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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79화 (679/741)
  • 679화

    사막 한가운데 들어선 쉬르네폴리아는 두 개의 원이 교집합의 형태로 겹친 모습이었다.

    두 개의 원이 겹치는 영역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고 특히나 녹음이 짙으니 모두에게 개방된 호수 공원이 자리하여 많은 이들이 오가거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진을 찍는 이들이, 특히나 관광객들이 무조건 배경으로 두는 미려하면서도 웅장한 빌딩이 한 채 있었으니 진궁(進宮)이었다.

    유호 건설, 포부문, 오성 건설 쉬르네폴리아 지사.

    돈을 아끼지 않고 최고의 정성이 들어갔으며 최고의 기술로 지어진 도시에서도 손꼽히는 높은 빌딩을 소유한 곳들.

    허나 그들의 빌딩은 '1등'이 아니었으니 다름 아닌 진궁이, 진나라의 황궁(皇宮)으로 가장 높은 빌딩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진나라는 고유의 영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쉬르네폴리아 내에 사는 이들 대다수가 진나라의 국민이었고 그들이 사는 곳이 자치구의 형태로 '나라'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쉬르네폴리아를 진나라의 황실이 바할라 대신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도 너무 급진적인 변화에 의한 충격을 우려하여 '황실'을 둔 것이지 점진적으로는 바할라와 합쳐지도록 할 것이고 백성들은 국민,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이 되도록 미래를 보고 있다.

    뭐, 미래는 미래고 지금 당장은 진나라이다 보니 황궁인 진궁이 이곳 쉬르네폴리아에서 가장 큰 빌딩이 되었다.

    한국에서 천마전을 지었던 이들 다수가 관여하였다 보니 진궁은 디자인이 상당히 다름에도 어쩐지 천마전과 남매지간이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웅장하지만 미려한 빌딩의 가운데 '하늘 정원'이라 불리는 구역이 있어 특히나 그렇다.

    웅성웅성-

    호수 공원 내의 광장.

    관광객들이 있어 더욱 활기가 넘치는 이곳에서 진궁까지 쭉 뻗은 넓은 길이 있다.

    진로(進路)라 불리는 이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활짝 열린 진궁의 입구로 이어진다.

    황궁이라 하여 금지(禁地)가 아니라 모두가 방문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인 것이다.

    실제로 진궁의 저층은 국민, 시민, 그리고 백성들을 위한 공간으로 가득하였으니 행정 기관이 모두 모여 있다.

    방풍 코트를 걸친 도진과 오성아는 그 저층을 지나 신분증에 내장된 출입증으로 중층까지 이어진 엘리베이터를 탔다.

    저층과 달리 중층부터는 허가된 이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구역이다.

    다른 모든 것들 이전에 바로 이곳에 하오문의 총본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하오문(下午門).

    여황 전서린에 의해 양지로 나온 문파요 정보 단체다.

    진나라의 눈과 귀가 되는 정보국이자 천마신교의 정보부인 세이전(世耳殿)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곳으로 당연히 통제가 필요한 구역인 것이다.

    도진은 그런 하오문의 구역에서 멈추지 않고 더욱 위로 향하는 다른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는 아까보다 더 빠르게, 더 높은 구역에 이르러 멈추었으니 열린 그 너머에.

    "어서오세요, 교주님."

    옅게 웃으며 인사하는 진나라의 여황.

    '주서린'이 햇빛을 받으며 자리해 있었다.

    * * * *

    진궁의 하늘 정원은 특수 제작된 유리가 외벽을 채우고 있어 강렬한 태양빛을 적정한 수준으로 투과하였고 그 덕분에 아름다운 정원으로 공간을 채울 수 있었다.

    그 공간의 가운데 고풍스런 테이블이 있었으니 진나라의 핵심 인물 세 사람이 자리하여 차를 즐겼다.

    "오랜만에 만나네요."

    도진이 자신을 반겨주는 위서린이자 요즘은 진나라의 여황으로 주서린이라 불리는 일이 더 많은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서린 씨."

    짧은, 그러나 길게 늘어진 찰나의 눈맞춤 후 나온 호칭에 위서린의 옅었던 미소가 조금은 짙어졌다.

    그 미소를 지나 도진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가니 마치 햇빛에 녹아든 듯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그 존재감이 옅은 미인이 있었으니 사신의 손녀, 장소유였다.

    "소유 씨도 오랜만이에요."

    "네. 도진 씨."

    화사하게 웃는 그녀의 기척은 여전히 옅지만 도진과 장소유만큼은 서로를 더 선명하게 느끼고 있으니 두 사람이 같은 곳, 부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들과 함께하는 노 신사가 한 명.

    "금 노야."

    한국에서 금 대인이라 불리던 금 노야였다.

    뒷세계에서 대부업을 하던 그는 일을 물려주던 과정에서 아들을 잃었고 큰 마음의 상처를 얻었다.

    그러던 때에 하오문의 불행한 이들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건네다 기억을 잃은 시절의 '전서린'을 만났고 여기까지 이르렀다.

    이곳에서 그는 금 노야(老爺)라 불리며 쉬르네폴리아에 사는 사람들의 민생을 깊이 들여다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하여 일하고 있다.

    인사를 나누고 오성아와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위서린이 직접 두 사람에게 따라 준 차를 음미하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고.

    "요즘 특히 더 바쁘다고 들었어요."

    위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부 무림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요."

    "음."

    흐름은 자연스레 서부 무림으로 넘어가게 됐다.

    "서부 무림에 사는 사람들을 수탈하는 자들의 빚 독촉이 심해졌더군요."

    "예. 점점 더 독촉이 심해져, 정말로 과격한 곳은 살인마저 일어났습니다."

    "살인."

    그것은 정말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모든 감정과 도덕을 다 버리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말이다.

    쥐어짜는 데에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알을 낳는 닭을 죽이는 꼴이 된다.

    서부 무림의 수탈자들 사이에서 도는 말로 이것을 모르는 자는 애초에 나쁜 쪽으로도 성공할 수 없는 오늘만 보고 사는 자에 불과하다.

    즉. 지금 서부 무림에서 크게 활동하고 있는 금랑회를 포함한 거대 집단들은 그 말을 잘 알고 지켜 온 자들인데 갑자기 근시안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거다.

    이상 행동이었고 머리가 돌아가는 자들의 이상 행동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었으니.

    "그렇게 모이는 자금이 하오문을 통하여 세탁되고 있습니다."

    "……."

    하오문. 위서린의 입에서 나온 그것은 그녀를 대표로 하여 양지로 나온 하오문(下午門)이 아닌 철저하게 사파(邪派)로 분류되는 하오문(下汚門)이다.

    양지로 나오길 거부하고 제멋대로,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가길 원하여 음지에 남은 자들의 집단.

    이제와서는 이쪽 세계에 숨어든 이단 세력의 수족처럼 움직이고 있으니 제법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본래 하오문은 위서린이 늦게 이곳으로 와 이단 세력이 단단히 틀어막아 버린 상류층에 접촉할 수가 없어 '아래'에서부터 시작한 집단이었다.

    한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위서린의 하오문은 당당히 상류층의 안에 있고 이단 세력은 음지에 숨어 가장 밑바닥의 하오문에 일처리를 맡기고 있는 것이다.

    위서린이 말을 이었다.

    "교주님의 방문 때문은 아닙니다. 조금 더 급박해진 건 맞지만, 교주님의 방문이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조짐이 보이고 있었으니까요."

    갑작스럽게 돈을 끌어모으는 이유는 아마도 이곳 서부 무림을 뜨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 이유가 도진이었다면 일은 명확해진다.

    도진이 이곳에 온 건 서부 무림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이미 알음알음 소문이 퍼지는 중이다.

    굳이 닭을 죽이지 않더라도, 조만간 알을 수확할 수 없는 환경이 될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하니 일이 복잡해졌다.

    도진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이곳 서부 무림에서의 '미래'를 포기하면서까지 은밀히 진행하는 어떤 일이 있다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자금 세탁 과정을 짚어 가고 있지만 늦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 말하는 위서린의 얼굴은 조금, 부정적이다.

    "할 수 있는 만큼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진은 일단은 옅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그리고 곁에 앉아 있던 오성아가 화제를 바꾸었다.

    "포교자에 관한 정보는 어떻습니까?"

    포교자.

    오늘 심문했던 자에 대한 이야기다.

    성민혁과 성지인이 쉬르네폴리아에 데리고 와 심문한 건 오늘이지만 그에 관한 정보 자체는 잡힌 그날부터 하오문에서 착수하였으니 급하게 묻는 건 아니다.

    위서린이 바로 정보를 말했다.

    "이단의 중추까지는 아니어도 근접한 곳까지 이어진 흔적이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정보에 닿았다기보단 일방적으로 명령이 하달된 것에 가까우니 말단 중 쓸 만한 자를 버림패로 쓴 것으로 추측됩니다."

    도진과 오성아이기에 말하는 '추측'이었다.

    본래 정보 단체의 수장이었던 위서린은 심적으로 가깝지 않은 이에게는 결코 추측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극히 진실에 가까울 확률이 높다 하여도 말이다.

    '버림패라…….'

    위험한 곳에 한 번 쓰고 버릴 패이니 많은 것을 알고 있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많지 않은 것마저, 놈은 결코 말하지 않을 터.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가운데 시한 폭탄의 시계는 계속 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럴 때엔 머릿속이 공회전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일단은, 이곳 서부 무림에서 기생하던 자들의 핵심이 빠져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네요."

    "예."

    이곳이 어찌되든 아랑곳 않고 최대한 챙길 것을 챙겨 도망치려는 심산이다.

    "그리고 거기에, 분명히 억지를 부리고 있는 몇몇 곳의 조력자가 있을 테구요."

    "두 곳은 확실한 물증까지 확보해 두었습니다."

    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해졌네요."

    며칠 뒤. 대대적으로 기사가 떴다.

    [천마 김도진. 무림인의 자격으로 남방 영토 회의에 참석한다!]

    * * * *

    남방 영토 회의.

    바할라를 포함한 남쪽 6개국이 참석하는 영토 분쟁에 관한 회의다.

    100년 가까이 애매모호한 채 방치되었던 영토의 경계에 관한 분쟁이 심화되자 5년 전 처음 열렸고 지금까지 무려 아홉 번이나 진행되었으나 논쟁이 격화될 뿐 이렇다 할 이야기가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기실 분쟁 구역은 '쓸모없는 땅'이었다.

    대부분이 사막이었고 지리적으로도 이점이라곤 없었으니까.

    사실 그랬기 때문에 굳이 경계선을 명확히 하지 않고도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던 거다.

    한데 돌연, 바할라가 쉬르네폴리아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몇몇 나라가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바할라가 영토 확장의 의도를 품고 사막 가운데 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라고.

    거기에 이끌려 바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분쟁이 격화되어 공백 지대가 발생, 커다란 서부 무림이 탄생하고 만 것이었다.

    남방 영토 회의에서 조금이라도 진척이 있었다면 남쪽 사막의 서부 무림이 이렇게까지 커지진 못했을 것이다.

    그 조금의 진척조차 없었기에 사막의 서부 무림이 탄생했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회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식어 이제는 기삿거리조차 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바로 그 남방 영토 회의가.

    "…천마가 온다고? 진짜?"

    온 세계의 관심을 받는 가운데 개최하기도 전부터 들썩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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