

한 명만으로도 눈이 돌아갈 이들이 한 방에 모여 앉았으니 제아무리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파트리시아의 직원들이라 하여도 평정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녕하세요."

"아, 아, 안녕하십시까. 영광입니다."

천마가 오성아와 함께 웃으며 인사하니 직원이 혀가 꼬여 응대를 실수했음에도 누구 한 명 웃거나 책망하지 못한 것이다.

"크흠. 이런 때일수록 더욱 프로답게 행동해야 하는 법입니다. 여러분들을 믿습니다."

"…예!"

상급자가 먼저 마음을 다잡고 그들의 자부심을 논하였다.

직원들은 그 말에 따라 마음을 다잡고 서빙을 시작하였으니.

'……뭔데.'

'뭐지?'

프라이빗룸 내부의 술렁이는 분위기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끼며 또 평정심이 흔들리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밖으로 나가야 했고 말이다.

* * * *

"이렇게 모이니까 좋네요."

도진이 식사를 시작하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전부 다 모이진 못했지만 이 정도라도 모이기가 힘든 게 요즘이었다.

우선 도진부터가 저쪽 세계에서의 일로 몇 년이나 이쪽 세계에 없었다.

그 사이 벽태웅과 오대용, 주정아는 이곳 바할라의 쉬르네폴리아에 매진하느라 쉽사리 시간을 내지 못했다.

"얼굴 까먹을 뻔 했어요, 오빠."

도진의 말에 맑은 방울이 울리는 듯 활달한 목소리로 답한 건 새하얀 토끼를 연상케하는 약리지였다.

약리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한방(韓方)과 양방(洋方)을 아우르는 의가(醫家)인 의선약가의 금지옥엽.

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귀한 딸이 아니라 의선(醫仙)의 정통 후계자로 의선약가의 차세대를 이끌어 갈 소의선(小醫仙)으로 세계에 인정받고 있었다.

무형독의 거대한 음모였던 전염병 무림 독감을 천마와 함께 해결하였고 내공 거부 체질에 대한 연구에서 성과를 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내공 흡수 효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는데, 이로써 무림 자체의 발전을 한 세대는 앞당겼다는 평가와 칭송을 받았다.

의선약가의 간판이 아닌 스스로의 이름만으로도 세계에 돋보이는 존재.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 있는 의사로서 모두의 존경을 받는 그녀는 그러나 도진의 앞에서는 여전히 새하얗고 귀여운 토끼와 같은 미소를 보인다.

그녀와는 자주, 일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얼굴을 보았고 이제 선배가 아닌 오빠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졌다.

여러모로 바쁠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봉사에도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서부 무림에 사는 이들에 대한 의료 봉사차 방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한 것이.

"잘 지냈어, 상미야?"

"네, 오빠."

줄곧 도진에게 시선이 머물러 있던 윤상미였다.

그녀에게 있어 도진은 그녀의 인생을 바꿔주고 이끌어주며, 또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게 해 주는 빛이었다.

그 빛을 오랜만에 만났으니 시선이 결코 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도진의 말에 상미의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

빙봉(氷鳳)이라 불리던 후기지수는 이제 난빙화(爛氷花)란 이름으로 세계에서 유명했다.

숭무고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윤상미는 고질적인 인재 부족에 시달리던 천마신교에 큰 도움이 되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책임자로 여러 의뢰를 해결하며 인망과 명성을 쌓았고 요즘엔 의선약가를 전담하고 있다.

다름 아닌 숭무고 동기인 소의선 약리지의 의뢰다.

봉사 등 여러 이유로 세계 여러 곳을 다니는 약리지와 함께하며 무력이 필요한 경우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나 제3세계의 열악한 치안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을 '얼음꽃'을 피워 제거한 일화는 그녀의 지금 별호를 탄생하게 만든 전설이었다.

도진은 부끄러워하는 상미에게 웃어주고선 시선을 위서린에게로 옮겼다.

"고생하셨어요, 서린 씨."

"저는 그다지……."

"아뇨. 아주아주 큰일을 하셨잖아요."

"으음."

위서린의 볼이 상미보다 더 붉게 물든다.

얼마 전의 일이 생각나 더욱 그렇다.

-칭찬해 드릴게요.

자책할 필요가 없다고.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위로해 주고 자신의 머리맡에서 잠들 때까지 계속 칭찬해 주던 모습이 떠올라서.

그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가.

그리고 오늘 또 도진은 위서린을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도진에게.

"나는? 나도 칭찬해 줘, 도진아."

청아한 목소리로 칭찬을 조르는 이가 있었으니.

"아, 소담아."

서소담이었다.

도진의 숭무고 동기.

함께 있는 것이 당연했던 사이였고 서로가 다른 곳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도, 그렇게 만나 대로를 함께 걸어도 주변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사이다.

약간의 장난기를 담아 밝게 웃는 그녀는 아름답다.

어린 티를 벗고 더욱 깊어진 눈동자가 보는 이를 서서히, 헤어날 수 없는 매력으로 빠뜨린다.

"물론 우리 소담이도 잘 해줬지. 그런데, 조금 성격 바뀌지 않았어?"

마치 두 손을 뻗어 빠져나갈 수 없이 목을 감싸버린 것만 같은 시선이다.

뭐랄까.

곁에 서 있지만 조심스레 손을 매만지는 선에 그쳐 있던 그녀가 갑작스레 덥석, 어깨를 감싸고선 당기는 느낌이라고 할까.

소담은 도진의 말에 후후 웃었다.

"정식으로 소가주가 됐으니까. 조금 더 적극적이 돼야 할 거 같아서."

소가주(小家主). 그러고 보니 그랬다.

소담은 정식으로 암산서가의 소가주가 되었다.

정확히는 소가주임을 외부에 정식으로 공표하는 행사가 있었다.

가주이자 아버지를 포함한 어른들이 과거를 청산하고 일선에 복귀하면서 암산서가는 염원하였던 양지로 진출하였다.

천마신교의 기둥 중 하나로 세를 떨쳤고 가전무공에 진천공을 더하여 부족한 부분을 메꿀 뿐 아니라 진일보하는 과정에 있었다.

보이지 않는 길을 걷던 검로에 뇌기(雷氣)가 깃들며 빛과 굉음으로 당당히 세상에 드러나니 비봉(秘鳳)이라 불리던 그녀는 번개를 호령하는 아름다운 이, 순뢰가인(徇雷佳人)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그녀를 동경하여 암산서가의 문을 두드리는 이가 적지 않다고 하는데 개중 극소수만이 입문하여 훈련생으로 구르고 있다고 했다.

그런 느낌으로.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훈훈한 분위기로 내부가 가득찼다.

그걸로도 충분할 정도로 이곳에 모인 이들의 인연은 두터웠으니까.

그리고 곧 모두의 시선이 오대용과 주정아에게로 향했으니.

"뭘 그렇게 꽁꽁 감추고 있는 거야?"

도진이 물었고 오대용과 주정아가 움찔했다.

"맞아요. 뭘 숨기고 있는 거예요?"

지그시 바라보는 약리지만이 아닌 모두가 눈치챌 수밖에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이 무언가를 꺼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끙끙거리던 둘은 이내 모두의 시선이 향하자 결국, 그것을 꺼내 놓았다.

"음, 그러니까 말야……."

"그래."

"…나, 애 아빠 됐어."

"……."

"……."

"……뭐?"

* * * *

밤.

도진은 하늘을 수놓은 별을 보며 생각했다.

참, 많은 것이 바뀌었고 그 바뀐 세상의 세월을 실감하고 있다고.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를 만큼 삶이 바뀌었으니 동경하던 세상의 가장 중심에 있었고 그들과 인연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윤상미가 도진의 삶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될 줄은 몰랐고 그저 닿지 않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던 소담 또한 오랜 시간 곁에서 함께 하였다.

'그러고 보면.'

조금 바뀐 분위기로, 그러나 언제나와 같은 맑고 깊은 눈동자로 자신을 보던 소담의 모습을 도진이 떠올린다.

어른의 느낌…… 이라고 해야 할까.

어른스러워진 소담의 모습은 전생에서는 보지 못한, 이번 생이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어른스럽다'는 부분에 이르러 강렬하게 떠오르는 것이.

-나, 애 아빠 됐어.

식사 자리를 뒤집어 놓으셨던 오대용의 그 선언이다.

-뭐, 뭐라고?!

평소 이성의 집합체라 할 수 있었던 오성아부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으니 무얼 더 말하랴.

주정아는 쑥스러워하면서도 헤헤 웃었고 오대용이 그런 주정아를 보호하듯 모두의 시선 앞에서 말했다.

-그, 오늘 병원가서 알았어.

-어, 근데 이렇게 밥 먹어도 돼요?

-아니 뭐. 그렇게까지 위험한 건 아니니까 말야. 물론 내가 딱 붙어 있을 거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말 해?

성민혁의 걱정에 괜찮다던, 그러면서도 주정아의 옆에 딱 붙어서 조심스레 말하던 오대용의 모습.

-생각이 많아 보이는구나, 제자야.

자신의 안에서, 심상세계에서 들리는 스승 위지혁의 말에 도진이 옅게 웃었다.

-네. 그렇네요.

약간은. 그런 게 있었다.

전생을 포함하여 도진은 그래도 제법 나이를 먹었다고 할 만한 세월을 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른'인가, 라고 자문하면 고개를 젓게 되는 것이다.

가혹한 삶을 살았고 그로 인해 많은 걸 생각하고 또 많은 걸 알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스스로 어른이라고 하기엔 무언가가 많이 부족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오대용의 얼굴에서 아버지로서의, 어른으로서의 면모가 묻어나는 걸 보니 특히나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 가정을 이루는 건 아주 많은 걸 바꿔 놓는 법이지.

그 말에 위지혁 또한 많은 감정을 담았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안을 채운 많은 생각과 감정 안에 있던 도진이 외부의 기척에 시선을 향했다.

달빛 아래, 달빛보다 은은하게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미인이 거기에 있었다.

"소담아."

미인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도진에게 환히 미소지었다.

"뭐하고 있었어?"

"음, 명상?"

"에이. 아닌 거 같은데."

"응. 정답. 사실은 그냥 멍때리고 있었어."

마주보며 웃는다.

조금 분위기가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소담은 소담이다.

언제 어느 때든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하고 또 편안한.

그러나 오늘, 지금은 그 당연하고도 편안한 가운데 눈에 띄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녀의 차림.

그러니까 잠옷, 이다.

잠옷으로 향한 도진의 시선에 소담이 싱긋 웃고선 말했다.

"성아 언니랑 상미랑 파자마 파티하기로 했거든. 같이 하자, 도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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