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1화
"반시진 안에 이곳을 정리하고 공장을 제압하겠습니다."
'천마'의 선언에 작은 키에 순한 인상의 남자, 현랑전 1대주(隊主) 마길준은 눈을 크게 떴다.
눈앞에 있는 이가 진실로 천마의 진전을 이은 인도자라고 인정했지만 아직은, 그 믿음의 깊이가 수십 년 동안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곳으로 인식하였던 공장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반응을 도진은 탓하지 않았다.
대신 미소지으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공장이 그리 쉬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곳의 '공장'은 도진이 살던 세계에서의 공장과는 제법 다른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현대의 공산품을 생산한다는 부분에서는 같았지만 이쪽, 무림에서의 공장은 여기에 군사 요새의 기능이 더해져 있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포털을 통과한 일정 수준 이상의 물품은 고장이 나 버립니다.
위서린에게 들었다.
인간과 달리 물건은 포털을 통과하면 망가진다.
정확히는 무림 세계에서 현대로 이동할 땐 괜찮지만 현대에서 무림 세계로 이동할 때, 재료는 괜찮은데 그 재료로 '만들어진' 물건의 경우 망가져 버리는 것이다.
즉, 휴대폰이나 노트북은 물론이요 심지어 총알마저도 현대에서 무림으로 포털을 통과한 순간 망가져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심지어 옷마저도 기술이라 부를 만한 것이 가미되어 있다면 그 기능이 훼손된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아직 규명하지 못했다.
과학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로 무림 세계가 다른 세계의 이물(異物)을 거부한다는 주술적 논리가 제법 진지하게 민초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
어쨌든 이유를 밝혀내지 못해도 문제는 해결해야 했기에 교나라는 이쪽에서 수급할 수 있는 재료는 이쪽에서, 그럴 수 없거나 최소한의 단위로 저쪽에서 만들어 가져올 수 있는 건 저쪽에서 가져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인프라를 구축하였으니 그것이 잘 닦인 도로와 공장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여 전략 물자에까지 이르렀으니 통신 장비에 폭탄과 총까지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생산지는 물론이요 생산자들마저 엄중한 감시와 관리하에 놓였고 생산품 또한 철저하게 취급되었으니 아예 이를 위한 군사 요새로서의 성격까지 띠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다르다.
그들의 가장 앞에 서서 압도적인 무력으로 지옥철마대를 쳐부순 소천마라 하여도.
신세계의 무시무시한 이물들로 무장한 '군대'가 지키는 이물의 요새를 함락하는 모습을 마길준을 포함한 교도들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지옥철마대가 비장의 무기처럼 사용하는 총을 기본으로 모든 병사가 무장하고 있으며 그 이상의 무시무시한 이물마저 사용한다.
요새는 또 어떤가.
은신의 고수가 채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들켜 정확한 위치에 강렬한 빛이 쏟아지고 총알에 꿰뚫려 비참하게 죽는 게 반복된 뒤로는 누구도 잠입을 시도할 수 없게 되었다.
공선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데 잠입조차 불가능한, 그들에게 있어선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교나라의 요새.
도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천마신교는 공장을 무너뜨려야만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곳을 무너뜨릴 겁니다."
확신을 담아 도진은 말하며 하늘을 보았다.
완연히 어둠이 내린 밤.
달마저 어둠에 얼굴을 감춘, 최고의 밤이었다.
* * * *
그것은, 차라리 건물이 아닌 기괴하게 살아 숨쉬는 거대한 괴물처럼 보였다.
고개를 한껏 꺾어야만 끝이 보일 만큼 높이 치솟은 벽은 한 치의 틈도 없이 둘러쳐져 있었고 그 안에서 구우웅, 카카캉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하늘로는 본능적으로 숨을 삼키게 만드는 짙은 매연이, 강으로 이어지는 수로로는 시커먼 오염수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으니 말 그대로 세상을 오염시키는 거대한 괴물이 생명 활동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그런 괴물을 지키기 위하여 완전 무장한 무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으니 더욱 아이러니한 광경이 만들어진다.
이곳이 교나라의 공장. 그것도 손꼽히는 경계가 삼엄한 요새였다.
24시간 가동하는 공장은 그렇기에 한시도 고요한 순간이 없다.
경계 또한 느슨해지는 법이 없고 어둠이 내리는 밤에 더욱 주의를 요하지만.
"저게 뭐야?"
"어?"
후우웅-!
그 주의가 돌연 미사일처럼 날아오는 거대한 바윗덩이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
꽈아아아앙-!!
"으아아아악!"
"비, 비상!!"
신세계의 문물인 '콘크리트'가 섞인 성벽은 웬만한 집을 한 방에 박살낼 만큼 거대한 바윗덩이가 때려박혔음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웨에에에에엥-!!
하지만 그 폭음과 충격에 의한 진동만으로도 잘 훈련된, 그러나 실전 경험이 부족한 무인들을 혼란에 빠뜨리기엔 충분했다.
꽈아아아아앙!!
심지어 바윗덩이의 습격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몇 번이나 이어졌다.
"습격인가?!"
"모, 모르겠습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공성전을 의도한 공격이라면 투석기가 보여야 하는데 투석기는커녕 병사들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저 멀리서 거대한 바위가 포탄처럼 날아들 뿐이고 평범한 병사가 아닌 무인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넓은 시야와 색적 기계로도 어둠 속에서 공격하는 자를 찾을 수 없었다.
때문에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무인들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일단 요격한다!"
"예!"
그렇게 몇 번이나 성벽에 바윗덩이가 꽂히고 나서야 가까스로 나름의 경험을 쌓은 현장 지휘관이 명령을 내렸고 날아드는 바윗덩이의 요격을 결정했다.
웬만한 무인들로는 엄두도 못낼 일이었으나 그들에겐 신세계의 이물들이 있었으니까.
허나 그들은 그것을 이용하지 못했다.
파지지지지직-!
"무, 무전이 되지 않습니다!"
"뭐야?!"
바윗덩이에 섞여 날아든 'EMP탄'이 터져 무전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지휘관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손꼽히는 중요도의 공장을 지키는, 그것도 현장에서 병사들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답게 그저 신세계의 이물이라는 단어밖에 모르는 이들과 달리 현대의 과학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는 그였다.
때문에 EMP탄이 무엇인지 알았고 이것의 존재는 곧 '전쟁'을 떠올리게 만들 만큼 본격적인 습격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미친 건가?'
'이단 세력'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귀중하게 취급되는 EMP탄을 사용해 다른 곳도 아닌 공장을 습격했다.
지금껏 없었던 일이었고 그동안 유지되던, 설령 거짓되었다 해도 '평화'를 깨 버리는 행위였다.
여기까지 판단한 현장 지휘관의 얼굴이 한껏 굳으며 보고에 나서려 하였으나.
스으으…….
'……!'
돌연 아득해지는 정신에 눈이 크게 뜨이고 무릎을 휘청였다.
'독!'
웨에에에에……
아플 정도로 계속되던 경보음이 멀어졌다.
그 경보음과 어둠에 섞여 흘러든 독이 우왕좌왕하던, 그것을 수습하던 지휘관들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 억지로 부릅뜬 눈에 비쳤다.
'어떻게.'
제아무리 경보음이 시끄럽더라도.
EMP탄에 의해 전자 경비 체계가 마비되었더라도.
그때를 대비한 이중삼중의 경계를 뚫고 몰래 독을 살포하는 게 정녕 가능하단 말인가.
허나 독에 완전히 잠식당한 육체는 그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고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였고 이내 시커먼 바닥으로 정신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눈꺼풀이 닫히기 전.
'독…마전?'
그는 '毒魔殿'이라 수놓인 무복을 보았으나 생각이 더 이어지지 못하고 고개를 처박았다.
* * * *
"근무자들을 격리한다."
"예."
공장 내부의 생산 시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관리 체계를 갖춘 곳답게 관리자들은 즉시 교육받은 대로 움직였다.
혹여 혼란한 중에 기밀을 빼돌리는 자가 없도록 근무자들부터 격리시키기 위하여 행동한 것이다.
순순히 따른다면 상황이 끝날 때까지의 격리로 그치겠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시킨다면, 수상한 행동을 한다면 죽인다.
한낱 5등 교도 따위의 목숨보다 나라의 기밀이 더 중요하니까.
5등 교도가 생산하는 것들 중 무엇 하나, 사소한 재료조차 그들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들은 관리자만이 이용 가능한 루트를 이용하여 근무지로 향했고 이내 문을 하나 남겨둔 곳에서.
차락.
가장 앞에서 걷던 선임자가 시스템이 기능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소지하였던, 문을 여는 데 사용했던 열쇠를 떨어뜨렸다.
"……?"
일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인이었으니까.
실수로라도 비상사태에 손에서 열쇠를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스으-
그리고 채 세 호흡이 지나기도 전에 모두가 이유조차 모르고 제압당한 뒤에야.
"악, 귀……!"
그들은 사신의 숨결이 그들의 몸을 잠식하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퍼걱!
장소유는 감히 사신의 이름을 모욕하는 칭호를 입에 담은 자들의 단전을 망설임없이 부숴 버렸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의 부탁에 따라, 안에 갇혀 혹사당하던 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열쇠를 집어들었다.
* * * *
꽈아앙-!
몇 개나 겹친 폭음이 벼락처럼 어둠이 내린 밤하늘을 뒤흔든다.
투박한, 그러나 기능에 충실한 소총들이 단 한 명을 노리고 불을 뿜은 것이었다.
그 화망(火網)의 대상이 된 도진은 그러나 부드럽게 걸음을 내딛으며 손을 저을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퍼퍽!
"끄으아아아악!"
총이란 건 단번에 사람의, 심지어 무인의 목숨마저 앗아가는 무서운 병기이지만 경계를 넘어선 무인을 상대로는 오히려 무력해지는 면이 있다.
반드시 총구가 향하는 곳으로 쏘아진다는 것, 방아쇠를 당겨야만 한다는 것 등.
모션이 뻔히 보이고 어디를 칠지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텔레폰 펀치'와 같은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야와 감각 안에서의 총격은 대비하고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다.
그리고 도진은, 이것을 단순히 피하는 것을 넘어 되돌려 주기까지 해 버렸다.
퍽!"
"아아아아악!"
"이게, 이게 어떻게……."
혹독한 훈련을 받은 병사가 된 무인이 넋이 나가 중얼거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쏘아진 총알을 되돌려 주는' 일 따위가 가능할 거라고는, 직접 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단 한 명.
단 한 명이 그렇게 총알 세례를 무력화하며 그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상황은 차라리 악몽이라 하기에도 터무니 없었다.
신안(神眼)을 뜨고 연신극기공으로 단련된 육체로 자연지기와 이어진 도진이 선(線)의 이치를 경계를 넘어선 영역에서 구사하여 일으킨 이적은 그토록 경이적이었다.
"물러서지 마라!"
"목숨을 바쳐 죽여라!!"
주요 시설을 지키는 자들답게, 신실한 믿음을 품은 자들답게 흔들리긴 했으나 무너지지 않고 덤벼들었지만 그것은 불에 몸을 던지는 부나방과 같이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퍼퍼퍽-!
도진의 단 한 수조차 그들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을 꿰뚫은 한 수에는 천마기가 담겨 있었으니.
"끄으아아아아악!!"
자비없이 혈도를 내달리며 짓이기는 천마기에 의해 그들은 더 이상 무인이 아니게 되었다.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군대를 무너뜨리며 나아가는 도진은 감각을 넓혀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결코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괴물의 아가리가, 공장의 입구가 열려 있다.
경비 시스템이 무력화되고 위취련과 위연서가 이끄는 독마전이 경비 병력마저 무력화시키고서 문을 연 것이다.
그렇게 열린 문을 통하여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도진이 걸어온 길을 따른다.
독마전과 장소유는 여기에 합류하는 대신 괴물의 내부를 어둠 속에서 내달리며 무력화시켜 나가고 있다.
조금 달라졌지만 계획대로, 다.
천마신교는 포털을 넘어와 최대한 빠르게 이 공장을 제압하려고 했으니까.
교나라가 은밀히 숨겨 두었던 포털의 존재를 알고 감시하고 있었기에 정비조차 하지 못하고 이렇게 급히 기습을 하게 되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다.
달조차 모습을 감춘 밤.
독마전과 장소유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남은 장애물은 이제 하나.
꽈아아아앙-!!
착지의 충격으로 크레이터가 만들어질 정도로 육중하고도 거대한 남자.
"네놈들이, 미친 게로구나."
공장을 지키는 경계를 넘어선 고수.
철마(鐵魔) 육주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