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9화
기묘하다. 아니 기괴하다.
처음 마주한 가소천을 보며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도진이 뜬 신안(神眼)은 세상을 꿰뚫어 보는 눈이다.
피상적인 인식에서 그치지 않고 거기에 깃든 이치를 이해하도록 해 주는 눈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세계의 근원 자체를 보는 영역으로까지 시야가 확장되었다.
무언가를 보면 처음이라 해도 얼추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제아무리 복잡하거나 근원을 감추고 있다 해도 최소한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가소천은 아니었다.
이질적이다.
마치 이 세상과 유리(遊離)되어 있는 것만 같다.
도진과 소통하고 있는 이 세계에 가소천은 결코 섞이지 않고 완전히 개별적이면서도 이 세상에 연결되어 있는 모순적인 존재로 보였다.
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어설프게 갖다 붙인 것처럼.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면서 상호작용을 하고 있음에도 이질적이면서 별개의 개체라는 걸 본능의 영역에서 알 수 있어서 그토록 기괴한 것이다.
"좋은 눈을 가지고 있구나."
도진의 짧지만 깊은 인식에 가소천은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온갖 화려한 보석과 비단으로 치장한 의자에 앉은 그대로 차를 마시면서 마주한 도진에게 자리를 권하지는 않았다.
그런 기색조차 보이지 않으며 애초에 그가 앉은 자리를 제외하곤 손님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그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위천마 가소천."
도진이 나직이 말했다.
가소천은 그 칭호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위천마. 위천마. 크크큭. 그래, 너의 입장에선 내가 가짜라는 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큭큭거리며 그는 말을 이었다.
"스승이 그랬지. 위지혁이란 놈이 나의 자리를 빼앗아 갔다고. 스승의 눈을 흐리게 만들고 자리를 찬탈하더니 비겁하게 나를 유폐했다고."
스승.
"당신은, 가진유가 거둔 제자인가."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정말로 위지혁의 제자가 맞나보군."
가진유.
도진이 본 그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풍채의 중년인이었다.
다만 날카로운 눈매와 무겁고 사나운 기세를 두르고 있어 신선보단 투선(鬪仙)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으니 위지혁과 상당히 닮은 외모였다.
그래.
그는 위지혁의 사촌형이었다.
고아인 줄 알았던 위지혁이 기적처럼 만난 혈육.
허나 그는 태생적으로 심성이 마(魔)에 가까웠으며 도(道)를 배제하였으니 천마(天魔)가 될 수 없었고 그 이름은 위지혁에게 이어졌다.
가진유는 그에 앙심을 품고 이단이 되고 말았으니 위지혁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그의 단전을 폐하고 뇌옥에 가두었던 것이다.
꽤나 오래 전 일이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가소천의 실제 나이가 백에 가깝다 해도 시간이 맞지 않을 만큼.
그러나 이 멸망해 가는 세계에서는 시공간조차 뒤엉켜 제각각이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현대의 과학은 시간조차 상대적일 수 있다는 걸 아는 단계에 있으니 바로 납득할 수 있었고 도진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스승의 복수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지금은, 그렇지. 그것이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이야."
단전이 파괴되고 수십 년을 뇌옥에 유폐되었던 가진유가 위지혁이 시공간의 붕괴에 휘말렸던 때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혼란기에 탈출하여 자신의 뜻을 이을 제자를 찾았다면.
그 세월동안 쌓이고 쌓인 부정적인 감정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 감정이 담긴 무공을 고스란히 이었을 가소천은, 그러나 스승의 뜻을 이을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만큼이나 되는 일을 벌였음에도 이질적인 존재감만큼이나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어 더욱 불길하게 보이고 만다.
불길한 존재는 도진을 시작으로 하여 그 뒤에 선 천마신교의 교도를 눈에 담는다.
그의 입장에서는 배교자(背敎者)가 된 현무도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 독마의 이름을 이은 위취련과 위연서, 한천마녀의 진전을 이은 윤상미, 진천공을 익힌 소담을 지나 불사마공을 익힌 클로에와 용마의 격룡신공을 익힌 성지인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선 비죽, 만족스럽게 웃는 것이다.
"신군은 지금부터 배교자들을 처단하도록."
"존명!"
갑작스런 명령에 대답하는 건 무선이었다.
교나라의 책사.
조용한 가소천의 명령에 갑자기 나타나 대답한 그는 즉시 무전으로 가소천의 명령을 전달했고.
두두두두두-!!
말을 탄 삼천의 신군이 망설임없이 달리기 시작했으니 그들의 목적은 도진이 아닌.
"반기를 든 마을을 하나씩 무너뜨릴 것이다. 막고 싶다면 막으러 가도 좋다."
그들과 뜻을 함께 하는, 이곳이 아닌 민초들이 들고 일어난 마을들이었다.
도진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현무도 장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뜻을 받들겠나이다."
도진의 뜻에 따라 창마 현무도가 병사들을 이끌고 신군을 추적하기 위해 떠났다.
그리하여 자리에는 '천마신교'의 교도들만이 남았다.
"이제야 좀 깨끗해졌군."
가소천이 만족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진을 마주하면서 말했다.
"나는 이 자를 좀 보아야겠으니 방해가 없도록 하라."
"존명!"
쿠웅-!
가소천의 명령에 따라 좌호법 우경신과 무선을 필두로 한 고수들이 기세를 일으켰다.
하지만 도진은 그들을 오래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으니.
후욱-!
마치 세상의 이치가 어긋나 버린 것처럼 자욱한 안개가 일어나 일대를 휩쓸어 버렸기 때문이다.
'홍괴산의.'
도진은 그것이 홍괴산의 술법과 같은 이치를 담고 있음을 즉시 알아보았다.
다만 커다란 차이가 있었으니 홍괴산의 그것을 아득히 능가할 정도로 술법이 강력했다는 것이다.
도진의 신안과 날카롭게 벼린 감각으로도 안개를 다 꿰뚫어 볼 수 없었다.
마치 일반인이 짙은 안개 속에 들어온 것처럼.
그리고.
꽈아아앙-!
그 어떤 전조도 없이 좌측에서 거대한 기운이 총알처럼 도진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쏘아졌다.
격공장 등의 무공이 아니다.
법기(法氣)를 이용한 술법이었다.
천마기를 둘러 막아낸 도진은 충격을 흩어내는 대신 역이용하여 땅을 박찼다.
꽈앙-!
"과연."
쇄도하여 내지른 도진의 주먹은 안개 속에 숨어 있던 가소천에게 닿지 않았다.
법기가 깃든 안개가 압축되어 가소천의 앞을 방패처럼 막은 것이었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아앙-!!
눈을 멀게 하는 벼락이 도진의 위에서 내리꽂혔다.
안개로 인해 극한까지 감각을 날카롭게 하지 않았다면, 설령 도진이라 하여도 피하지 못했을 술법이었다.
"무공보다는 술법에 더 자신이 있나 봐?"
어느새 거리를 벌린 도진이 말했다.
장난스레 말하는 듯 했지만 긴장의 끈은 팽팽하게 조여져 있었다.
안개로 뒤덮인 일대에 가소천에서 기인한 법기가 숨이 막힐 듯한 농도로 가득했다.
그 법기로 인해 예고도 없이 거대한 물리력이 총알처럼 쏘아지는 술법을 발동하고서야 인지할 수 있었고 공격은 막혔다.
거기에 술법이라고는 믿기 힘든 위력의 벼락까지.
홍괴산보다 대단한 술법사라고 듣긴 했지만 이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수준이었다.
도진이 천마군림으로 일대를 지배하는 것과 비슷한 영역의 수법이다.
가소천은 비죽 웃었다.
"술법에는 조예가 없다고 들었는데 그래, 그 신안이란 것이 법기를 보여주는 모양이로구나."
"……."
"무공을 보고 싶다고?"
훅-
안개 너머에 있던 가소천이 사라졌다.
"……!"
아니, 이것은.
꽈아아아앙-!
도진의 뒤에서 안개를 뚫고 나타난 가소천의 검과 도진의 주먹이 격돌했다.
가소천은 격돌의 충격을 이용하여 다시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정확히는 도진과 가소천 사이에 '선(線)'이 그어질 수 없도록 만들었다.
'무흔잠영.'
그래. 이것은 무흔잠영이다.
스으으…….
도진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신안은 부지역(不知域)에 이른 세계를 보았고.
쿠오오오오오오-!!
은밀히 다가와 천마기를 터뜨리는 가소천의 기습을 오히려 더 빠른 기습으로 받아쳤다.
꽈아아아앙-!!
가소천이 손해를 보고 허공을 날았다.
그러나 그를 추격할 수는 없었으니 허공의 안개가 모여 발판이 됨으로써 가소천이 대번에 자세를 회복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위지혁만이 아닌 사신의 진전까지 이었다더니. 과연 그 말대로구나."
허공에 선 가소천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얼굴에 흡족함이 묻어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천마신공에 무흔잠영까지.'
놈이 운용한 것은 천마기였다.
다만 도진과 같은 것은 아니었으니 위지혁이 발전시키기 전의 천마신공도 아니고 가진유에 의해 변질된, 더욱 폭력적인 천마기다.
자신의 깨달음을 더하였는지 흉포함이 배가되었음에도 안정적이다.
그리고 무흔잠영.
이쪽은…… 홍괴산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다.
상당한 수준이지만 부지역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도진을 상대로는 통하지 않는다.
허나 그에 앞서 가소천이 무흔잠영을 구사했다는 것 자체가 걸린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들었던 가소천에 대한 이야기.
-그 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무선이나 홍괴산, 우경신 등 교나라에도 인물이 있다.
그런 인물들이 할 수 있는 걸, 가소천이 모두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제아무리 천재라 하여도 어찌 인간이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가소천과 마주한 도진은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홍괴산의 술법을 홍괴산 이상으로 구사하면서 그 외의 술법마저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도진을 몰아붙였다.
여기에 무흔잠영을 섞어 오른손으로는 천마신공을 구사하면서.
쿠오오오오오오-!
왼손에는 황룡무상신공의 기운을 담았다.
'무극지체(無極之體)라도 되는 건가.'
아무렇지 않게 궤가 다른 무공을 섞어 구사하면서 술법마저 마법처럼 다룬다.
그것도 모조리 수준급으로.
도진은 어떻게 대처할지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는 가소천을 상대로 기세를 가져오기 위하여.
두웅-!
천마군림(天魔君臨).
전력을 내기로 하였다.
세계에 도진의 의지가 덧씌워진다.
법기와 섞여 있던 자연지기가 도진의 뜻으로 물들었고 가소천을 거부하였다.
"…이것은."
과연 가소천마저도 이에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온전히 가소천의 의지 하에 있던, 가소천만의 세계였던 진법 안에서 도진이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내공만이 아니다.
술법을 위한 기운인 법기마저 완전히 배제된 영역 안에서 마치 세계 그 자체가 되어 버린 듯한 도진이 서 있다.
그것을 마주한 가소천은.
"크, 크크. 크흐흐흐흐……."
"……."
웃기 시작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그것이 넘쳐 새어 나오는, 박장대소하는 것 이상으로 즐거워하는 기색이었고 그래서 불길하고 기괴했다.
스으-
도진은 굳이 그것을 지켜보지 않고 주먹을 들었다.
그러나.
드드드드드드드…….
발밑 깊숙한 곳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건.'
-지맥이다.
도진의 정신을 흩트리지 않기 위하여 침묵하고 있던 두 스승 중 장호가 짧게 말했다.
지맥(地脈).
쉽게 말해 대지의 혈도다.
그 혈도를 따라 흐르던 대지의 기운이 요동치고 있었다.
인간의 기준을 아득히 초월한 양의 기운이, 눈앞의 가소천을 중심으로 해서.
두웅-!
이대로 두어선 안 될 상황에 도진이 천마기를 폭발시키며 쇄도하였다.
초살(初煞).
그리고.
* * * *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