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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65화 (665/741)

665화

[저는, 진(進)나라의 여황(女皇) 위서린입니다.]

그 선언이 퍼져 나간 날을 세계에서는 '개원절(開元節)'이라 이름 붙이고 기념일로 삼았다.

그러니까, 뜻을 직역하자면 차원이 열린 날이다.

우주에 첫 발을 내딛었으나 멀리 나아가지 못한 인류는 그러나, 본격적으로 우주를 탐험하지도 못하는 때에 더 높은 개념인 '차원'에 접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밝혀지는 차원과 관련한 충격적인 내용들.

무공이란 것의 기원은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공백'이 아닌, 부서진 차원의 파편이 이쪽 차원에 스며든 것.

세계에 스며들었던 치명적인, 그러나 결코 찾을 수 없어 무형독(無形毒)이라 불리던 무시무시한 범죄 단체가 바로 차원을 넘어온 침략자들이라는 것까지.

세상을 뒤흔들어 놓기에 차고도 넘치는 내용들이었다.

더하여.

'양지의 하오문'을 대표하던 적련화 전서린이 사실은 위서린이며 다른 차원 유일의 나라인 진나라의 여황이라는 발표가 있었던 그날부터 세상은 몇 년이나 떠들썩하였고 아주 많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변화의 중심.

단순한 문파를 넘어 한 나라에 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으며 그 영향력을 상징하는 듯 하늘 높이 솟은 아름답고도 장엄한 건물.

천마전(天魔殿)의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식당의 창가에 앉은 아름다운 미녀가 햇빛으로 빛나며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까만 정장에 하얀 피부가 햇빛에 더욱 대조된다.

그러나 그런 강한 빛에도 뚜렷한 이목구비는 전혀 가려지지 않으며 훤칠한 키에 철저하고도 꾸준한 자기 관리가 엿보이는 군살 하나 보이지 않는 탄탄한 몸매까지.

스커트 아래 스타킹에 감싸인 쭉 뻗은 다리에 이르면 남자라면 홀린 듯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오성아.

세간에서 칭하길 천마신교의 안주인.

반쯤은 장난이지만 또 반쯤은 모두가 진담으로 생각할 만큼 천마신교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그녀가 여신 같은 자태로 나른하게 말했다.

"한가하네에."

그리고.

"……!!"

"……!!"

식당 내에 있던 수많은 이들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소리없는, 그러나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움찔-

쿵-!

누군가는 눈을 부릅뜨고 누군가는 몸을 떨었으며 누군가는 심장이 폭주할 듯 뛰었다.

오직 한 명.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또 한 명의 눈부시게 화려한 미녀만이 담담한 얼굴이다.

햇살에 빛나는 금발은 마치 순금으로 이루어진 강이 흐르는 듯 하고 푸른 눈동자는 보석마저 초라하게 만드는 화려한 그녀는 천마신교의 또 한 명의 안주인으로 불리는 한유아다.

한유아가 우아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선 말했다.

"언니. 사람들이 놀라잖아요."

"왜애. 한가한 거 맞잖아."

그야말로 카리스마 있는 오피스의 여신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인데 목소리는 퇴근해서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방바닥에 뒹굴고 있는 사람의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간극에 한유아는 '교주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만다.

-눈나는…… 별 여섯 개 찍고 거기에 보라색으로 칠한, 각성까지 한 도비죠.

"뭐, 예전에 비하면 많이 정리되긴 했죠."

개원절이란 게 어느새 일상에 녹아들 만큼 그날 이후로 정신이 없는 사이 몇 년이나 되는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위서린은 정식으로 여황의 칭호를 인정받았고 진나라의 '시민'들 또한 이 세계에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함께 있었던 천마신교는…… 이제와서는 문파가 아닌 차라리 국가, 그것도 강대국에 준하는 영향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렇게 될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던 거다.

물밑으로 아주 많은 이야기와 실무가 오갔다.

무려 1년을 그렇게 많은 이야기와 실무 끝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서 세상에 진실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무형독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침략자였다는 것.

그 침략자에게 대항하던 이들이 승리하였고 그로써 이쪽 세계의 무형독 또한 몰락하게 되었다는 것.

침략자에게 대항하고 승리한 것이 다름 아닌 멸망한 명나라의 유일한 후손이었고 이제 진나라의 여황이 된 위서린과 천마신교라는 것까지.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왜,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 1년이나 걸렸던 거냐고.

그 의문에 한 마디로 답하자면…… 1년 정도 쓰지 않고선 불필요한 소모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다.

무형독도 진나라도 '다른 차원'에서 넘어왔으며 심지어 '같은 땅'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의외로 아주 많은 이들이 그것을 '같은 것'으로 취급해 버린다.

더더욱.

여기에 천마신교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그와 같은 오해가 없도록 많은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동시에 본국, 교나라와 연락이 끊겨 버린 끄나풀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최대한 붙잡아야 하기도 했고.

오성아와 한유아는 총괄부의 두 수장으로서 훌륭하게 그 일들을 해냈다.

수많은 '도비'들을 데리고, 말이다.

무형독의 잔당을 세계와 협력하여 소탕하면서 진나라와 천마신교는 그들을 적대하였으며 최선을 다하여 맞섰음을 세계에 증명하기 위한 과정이 어땠는지는 설명하는 것조차 아득한 일이었다.

그래. '증명하기 위한 과정'만으로도 그러했다.

하지만 진짜는 그 뒤의 증명이었으며 심지어 더 막중한 업무마저 기다리고 있었으니.

[진나라는 이곳, 지구로 이주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바로 '진나라의 지구 이주'였다.

멸망해가는 세계의 주민들이, 추산하기를 천만 명이 넘는 이세계인들이 지구로 이주하기를 바랐고 천마신교가 중간에서 그 일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총괄부가 중심이 되어 그 업무를 맡아야만 했다.

조금씩 조금씩,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가려 했던 가소천 휘하의 이단을 각국의 유관 기관들과 협력하여 색출하고 증명하여 제거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정부부터 시작하여 국민들에게까지 천마신교와 진나라를 인정하도록 하는 건 튜토리얼이었다.

그를 넘어 진나라를 이 세계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도록 하면서 정착하게 만드는 것이.

그제서야 본게임이었다는 말이다.

차라리 불가능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텐데.

이게 또 하니까 됐다.

그야말로 존엄하신 '교주님'의 공덕과 천마신교의 힘이었다.

교나라의 수작에 맞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양지와 음지 양쪽에서 힘을 써 준, 교나라에 이용당하여 분노한 천외천의 실력자들이 여기서도 다방면에서 지지를 해 주었고 여러가지 협의를 거쳐 진나라의 이쪽 세계 이주가 세계 기구에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들의 이주에 필요한 땅을 포함한 갖가지 지원의 대부분을 제공한 것이 바할라였다.

그래. 천마신교 투마전의 나라인 바할라다.

오일 머니는 당장 수백만에 달하는 이들의 이주마저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위대했다.

점진적으로는 천만이 넘는 대부분의 주민을 수용하기로 했다.

허나 그것은 바할라의 일방적인 손해가 아니었으니 불과 몇 년만에 바할라는 최소 5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할 거라 여겨졌던 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만한 기반을 닦게 된 것이다.

바할라는 산유국이며 드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대국에 이르지 못했으니 결정적으로 '인구'가 부족한 게 원인이었다.

이것만큼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고 방법이 없었는데 무려, 다른 차원에서 이주하는 이들로 채우게 된 것이다.

여기서 특히나 중요한 건 이들과 기존 국민들 사이에 알력이 없다시피한 부분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들이 다름 아닌 천마신교의 이름 아래 정신적으로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천마신교의 교도라는 무엇보다 강한 공통 분모 덕분에 기적이라 할 만큼 별다른 마찰없이 녹아들었고 이주는 눈부신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이 정도나 되는 규모의 일이었던 만큼 바할라의 실무진과 천마신교의 총괄부가 윤활유가 되어 톱니바퀴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갈려 나갔다.

총괄부엔 유수의 정예들이 모여 있다.

대표적으로 우부(右府)를 맡은 한유아의 밑에 있는 민지서를 필두로 한 화온의 인재들을 꼽는다.

그들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며 최선을 다하고 결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그런 자세로 1년 대부분 야근을 했다.

겉으로 보면 블랙 기업도 이런 블랙 기업이 없을 것 같지만 누구 한 명 사표를 쓰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천마신교가 천하제일문파로 발돋움하였으니 이곳에서의 일자리를 잃기 싫어서?

아니.

천마신교를 진심으로 좋아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천하제일문파인 천마신교의 일원이면서 그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 그 어디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자부심이 되어 준 것이다.

그리고 로망을 싹 빼고 다른 이유를 대자면…….

그럴 수 있도록 무공을 연마하게 했다.

당연하게도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휴식도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했으니.

-오늘부터 여러분들은 뻐꾸기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전설로 전해지던,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안티체리가 받았던.

교주님의 체력 단련 교실을 수강하는 영광(?)을 안았다.

-뻐꾹!

그렇게 그들은 매일을 무시무시하게 갈려 나가는데 그게 또 보람차고 버틸만한 매일을 보냈고 그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한데 요즘.

그 일상이 약간 느슨해졌다.

아니. 느슨해졌다기보단 폭풍이 다 지나가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일상'이 돌아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몸은 아직 그때에 머물러 있으니 오성아의 한가하다는 말에 격한 반응을 보이고 만 것이다.

사실 누구보다 많은 일을 감당하고 완벽하게 처리해 온 게 오성아임을 잘 알고 있는 한유아는 생각한다.

'역시.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가 없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과로는커녕 고생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왜냐고? 애초에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어 숨조차 쉬지 못할 업무량이었으니까.

맡겠다는 말은커녕 상상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의 업무를 소화한 게 오성아였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웃으면서. 즐겁게. 더 없냐는 얼굴이었단 말이다.

그녀에게 있어선 실제로 그것이 일이 아니라 즐길거리였다.

조악하게 비유하자면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 노가다를 하는 느낌이랄까.

오성아에게는 천마신교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대상이었고 모든 것이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 꿈이 이제 무엇보다 눈부신 결실을 맺고 있으니 이토록이나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뭐.

'천마신교의 안주인'이란 칭호만큼은 자신보다 그녀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마는 한유아였다.

식사 후 커피까지 즐기는 호화로운 여유를 만끽하고 돌아가는 길.

한유아가 말했다.

"언니."

"응?"

"지인이가 이번에 엑소시아랑 같이 분쟁 지역 간다면서요?"

"응, 그렇게 됐어."

분쟁 지역.

사전에서 설명하기를 정치나 종교 따위의 문제로 인해 다른 민족이나 나라와 시끄럽고 복잡하게 다투는 지역.

그 설명 그대로의 지역이 지금 세계에는 여러 곳 있었으니 완전히 박멸되지 않은, 무형독이 다 해독되지 않은 지역들이었다.

그리고 이 분쟁 지역 중 특히나 커다란 한곳이…….

바할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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