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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88화 (688/741)
  • 688화

    사막의 밤보다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조서강이 다가오는 이들을 두 눈에 담았다.

    횃불을 든 몇을 필두로 하여 다가오는 자들의 외모와 기세가 결코 좋은 의도로 오는 게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게 했다.

    곧 마을이 술렁였고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왔다.

    "이거……."

    "……."

    불안한 마음이 내는 웅성임이 모인 마을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이자를 받아간 게 불과 며칠 전이다.

    애초에 이런 시간에 이자를 받겠다고 온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이것은 결코 평범한 방문이 아니었고.

    처억.

    무림인들의 무리 사이에서도 머리 두 개는 더 큰 키와 그 키보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거한이 등에 멘 박도(朴刀)가 앞으로 있을 '불행'을 예고하고 있었다.

    "크흠."

    언뜻 보아선 그가 무리의 대장으로 보였고 일단은 맞았다.

    흉악한 인상의 그는 타고난 육체를 무기로 삼아 저쪽 세계에서 녹림(綠林)에 입문, 산적 두목이 되었고 혼란기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이곳 서부 무림까지 흘러들어 왔다.

    대단치는 않다지만 그래도 무공이라 할 만한 것을 익혔고 타고난 육체를 바탕으로 하여 펼치는 위력이 범상치 않아 스물 가까이 되는 부하들을 부렸으니 이곳을 포함하여 세 곳의 수금을 맡은 문파, 사사문(沙蛇門)의 문주였다.

    불편한 심기가 설핏설핏 드러나는 그가 바로 곁에 선 이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자가 즉시 나서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원금 회수를 하러 왔수다."

    "워, 원금?"

    "무슨 소리요?"

    술렁임이 조금 더 커졌다.

    그만큼 그 말은 갑작스러웠다.

    사람들의 술렁임에 말을 꺼낸 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거한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일을 하는 인간답게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인상이 더욱 좋지 않은 꼴이 되었다.

    "그러니까. 빌려준 돈을 다 받으러 왔단 말이오."

    "갑자기 그러면."

    "아, 됐고! 장사 접어야 돼서 돈 받으러 온 것이니 닥치고 그냥 있으쇼. 뒤지기 싫으면. 챙겨!"

    주민들의 말을 끊고 그가 지시하자 횃불을 든 이를 제외한 무인들이 우르르, 마을을 헤집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갑작스런 상황에 동요하였고 입을 열려 했으나 이내 다물고 말았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무인들은 흙발로 사람들의 소중한 공간을 헤집었고 망가뜨렸다.

    그리고 값어치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 담았다.

    "다 모았습니다."

    모은 것을 무인들이 거한 앞에 놓았다.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것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았으며 심지어, 마을 사람들이 할부로 사서 아직 갚고 있는 발전기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한은 그것들을 자세히 살피는 대신 시선을 뒤로 향했다.

    "다 모았답니다."

    그곳에.

    "그래?"

    이런 상황임에도 마을 사람들이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한 원인이.

    "한 번 볼까?"

    조서강이 사막의 밤보다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지켜보던 자가 있었다.

    얼핏 보면 볼품없는 자로 보였다.

    몸은 비쩍 말랐고 허리는 구부정하다.

    거한의 옆에 있으니 특히나 그런 외형이 두드러진다.

    허나 이 자리의 누구도 그를 그렇게 볼품없게 인식할 수 없었다.

    스으으…….

    그를 중심으로 하여 퍼져 나가는 기파(氣波)가, 기세가 무시무시한 불길함을 사람들에게 때려박고 있었기에.

    추상적인 감각이 아닌 실재(實在)하는 위협.

    그것은 기세에 내공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 이 세계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말하자면 A-2요 무림의 언어로 말하자면 절정.

    '벽'을 넘은 자였다.

    서벅. 서벅.

    사막의 모래를 밟고 나서는 그의 앞을 두 배는 될 법한 덩치의 거한이 조심스레 비켜선다.

    그 또한 부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그런 체면을 이 자의 앞에서 챙길 수는 없었다.

    '사람 같지도 않구만.'

    서부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세력인 금랑회(金狼會)에서 나온 이 자는 별호가 추귀(墜鬼)라고 했다.

    사람을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조롱하고, 짓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볼 필요도 없었다.

    분위기만으로도 몸서리가 처질 만큼, 1초라도 빨리 좀 안 보고 싶을 만큼 꺼려지는 자였으니.

    무공의 경지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본능이 꺼리게 만든다.

    그 추귀가 부하들이 모은 것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성의라곤 한 점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그렇게 둘러보고선 말했다.

    "모자라군."

    "예?"

    "한참을 모자라단 말이야. 굳이 볼 것도 없지 않나?"

    "……예. 맞습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이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애초에 원금의 절반조차 되지 않았다.

    추귀가 거한의 동의에 쭈욱, 입을 찢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버러지들."

    흠칫-

    마치 파르라하게 갈린 칼과 같은 시선에 주민들이 어깨를 떨었다.

    "빌린 돈을 갚으려면 선택을 좀 해야겠어."

    "무, 무엇을 말이오."

    "간단해. 전부 다 불구가 되거나 절반만 죽거나."

    "……?"

    "사람이란 게 말야, 생각보다 비싸거든. 눈깔, 장기부터 시작해서 머리카락까지도. 팔면 돈이 된단 말이야."

    "……!!"

    "보자. 좀 낡은 것도 있긴 한데 칠팔십 마리 정도면 빚 갚기엔 충분하단 말이지. 그런데 다 불구가 되는 건 좀 그렇잖아? 그러니까 절반만 희생하면 나머지는 사지 멀쩡하게, 눈깔도 멀쩡하게 앞으로도 살 수 있게 된다는 거다."

    "……."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추귀가 하는 말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잘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때문에 침묵하는 마을 사람들 대신.

    "잠깐."

    조서강이 앞으로 나섰다.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쥔 조서강이 추귀의 앞을 막아섰다.

    "그래. 포부문의 버러지."

    콰드득.

    조서강이 안 그래도 꽉 쥔 주먹에 더욱 힘을 주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참아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잃었다간,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무시무시한 기세에 짓눌려 무릎 꿇고 말 것이었으니까.

    안 그런 척하면서 앞으로 나선 순간부터 일대를 채우고 있던 기세가 모조리 조서강을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본래 실체가 없을 기세가 실재하는 위협으로 조서강을 압박하는 것이다.

    '이게…… 벽을 넘은 초인.'

    조서강이 감당하기 힘든 압박을 외면하기 위하여 억지로 머리를 굴렸다.

    세상에서야 현실을 초월하니 화경(化境)이니 하지만 실제로는 A-3, 일류를 넘는 것조차 한줌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A-3. 일류. 번듯한 사자 직업의 대열에 들 수 있는,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

    그 위는 평범한 노력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으니 재능이 있어야만 했다.

    재능.

    단순하게는 절망의 벽 그 너머로 날아갈 수 있는 재능이 있거나.

    그 너머에 기어서라도 도달할 수 있을 만큼의 평범하지 않은 노력을 할 수 있는 재능이 있거나.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것이 A-2, 절정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렇게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이들부터가.

    진정한 의미에서 초인(超人)이라 불린다.

    '더러운 세상이야, 진짜.'

    조서강은 A-3 자격증을 딴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무공에 특출난 재능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이 아쉽지 않았던 건 조서강이 무공이 아닌 '사무직'을 동경했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동경하게 마련이었고 조서강은 그것이 주먹이 아닌 펜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 동경하던 것을 성대하게 이루었다.

    그러니까 절정의 경지를 부러워하고 없는 재능을 원망하는 건 투정에 불과하다.

    '후.'

    잡생각을 좀 하니까 낫다.

    그것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충분하다.

    꾸욱-

    와이셔츠의 넥타이를 조였다.

    일부러 더 답답하게 넥타이를 조이는 건 조서강 나름의 의식같은 것이다.

    그렇게 넥타이를 조여 조금 더 정신을 가다듬고서야 조서강이 입을 열었다.

    찰나의 시간이었음에도 입술이 마른 느낌이다.

    "농담이라도 그건 좀, 많이 선을 넘은 발언이지 않은가 싶은데 말입니다."

    "농담? 넌 이게 농담같나 봐?"

    "농담이 아니면 더 곤란한데요. 이래봬도 포부문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라서 말이죠."

    조서강 혼자의 힘으로는 이 자리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포부문의 이름을 가져왔다.

    추귀의 입가가 조금 더 비틀렸다.

    "그래, 알고 있어. 잘 알고 있지. 너, 조서강이잖아?"

    "……알고 있었습니까?"

    "잘 알지."

    조서강이 상황이 생각보다 긍정적이라는 판단을 하였다.

    이자들은 서부 무림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렇게 떠날 생각으로 일을 벌이러 온 것이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포부문이란 이름을 무시하면서까지 막 나갈 수는 없으니 포부문은 그 자체로도 강대한 문파이지만 더 나아가 천마신교의 울타리 안에 있는 문파.

    서부 무림을 떠난다 해도 이 세상을 떠날 게 아닌 이상에야 포부문의 3인자라 불릴 정도의 위치에 있는 자신의 앞에서까지 막 나갈 수는 없다.

    그러니까 여기서 내가 말을 잘 해서 분위기를 바꾸면 상황까지도 바꿀 수 있을 거다.

    그런 판단으로 조서강의 정신이 아주 조금, 느슨해졌고.

    퍼걱.

    "……?!"

    추귀의 손에 배가 꿰뚫렸다.

    "커, 헉."

    피로 번들거리는 추귀의 손이 꿰뚫었던 조서강의 배에서 빠져 나왔다.

    그 손을 핥으면서, 추귀가 일그러진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주, 잘 됐어."

    '무슨, 개소리, 를.'

    쇼크에 생각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

    일단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허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조서강의 눈빛만으로도 생각을 읽어낸 추귀가 말한다.

    "널 담궈 버리면 패권이 아주 눈깔이 돌아가지 않겠어? 그러니까 잘됐다는 거지. 킬킬킬."

    미친 새끼.

    조서강은 추귀가 미친놈이란 걸 뒤늦게서야 알았다.

    저놈은 내일을 생각하는 놈이 아니다.

    당장 오늘, 지금만을 보는 완전히 미쳐 버린 놈이었다.

    타앗!

    조서강과 함께 왔던 무인이 다급히 몸을 날렸지만.

    뻐억!

    추귀의 한 수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모래 바닥에 눕고 말았다.

    "내 독문진기는 아기(餓氣)라고 하는데, 이게 그 이름처럼 사람의 내부를 굶은 새끼마냥 파먹어."

    "끄윽."

    중얼거리는 추귀의 말에 반응하는 것처럼 격통에 또 하나의 고통이 섞였다.

    "걱정 마. 장기는 피했으니까. 그냥 구멍만 뚫어 놓은 거야."

    "그러니까 천천히, 속이 파먹히는 걸 느끼면서 뒤지면 될 거야. 그리고 그러면서 보고 있으라고."

    추귀는 일부러 끝을 내지 않고 조서강을 지나쳤다.

    그리고 떨고 있는 주민들을 보며 말했다.

    "다 불구가 되기는 싫고 절반만 뒤지는 것도 선택하기 힘들어? 그러면 하나 더 방법이 있는데……."

    말을 흐리는 추귀의 시선은 주민들의 중심에 선 최항선을 지나 그 뒤.

    최태호에게서 멈추었다.

    "애들을 팔아."

    "뭐, 요……?"

    "원래 싱싱한 게 비싸게 받을 수 있는 법이잖아. 다 불구가 되는 것도 싫고 절반만 뒤지는 것도 싫다며? 그럼 마지막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절반의 절반만, 그것도 또 절반은 살 수 있는 방법이란 거다."

    "애들 뭐 얼마 안 되네. 얘들만 팔면 돼. 뭐 절반 정도야 죽겠지만 절반 정도는 운이 좋으면 살 수도 있을 거야. 어때. 이 정도면 좋은 조건 아니야?"

    추귀가 쭈욱, 입을 찢듯 웃었고.

    따딱.

    최태호의 이가 의지를 벗어나 공포에 부딪쳤다.

    그리고.

    스윽-

    최태호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시선을 넓은 등이 막아섰다.

    "받아들일 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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