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8화
서벅. 철그럭. 서벅. 철그럭.
일련의 무리가 사막을 제법 빠른 속도로 걷고 있었다.
무인(武人) 집단이면서도 군대의 규율이 강하게 스며 있는 이들이 낙타와 함께 걷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사람이 갇힌 이동식 철감옥이 있어 시선을 끌 요소가 가득하였다.
다만, 장소가 사막 복판이다 보니 그럴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서벅. 서벅.
낙타 위에 올라타 특유의 독특한 흔들림을 느끼며 성민혁과 성지인은 끝없이 펼쳐진 것만 같은 사막을 멍하니 응시했다.
처음 보았을 땐 정말로 생소한 풍경이었다.
그야말로 '길'이란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찌되었든 도시에서 평생을 살았던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도시에는, 그 어디가 되었든 길이 있었다.
사람이 다니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온갖 것들이.
하지만 이곳 사막에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인공적인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사람이 다닌 흔적조차도 말이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요 경험을 잊지 않는 동물이었으니 이 사막에서도 이제 '길'이란 게 보인다.
이를테면 해의 위치와 그림자. 또 이를테면 사막에서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 자연적인 어떤 것들이 간접적으로 길을 그릴 수 있게 했다.
"…여기가 세 곳에서 우기는 곳이었지?"
문득 성민혁이 입을 열어 말했다.
철을 두드리듯 단련한 육체와 고강한 내공을 지니고 있음에도 사막 특유의 텁텁함이 입 안에서 느껴졌다.
섭음술을 사용했기에 단 한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였고 그 대상이었던 성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슬쩍, 함께 하는 이들을 훑었다.
범죄자들을 호송하기 위하여 부른 지원은 다름 아닌 바할라의 치안유지대였다.
무림인이면서 한국의 무림 전담 경찰, 그리고 군대까지를 한데 섞은 느낌의 집단이었는데 평소 신분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복장을 착용하는 그들은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방풍 코트로 신분을 감추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곳이 예의 분쟁 지역이기 때문이다.
분쟁 지역에서 '공권력'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는 건 분쟁 사유가 된다.
조금 더 깊게 짚자면, 성민혁이 처음 자신의 정체를 밝힐 때 '바할라 엑소시아의 성민혁'이 아니라 '천마신교 투마전의 성민혁'이라고 밝힌 것부터가 그런 분쟁 사유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눈 가리고 아웅이긴 하지만 국제 사회에선 그런 요식 행위가 중요했다.
"…하여간, 쓸데없이 복합하단 말야."
"그러게."
많은 것이 함축된 푸념이었고 이번에도 성지인이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크크크. 우리 애송이 정의의 사도들께서 고민이 많으신 모양이군."
두 사람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일행 가운데 감옥 안에서 흘러나왔다.
스으-
"괜찮습니다."
조용히 나서려 했던 무인을 제지하고서 성민혁이 소리를 낸 범죄자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성민혁에게 총을 쏘았던, 갱생의 여지가 없는 범죄자들의 수장이었다.
관리하지 않아 더럽고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털로 덮인 흉악한 인상의 중년 남자.
동양인으로 보이지만 미묘하게 나라를 특징하기 어려운 외모에서 그가 무림에서 넘어온 사람이란 걸 알게 해 준다.
손을 쓰려던 무인을 말린 성민혁의 행동에 그가 또 크크 웃었다.
"눈부시군. 눈부셔. 이런 시대에, 이런 곳에 정의의 협객이라니. 안타까운 일이야."
두서가 없어 무슨 소린지 모를 말이지만 성민혁은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물었다.
"뭐가 안타깝단 말이죠?"
"너나, 저기 예쁜 꾸냥도 그렇잖나.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하는데 그러기엔 이 세상이 너무나 버겁지."
그 말대로였다.
성민혁과 성지인은 이 '서부 무림'의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범죄자의 말대로 너무나 버거웠다.
"너도 이미 알고 또 인정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까 그 낭인놈에게 무어라 말하지 못한 것일 테지."
-더 나은 세상. 그럴 수 있다면 좋겠군요.
성지인의 말에 낭인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요청했던 치안유지대가 왔기에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고 헤어지는 상황에서, 성지인도 성민혁도 그런 세상이 올 거라는 확언을 해 주지 않았었다.
"결국 그런 법이지. 세상은 나아지지 않는 거야. 발전이랑은 별개거든."
이죽이는 중년 남자의 눈동자에는 그 인성과 외모와는 달리 총기가 엿보이고 있었다.
머리가 제법 돌아가는 인간이다.
"이 서부 무림이란 웃기지 않는 곳이 생기고 유지된 것만 봐도 그렇잖아?"
그 돌아가는 머리로 중년 남자는 증거를 말했다.
서부 무림.
그래. 이곳은 그가 생각하는 엿같은 세상을 증명하는 아주 강력한 증거였다.
분쟁 구역.
쓰지도 않는 땅이거늘 욕심만 그득한 어리석은 것들이 아득바득 우겨대어 분쟁을 만들고 아주 넓은 공권력의 공백 지대를 만들었다.
덕분에 새로운 세상의 규율에 속박되길 거부하는 자들이 모여들었고 '보호받지 못하는 민초'들이 모이는 곳에는 자연스레 범죄자들이 꼬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범죄자들에게서 보호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또 낭인이 모였으니 이곳은 법에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에 함께 하길 거부한 분쟁 지역 속 서부 무림이 되었다.
"크크크. 말이 좋아 서부 무림이지 결국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쓰레기들과 아집으로 뭉친 것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세상의 더러운 부분이지. 그렇지 않나?"
"……."
"나쁜 것은 가만히 놔두면 더 악취를 풍기며 썩고 슬금슬금 덩치를 키워 나가지. 하지만 치료하지 못할 건 아니야. 마음만 먹으면,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얼마든지 도려내거나 치료할 수도 있지. 그런데. 그러지 않았잖아? 방치했잖아?"
"이곳은 서부 무림이 아니야. 그냥 더럽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방치된 쓰레기통일 뿐이지. 아니, 이젠 쓰레기산인가? 방치된 사이 쓰레기는 점점 늘어 산이 되었고 이제와서는 한두 명이나 수십 명이 나선다 해도 다 치울 수 없게 돼 버렸단 말이야."
"그런 쓰레기산을, 우리 애송이 협객과 꾸냥이 감당할 수 있겠나?"
중년 남자의 말은 점점 더 열기를 띠었다.
결코 자신의 말을 반박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겼다는 눈으로 성민혁과 성지인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거기에.
씨익-
성민혁과 성지인이 정말로 시원하게 웃었다.
"……."
중년 남자의 의기양양하던 얼굴이 대번에 식으며 일그러졌고 성민혁이 말했다.
"세상이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빠진다. 그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요?"
"그래. 아니라고 하고 싶은 건가?"
"네. 아니네요."
빠득-
"…뭐가 아니지? 서부 무림 같은 곳은 점점 넓어지고 있고 또 그만큼 상황은 나빠지고 있다. 너는 이곳에 살지 않으니까, 남의 일이라고 하고 싶은 건가?"
"그럴 리가요. 이건 나의 일입니다."
"위선을!"
"아니. 이건 우리의 일이 맞아요."
버럭 소리치는 중년 남자의 말을 성지인이 칼과 같이 날카롭게 끊었다.
"우리는,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을 이 세상에서 다 치워 버리고 싶으니까요.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으니 이건 나의 일이에요."
"푸흐흐흐흐! 우리 꾸냥은 몸만 컸지 정신은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군. 나쁜 사람을 다 없애고 싶은 건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적어도. 내가 보는 세상에서는 없어지게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런 내가 바라는 세상을, 나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는 분이 함께 만들어 주실 거니까."
안주할 수 있는 차선보다 힘겹게 계속 나아가야만 하는, 확신할 수도 없는 최선을 망설임없이 선택하여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그것이 이루어질 거라고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게 해 주는 사람이 앞에서 걷고 있었기에.
성지인은 흔들리지 않는다.
성민혁이 말했다.
"당신이 말했죠. 세상은 좋아지지 않는다고.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고. 아뇨. 아니에요. 그건 아집에 사로잡혀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렇게 믿고 싶은 당신의 투정입니다."
"개소리를!"
"분명히 서부 무림은 이름만 그럴싸한, 세상의 나쁜 부분입니다. 그리고 점점 커지고 또 깊어지고 있죠."
"그 서부 무림을 없앨 수 있도록,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해 온 노력들이 있습니다. 서부 무림을 없앨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온 노력들이 결실을 맺고 있으니 세상은 분명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
"이건 비밀인데."
발작하듯 입을 벌린 중년 남자의 호흡을 절묘한 타이밍에 다가가 끊음으로써 말문을 막은 성민혁이 씨익 웃으며 중요한 비밀을 누설하려는 것처럼 감옥 앞에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말했다.
"서부 무림을 없앨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제 그분이 오실 겁니다."
중년 남자의 눈이 커졌다.
"…그건."
"네. 당신이 생각하는 그분입니다."
* * * *
여느 때와 다름없던 아침.
그 아침에 뜬 어떤 기사 하나가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속보! 천마(天魔) 김도진. 안주인과 함께 바할라에 간다.]
-..뎃?
-아니 기사 제목이 아. 어. 컼ㅋㅋㅋㅋㅋㅋㅋㅋ
-어그로 수준이.. 전문가 수준입니다;;;
평범한 제목이었다 해도 도저히 클릭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김도진. 천마. 천하제일문파의 정점이자 세계 무림의 정점.
그러니까 이 시대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그런 사람이 오성아와 함께 G3 후보가 된 바할라에 공식적인 방문을 한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목적을 말하기도 전부터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주목한 건 다른 부분이었다.
-안주인과 해외 방문. 이거 빅뉴스거든요.
-천마 김도진. 와이프와 함께 바할라 국빈 방문...
이 시대의 천하제일인은 썸 제조기였다.
그는 한때 '화화공룡'이라 불린 적이 있었다.
주변에 봉(鳳)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암산서가의 차기 가주이면서 한 번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고 생각할수록 깊이 빠져 헤어날 수가 없는 미모로 유명한 서소담과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자연스런 일상을 함께 하여 오히려 살림을 차린 것처럼 보인다거나.
또 이를테면 너무나 아름답지만 그 이상으로 차가워 손조차 뻗을 엄두가 나지 않는 윤상미가 본가의 집안일을 도맡아 또 부부 사이처럼 보인다거나.
의선약가의 차기 가주로 확정된, 의선의 별호를 이을 약리지와 의료 봉사를 함께 하는 모습이 너무나 어울린다거나.
그야말로 '화화공룡'이란 별호값을 하는 것이 천하제일인이란 말이다.
허나 그에 관한 내용이 공식적으로 다루어진 적은 없었는데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안주인'이란 것은 지극히 민감하고 또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두려운 안건이라는 것을.
그런데 뭐?
-음. 이 언론사는 오성아 여신님을 밀고 있군요.
-안주인이라니. 언론사의 공식 입장 잘 읽었습니다.
'아니…….'
아주 훌륭하게 어그로를 끌어 이가 썩어 버릴 정도로 달달하게 조회수를 올린 기자가 식은땀을 흘렸다.
장난인 건 아는데 장난치는 인원이 너무 많잖아.
이러다 시끄러워지면 어쩌려고.
그리고 결코 넘어갈 수 없는 댓글이 기어코 등장하고 만다.
-성아 여신님을 지지하는 기자님의 목소리. 제가 성아님의 SNS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미친.'
기자가 식겁해서 댓글을 달았다.
-주대기 기자 : 하지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