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654화 (654/741)

654화

교나라의 수도.

그 중심인 황궁에서도 중심에 멸망을 향해가는 세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하늘을 내찌르는 듯한 기세의 장엄한 건물이 한 채 치솟아 있으니 위천마 가소천이 머무는 천마전이었다.

천마전을 중심으로 한 황궁은 본래 고요한 가운데 수많은 일들을 처리하는 곳이었으나 오늘만큼은 소란과 혼란을 억누르지 못하였으니.

"그래. 킬 스위치가 발동하였단 말이지."

"예."

나라 전체의 포털을 관리하던 주술과 과학이 결집한 정수였던 시스템이 셧다운 되는 초유의 사태가 원인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하루이틀 정도 포털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해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애초에 포털이란 게 그들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붕괴 현상의 '우연'을 이용하는 것이었으니 짧은 기간 정도는 포털을 사용할 수 없어도 문제가 없도록 처음부터 계획을 하여 수십 년간 체계를 만들어 왔으니까.

허나, 그렇다 해도.

그 수십년 동안 구축해 온 시스템이 처음으로 완벽하게 셧다운 되는 사태는 처음이었기에 황궁마저 소란스러워지고 만 것이다.

"재미있구나."

하지만 단 한 명.

그 소란에서 예외인 자가 있었으니 그들이 신으로 모시는 천마신교의 정점.

가소천은 오히려 피식 웃으며 재미있다고 말하였고 보고하는 무선은 고개를 숙이며 경이를 표하였다.

무선은 이 황궁 안에서는 물론이요 교나라 안에서도 가장 '신세계'를 잘 알고 많이 접한 인물이었다.

당연히 무림이 아닌 현대인으로서의 지식 또한 완벽하게 갖추었다.

허나 그럼에도 그는 동시에 누구보다 가소천을 천마이자 하늘을 대신하여 이 세계를 구원할 신이라 믿고 있었다.

인신(人神) 가소천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모르는 것이 있다 해도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완벽하게 이해하여 아는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하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어떠한 위기라 하여도 아무렇지 않게 해결해 버릴 수 있다.

당연히, 이번 사태도 예외가 아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홍괴산이 만든 것이었지."

"예."

"홍괴산 정도의 술법사가 아니고서야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어떻게 발동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을 터. 애초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조차 놈들은 몰랐을 것인데……."

이렇게 되면 홍괴산을 노린 것부터가 킬 스위치를 목적으로 하였다는 데까지 이어진다.

"우호법의 집착이 이런 결과를 낳았겠구나."

무선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가소천이 허락하였기에 홍괴산은 사신의 후예인 장소유에 대한 집착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그것이 긍정적으로 발휘되어서 자신의 실력을 높임은 물론이요 온갖 유용한 주술마저 개발하였지만…….

결국 마지막에 와서 킬 스위치의 존재를 들킨 걸로도 모자라 빼앗겨 교나라의 포털 시스템을 셧다운 시키는 참사를 일으키고 말았다.

"놈들이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는 쥐구멍을 주시하도록."

"존명!"

무선은 교주의 명에 따라 더욱 엄중한 경계 태세를 갖출 것을 '통신'으로 명하였다.

이미 이단이 숨기고 있던 포털을 감시하기 위해 배치한 자들이 있었으나 더욱 경계를 강화하려 한 것이다.

허나 그것은 한 발 늦어서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공장이 함락되었다고? 철마께서 지키고 있던 곳이?"

"예에……."

소식을 전달한 자가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깊이 고개를 숙였다.

무선은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철마 육주굉.

교나라에서 두 손에 꼽히는 화경의 무인이었거늘.

그런 자가 지키는, 그것도 공장이 하룻밤 사이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천마의 참모를 맡고 있는 무선이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게 만들 정도로 터무니없었다.

'그래, 우리의 대적자란 게지.'

무심한 하늘은 그러나 소인배와 같아서 천마신교를 인정하지 못하고 대적자를 보낸다 하였으니 저쪽 세계의, 천마를 참칭하는 자가 그 대적자였다.

대적자라면 그래, 이럴 수도 있는 거라고 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네놈이 교나라를 넘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공장 하나 정도는 이단 놈들의 힘으로도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다만 그 이상이 불가능했기에 놈들도 몸을 사린 것이다.

천마신교는 이제 단순한 종교가 아닌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교나라가 되었다.

저쪽 세계에서의 싸움이라면 몰라도 이곳에서라면, 놈들은 이 세계 전체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토벌군을 모집하겠다."

"……예!"

무선은 토벌군의 구성을 명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놈들을 토벌할 군대다.

마음 같아선, 가능하다면 아예 미사일 폭격 등의 방법을 쓰고 싶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와 같은 최첨단의 전쟁 기술은 아직 이 세계에서 이룩하지 못한 것이다.

허나 어디까지나 아쉬운 것일 뿐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놈들은 결코 '군대'를 동원하지 못할 것이니 토벌군은 문제없이 공장을 되찾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짠 무선은 그렇게 명령을 내려두고 저쪽 세계의 문제에 골몰하였다.

생각보다 더,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었다.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그 포화 속에 교나라가 스며들고자 했다.

그를 위해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구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일이 어렵게 되었다.

러시아가 금군을 통하여 명분을 얻고 한국을 도발하였다.

동시에 예무르가 라보르의 영토 일부를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면서 또 하나의 전선을 그었다.

그 외에 제3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전쟁까지.

이 세 곳을 중심으로 각국이 충돌하도록 의도하였는데…….

-에번드윅 공작, 라보르 지지를 선언하며 전쟁 불사의 의지를 내비쳐.

-미국. "러시아 진군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 강력 발언.

생각 이상으로 유럽이나 서양은 물론이요 제3 세계의 나라들마저 똘똘 뭉쳐 반발하여 섣불리 불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뭉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때리는 그림이어야 하는데 힘을 합쳐 으르렁거리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된 거다.

이번에도 또, 그 대적자 때문이다.

정확히는 놈과 이어진 본래 천외천이었던 자들이 양지와 음지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탓에 이리 되었다.

이쪽에 교나라의 힘을 투입하느라 따로 토벌군을 구성해야 했고 무선 또한 신경을 쏟았으니 그렇게 약 10일이 지났을 때였다.

"…뭐, 뭐라?"

"이, 이단의 세력에 동조하는 자들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을 와락 구기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 * * *

도진이 함락시킨 공장은 교나라의 서쪽 끝에 위치한 공장이었다.

그 공장을 반원 형태로 둘러싸고 작은 마을들이 있었고 공장에서 시작하여 마을들을 거쳐 하나로 합쳐지는 큰길이 이어졌다.

이 큰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것이 교나라의 수도로 보낼 물건들이 일차로 모이는 '도시'였다.

공장 함락 후 이틀도 되지 않아 함락된 그 도시의, 수도로 보낼 물건들을 적재하는 커다란 창고에 수많은 민초들이 모여 있었다.

웅성웅성-

본래 삼엄한 무인들의 감시하에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만이 보이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이 깃든 눈동자로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고 있었으니 그들이,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 앓고 있던 병의 치료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이쪽으로 서 주세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은 서소담이다.

머리를 올려 묶고 새하얀 가운을 입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며 여인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녀님."

"아, 아니에요."

쑥스러워하며 소담은 고개를 젓고선 사람들의 안내를 계속했다.

조금 증세가 덜한 이들은 좌우의 의료 천막으로, 당장 손을 써야 할 이들은 가운데의 도진이 있는 작은 가건물로 보냈다.

"이쪽입니다."

"감사합니다……."

소담만이 아닌 상미와 클로에, 위연서, 성지인까지도 천마신교의 교도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을 이끌어 주고 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이들은 그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온통 눈물에 젖어 함께 나온 도진에게 감사하는 부모의 모습에서 '소문'이 진실임을 알게 된다.

남녀가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아이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기식이 엄엄하여 누가 보아도 오래 살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아이였다.

바로 그런 아이가 지금.

"감사합니다."

스스로의 다리로 서서 반짝이는 눈동자로 꾸벅, 소천마에게 인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만이 아니었다.

저 건물 안에 들어갔던 이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볼에 홍조가 돌며 생명의 불씨가 지펴졌으니 믿지 않을 수 없었고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도진은 그런 기적을 벌써 일주일째 계속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럼, 다음 분 들어오세요."

부부와 아이를 보낸 도진이 이어서 다음 사람을 불렀다.

병색이 완연하여 앙상한 여인을 남편이 부축하여 들어왔다.

"부, 부탁드립니다. 소천마님. 제가 무엇이든,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간곡히 비는 남자를 도진이 부드러운 기운으로 감싸 진정시켰다.

그리고 지체없이 여인의 손목에 손을 얹었다.

"조금 아플 테지만 참아 주세요."

"알겠, 습니다."

두웅-!

도진이 눈을 감고 자연지기와 연결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통하여 순수한 자연지기를 여인의 몸에 가득 채웠다.

"흐읍."

도진의 명에 충실하여 여인은 혈도를 울리는 고통에도 이를 악물고 버텼고 그렇게 약 한 시간.

도진은 여인의 몸에 가득하였던 해로운 탁기를 어느 정도 정화할 수 있었다.

후우.

깊이 숨을 내쉬며 여인의 몸에 가득 채웠던 자연지기를 정돈한 도진이 말했다.

"끝났습니다."

"아……!"

여인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탄성을 내뱉었다.

그토록 지독하게 자신을 괴롭히던, 온몸을 망가뜨리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천마님."

"완치한 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누그러뜨렸을 뿐이니 꾸준히 치료를 받아 주세요."

"예,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하는 감사를 도진은 미소지은 얼굴로 받아주었다.

도진이 그녀에게, 환자들에게 해 준 건 한 마디로 약식의 벌모세수(伐毛洗髓)였다.

공장으로 인해 오염된 공기와 물, 음식을 섭취하여 쌓인 몸속의 탁기를 자연지기를 주입하여 제거하고 혈도를 씻어주는 것.

평범한 무인이라면 설령 수십 갑자의 내공을 지니고 있다 하여도 몇 명 해주지 못할 일이었으나 자연지기와 소통할 수 있는 도진은 일주일이 넘도록 그것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연신극기공으로 단련된 육체와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 또한 갖추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치료한 이가 벌써 백 명에 가까웠으니 매일 하루의 절반 이상을 치료에 쓴 것이었고 소천마의 이름이, 진실된 천마신교의 이름이 널리 퍼져 나가며 교나라를 뒤덮고 있었다.

그래, 이것은.

그야말로 처음 천마신교가 그 이름을 알릴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부패한 나라를 뒤흔들었던 그때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