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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78화 (678/741)

678화

깊은 새벽.

심상 세계에서의 수련을 마치고 한 시간 깊은 숙면을 취한 도진이 만전의 상태로 일어나 연신극기공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온 정신을 집중하고 또 최선을 다하여, 한계 그 너머로 육체를 단련한다.

일반적인 수련으로는 한계에 달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영역에 도달한 육체는 그러나 연신극기공이라는 천마신공을 감당하기 위하여 탄생한 신공 덕분에 매일 한계를 경험하고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극한의 영역에서 한 시간.

수련을 마친 도진은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심신을 가라앉히며 휴식을 취했다.

온몸에 부하를 가하던 연신극기공이 이번엔 회복을 위하여 일하고 흉폭하기가 비할 데 없는 천마기가 그에 반응하여 내부를 휘돌며 활력을 불어넣는다.

평범한 무인에겐 그대로 육체를 터뜨릴 수준의 폭발이 내달리는 것과 같았지만 도진에게는 그것이 활력이 되는 것이다.

더 질기고 단단하게. 그러나 탄력적으로.

육체는 매일 진화한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쉬며 육체를 정돈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도진은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최태호는 아무렇지 않게 집 안에 들어서며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했다.

최태호의 아버지 최항선 또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금 늦었구나, 하고 답했다.

-예. 오는 길이 조금 더뎠습니다.

-그래.

아버지도 아들도.

수금꾼과의 일이 아예 없었던 것처럼 대화하였고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사실은 다 알고 있음에도.

허나 두 사람은 물론이요 도진 또한 그것을 전혀 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수고하셨소'하고 인사하는 최항선에게 도진은 웃는 얼굴로 마주 인사하고, 최태호와도 인사를 나누고선 쉬르네폴리아로 돌아왔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무법지대다.

최소한의 규범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마저 없으니 범죄자들이 당당하게 활개를 치고 다닌다.

그리고 거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넘어온 이들이 수탈당하고 있다.

…솔직히 그런 목소리가 많다.

저들이 선택한 거라고.

인터넷에서는 그렇게 조롱한다.

-누가 칼들고 무법지대 살라고 협박함?

-ㄹㅇㅋㅋ 지금이라도 무법지대 나오면 되는데 니들이 선택한 무법지대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덮어놓고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도진마저도, 일정 부분은 동의한다.

각 나라의 '높은 것들'의 욕심으로 인해 발생한 분쟁이었고 그것 때문에 무법지대가 생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무법지대 안의 범죄자들은, 범죄를 저지를 대상인 이쪽 세계를 거부한 자들이 있기에 성행하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이쪽 세계를 거부한 이들을 욕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그건 또 아닌 것이다.

그럴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정당화되는 건, 절대 아니니까.

그렇기에 문제는 얽히고설켜 복잡해지며 꼬인 매듭을 풀 엄두가 나지 않게 되고 만다.

"후우……."

깊게 호흡을 내뱉은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 걷는 도진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어려있다.

문제가 어렵고 복잡하여 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건 도진의 스타일이 아니다.

도진의 스타일은, 그것이 될 때까지 붙잡고 늘어져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공략해 나가는 것이다.

* * * *

해가 뜨고 오성아와 함께 룸서비스로 온 아침 식사를 하였다.

마주앉아 느긋하게 아침을 즐기고 식후 티타임을 가지는 가운데 오성아가 말했다.

"민혁이랑 지인이가 잡아 온 범죄자들 중에 이단을 전파하는 이교도가 있는 모양이야."

콜라 대신 홍차에 도전하여 홀짝이던 도진이 오성아와 눈을 맞추었다.

"포교 활동을 하는 이교도가 잡힌 건 오랜만이네요."

"응. 그렇지."

무법지대에서 활동하는 자들 중에는 이교도가 생각 이상으로 많다.

그래. 천마신교의 이단들이다.

임박해 버린 핵전쟁을 막기 위하여 가소천을 치는 데에 집중했던 것은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였으니 가소천이라는 절대적인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이교도들이 파편화하여 흩어지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렇게 흩어진 이교도들은 이쪽 세계에 남아 있던 무형독과 합쳐져 숨어들었고 곳곳에서 암처럼 증식하며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연히 서부 무림에도 놈들이 적지 않게 활동하고 있으니 사실상 활동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무리에 이단이 스며들었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스며든 놈들 중 일부가 '포교자'였다.

놈들은, 변질된 이단의 사상을 범죄자들에게 전파한다.

그야말로 증식하는 암세포처럼 말이다.

"조금 있다 심문을 한다고 해."

"가 봐야겠네요."

"준비할게."

"네."

도진은 오성아와 함께 중앙 경찰서로 향했다.

쉬르네폴리아의 중심에 있는 중앙 경찰서는 도시를 총괄하는 곳답게 웅장한 규모였고 무인들이 전체를 물샐틈없이 경계하고 있었다.

안에 들어서는 건 철저하게 원칙대로 경계 무인의 신원 확인을 통과한 뒤라야 했고 도진은 얼굴을 보이며 오성아와 함께 신분증을 건넸다.

"……!"

설령 하늘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듯 보였던 무인이 두 눈을 일순 크게 떴고.

처억!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포권하여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세요."

웃으며 인사하고 도진은 오성아와 함께 정문을 지나쳤다.

미묘하게 이른 시간이라 통행인이 적었고 소란없이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제법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범죄자들을 호송해 온 무인들과 성민혁, 성지인을 볼 수 있었다.

범죄자들이 심문을 위해 이동하였고 도진이 오성아와 함께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얼굴을 감쌌던 천을 풀고 인사했다.

그들의 감각에 전혀 없었던, 철저하게 갑자기 나타난 기척에 놀랐던 경찰서의 무인들은 그 기척의 주인을 확인하고서는 정문에서의 무인과 마찬가지로 크게 놀랐다가.

처억!

절도 있게 한 모습으로 포권하였다.

그것은 성민혁과 성지인도 다르지 않았으니 천마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그렇게 절도 있는 인사 후에야 성민혁이 웃으며 다가왔다.

"형!"

"그래. 못 본 사이 꽤나 야생적이 됐네?"

성민혁.

바할라 엑소시아 후보생에서 이제는 어엿한 일원으로 성장한, 투마전의 미래를 책임질 후기지수가 되었다.

어릴 적 어깨를 모으고 고개를 숙였던 아이가 당당하게 드넓은 어깨를 편 무인의 모습으로 자란 것이다.

여기에 사막을 다녔던 탓인지 피부가 상당히 탔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지인이는 여전히 공주님이야?"

선크림을 꼼꼼히 발랐기 때문일까.

성민혁과 함께 서부 무림에서 '무림행'을 했던 성지인은 변함없이 하얗고 고운 피부다.

"고, 고맙습니다."

성지인은 '아니에요'라고 하는 대신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 또한 도진의 가르침이다.

칭찬에 아니에요,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대신 긍정적인 인사를 하라는.

그 가르침을 따르는 성지인에게 웃어 주고서 도진이 이 자리의 책임자를 마주하였다.

"민혁이와 지인이가 포교자를 잡았다구요."

도진의 말에 한껏 기합이 들어간 책임자가 정자세로 크게 예, 하고 답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심문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조용히 참관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적인 자리였다.

설령 천마라 하여도 자격이 없다면 해서는 안 될 말.

그러나 도진에게는 자격이 있었기에 문제가 없었으니 도진은 명예직이라고는 하나 바할라에서 치안총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치안총감의 신분으로 활동이 가능하니 범죄자의 심문을 지켜보는 데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무려 천마가 함께 하는 자리였기에 평소보다 조금 더, 그러나 철저하게 준비한 뒤 심문이 시작되었다.

씻지 않아 더럽고 악취가 나는 외모의 중년 남자.

그러나 지저분한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눈동자엔 총기가 깃들어 있으니 머리가 상당히 돌아가는 인간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 나같은 떠돌이 놈이 무슨 소속이 있겠어. 그냥 높으신 분들한테 일거리 받는 하청업자지."

"크크크. 포교? 그런 거창한 소리가 나오니 황송해지는 걸? 그런 것도 아냐. 그냥 내가 느낀 세상을 말하고 다녔을 뿐이지.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니…… 이 빌어처먹을 세계가 잘못됐다는 게 맞지 않을까?"

"나같은 놈이 하는 개소리를 포교로 받아들일 정도면 말야."

"……."

능글능글한 놈이었다.

그리고 마치 뱀이 혓바닥을 놀리는 것처럼 소름 돋지만 끈적하게, 사람의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 소리를 지껄였다.

'저런 식이구나.'

듣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확실하게 알겠다.

이단의 포교자란 놈들은 상상 이상으로 수많은 이들을 끌어들였다.

그것은 굳이 이단을 믿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불만을 터뜨리는 형태로 사람들을 부추기는 방식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 처지가 참으로 불합리하지 않나? 네가 옳은데 왜, 네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지?

-잘못된 건 네가 아니라 세상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꾸는 게 옳지 않겠나?

-잘못된 세상을 더욱 잘못되게 만들고 고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들을 징벌하고 너의 옳은 신념을 관철할 수 있게 우리가 도와주겠다.

이를테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서부 무림에 사는 사람에게 그리 말하는 것이다.

너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옳은 삶을 살고 있는데 어찌 이렇게 불행할까.

그 이유는 이미 두 손에 쥐지도 못할 만큼 많은 것을 쥐고 있으면서도 쓸모없는 것에마저 욕심을 부린 나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나라의 잘못된 짓거릴 못 본 척하고 오히려 힘을 보태는 놈들이 있는데.

너는 이 잘못된 세상을 만든 그들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고 싶지 않느냐, 고.

결코 급진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조금씩. 서서히.

대상이 가진 불합리에 대한 불만을 그들이 원하는 형태로 키우고 이내 터지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은 화술(話術)이었고 관련한 특출난 재능이 있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포교자는 흔하지 않은 자원이었고 쉬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냥 흔한 범죄자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고 했지?"

도진이 물었고 성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사람이 포함된 범죄 집단이 자주 문제를 일으켜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고 잡으러 간 마을에서 또 낭인들과 싸우고 있는 걸 잡았어요."

어설프고 또 허술하다.

당장 오늘만 사는 범죄자들 무리 사이에 섞여 있다 잡히다니.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을 거 같은데 그게 뭔지 잘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애초에, 무력으론 별 볼 일 없어 보이고 머리가 돌아간다 하지만 희대의 책사도 아닌 자가 이곳 바할라의 중앙 경찰서에 붙잡힌 채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명확한데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찌 이렇게 요즘 우리를 핍박하는 겐가.

어제 최태호의 아버지 최항선이 했던 말.

근래 들어 핍박이 심해졌다는 내용이 걸린다.

빚을 독촉하여 쥐어짜듯 돈을 끌어 모으고 파탄을 각오하면서까지 '무언가'를 진행하고 있다는 거다.

이건 자세한 정보가 필요해 보였다.

그렇다면.

"…하오문에 가 봐야겠어요, 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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