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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52화 (652/741)

652화

"오오오오오오!!"

현랑전 1대주인 마길준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소리치지 않고서는 도무지 벅차올라 미친듯이 뛰는 가슴 속의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장.

이곳은 그에게 있어 가진 모든 것을, 그의 세상을 서서히 소화해 앗아가는 괴물이었다.

그뿐만이 아닌 공장 주변의 마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도.

공장의 주변에는 마길준을 포함한 이들이 사는 곳을 제외하고도 몇 개나 되는 마을이 있다.

그리고 그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예외없이, 15세 이상 60세 이하의 남녀라면 모두 노동을 해야만 했다.

그들이 이 세계를 떠나 살아갈 낙원, '신세계(新世界)'를 위해서.

-신실한 믿음을 증명하는 자만이 교주께서 인도하실 신세계를 살아갈 자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열두 시간의 육체적으로는 물론이요 정신적으로도 가혹한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믿어서가 아닌 무력에 의한 강제로.

그 노동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버티기 위하여 노동자들은 피폐함을 억누르며 무공을 익혀야만 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들은 서서히 쇠약해져 죽었으니 수련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되었다.

허나 그것마저도, 마음 놓고 할 수가 없었다.

-자질이 있구나. 3등 교도가 되겠느냐?

일정 이상의 경지에 이르면 입대(入隊)하여야 했다.

무인이자 군인으로서 교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신분이 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명예로운 일이나 세뇌당하지 않은 이들은 그것이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장기말이 되는 일이라는 걸 알았으니 사실은 비극이다.

진실을 아는 노동자들은 필사적으로 경지를 올리지 않기 위하여 깨달음을 멀리하였다.

몸을 단련하되 궁구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어리석은 우인(愚人)으로 속였다.

그리고 어리석은 이들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괴물인 공장의 노동자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길준은 그런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

부모님이 천마신교 현랑전의 무인이었기에 세상의 진실에 닿을 수 있었고 천마신교의 교리에 따라 무심한 하늘이 아닌 인간의 손으로 현실을 바꾸기를 갈망하였다.

단순히 일이 힘들어 사람이 쇠약해지는 게 아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공장의 환경이 인간에게 해로운 것들로 가득하여 건강을 앗아가는 것이다.

그 환경에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의 경지에 이른 내공과 육체로 몸을 보호하여야 했는데 그렇게 되면 저쪽 세계 침공을 위한 소모품으로 끌려가 버린다.

어찌 이것이 옳은 일이겠는가.

결단코 잘못된 일이었고 그렇게 잘못된 현실을 인간의 힘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 열망이 마길준을 현랑전의 1대주로까지 데려다 주었지만.

그럼에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신분과 경지를 감추기 위하여 개발된 특수한 무공으로 교나라에 들키지 않고 상당한 경지를 이룩하였지만 오히려 현실의 벽이 터무니없이 높고 두텁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마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상당한 경지에 이른 현랑대의 무인이 이백에 달했으나 요새의 문조차 두드리지 못하고 총알 세례에 목숨을 잃는 것 이외의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하나, 둘.

열망은 버리지 못하였으나 그 열망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고 이미 뿌리가 죽어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현실을 강요당해왔다.

그저 단 하나.

신세계에 희망을 걸고 버티고 또 버티는 나날이었는데.

꽈아앙-!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이 선고되었음을 알리는 벼락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 소리가 들렸을 때에는 기필코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거늘.

"크흐윽!"

누구도 죽지 않았다.

현랑대의 앞에 선 아름다운 한 명의 소녀 덕분에.

오히려 공장의 병사들이 고통스런 소리를 흘렸다.

금발벽안의 색목인(色目人)은 가녀린 공주를 연상케하는 여리여리한 모습과는 대비되는 투박하고 커다란 수투(手套)를 끼고 부츠를 신었다.

그 수투로 총알을 막아낸 것이었는데 중요한 건, 총알을 완력으로 쳐낼 뿐 아니라 거대한 쇠뇌마저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쳐내 버린다는 것이다.

외견에서는 믿을 수 없는, 상리에 맞지 않는 초월적인 육체 능력. 그것은.

불사마공(不死磨功).

천마신교의 역사에 기록된 불사마(不死魔) 이종도의 무공에 깃든 공능이다.

소천마의 제자이자 불사마 이종도의 진전을 이은 이가 있었다.

그리고.

쩌저정!

"이, 이게!"

겨누어졌던 총기를 얼려 버림으로써 무력화하는 또 한 명의 무인이 있다.

일대에 휘몰아치는 혹한의 냉기.

이 또한 전설이 된 천마신교의 교도 한천마녀(翰天魔女)의 무공인 한천검공(翰天劍功)의 공능이었다.

화기(火器)를 얼어붙게 하고 그것을 겨눈 이들을 침묵시키는 시린 칼날이 눈부시다.

꽈르르릉!

그들이 아닌 적에게 몰아치는 벼락도 있다.

교도들은 이 벼락의 이름 또한 안다.

진천공(震天功).

천마를 따르기를 염원하던 이들의 마음이 모여 완성된 무공.

소실되어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무공이 또 한 명 아름다운 무인에 의해 재현되고 있었다.

결코 바꿀 수 없을 것만 같던 현실을 바꿔 나가는 이의 등이 있다.

그 맥이 끊어지고 말았던 천마의 이름을 계승한 이의 등이다.

그리고 그 등을 따라 걷는, 천마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던 신교의 무공을 구사하는 이들이 있다.

거기에 지금.

마길준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하니 어찌, 어찌 천마신교의 교도로서 현실을 바꾸기를 갈망하였던 마길준의 가슴이 벅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오오오오오!!"

그 벅참을 한없이 토해내며 마길준은, 천마신교의 교도들은 기세를 드높였으니.

꽈아아아앙-!!

마치 운석이 충돌한 듯 크레이터를 만들며 앞을 막아선 거인을 마주한 도진의 등을 뜨겁게 하였다.

"처, 철마."

"육주굉……!"

도진은 뒤를 따르던 교도들의 뜨거운 기세가 주춤하는 것을 느꼈다.

철마 육주굉.

이곳 요새를 지키는 '1급 교도'.

그는 시퍼런 불이 이글거리는 환상마저 보게 하는 눈으로 도진이 아닌 자신을 마주한 병사들을 내려다 보았다.

"교나라의 신실한 병사가 적에게 등을 보이느냐?"

"그, 그것은."

병사가 혼이 나간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거대한 공장이자 요새.

그것의 화신이 나타나 내려다 본다면 이럴까 싶은 것이 육주굉이었기에 새하얗게 압도당해 버린 것이다.

웬만한 상황이었다면 이성에 앞서 본능이 그의 시선을 피하여 몸을 돌리고 목숨을 버릴 기세로 적에게 돌진하게 만들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육주굉의 압박에도 지울 수 없는 공포와 존재감의 '소천마'가 뒤에 있었기에 그는 망설였고.

콰드득!

다음 순간 육주굉의 철갑주를 두른 거대한 손이 병사의 머리를 붙잡고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히, 히이익!"

주변의 병사들이 경악하였다.

허나 육주굉은 일말의 동요도 없이, 지체도 없이 손을 털며 말했다.

"교의 은혜를 입은 병사가 믿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건 목숨으로 갚아야 할 중죄다. 이러한 중죄를 계속 범할 자가 있느냐?"

믿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죽을 것이다.

그 협박에 병사들은.

"으아아아아아!!"

"죽어어어어!!"

소천마에게 달려드는 대신 도주를, 극히 소수는 육주굉에게로의 돌진을 택하였다.

뒤를 생각할 여유마저 잃은 상황에서의 선택.

육주굉은 거기에 어떠한 동정도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꾸웅-!

작은 크레이터를 만드는 막대한 힘이 담긴 진각이 땅을 울렸다.

도주하던 이들의 몸이 그 여파에 굳고.

콰득!

달려들던 무인 중 한 명의 머리가 붙잡혀 으스러졌다.

육주굉은 그렇게 머리가 으스러진 시체에 무시무시한 힘과 내공을 담아 휘둘렀다.

뻐억!

날아간 시체에 담긴 힘이 일차로 부딪친 이들을 절명시키고도 모자라 퍼져 나가며 덤벼들던 이들과 도주하던 이들을 모조리 휩쓸며 도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거인이 휘두른 손에 휘말려 수많은 사람들이 쏘아진 것만 같다.

잔혹하기 짝이 없는 그 '초식'에 도진이 손을 들었다.

두웅-!

도진과 소통하는 자연지기가 낮고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울림에 깃드는 이치는 유(柔).

부드럽고 순한 기운이 육주굉의 잔혹하고도 파괴적인 기운에 휩쓸렸던 이들을 받아내 주었다.

도진의 손이 그리는 선을 따라 무형지기가 움직이며 끔찍하게 으스러졌어야 할 이들을 품고 대지에 내려 놓았다.

풀썩.

"아, 아아……."

죽음을 예감하였던 이들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탄식하며 기적에 눈을 적셨다.

소리 죽여 흐느끼는 그들을 지나 도진은 육주굉과의 거리를 좁혀 섰다.

세월이 느껴지는, 주름이 보이는 얼굴.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거대한 육체는 세월에 의한 노쇠를 생각조차 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단련된 육체를 차갑게 빛나는 철갑이 뒤덮고 있다.

움직임에 필요한 관절 등 최소한의 부위를 제외한 모든 곳에 과할 정도로 두터운 철갑을 두른 모습은 이질적이면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특징적인 외견으로 인해 붙은 별호가 철마(鐵魔).

-철마는 인간이 감히 상처입힐 수 없는 무인이다.

위서린을 통하여 들은 무림에서 그를 한 마디로 설명하는 말이 떠오른다.

과연. 실제로 보니 그런 말이 퍼진 게 납득이 간다.

철컥.

"감히 이곳에서 소란을 일으키다니. 자비에 빌붙어 연명하던 것들이 드디어 미쳐 버린 게로구나."

위협적으로 갑주의 쇳소리를 내며 육주굉이 말했다.

도진은 그에 일말의 웃음기조차 없는 얼굴로 답했다.

"한참 잘못 알고 있구나. 이단의 주구야."

"뭐라?"

"오늘은. 이 자리는, 하늘이 무심하기에 패악질을 부릴 수 있었던 너희들의 방종이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음을 선고하는 자리다."

육주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크, 크흐흐. 크하하하하하하!!"

막대한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웃음이 퍼져 나갔다.

본래 이에 노출된 이들이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굴러야 했지만.

"……."

앞을 막아선 도진에 의해 누구에게도 그 웃음 소리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조금 얼굴을 찌푸린 육주굉이 말했다.

"하늘이 무심해 패악질을 부릴 수 있었다고? 이 멸망해 가는 세상에서 그저 욕심을 채우기 바빴던 돼지들을 살처분하고 신세계로의 길을 개척하신 교주님이, 천마신교가 패악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냐? 이단의 수괴야."

이단이 도진을 이단이라 칭하며 주장한다.

종교란 그런 면이 있다.

더 많은 신도가 있는 쪽이 진짜가 되어 버리는.

하지만 도진은 굳이 그런 부분으로 입씨름을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무엇이 옳은지는 명확하고도 극명하게 이미 증명되었으니까.

"너희들이, 너 철마가 진실로 옳다면 어째서. 누구 하나 진심으로 따르는 이가 없는 거지?"

"…뭐라?"

"네놈이 옳다면. 그렇게 힘으로 겁박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진실되게 너의 곁에서 나를 대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아라. 지금 네놈의 주변에 누구 한 명 진심으로 지지하는 자가 있느냐?"

없었다.

"……."

등을 보이고 도망치려 했고 심지어 적이 아닌 자신에게 칼을 들이 밀려 했으니 철마가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또 날려 버렸다.

오히려 도진의 뒤에서 소리죽여 흐느끼는 자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육주굉은 뿌득, 이를 갈았다.

"궤변으로 호도하려 드는구나!"

꽈앙-!

강하게 땅을 즈려밟으며 육주굉이 거리를 좁혔다.

도진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마주 거리를 좁혔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나를 마주하려 드느냐?"

"너 따위를 상대로 나아가는 것 이외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꾸드드득-

육주굉의 주먹이 쥐어지고 무시무시한 힘과 내공이 압축된다.

-결코 철마의 정면에 서서는 안 된다.

이 무림에는 그런 말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격언으로 통했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두 배 이상은 체급 차이가 나는 도진과 육주굉이 정면에서 싸우는 건 결코 좋은 선택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도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꽈앙-!

대놓고 진각을 밟으며 최대의 힘을 담은 일격을 내지르는 육주굉의 주먹에.

꾸웅-!

정면으로 자신의 주먹을 내지른 것이다.

꽈아아아아아앙-!!

여파만으로도 몸이 으스러질 것만 같은 상상도 못할 힘이 격돌하였다.

그 여파에 날려가지 않기 위해 모두가 필사적으로 몸을 숙이고 무언가를 붙잡았다.

그리고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힘이 채 다 해소되기도 전에 모두의 시선이 여파의 근원으로 향했다.

"아, 아아아……."

탄성이 새어 나온다.

후두둑.

으스러진 합금 수투의 파편이 초라하게 떨어져 내렸다.

경악하여 두 눈을 부릅뜬 육주굉을 마주하여, 도진이 한 발 더 내딛으며 차갑게 말했다.

"참으로 하찮고 가벼운 주먹이로구나. 철마 육주굉."

"끄으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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