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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49화 (649/741)

649화

교나라의 중심은 '천마전'이 있는 수도다.

하지만 나라를 지탱하는 기반은 수도가 아닌 나라의 외곽에 집중되어 있었으니 논밭과 '공장'이 그곳에 분포해 있었기 때문이다.

붕괴로 둘러싸여 고립된 나라는 그러나 다행히도 호수를 품고 한 면이 바다에 접한 드넓은 대륙이었고 비옥한 토지가 상당했다.

덕분에 국민들이 먹을 충분한 양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고 그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 4등 교도들이었다.

4등 교도.

명나라로 치면 평민에 해당하는 계급이다.

나라의 소유인 토지를 빌려 경작하는 농민, 소작농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실한 교도'라면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다.

그리고.

토지를 빌리지 못한 소수의 4등 교도와 그 아래, 죄를 짓거나 신앙을 증명하지 못한 자들로 이루어진 가장 아래에 해당하는 5등 교도들이 일하는 곳이 바로 공장이었다.

공장.

교나라를 건국하였고 하늘을 대신하여 그들을 이끄는 절대적인 존재인 교주, 천마가 그들을 이끌고 곧 향하게 될 신세계(新世界)의 문물을 생산하는 곳.

본래는 사람이 아닌 '기계'라는 것이 대신하여야 할 일을 죄인들에게 하도록 함으로써 교화의 기회를 주는 곳이라 하였다.

그 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곳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으니 공장에서 교대로 12시간 노동을 강제당하는 5등 교도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근처에 제대로 된 규모의 경작지가 없어 식량의 자급자족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배급에만 의존하여야 했고 그래서 더욱, 그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교의 개도관(開道官)의 영향력이 극대화되는 곳이다.

식량 배급의 일정과 양을 정하고 개도에 따르지 않는 자를 재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이곳에서만큼은 교주에 버금가는 권한을 가진 자.

"내가 분명히 모두 모이라고 했을 텐데! 내 말이 우스운가?!"

바로 그 자의 노성(怒聲)으로 고요하던 마을이 들썩이고 있었다.

쉬익, 쉬익.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 자의 몸은 비대하였다.

무림(武林)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특수한 무공에 의한 것이 아닌 순수한 나태와 과한 식욕으로 인한 결과인 그의 몸은 차라리 죄악이었고 화려한 관복마저 가치가 다 바래 버렸다.

만약 그가, 화려한 관복이 상징하는 개도관의 신분이 아니었다면 결코 고개를 들지 못하였을 거다.

허나 그는 신분 이전에 후안무치하여 부끄러움도 모르고 당당히 단상 위에 서서 시뻘개진 얼굴로 소리치는 것이다.

내가 불렀는데 어찌 빠진 놈이 있냐고.

그의 분노에 모였던 이들 중 순한 인상에 작은 키의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개도관. 시간이 촉박하여 아직 복귀하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촉박? 너희들이 게으른 거겠지! 변명하지 마라!!"

"……."

몇몇의 눈동자에 분노가 어린다.

하지만 그것을 표출할 상황이 아니기에 고개 숙여 그 분노를 감추었다.

작은 키의 남자가 다시 말했다.

"죄송합니다. 개도관께 드릴 채소를 가꿀 밭을 일구는 데 너무 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곧 돌아올 테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평소라면 이 정도로 충분한 일이었다.

개도관은 탐욕스러웠고 이 오지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싱싱한 채소를 고기에 곁들여 먹기를 즐겼으니까.

그에게 바칠 채소를 가꿀 밭을 일군다는 명목으로 사소한 모임에서는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어디서 미친 소리를 하고 있어!!"

뻐어억!

꽤애액,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개도관이 돌멩이를 날려 남자의 머리를 때렸다.

주르륵.

피가 흘렀고 돌멩이에 머리를 맞은 남자는 손을 파르르 떨었다.

"너희 믿음이 부족한 자들은 소집령에 무조건적으로 응해야 한다는 규율이 있거늘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느냐!!"

갑자기 저 유리한 대로 주무르던 규율을 논하며 발작하는 게 심상치 않다.

때문에 남자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슬쩍 고개를 들고자 하였을 때.

후욱-

"……!"

돌연 짙은 피 냄새와 광기가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이었다.

"오오, 많이 모여 있군."

"여기가 이단이 숨어 산다는 그 마을인가?"

'지, 지옥철마대!'

남자의 몸이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그만이 아니었다.

중앙에 모인 모든 주민들은 물론이요 평소 하늘 아래 무서울 게 없는 것처럼 굴었던 개도관마저 볼살을 푸들푸들 떨었다.

"워, 원 대협."

"대협은 무슨."

개도관이 억지로 자세를 갖추고 대협이라 부른 사내는 그러나 건들거리며 피식 웃었다.

"이, 이렇게 일찍 오지 않으셔도 제가 다 준비해 두었을 것을요."

"무얼. 개도관 나리에게 그런 수고를 끼칠 수는 없지."

"시, 식사와 대접할 아이도 아직 준비가."

"됐소.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되는 것이니."

땀을 뻘뻘 흘리며 하는 소리를 모조리 치워 버린 지옥철마대의 백인장(百人長) 원강주의 시선이 단상 아래 모인 주민들에게로 향한다.

그가, 그가 이끄는 아흔아홉의 악귀들이 원하는 건 돈이나 음식 따위가 아니다.

성욕보다도 우선하는 것.

피(血)다.

그 피를 볼 수 있는 명분이 바로 아까, 생겼다.

"개도관."

"예, 예."

"소식을 들으셨다시피 갑자기 나라가 관리하는 자원에 이상이 생겼소. 나라를 좀먹는 이단의 짓이지. 그리고 여기에, 그 이단의 일부가 숨어 있다는 게 밝혀졌단 말이오."

"예."

대답하는 개도관의 표정이 썩었다.

이곳의 책임자는 그이고 그가 책임지는 곳에서 이단이 나오는 건, 아예 욕심을 버리고 이 구석에서 왕 노릇을 하는 것에 만족하였다 해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개도관의 사정은 알 바가 아닌, 그의 체면과 권한 또한 알 바가 아닌 원강주는 지체없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나섰다.

스으…….

후욱, 피 냄새가 단상 아래 주민들을 훑는다.

"으아아앙!"

그리고 주변 환경에 민감한 어린 아이 하나가, 울고 말았다.

측은지심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악귀가 된 원강주는 그러지 않았다.

"무언가 켕기는 게 있는가 보군?"

"아, 아닙니다!"

다급히 아이를 감싸고 나선 어머니가 외쳤다.

그리고 개도관과 이야기를 나누던 키 작은 남자가 이어서 말했다.

"조, 조금. 아이가 심약하여서 그렇습니다. 결코 불손한 아이가 아닙니다."

원강주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그런가? 그런데 지금 보니 울음을 바로 그쳤군? 자네가 나서니 울음을 바로 그치다니, 사악하기 그지없군?"

"……예?"

따라갈 수 없는 이야기에 남자가 되묻고 말았다.

원강주가 입을 주욱 찢듯 웃었다.

"자네를 나서게 하고 자신은 뒤로 빠지지 않았나. 의심을 자네에게 향하게 하려는 수작이니 이단의 세작이 분명하잖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원강주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네. 저 아이를 죽이게."

"……!!"

남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저 세작을 죽여서, 자네의 신앙을 증명하게. 어렵지 않지?"

"무, 무슨 소리를."

"우리는 이곳의 세작을 잡으러 온 거야. 모조리, 말이지. 하지만 그걸 일일이 찾아내는 건 번거롭잖아? 그러니까 이러자는 거야."

"한 명씩 저 세작을 찌르는 거야. 그걸로 신앙을 증명할 수 있다면 세작이 아닌 거지. 확실하고도 간단하지 않은가."

미쳤다.

저 놈은 정말로 미쳤으며 이미 사람이 아닌 악귀였다.

덜덜덜덜.

남자의 손이 떨렸다.

남자는, 저 아이의 아버지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 마을의 진실된 천마신교를 믿는 이들을 이끄는 지도자이기도 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지옥철마대는 악귀였으나 자신들이 한 말은 지키는 자들이기도 했다.

미쳤으니까.

내뱉은 말을 지킴으로써 더욱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그는 가혹한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다.

소중한. 소중한 자신의 아이를 희생하여 마을과 동지들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

"……."

울분을 참지 못하고 피가 배어나는 주먹을 떠는 동지들과 함께 옥쇄할 것인가.

어미의 품에 안겨 목소리를 죽인 아이를 눈에 담는다.

이성적으로는.

감정을 배제한 '이익'을 따지는 방향으로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애초에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찌, 어찌 인간이 그럴 수 있겠는가.

아버지가 아이를 어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는. 그를 따르는 많은 이들을 이끌어야만 할 책임이 있는 지도자로서의 의무를 버려서도 안 됐다.

한순간에 생명이 모조리 타들어가는 듯한 그의 모습에 지옥철마대는 그야말로 악귀의 얼굴로 웃었다.

어느 쪽이든.

양이 되든 질이 되든 그들의 뒤틀린 욕구를 채워주는 그림을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재촉하듯.

철컥.

한순간에 생명의 가치를 한없이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벼락'이 겨누어졌다.

"흐읍."

민초들이 숨을 삼키게 만드는 그것은 총(銃).

신세계에서 넘어온 재앙이며 수십 년을 고련한 무인의 목숨마저 찰나에 앗아가 버리는 물건이다.

지옥철마대원 중 일부가 그것을 민초들에게 겨누었고 원강주가 말했다.

"자네들이 하기 힘들다면 우리가 하지. 세작은 우리가 처리하겠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세작을 찾기 위한 번거로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겠군."

선택을 재촉한다.

뿌득-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하늘이 없다는 걸 안다.

그러니까 '권선징악' 따위는 기대할 수 없고 악귀들의 수작에서 누구도 그들을 구해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결국,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남자가 결론을 내리려 했다.

그리고.

"그러지 마세요."

작지만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남자의,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으려는 남자의 정신을 붙잡았다.

"누구?"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근원으로 향했다.

저벅.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그러나 그럴 리 없는, 낯선 젊은 무인이 걸음을 옮겨 남자의 곁에 가까워졌다.

"웬놈이냐?"

원강주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그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무인으로서의 본능이 강렬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젊은 무인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남자마저 지나쳐 어미의 품에 안겨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떨고 있던 아이의 등을 쓸어 주었다.

"아버지가 아이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게 옳은 일이니까."

그리 말하는 젊은 무인은 그러나 아이를 포기하려 했던 남자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을 이끄는 사람으로서의 의무도 저버려선 안 되는 거겠죠."

"그러니까, 이건 둘 다 지켜져야만 하는 거겠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지?"

"미쳐 버린 놈인가."

일주일이 넘도록 피를 보지 못하여 광기에 절어 버린, 그것을 다 제어하지 못한 지옥철마대의 악귀 몇이 이죽였다.

그들과는 다른 입장이지만, 남자를 포함한 천마신교를 믿는 이들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젊은 무인의 말은 지극히 정론(正論)이다.

허나 세상이 그렇게 정론을 완벽하게 지키며 살 수 있는 곳이던가.

더더욱 그들은, 둘 중 하나조차 온전히 이룰 수 없는 입장이거늘.

"거슬린다!"

꽈앙-!

그리고 충동을 참지 못한 지옥혈마대의 대원이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재미있는 광경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자를 두고 보지 못한 것이다.

"……!!"

많은 이들의 몸이 굳었고 눈이 커졌다.

총이란 건 지극히 찰나에 목숨을 앗아 버리는 것이라 이미 결과가 확정되어 버린 것을 확인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민들의 시선이 느리게,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느라 삐걱이며 젊은 무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참지 않아도 됩니다."

쏘아진 탄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담담히 말하는 젊은 무인을 보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파고든다.

두웅-

그의 존재감이 세계에 녹아들고 마치 세계가 계시를 내리는 것처럼 주민들에게 고하였다.

"하고 싶은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걸 하세요."

"나 김도진이. 고금제일천마 위지혁의 진전을 이은 소천마 김도진이 그럴 수 있도록."

"당신들의 가장 앞에 설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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