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657화 (657/741)
  • 657화

    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압도되는 듯 하였던 소천마와 창마의 대결은 찰나에, 갑작스럽게 결착이 나 버렸다.

    단 한 수.

    그 한 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던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직 두 사람.

    안력(眼力)의 수련에 공을 들였던 독마전주 위취련과 한 수에 꿰뚫렸던 당사자 현무도만이 궤적을 뒤늦게 인식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한 수는 결코 압도적인 실력의 격차로 인한 것이 아닌, 반대로 한 수에 모든 것을 건 일격필살의 수법.

    사신(死神) 장호에게 전수받은 초살(初煞)이다.

    본래 암살자에게 있어 두 번째 수는 허락되지 않으니 첫 수에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한다.

    필연적으로 암살자는 첫 수, 초수(初手)에 모든 것을 거는 법이니 사신 장호에게도 그 이치를 담은 수가 있어 한계를 넘어서는 일격인 초살(初煞)이 있었다.

    현무도를 상대로 하여 평범하게 한계를 넘나드는 수법으로는 우위에 설 수 없었으니 도진은 그마저도 넘어서는 영역에서의 초살로 승부를 내었던 것이다.

    당연히.

    파르르…….

    온몸이 비명을 내질렀다.

    의지를 벗어나 손이 떨렸고 폐가 터질 것만 같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는 경기를 치르는 그 짧은 순간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이나 빠지는데 그것마저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육체와 내공을 한순간에 극한까지 쥐어짜내 버렸다.

    그러니까, 일전 마을을 구하기 위해 달렸던 극한의 반나절을 단 한 수에 압축한 것과 같은 소모였다.

    하지만 도진은 그럼에도 당당히 섰다.

    "우오오오오오오!!"

    스물일곱이나 되는 무인이 필사의 기세로 덤벼듦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도진을 지켜보는 이들 중 누구도, 도진을 돕기 위하여 나서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도진의 말에 따라 그저 믿고 그 등을 지켜보았다.

    후웅-!

    공기를 가르며 창이 날아든다.

    기세를 고스란히 증폭하는 진각에서 시작하여 허리, 팔을 지나 창을 회전시키는 손목까지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는 동작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잘 배웠다.

    현무도에게 사사받은 무인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고 그 올곧은 가르침을 스스로와 일말의 타협없이 고련하였음이 일련의 동작에 묻어나고 있다.

    그러니까 제대로 받아줘야 했다.

    쿠웅-!

    내뻗는 창에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진각을 밟는다.

    진각에서부터 시작하여 허리, 팔, 손으로 이어지며 증폭하는 힘이 떨림을 날리고 도진이 원하는 이치를 육체가 구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꽝!

    올곧게 내뻗었던 창이 거력(巨力)에 튕겨 나간다.

    파앙!

    하지만 그 창은 튕겨 나갔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다시 도진에게 날아들었으니 바로 옆에서 다른 무인이 내쏘은 창과 부딪치며 힘의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파탄이 난 것이 아니라 훌륭한 합격술이다.

    격돌의 순간 상쇄되어야 할 힘을 평생에 걸쳐 수련한 창술로 오히려 더하여 휘두른 것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마치 미래를 예견한 것처럼 이미 반걸음 옮겨 그 창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후웅!

    하체를 노린 창 또한 다리를 들어 피하고서는.

    꽈앙!

    강하게 즈려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훅!

    "……!"

    반발하여 힘을 더하자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몸을 한 바퀴 회전하면서 또 다른 무인의 창대를 걷어찼다.

    꽈과광-!

    "크흡."

    항거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경력이 실린 창대가 창수(槍手)의 의지에서 벗어나 동료의 창을 연쇄적으로 때렸다.

    꾸웅-!

    그리고 허공의 도진을 노렸던 창 하나가 밟혀 대지에 짓눌리고.

    따다다닥!

    다시 몇 자루나 되는 창이 거짓말처럼 창대에 막혀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어떻, 게.'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부드럽게 이어졌어야 할 합격술이 일순 멈추고 만다.

    믿을 수가 없었다.

    비록 그들 중 누구도 경계를 넘어서지 못했지만 백병전(白兵戰)이라면, 무기를 쥐고 직접 부딪치는 싸움이라면 설령 경계를 넘어선 고수라 하여도 허무하게 패배하지 않는 것이 그들이었다.

    화려한 초식도 익히지 않았고 기공(氣功)을 파고들지도 않았지만 그렇기에.

    육체를 끝없이 단련하고 기초이면서 동시에 근본인 창술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하여 평생을 바쳤으니까.

    그런 무인이 스물일곱이나 모여 덤볐는데.

    따닥!

    그 누구의 창도, 단 한 명의 무인에게 닿지 못하고 있었다.

    꽈앙!

    "……!"

    뿌득-

    한 수 한 수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내공에서 밀리는 게 아니다.

    순수하게 육체의 완성도에서 밀리는 걸 그들이기에 본능의 영역에서 알 수 있었다.

    후욱-

    따닥!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거나 동료의 창을 가로막는 또 다른 동료의 창은 어떤가.

    그들이 평생을 참오한 창의 이치마저 상대에게 완벽하게 읽히고 또 압도당하고 있다.

    '이런 자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상대가 있음을 싫어도 인정하게 된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쌓은 그 어떤 것도 지금 이 무인에게 결코 닿을 수 없음을.

    그런 무인과 대등하게 겨루었던 스승을 또 깊이 존경하게 되고.

    빠드득-

    이를 악물고 끝까지 싸우기 위하여 창을 강하게 그러쥐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창을 들었고 자연스레 기세는 하나로 모여 거대한 창을 만들어낸다.

    본래 무공이란 대부분의 경우 여력을 남겨 둔다.

    그 여력으로 힘을 회수하고 증폭하고 때로는 흘려내야 하니까.

    하지만 이번의 일격은 다르다.

    마치 암살자의 첫 수처럼 뒤를 버리고 가진 모든 것을 걸었다.

    무인으로서 결코 보여서는 안 될 어리석은 일격이지만 괜찮다.

    눈앞의 무인은, 이 모든 것을 건 일격을 결코 피하지 않을 테니까.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아서 도진은 그 자리에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미소지었다.

    이 격돌에서 패배한 자는 죽는다.

    죽을 수밖에 없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의 격돌이 만들어내는 여파를 흘려내지 못한다는 것은 곧 육체의 파괴로 이어지니까.

    그것을 알면서도 덤벼드는 무인들을 어리석다 하지 못하는 건 그들에게 남은 게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승을 두고 등을 돌릴 수 없으니까.

    도주함으로써 쌓아온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목숨을 건다.

    그러니까.

    꽈아아아아아앙-!!

    * * * *

    털퍽.

    스물일곱의 무인이 무릎을 꿇었다.

    가진 모든 것을 다하였고, 패배하였다.

    하지만.

    "……왜."

    그들은 목숨을 잃지 않았다.

    그저 탈력하여 무릎을 꿇었을 뿐 누구도 죽거나 극심한 상처를 입은 자가 없었다.

    대신.

    뚝. 뚝.

    그들을 홀로 상대하였던 도진만이, 훤히 드러난 팔과 주먹이 터져 쩌억 갈라진 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경력을 받아낸 탓이었다.

    격돌의 순간.

    도진은 내뻗었던 주먹을 격돌의 순간 오히려 뒤로 당겼다.

    스물일곱이나 되는 무인이 합친 힘을 고스란히 자신의 주먹과 팔로 받아낸 것이다.

    덕분에 목숨을 걸고 사력을 다하였던 스물일곱의 무인은 상처없이 무사할 수 있었고.

    뚝. 뚝.

    그 막대한 경력을 받아낸 도진의 주먹과 팔은 다 흘려내지 못한 경력이 내부에서 폭발, 피부가 쩌억 갈라진 것이었다.

    만약 도진이 아니었다면 팔이 흔적도 없이 날아갔을 것이다.

    상황을 이해한 스물일곱의 무인이 왜, 라고 물었다.

    도진은 스윽 웃으며 팔을 내리고선 답했다.

    "당신들이 죽는 건, 내가 바라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 * *

    늦은 밤.

    "……."

    도진의 초살에 꿰뚫렸던 현무도가 눈을 떴다.

    일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그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자신의 상황에 찰나 눈을 크게 떴고.

    "……어째서인가."

    잠시의 시간에 상황을 파악하고선 낮게 물었다.

    곁에 앉아 있었던 도진은, 오른팔에 붕대를 감은 도진은 그의 제자들에게 해 주었던 말을 다시 한 번 입에 담았다.

    "당신이 죽는 것이 내가 바라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현무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도진이 해 준 말을 곱씹고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반응할 수 있는 영역마저 넘어선 일격은 분명하게 그를 관통하였으니까.

    한데 그것이 사실은 그의 정신을 잃게 만든 데서 그치는 공격이었다.

    그리고 심연에 정신이 빠져들기 전 분명히 느꼈던, 그의 제자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던 순간.

    하지만 그 제자들 또한.

    천막 바깥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선명하게 서 있는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곁에 앉은 도진이 오른팔에 붕대를 감고 있다.

    "…우리를 회유하려는 겐가."

    현무도가 다시 물었다.

    "네."

    도진은 망설임없이 그렇다고 답하였다.

    "자네를 도와 이 나라를, 다시 한 번 혼란에 빠뜨리라고."

    "아뇨. 아무런 의미없는 싸움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하자고 하는 겁니다."

    "……."

    더 나은 미래.

    현무도의 심장이 한 번, 뛰었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토벌군의 수장으로 이곳에 온 이유를."

    "당신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 겁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는, 타인의 모범이 될 수는 있었으나 가장 앞에서 걷는 자가 되어 모두를 이끄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이끄는 길을 다지는 역할을 자처해 온 것이었다.

    비록 잘못된 길일지언정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그러니까 현무도는 최소한, 뒤를 따르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할 수 있도록.

    한 명이라도 더 따라올 수 있도록 길을 다져온 것이다.

    그 헌신을 알았기에 교나라를 미워할지언정 현무도만큼은 모두가 믿고 따랐다.

    그런 현무도였기에. 현무도를 따르는 제자들이었기에.

    "나는 당신같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라고 있기에 당신들이 죽게 두지 않았습니다."

    "……."

    내가, 우리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

    도진의 말이 현무도의 머릿속을 채운다.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아득하게만 들리는 말이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어딨겠냐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있는 것이 천마신교입니다."

    "천마, 신교."

    "그리고 그 염원을 이루기 위하여 가장 앞에 서야 하는 것이 천마죠."

    두근-!

    심장이, 뛰었다.

    그것은 애써 억누르고 있던 열망이요 외면하고 있던 희망이었다.

    현무도로서는 그것을 도저히 이룰 수 없었고 이루기 위한 길을 찾을 수 없어 포기하였던 것.

    "나는 당신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함께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한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 그게 제 욕심이거든요."

    도진이 웃었다.

    "그러니까, 창마 현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이 나를 따라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아.

    쿵, 쿵!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뼈를 깎는 단련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오랜 세월 억눌러왔던, 이제는 그러지 못하게 된 열망이 흘러나와 걷잡을 수 없이 심장이 뛰어 버린다.

    현무도는.

    완벽하게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현무도는 그러나 그 열망을 억누르지 않았다.

    쿠웅!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그 열망을 크게 입에 담았다.

    "현무도! 소천마 당신의 뒤를 따르겠나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