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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70화 (670/741)

670화

젊은 기자의 시선이 대기하고 있던 전용 차량에 탑승하여 모습을 감춘 천마의 흔적에 멍하니 머물러 있다.

"아!"

제법 오래 그러고 있다 갑자기 들린, 커다란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사진 안 찍었잖아!"

"이런!"

급속도로 전염되는 기자들 사이 소란의 이유는 그것이었다.

완전히 압도되어 기자라는 본분조차 잊은 채 그저 천마를 시선으로만 좇았다는 걸 깨달은 거다.

"끄응."

그것은 젊은 기자는 물론이요 그의 사수인 중년 기자 또한 다르지 않아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진짜, 사람이 차원이 다르구만."

기세를 끌어올리지도 않았고 무언가 위협을 한 것도 아니다.

천마는, 이 시대의 천하제일인은 그저 존재감만으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가능하게 해 버리는 인간이었다.

"한유성 그건 진짜 비교도 안 되는군."

중년 기자가 중얼거렸고 젊은 기자가 묻듯이 말했다.

"한유성이요."

"어. 가까이서 인터뷰 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만 해도 한유성이 대한민국 넘버원이었지."

한유성.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압도적으로 재계 서열 1위를 지키던 대기업 금화의 부회장이자 회장이 될 사람이었다.

금화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비할 데 없이 뛰어난 사람으로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 신분과 총명함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주인공'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거늘 심지어 무공에도 압도적인 재능을 보이며 온갖 기록을 갈아치웠고 이내, 경계를 넘어서 버렸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대기업의 부회장이자 경계를 넘어선 젊은 고수.

그야말로 세상을 혼자 사는 사람이었고 세계의 그 어디서도 꿀리지 않을 인물 중의 인물.

자연스레 대한민국이 가장 좋아하고 또 존경하며 동경하는 사람이었는데.

"무형독 간부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요 몇 년 사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한유성이 사실은 무형독의 간부였다는 건.

꼭두각시도 아니고 이용당한 것도 아니고 협박당한 것도 아닌.

스스로 주도적으로 무형독에 협조하였고 간부의 자리에 있기까지 했다는 게 드러났을 때의 충격과 여파가 지금도 선명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가진 자의 욕심이 가지지 못한 자보다 크다고.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예 세계를 집어삼킬 야망을 가지고 무형독에 협력했던 자들이 있었으니 개중에 한유성이 포함돼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렇게 정체가 탄로난 한유성은…….

"언제 붙잡힐까요?"

"모르지. 워낙 꽁꽁 숨어 있으니 말이야."

러시아의 대통령이 암살된 뒤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었다.

"뭐, 어쨌든 말이야. 대한민국으로선 다행인 일이야. 천마가 있어서."

"예. 그러게 말입니다."

천마 김도진.

그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국경을 '떡상'시켜 버린 나라의 보배였다.

* * * *

스으-

왕, 그리고 그에 준하는 이들만이 탑승할 수 있는 리무진의 문이 닫히고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던 천마의 존재감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도진은 씨익 웃으며 슈미트라와 다시 인사를 나누었다.

"잘 지냈어요, 슈미트라?"

"예. 잘 지냈습니다. 교주께서는…… 또 저멀리까지 나아가셨군요."

마주하는 이를 압도하는 피지컬을 중화하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슈미트라가 답했다.

환영해 주는 이들을 위하여 존재감을 드러냈던 도진은 그러나 리무진 안으로 모습을 감추는 순간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어색하거나 숨기는 것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슈미트라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도진이 하하 웃었다.

"저야 꾸준히 걷는 거 빼면 시체니까요. 항상 나아가야죠."

"좌부주께서는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투마전주님의 근육도 완벽하시구요."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던 중 도진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 차, 미사일도 막을 수 있다면서요?"

슈미트라가 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 장갑이 충격에 반응하여 퍼지되며 폭발, 충격을 상쇄하는 형태입니다."

그야말로 첨단 기술이다.

이 리무진은 그런 첨단 기술의 집합체였는데 그 반동으로 중량이 무려 6,000kg에 달하는 지경이 되었다.

'기름값이 어마무시하겠네요.'

도진은 머릿속에서만 그렇게 말했다.

산유국의 왕이 타는 리무진인데 그런 것 정도야 지극히 사소한 문제였으니 말이다.

대신 다른 것을 떠올렸다.

"흐음."

"너, 실제로 미사일 날아오는 상상하고 있지?"

"역시 눈나. 절 아주 잘 아시네요."

오성아는 도진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얼굴을 맞대고 함께 보낸 세월이 얼마인데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도진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면모가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천마전이 완공되고 본격적으로 거기서 업무를 보다 쉬는 시간에 나누었던 대화.

'공중 정원'이라 불리는 고층의 정원에서 하늘을 보다 문득 도진은 말했었다.

-눈나.

-응?

-천마전에 미사일 날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아니, 그걸 왜 걱정한단 말인가.

애초에 그런 일이 과연 일어나긴 할까부터가 의문이다.

천마전에 미사일이 날아올 정도면 이미 세계 대전에 준할 정도로 큰일이 나 있을 텐데 천마전이 문제일까에 이르러 그녀는 기우가 옮았다며 고개를 붕붕 저었었다.

오성아는 그 이야기를 슈미트라에게 해 주었고 슈미트라는 하하, 호탕하게 웃었다.

"교주님이시라면 미사일이 폭발하기 전에 허공에서 격추시키시지 않겠습니까?"

"……."

오성아가 '와…….'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때 도진이도 그렇게 말했어요. 착탄하기 전에 격추해야 한다고."

"역시! 교주님이십니다."

"그때는 안 될 거 같았는데 지금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뭐, 시험은 못 해 봤지만요."

"나중에 여유가 되면 자리를 한 번 만들어 보도록 하지요."

"역시 슈미트라. 거침이 없네요."

오성아의 얼굴이 짜게 식고 말았다.

남정네들은 이런 걸 나이 먹어도 좋아하더라.

뭐, 그런 느낌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제법 긴 시간 도로를 달려 리무진은 번화한 도시에 들어섰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들에 의해 계획적으로 확장·재건축된 도시는 인공미의 끝을 보여주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져 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든다.

바할라 영토의 중심에 위치한, 앞으로 10년 내에 바할라의 새로운 수도가 될 도시였다.

도시 안에 들어서자 리무진과 주변을 호위하던 차들이 속도를 줄였고 환영 인파가 함성과 함께 손을 흔들었다.

도진과 슈미트라가 창문을 내리고 답을 해 주니 와아아, 도시를 떨쳐 울릴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두 눈에 담으며 도진이 미소지었다.

"좋은 도시네요."

"예."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답이다.

바할라는 요 몇 년 사이 백 년은 압축한 듯한 변화를 겪었다.

수백 만이나 되는, 그것도 다른 차원에서 살던 이들을 받아들였고 그를 위하여 나라의 많은 것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나갔다.

나라의 중심에 새로 지은 도시로 수도를 바꾸는 것도 그 일환이었으니 기존의 수도가 나라의 남쪽으로 치우쳐 있어 북쪽에 지어지는 도시에서는 너무 멀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바할라는 수도를 옮기는 것마저 변화의 '일부'였던 시기 아닌가.

자칫 커다란 혼란을, 아니 그것을 넘어 재앙에마저 이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이나 커다란 일을 큰 문제나 혼란없이 긍정적으로 이끌어 나간 것이 바로 슈미트라였다.

바할라 역대 최고의 왕으로 기록될 인도자.

바할라를 넘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지도자로 기억될 남자.

그렇게 커다란 명성이 슈미트라를 비추고 있었고 그것은, 그 밝기의 수십 수백배나 되는 노력을 바탕으로 하여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슈미트라가 이끄는 바할라가 천하제일문파 천마신교를 지탱하는 기둥인 것이다.

"항상 큰 도움을 받고 있어요, 슈미트라."

도진의 감사에 슈미트라는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의 덕분입니다."

그것은 겸양이나 사양이 아닌 슈미트라의 진심이었다.

일각에서는 그런 말을 한다.

-바할라는 그냥 천마신교에서 독립하는 게 낫지 않음?

-ㄹㅇㅋㅋ 일방적으로 바할라가 주기만 하는 관계지 않냐?

…정말로, 슈미트라에게 있어선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발언들이었다.

슈미트라의 노력으로 무림에서 건너온 이들이 이 땅에 순조롭게 정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바할라가 굳건히 천마신교를 지지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천마 김도진이 슈미트라와 바할라를 이끌어 주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멸망으로 치닫는 저쪽 세계에서 이쪽으로 건너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었던 게 누구인지.

가소천을 최대한 빠르게 치느라 다 걷어내지 못한 저쪽 세계의 이단자들을 토벌하기 위하여 몇 년 동안 쉼없이 헌신한 게 누구인지.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또.

왕은 고독한 자리다.

누구보다 백성들과 가까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백성들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기에, 왕은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슈미트라는 그런 삶을 살았던 왕을 보며 자랐고 자신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하니 굳게 마음 먹어야 한다고 되새기며 자랐다.

하지만 지금 칭송받는 왕이 된 슈미트라는 고독하지 않다.

아주 많은 이들이, 슈미트라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해 주고 있다.

이를테면 만날 때마다 날을 세우지만 그렇게 세운 날이 서로를 더욱 날카롭게 해 주는 관계인 독마전의 위취련이라든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때로는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는 '높으신 분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힘을 합치는 총괄부의 오성아와 한유아라든가.

본래 외로워야 할 왕인 슈미트라는 그렇게 외롭지 않을 수 있었고 또, 가장 앞에 서서 걷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니까 더 힘차게, 자신있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본래는 불가능했을 일. 그것을 가능케 한 건 슈미트라보다 앞에서 걷고 있는.

모두를 이끌고 가장 앞에 서서 풍파를 가르며 나아가는, 그 어떤 깊고 짙은 어둠에도 찬란히 빛나는 인도자의 존재다.

그 존재가 있었기에 슈미트라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고 깎여나가지 않고 더 굳건하게 걸을 수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요 얼마나 큰 버팀목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렇게 찬란히 빛나는 슈미트라의 인도자가 미소지었다.

"도착했네요."

"예."

리무진에서 내린 일행은 공식 일정인 점심 만찬을 즐겼다.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이미 필요한 이야기는 오랜 시간을 들여 충분히 오갔고 또 이곳에서 해야 할 이야기는 지금이 아닌 밤에 해도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식사 시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느긋하게 진행되었고 이후 숙소로 이동하는 자리에서 슈미트라가 물었다.

"쉬르네폴리아로 가시겠습니까?"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회의는 일주일 뒤니까요."

아직 정식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알 사람은 아는 이야기로, 도진이 이곳에 온 건 아주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아직 일주일 뒤. 시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도진은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아버지도 뵙고 친구들을 좀 만나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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