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3화
내외가 함께 갈기갈기 찢긴 오른 주먹을 덜렁이며 육주굉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야말로 뒤를 생각지 않고, 내가 부서질 리 없다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내지른 전력을 다한 주먹이었기에 패배하여 부서진 모양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끄으으."
이를 악물고 고통과 정신을 다스린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으니 그는 어느새, 고통에 익숙하지 않은 인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다친 것이, 고통을 느낀 것이 언제였던가.
스쳐가는 의문에 대한 답을 쉽사리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육주굉은 자신이 고통과는 먼 삶을 살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게 고통에 매몰되어 빈틈 투성이가 된 육주굉에게 도진은 다시 한 번 주먹을 내지른다.
"……!"
꽈아앙-!
"크흐흑!"
그리고 육주굉의 입에서 다시 한 번 고통이 스며나온다.
멀쩡한 왼손으로 막았다.
몸으로 막은 게 아니라 그의 막대한 내공이 한껏 스며든 '합금강'으로 만들어진 갑주로 막았거늘.
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의 시선으로 보자면 차라리 왜소하다 해야 할 자의 주먹을 감당하지 못하고 한심한 소리를 내뱉고 있는 스스로에 화가 난다.
그리고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렇게 그를 몰아붙이는 이단의 시선이 한낱 하찮은 것을 치우는 자의 시선이었다는 거다.
'감히 나 철마 육주굉을……!'
"노오오오오옴!!"
꽈아아앙!!
분노가 고통을 억누르고 진각을 내딛게 만든다.
굉진각(轟振脚).
강대한 육체 능력과 막대한 내공을 무공의 이치에 따라 폭발시키는 진각으로 단순히 힘의 증폭에서 그치지 않고 그 여력으로 상대를 묶어 버린다.
그에게서 도주하거나 덤벼들던 괘씸한 자들을 굳어 버리게 만들었던 바로 그 강력한 수법.
저벅.
허나 놈에겐 통하지 않았다.
막대한 기운의 격류가 마치 산들바람인양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내딛어 거리를 좁히는 게 소름마저 끼치게 만든다.
꾸웅!
이를 악물고 증폭된 힘을 다시 한 번 증폭시키며 주먹을 내뻗었다.
굉진각에 묶이지 않았음에도.
이번에도, 놈은 피하지 않았다.
꽈아아아아앙!!
"끄으읍!"
필생의 힘을 다하였거늘.
육주굉은 또 패배했다.
패배하여서, 양손이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콰르르르.
그가 자랑하던 양팔의 갑주 또한 양팔처럼 처참하게 부서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육주굉은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똑같은 화경'이었다.
화경에 이른 뒤부터가 진짜 시작이고 뭉뚱그려 화경이라 하지만 그 안에서 상상도 못할 격차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각자의 특기 분야에서만큼은 결단코 밀리지 않는 것이 또 화경에서의 상식이었다.
그러니까 똑같이 운동 선수라 해도 누군가는 테니스로 국가 대표가 되었고 또 누군가는 볼링으로 국가 대표가 되었다면.
테니스 국가 대표가 세계 우승을 하였다 해도 볼링으로 겨우 본선에 진출하는 이와 볼링으로 싸워 이길 수는 없다는 소리다.
경계를 넘어설 정도로 추구한 영역이란 그런 것이다.
한데 지금 그의 패배는 그런 상식을 완전히 깨부수었다.
누가 보아도 육주굉이 정면 힘대결에서는 이겨야 할 상황이었고 실제로 육주굉은 그것이 특기였는데.
결과는 육주굉의 완패였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육주굉의 머릿속에서의 생각이었다.
육주굉은 모르는 것이다.
도진의 몸이. 그조차 감히 범접하지 못할 한계를 거듭 초월함으로써 짜올린 결과라는 것을.
그와 같은 것을 그보다 더 아득한 영역으로까지 추구했다는 것을.
때문에 처참하게 패배한 육주굉의 면상을 도진이 후려갈겼다.
빠각!
쿠당탕!
육중한 갑주를 두른 몸이 그대로 허공을 날아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꼴이 비참하였고 육주굉은 이를 악물었다.
"무인을 모욕하느냐!"
흐트러지지 않고 호통을 쳤다.
허나 도진은 그 모습을 비웃었다.
"네놈 따위가 모욕이라는 단어를 쓸 만큼의 명예가 있었나?"
"노오옴!"
육주굉이 분노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이 멸망을 앞둔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하여 헌신한 나다! 그런 나를 그저 적이라는 이유로 모욕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느냐!!"
"꼴사납구나."
"……!"
"살기 위하여 전쟁을 선택한 것에 대한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다."
"하지만 네놈이 무얼 헌신을 했지?"
"뭣."
"헌신을 한 건 네놈이 아니라 민초들이다."
"그것도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강제로, 목숨마저 깎아가며 희생하였고 그 위에서 네놈은 나태하게 살아갈 뿐이었지."
"네놈이 뭘 안다고!"
"알아. 주먹을 부딪쳤잖아. 그걸로 넘칠 정도로 알 수 있었지."
"천마신교의 교도라면. 누군가를 이끄는 위치에 있다면 거기에 걸맞는 사람이어야만 할 의무가 있지.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잖아? 희생을 강요할 뿐이고 요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안위에 취한 한심한 자."
"그 한심함에 젖어 수련마저 게을리 했겠지. 네놈이 익힌 신마파산공은 매일 한계에 다다르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정진해야만 하는 무공이다. 하지만 타성에 젖은 넌 스스로와 타협했을 거고 이 정도면 되겠다, 스스로를 속이고 그 의무마저 외면했겠지."
지금도 매일, 한계에서 기꺼이 뼈를 깎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도진과의 격차는 그런 매일이 쌓여 벌어졌다.
"……."
"갑주에 숨지 않고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넣었던 게 언제인지, 기억하고 있나?"
"……."
"그것마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한심한 인간이 되었기에, 너의 주먹은 하찮고도 가벼운 주먹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 아아……."
"철마 육주굉. 네놈은 천마신교의 이름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는 인간이다."
도진의 주먹이 자비없이 육주굉의 갑주를 꿰뚫고 단전을 부수었다.
콰직!
와아아아아아아-!!
교나라 건국 이후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였던 요새가 함락된 날이었다.
* * * *
요새가 함락되고 상황을 정리하는 중에 해가 떴다.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비치는 가운데 누군가는 아직도 채 열기가 다 가시지 않은 얼굴인가 하면 또 누군가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얼굴이다.
외면함으로써 유예하고 있던, 전쟁을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교나라의 핵심 중 하나인 공장은 그렇기에 온갖 신세계의 이물과 함께 무려 경계를 넘어선 고수가 지키고 있을 만큼 방비가 대단한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쪽의 천마신교가 절대로 함락시키지 못할 곳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기만 한다면.
몇 개 보유하고 있지 않은 EMP탄을 동원하고 무인들이 목숨으로 옥쇄함으로써 하나 정도는 함락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승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멸망'을 택하는 행위였으니 그렇게 공장을 함락시킨 천마신교를 교나라는 전력을 다하여 제거하려 들 것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나라와 천마신교는 이곳 무림에서 부딪치지 않게 되었다.
천마신교는 이미 이쪽 세계를 지배해 버린 교나라와 이곳에서 싸워서는 승산이 없기에.
교나라는 전쟁을 회피한 천마신교를 상대하여 '버리기로 한 땅'에 한정된 국력을 소모하는 대신 '신세계'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것은 외면의 결과이면서 거짓일지언정 평화였다.
한데 그 평화가, 마침내 공장을 함락시킴으로써 깨어지게 되었다.
이제 유예는 없다.
멈출 수 없고 끝까지 가야만 했다.
다수는 두려워하면서도 싸울 것을 결심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겠나. 나는 싸울 것이야."
"같은 생각이네. 천마신교의 첫 번째 가르침이지 않나. 무심한 하늘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지."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모르겠어. 그 잘못된 것을 인간의 힘으로 바로잡기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하지 않나. 우리에게, 그런 힘이 있는지 확신이 되지 않아."
"자네! 천마를 의심하는 건가?"
"솔직히! 아직 모르지 않나! 그분은, 그분은 확실히 대단하신 분이었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고 그 뒤를 따르고 싶었지. 하지만, 하지만 나는 아직 완전히는 모르겠단 말이네!"
"이, 이 불경한!"
불신을 말하는 이 때문에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이내 폭력으로 번지려 하였다.
"그분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헉!"
"소, 소천마!"
모두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요새를 함락시키며 그야말로 신위를 보여 주었던.
흩어져 있던 교도들을 하나로 모으고 현실을 바꿀 용기를 주었던 소천마의 등장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도진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천마라 불리는 이는 믿음을 강요하는 자가 아닙니다."
"천마라 함은, 사람의 힘으로 잘못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이여야 하면서 동시에 뒤따르는 이가 스스로 믿고 따를 수 있게 하여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하니, 믿음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아아……."
담담하게 말하는 그것이 결코 입발린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그저 사실을 담백하게 말할 뿐이었고 동시에 그렇기에,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사람의 마음에 스며드는 힘이 있었다.
도진은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하나하나 마주하였다.
마주한 눈동자를 통하여 불안을 억누르지 못한 이들이 보였다.
"저는,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싸움을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두려움에 외면하였던 전쟁에 내몰릴 거라고.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싸워야만 할 거라는 이야기들을.
"이 싸움은 제가 원해서 하는 싸움이니 거기에 원치 않는 이들을 휘말리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말로만 하는 소리가 아니다.
싸움을 원치 않는 이들은 억지로 칼을 들지 않아도 된다.
싸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니까.
"하, 하지만."
누군가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채 문장을 다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는, 앙상하고 작은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도진이 천천히 다가갔다.
아이는 병들어 있었다.
특별히 어떤 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니라, 생명의 힘 자체가 미약했고 오염돼 있었다.
…공장의 오폐수와 매연 등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곳의 공장은 자연의 보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어차피 멸망할 세상이니까.
자연의 보존을 생각할 시간에 그것을 완전히 희생해서라도 신세계를 공략하기 위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게 나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거기서 소모품 취급 당한 이들은 물론이요 근처의 마을에 사는 이들마저도 자연과 함께 병들고 만 것이다.
병든 아이의 손을 꼭 붙잡은 남자가 말했다.
"저는, 싸우겠습니다. 싸워서.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를 낫게 해 줄 수 있는 곳으로 보내고 싶습니다."
남자는 들었다.
신세계로 간다면.
신세계로 가서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아이가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남자는 아버지였기에.
아이를 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두려워도 싸울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이 아이를 구해달라 청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도진은 마주한 남자의 눈을 통하여 그 결심을 읽었다.
읽었기에 미소지으며 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낯선 상황에 아비의 손을 꼭 쥐고 있는 아이는…… 이대로 두면 쇠약해져 이른 나이에 목숨을 잃게 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왕성하여야 할 진원지기가 오염되어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치병은 아니었다.
현대의 의료 기술이라면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많은 이들을 포털을 통하여 데려갈 수가 없었다.
포털은 무한정으로 고정하여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오갈 수 있는 사람의 수에 한계가 있었으니까.
공장을 공략하기 위하여 저쪽에서 수백이 넘어왔기에 도진이 넘어올 때 사용했던 포털은 이미 불안정해져 더 이상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포털을 잇는다 해도 앞으로 이 아이와 같은 경우가 얼마나 많을지 모른다.
그들로 인해 '세계의 비밀'이 도진의 세계에 새어 나가는 경우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교나라를, 위천마를 꺾는 것이지만…… 그 전이라 해서 전혀 손 쓸 도리가 없는 건 아니었으니.
아이와 마주한 도진이 아이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아, 예! 명진, 명진입니다."
"네. 명진아."
"…네에."
조금 불안한 얼굴로 명진이 대답하였다.
도진이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아주지 않을래?"
도진에게는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