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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89화 (689/741)

689화

"받아들일 수 없소."

단호하게 선언한 건 최항선이었다.

평범한 중년인의 모습이지만 단단한 신념이 어린 인상이 그를 다른 이들과 구분되게 만들었다.

그 신념이 어린 최항선이 아버지로서 아들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추귀는 그렇게 자신의 앞을 막아선 최항선을 마주하여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받아들일 수 없어? 왜?"

드드드드-

보이지 않는, 그러나 실재하는 흉악한 기세가 최항선을 짓누르고 뒤흔든다.

파르르르…….

최항선은 짧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거세게 주먹을 쥐어 그것을 버티며 입을 열었다.

"세상 그 누가, 어떤 부모가 제 아이를 팔아넘긴단 말이오."

푸후.

추귀는 그것을 소리내어 비웃었다.

최항선이 어렵사리, 힘겹게 뱉어낸 신념을.

그리고 말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최항선, 최항선. 들어본 적이 있어. 교나라에 대항하던 역도들 중에 그런 이름이 있었지."

"……당신."

"아니, 아니야. 난 별로 교나라를 믿는 사람은 아니었어. 그냥 그런 척을 했지. 그러면, 합법적으로 사람을 주무를 수 있었으니까 말이야."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리는 그가 얼마나 끔찍한 짓거릴 해 왔을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천인공노할……."

"크하하! 크하하하하학! 천인공노! 천인공노!!"

그래서 새어 나온 최항선의 말에 추귀가 자지러질 듯 크게 웃었다.

정말로, 그러지 않고선 참을 수 없다는 모양으로.

그렇게 한참이나 웃다가 겨우 그치고선 최항선에게 물었다.

"천인공노. 그래. 사람과 하늘이 같이 분노하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죽나? 내가? 벌을 받나?"

"그런데 이상하네? 왜 난 벌을 받지 않았을까? 아직 하늘이 모르나? 하늘이 병신이라, 장님이라 아직 모르는 건가? 크, 크큭. 크크큭."

저 혼자 말하고 저 혼자 웃으며 흥청거리는 몰골이 기괴하고 또 기괴하다.

그렇게 기괴한 모양으로 추귀가 말했다.

"최항선. 역도들 사이에선 제법 이름 있는 문인이었다지. 제 아비를 닮아 강직하고 올곧으니 따르는 이가 많다고."

최항선의 아비는 이름난 위인이었다.

썩을 대로 썩은 부패한 자들이 질투하였으나 그 인망이 너무나 두터워 감히 모함하지 못할 만큼.

명나라가 그렇게 멸망하지 않았다면 눈앞의 이 곧아빠진 놈도 분명히 벼슬아치가 되었을 거다.

그런 놈이니까.

추귀는 이런 곧은 놈을 서서히 부러뜨리는 것이 사정해 버릴 만큼이나 좋았다.

그럴 생각으로 번들거리는 눈이 최항선을 훑는다.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대가리에 먹물이 가득한 책상물림이라 그런지 세상물정을 잘 모르나 봐."

"세상에 어떤 부모가 아이를 팔아넘기냐고? 본 적 없어? 진짜? 나는, 진짜 많이 봤는데?"

거짓말이 아니었다. 한 치의 과장도 없는, 철저한 사실이었다.

저 살겠다고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팔아넘기는 이를 추귀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왜. 그게 나쁜가? 왜 나쁘지? 얼마든지 새로 낳으면 되는 것이잖아? 아! 그건가? 앞가림도 못하는 핏덩이를 돈과 시간을 써서 키워놨는데 써먹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니까 아까워서? 어떤가. 내 말이 맞나? 먹물쟁이 양반."

"……."

최항선은 답하지 않았다.

답할 가치가 없는, 완벽하게 인간이 아닌 자였으니까.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 눈앞의 '저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 인간이 아닌 것이 한 걸음, 최항선에게 가까워졌다.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군. 언제까지 그렇게 고상한 척 할 수 있을지 말이야."

그리 말하며 또 한 걸음. 추귀가 가까워졌고.

쿠우웅-!

"……!"

거대한 바윗덩이가 떨어진 듯한 충격에 최항선이 일순 휘청였다.

"아버, 지……!"

뒤에서 들려온 아들의 목소리에 최항선이 부서져라 이를 악물었다.

뿌득.

그리고 으스러질 것만 같은 압력을 받는 무릎에 힘을 주었다.

"어이쿠. 버티는가? 괜찮겠어? 그렇게 조금만 지나면, 이가 부서져 버릴 거야. 무릎도 바스라져 버리겠지.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테고 음식조차 제대로 씹을 수 없을 거야."

뿌드드득!

"눈깔도 압력에 터져 버릴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내 독문진기는 조금 흉악한 녀석이라서 말이야. 피부를 통해 스며든 기운에 내장이 상해서 먹는 것조차 무엇 하나 마음 놓고 먹을 수 없게 될 거야."

"어때. 그만 버티고 비켜설 마음이 좀 생겼나?"

최항선은 힘겹게 답했다.

"아이를, 버리는 부모는 없소."

울컥, 올라오는 핏물을 최항선은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자신의 몸이었고 감각이 곤두서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깎여 나가는, 망가져 가는 몸을.

저항을 멈추고 이 압력에 무릎 꿇지 않으면.

뜻을 꺾지 않으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릴 몸을.

아니.

애초에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선고된 절망이었다.

무너지든 무너지지 않든.

저자는 자신의 추악한 성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으로만 가득할 뿐 일말의 자비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최항선의 의지는 일말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신념.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마음가짐.

아이를 버리는 부모는 없다.

뿌드득-!

굳건한 의지와 달리 나약한 육체는 더 버티지 못함을 선고하듯 당장이라도 부서지려 한다.

추귀는 어느 쪽이라도 좋다는 듯 추악한 얼굴로 비죽 웃고 결국.

콰악!

"……음?"

무너졌어야 할 최항선의 육신은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져야 할 육신을, 받쳐주는 존재가 있었기에.

"……."

잘게 떨리는 진동이 등에 닿은 작은 온기를 통하여 전해졌다.

아이.

자신의 욕심으로 고생을 하게 만든. 자신과, 아내의 하나뿐인 아이.

그 아이가.

자신의 뒤로 숨겼던 아이가 무너졌어야 할 육신을 온힘을 다하여 지탱하고 있었다.

'아아.'

지금까지, 그의 삶을 지탱해 주었던 것처럼.

최항선의 떨림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는 추귀의 얼굴이 일순, 무서우리만치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찰나에 그것을 감추듯 다시 웃었다.

한 걸음. 또 추귀가 거리를 좁히고선 최항선의 뒤 최태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야. 무얼 그리 필사적으로 버티는 것이냐."

최태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두 눈을 필사적으로 감고 귀를 닫고. 추귀를 지우려 한다.

그러면서도 결코 아버지를 받치는 손은 풀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필사적인 노력은 보답받을 수 없었으니 추귀의 목소리가, 내공을 담은 목소리가 최태호의 머리에 끈적하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버텨서, 싸우면 무엇이 바뀔 것 같으냐?"

"너의 그 하찮은 힘으로 애비를, 1초나마 더 지킬 수 있겠느냐."

"그렇게 버틴다고 해서 무언가가 바뀌겠느냐."

"네가 감당해야 할 것은 당장은 나이지만 나에서 그치지 않으니 나와 같은 이가 수없이 많은 금랑회요, 금랑회조차 일부에 불과한 서부 무림이다."

"그리고 그 서부 무림을 만든 이 부조리한 세상까지. 아이야. 너를 짓누르려는 것은 이렇게나 거대한 것이니 그렇게, 그렇게 필사적이어도 무엇 하나 하찮은 너로서는 바꿀 수 없음이다."

"포기해라. 하찮은 발버둥은 너를 더 괴롭게 할 뿐, 너의 앞에 놓인 건 그런 거대한 것들인 것이다."

내공을 담은 추귀의 말은 실체가 되어 최태호를 흔든다.

그래. 그 말대로였다.

어린 최태호를 짓누르는 것은 그렇게나. 눈에 담는 것조차 불가능할 만큼 거대하고도 불합리한, 그러나 그 일말의 자락조차 바꾸는 것이 버거운 세상이었다.

차라리 짓눌려 땅을 기는 것이 편할.

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들어 버린 최태호는 그것을 슬프게도 너무나 잘 알았다.

하지만.

"싫, 어요."

"뭐라?"

"나는.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아버지께 배웠으니까."

"하."

뚜두둑.

추귀의 목이 기괴하게 꺾이며 뼛소리를 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에 살심(殺心)이 일었다.

추귀는 그렇게 인내심이 깊지 않았다.

속내를 감추거나 다루는 데에도 그리 능숙하지 못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잔혹하게 난도질해 버리면 되었으니까.

'그래.'

아무래도, 말로는 안 될 놈들인 모양이었다.

이미 몇 놈이나 보았다.

적당한 말로는 무너지지 않는, 무언가 된 척을 하는 역겨운 놈들을.

그러나 그런 놈들도 추귀가 직접 손을 쓰자 오래 가지 않아 바닥을 기며 병신같은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닥. 따다닥.

추귀의 살심에 노출된 최태호가 벌벌 떨었다.

아이가 버티기엔 너무나 잔혹한 살기였다.

이대로 잠시만 두어도 정신이 나가 병신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 꼴을 잘난 면상의 먹물쟁이에게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만해."

"……."

최태호에게로 향하던 살기를 막아서는 무인이 있었다.

후두둑.

뚫린 배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기어코 일어나 앞을 막아선 것은, 조서강이었다.

"죽다 만 놈이 끈질기구나."

추귀는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말하며 손을 들었다.

말 그대로 뒈지다 만 놈을 놀리는 건 지금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바로 치워 버리려 했다.

조서강은 그러나 추귀의 살기에 겁먹지 않았다.

"새끼야. 내가 그 독종 조서강이야. 이거라도 처먹어 새꺄."

퉤.

피가 섞인 침을 그 면상에 뱉는다.

결코. 맞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시도 자체가 추귀의 눈에 불이 튀게 만들었다.

훅!

그 입을 아예 짓이겨 버릴 생각으로 주먹을 뻗었고 꼴에 무인이라고 두 팔을 들어 막는다.

팔뼈를 그 아가리에 박아주마.

추귀의 주먹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날아갔고.

따르르르르르릉-

"……?!"

갑작스런 벨소리에 우뚝, 멈추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에 멈춘 것이었다.

"뭐야?"

이곳은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다.

기지국이 없으니까.

애초에 그런 곳이니까 추귀가 이렇게나 여유를 부리고, 모욕을 주기 위하여 시간을 끌 수 있는 것이었다.

추귀의 시선이 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추귀의 아무것도 아닌 한 수에 나가떨어졌던 기억에조차 남지 않은 무인이 대자로 누운 채 귀에 휴대폰을 대고 있었다.

"네, 누나."

-해도 돼.

"고마워요."

통화는 그렇게나 간단히, 짧게 끝나 버렸다.

사아아-

그리고 무인은 모래를 털며 일어나 조서강의 곁에 섰다.

툭.

아무렇지 않게 무인의 손이 조서강의 등을 쳤고.

"커허헉!"

조서강이 격하게 검은 피를 토해냈다.

"…무어냐."

추귀가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에 그저 물은 것이었다.

전화가 터져서는 안 될 곳에서 전화를 하고, 그가 조서강에게 때려박았던 아기(餓氣)를 아무렇지 않게 울혈(鬱血)과 함께 뱉어내게 만들었다.

기억에조차 없던 하찮은 놈이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 하찮은 놈은 추귀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형님."

"그래, 서강아. 진짜, 멋진 놈이 다 됐구나."

"하하. 다 된 게 아니라 이미 됐었다구요."

철저하게 무시하고서, 이번엔 최태호의 곁에 섰다.

그리고 품에서 고급스런 포장에 감싸인 초콜릿을 꺼내 들고서 말했다.

"태호 너한테는 갚아야 할 게 있었지. 이거, 지금 갚고 싶은데 괜찮을까?"

추귀의 살기에 노출되었던 아이는 여전히 몸을 떨고 있다.

그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아이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나직이 아이에게 한 번 더 말했다.

"알고 있어. 니가 뭐라고 할지. 니가 어떻게 할지. 너는 싸울 거잖아? 그 싸움, 같이 하자."

나직한 목소리가 아이에게 스며든다.

아이의 떨림이 서서히 멎고 그 눈에 총기가 어렸다.

총기 어린 눈이 그와 마주하였다.

"형."

"그래."

"같이, 싸워요."

"오케이."

"무슨 개짓거리냐!!!"

꽈아앙!!

진기를 폭발시키며 번들거리는 눈의 추귀가 덤벼들었다.

그는 천천히. 쇄도하는 추귀를 향해 아주 천천히 몸을 돌리며 손을 들었다.

너무나 극명한 속도의 차이.

그러나 추귀의 진기로 가득한 손은 마치 그렇게 결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스으-

천천히 움직인 손에 처음부터 그렇게 움직이려 했던 모양으로 안으로 접혔다.

콰직!

"……!!"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가슴팍이 으스러졌으니까.

그러나 추귀는 죽지 않았고 여력의 흐름에 따라 무릎을 꿇었다.

무릎 꿇은 추귀의 앞에서 그가.

"추귀. 금랑회. 서부 무림. 그리고 부조리한 세상이라고 했지."

천마 김도진이 말했다.

"추귀는 무너뜨렸고……. 그럼, 남은 것들이랑 싸우러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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