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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83화 (683/741)

683화

찰칵. 찰칵찰칵.

촤좌좌좌좌좍-!!

플래시가 연신 터지고 수많은 기자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가 포토존에 선 이들을 담는다.

그들은 천마 김도진과 오성아, 그리고 이 남쪽 나라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1강 5중의 사람들이다.

작년만 해도 외부인이라곤 억지로 구색이나 갖추기 위하여 찾아온, 최소한의 절차만 겨우 소화하던 자리가 아니라 세계 유수의 언론이 헤드라인으로 삼기 위하여 몰려든 자리였다.

이번 남방 영토 회의의 장소를 제공하고 의장의 역할을 맡았던 아무스가 오묘한 표정으로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예. 저희는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대신, 우선 영토를 무단 점유하고 범죄를 일삼는 자들을 소탕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 곁에 있던 이 또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행동으로 증명할 것이니 회의가 끝나는 대로 서부 무림 대책위원회를 설립, 그 과정을 주기적으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켜보는 이들을 박수치게 만드는 발표를 하였다.

5년간 바할라가 있음에도 제자리걸음만 하였고 조롱마저 끊기게 만들었던 회의의 결과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결론이 쉽게 나지 않을,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영토 경계선에 관한 분쟁을 잠시 멈춘다.

그러는 대신 '그들의 땅'에 자리잡은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데에 역량을 모으기로 합의하였다.

하나. 군대를 동원하는 대신 무림에 의뢰하는 형태로 일을 진행한다.

하나. 의뢰에 필요한 비용을 포함한 모든 비용은 협의 하에 공동 기금으로 집행한다.

하나. 서부 무림의 소탕에 관한 내용은 이후 영토 회의에서 일절 공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

세간에 발표된 그 세 가지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내용이었다.

오직 그들만이 참석한 회의에서 나온 것이라면 의심부터 하고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바할라만이 아닌 천마신교가, 천마와 오성아의 이름이 함께 기입되어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 내용을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박수치며 웃게 만든 내용을 발표한 남방 영토 회의의 구성원들 다수는.

'개…….'

차마 카메라 앞에서 티는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기세가 등등하였고 오늘 아침 최고조에 달했었다.

아무렴.

그렇게나 눈에 거슬리던 천마가 오늘은 사정상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지 않은가.

천마만 없다면 거칠 게 없었으니 다수의 힘으로 회의를 최대한 입맛대로 휘두를 생각이었던 거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슈미트라는 이미 꿔다놓은 보릿자루였고 '천마신교의 안주인'이라 불리며 칭송받는 오성아 또한.

기껏해야 남자를 즐겁게 하는 것만이 장점인 여자일 뿐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들은 그렇게 터무니없는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정신을 차렸을 때엔.

[남방 영토 회의. 서부 무림 대책위원회 발족 선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아니, 아예 정신을 조종하는 사술(邪術)에 걸린 게 아닐까.

제정신으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에 제 손으로 사인한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미친놈처럼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세간에 발표한 내용? 그것도 제정신으로 동의할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 진짜는 발표되지 않은 것들이다.

'씨발…….'

멘탈이 완전히 나가 버린 동료들의 얼굴이 이해가 간다.

이건 그러니까, 심신미약 상태로 스스로의 배를 찌른 것과 동급의 일이었다.

대책위원회를 발족하는 거야 사실 그리 큰 위기가 아니다.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태업을 해 버리면 되는 거다.

욕이야 항상 그러했듯 시궁창 안에서의 것이니 신경쓸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서부 무림에 동조하는 이들을 색출하고 처벌하기 위해 필요한 관련 조약에 사인을 해 버렸으니까.

필요하다면 조사에 '무조건' 협조하여야 했고 그렇게 수색이 시작되면.

서부 무림과 손잡은, 아무스 자신을 포함한 이들이 드러나고 마니까.

회의에서 들었던 천마의 목소리가 영혼에 박힌 듯 재생된다.

-범죄자한테 인권이 어디 있습니까?

-찢어 버려야죠.

덜덜덜.

시린 칼날이 온몸을 훑는 듯 했고 손이 통제를 벗어나 덜덜 떨렸다.

범죄자가 되면.

그 무엇도 천마에게서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그러니까 답은 하나다.

오히려 그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과 연관된 모든 것들을, 지워 버려야 했다.

모든 것을 걸고서.

* * * *

회의와 인터뷰까지 끝내고 도진은 오성아와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편하게 겉옷을 벗고 머리를 올려 묶은 오성아는 그러나 여전히 단정하였고 승리한 오피스의 여신다운 포스를 뿜뿜 뿜어내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눈나."

"어린애 손목을 비튼 건데, 그 어린애들이 너무 비호감이라 죄책감이 안 들어서 좋았어."

"오오. 눈나."

도진이 짝짝짝 박수를 쳤다.

예전엔 이러면 쪼오금 얼굴을 붉히며 어깨를 찰싹찰싹 치곤 했는데.

익숙해진 오성아는 아무렇지 않게 박수를 받아들이는 모습이라 이제 조금 덜 귀여워졌다고 생각하는 도진이었다.

뭐, 그런 가벼운 감상과는 별개로.

"맡길게요. 누나."

"응."

남방 영토 회의의 결과는 계획했던 것만큼 성공적이었다.

우선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여야만 했다.

천마신교는 멸망해 가는 무림에서 사람들을 이쪽 세계로 이끌었고 그렇게 천마신교를 믿고 이 세계에 온 이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진력하였다.

그런 이유로 5년 동안 서부 무림을 방치하였던 남방 영토 회의를 어찌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손 놓고 방관만 했던 건 아니었던 거다.

정보를 수집하였고 준비하였다.

때가 되면.

나설 수 있게 되면 언제든 폭발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제 불을 붙였으니 심지는 타들어 갈 것이고 곧.

숨어 있던 것들이 성대하게 폭발과 함께 드러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준비는 도진이 아닌 도진이 믿는 이들의 역할이었다.

오성아, 한유아, 그리고 나지윤까지.

도진은 그들을 믿고 잠시 기다리면 되었다.

"그럼, 나갔다 올게요."

"응."

집중하여 눈에 빛이 어린 오성아를 방해하지 않도록 도진은 바깥으로 나왔다.

손꼽히는 고급 호텔에 묵고 있었기에 얼마 걷지 않아 중앙 호수 공원에 들어섰다.

해가 지기엔 이른 시간이었기에 아직 밝은 때.

때문에 많은 이들이 호수 공원을 걷고 있었지만 얼굴을 전혀 가리지 않은, 당장 오가는 이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천마 김도진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스윽-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원을 걷고 있는, 그래서 공원과 동화한 도진이 부지역(不知域)에 있었기에.

알지 못하는 영역.

보고 또 듣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한다.

숨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드러내고 있다.

허나 드러낸다고 하여 다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방금 지나친 이가 입고 있는 옷이 무엇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밟고 지나간 땅이 어떠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고도 인지하지 못하니 알지 못하는 것이 되는 그런 영역에서 도진은 걷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진은 호수 공원을 지나 진궁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을 걷는 동안 수많은 이들과 스쳤으나 누구 한 명에게도 인지되지 않고 진궁 앞에 설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의 목소리도 흘리지 않는 진궁 앞은 오늘도 문전성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방비한 것은 아니니 오히려 그 역으로, 좋지 않은 마음을 품은 이들을 철저하게 걸러내는 보안 체계를 갖추고 있다.

도진은 그 보안 체계의 가장 첫 번째인.

스으-

감각을 최대한 날카롭게 벼린 채 진궁의 정문을 호위하는 황실 소속 근위대(近衛隊) 무인들을 자연스럽게 걸어 지나쳤다.

스치는 바람을 붙잡는 이가 없는 것처럼.

경계를 지나는 도진을 근위대 무인 중 누구도 붙잡지 않았다.

그것은 정문을 지나 하오문으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더 나아가 '황실'로 향하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았으니 도진이 외부의 개입으로 멈추는 일은 없었다.

'흐음.'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영역에서의 이야기였다.

사실은.

스으-

도진의 시선이 은밀히 숨겨져 있는 카메라 렌즈와 마주한다.

'보안 시스템'에는 이미 도진이 잡혀 있었다.

아무리 점(點)의 위치를 옮겨 보아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선(線)이 하나는 이어졌으니 통로에 배치된 수많은 카메라들의 위치에는 무흔잠영의 이치가 녹아들어 있었다.

카메라만이 아니다.

사신공의 독문 진기인 침기(沈氣)로 체열(體熱)은 감출 수 있지만 그 외의 다양한 첨단 감지 체계를 모조리 피할 순 없었으니 몇 개나 되는 탐지 장치가 도진의 존재를 감지하였다.

사람이 아닌 기계는, 부지역에 있는 도진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계를 보고 있는 인간은 기계를 통하여 도진을 간접적으로 인지하였지만.

"……."

진궁 내에 소란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전파해 두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시간에 도진이 진궁 내를 부지역에서 걷는 것을.

기실 근위대의 무인들이 감각을 최대한 벼린 채 근무를 서던 것도.

그 외 경계 무인들 또한 평소보다 몇 배나 더 엄격하게 근무를 서던 것도 모두 천마가 방문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나를 감지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정말로 기쁠 것 같네요.

천마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오늘을 포함하여 몇 번이나 있었던 방문에 항상 긴장하였고.

"……."

안타깝게도 도진을 찾아낸 이는 아직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허나 성과는 분명히 있었다.

도진의 이 '잠행' 덕분에 진궁의 사람과 기계가 함께 하는 보안 체계가 감히 누구도 뚫을 수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까워졌으니까.

진궁, 그리고 천마전을 중심으로 한 천마신교의 보안 체계는 도진에 의해 취약점을 개선하여 도진마저도 뚫을 수 없을 만큼 엄중해졌다.

'스승님이 살아계셨다면…….'

언뜻 도진은 그런 생각을 한다.

도진의 두 스승 중 한 명.

사신(死神)이라 불린 장호가 이 자리에 있다면 어땠을까 하고.

스승이 걷는 부지역은 아직도 도진이 감히 닿을 수 없을 만큼 아득한 곳에 있었다.

도진으로선 아직 이해조차 온전히 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

인지만이 아니라 '기억'에서조차 사라질 수 있는, 지금 도진이 아는 이치마저 넘어선 곳을 사신은 걷고 있으니.

도진에게 충분한 지식이 있었다면 심상세계에서 구현하여 검증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그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음.'

잠시 딴생각을 하던 도진이 곧 집중하였다.

진궁 내에서 부지역을 걷는 도진을 '찾아낸' 이는 아직 한 명도 없었지만.

애초에 같은 곳을 걷고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이곳에 있었고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한 사람.

사신 장호의 손녀.

장소유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조금씩, 도진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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