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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47화 (647/741)
  • 647화

    [러시아, 한국에 도발.]

    [정말로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인가?]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게 흐르기 시작했다.

    금화의 건을 빌미로 러시아가 한국을 도발한 것이다.

    -러시아의 기업인 금화의 재산을 불법으로 빼앗은 한국은 그것을 반환해야 할 의무가 있다.

    …는 명분이었다.

    세세하게 따지고 들면 억지 주장이지만 어차피 이런 것은 구색 갖추기에 불과했으니 강대국인 러시아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 러시아의 이번 도발은, 너무나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전쟁의 불씨를 크게 키운 러시아는 지금 나쁜 의미로 세계 정세의 중심에 있었다.

    무림특별법에 문제가 있으니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시작으로 하여 무림 자체를 국가의 아래에 두고 엄정한 법 아래 관리하여야 한다는 사상을 펼쳤다.

    무림특별법에 반대하는,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의 선두에 선 나라가 지금 러시아였으며 온갖 이유로 그에 동조하는 나라들이 러시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념대립으로 세계의 진영이 나뉘게 된 원인 또한 러시아인 것이다.

    그 러시아가 국제 사회에서, 그리고 무림에서는 천마신교로 인해 더더욱 존재감이 큰 나라이자 무림특별법에 찬성하는 나라인 한국을 도발하였으니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일을 처리하였고 천마신교 또한 불법적으로 금화의 재산을 취득한 경우가 없다.

    -오히려 무형독의 간부라는 혐의가 있는 한유성 부회장의 조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러시아는 멈춰야 한다.

    한국은 즉시 성명을 내고 러시아를 규탄하였다.

    여기에 일전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사건을 저지른 예무르와 동맹을 맺은 러시아를 벼르고 있던 미국을 필두로 한 여러 나라들이 힘을 보탰다.

    러시아에 대한 각종 제재 강화를 검토하였고 한유성이 당당하다면 혐의를 벗을 수 있도록 조사에 참석하라고도 했다.

    이에 대한 러시아의 대처는.

    [러시아. "부당한 압력에 결코 굴하지 않을 것.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

    다시 한 번 전쟁의 언급이었다. 심지어.

    [러시아의 핵잠수함 종적 감춰…….]

    그것이 말뿐이 아니라는 듯 핵잠수함마저 움직여 핵전쟁을 시사하기까지 했다.

    남 이야기였던 '전쟁'이, 그것도 핵마저 피부에 와닿는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 시기에.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서린이 이단 세력과의 '전쟁'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려왔다.

    * * * *

    한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눈에 띄는 뉴스 하나가 있었다.

    [프랑스의 명장 안토니오 덴젤, '소천마의 제자' 클로에 덴젤과 함께 한국 방문.]

    -오..

    -이건, 그건가? 무력 시위?

    민감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덴젤 공방의 명장이자 경계를 넘어선 고수인 안토니오 덴젤이 클로에 덴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으니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추측은 틀리지 않았으니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안토니오 덴젤은 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다.

    다만, 의도가 그것 하나만은 아니었다.

    저녁.

    안토니오 덴젤은 딸과 함께 천마전 내에 마련된 저녁 식사에 참석하였다.

    서소담에 윤상미, 우서진, 그리고 위연서와 장소유가 함께 한 자리였다.

    무언가를 결심한 면면을 지나 안토니오 덴젤이 도진에 시선을 멈추고 물었다.

    "클로에도, 데려갈 생각인가?"

    무뚝뚝한. 그러나 그 무뚝뚝함으로 결코 감춰지지 않는 딸에 대한 걱정이 느껴진다.

    때문에 도진 또한 진중한 얼굴로, 감정을 가득 담아 대답하였다.

    "네. 클로에도 어엿한 천마신교의 일원이니까요."

    며칠 전.

    위서린이 저쪽 세계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알리면서 천마신교가 분주해졌다.

    계획.

    저쪽 세계로 넘어가 이단 세력을 친다는 바로 그 계획의 준비가 드디어 끝난 것이다.

    준비는 이미 모두 마쳐 두었고 실행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으니 거침없이, 브레이크 없이 계획이 진행되었고 그 안에는 도진의 제자인 클로에 덴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클로에 덴젤이 저쪽 세계로 함께 넘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고 아버지로서 안토니오 덴젤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도진은 그런 안토니오의 걱정을 지극히 일부나마 이해하였다.

    "저 또한, 클로에가 위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제 선에서 끝내고 싶죠."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마음일 겁니다."

    "이기적인 마음."

    "예. 안토니오, 클로에 또한 어엿한 한 사람의 무인이고 천마신교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클로에를 내 생각만으로 이 중대한 일에서 배제하고 숨어있기를 바라는 건 나의 욕심이지 않을까요?"

    "…그렇군."

    잠시의 간격을 두고 안토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간격동안 마주했던 클로에와의 눈을 통하여 많은 감정을 주고받은 결과였다.

    "언제까지고, 내 품에 둘 수만은 없는 거겠지. 그래. 하지만."

    안토니오의 강렬한 시선이 다시 도진을 마주한다.

    "나 대신 클로에의 곁에 있어 줄 자네가, 꼭 클로에를 책임져 줘야 해."

    안토니오는 이번 계획에 함께하지 못한다.

    급박하게 흐르는 이쪽 세계의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으니까.

    저쪽 세계의 이단을 치는 동안에도 이쪽 세계의 시간은 흐르고 정세 또한 변한다.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안토니오와 같은, 무력만이 아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필요한 것이다.

    도진은 딸에 대한 걱정을 억누르며 그 역할을 맡아 준 안토니오에게 진심을 다하여 답하였다.

    "네. 절대로, 그 책임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겁니다."

    * * * *

    결행일이 되었다.

    하오문이 전력을 다하여 감춘 모처의 내부.

    도진의 곁으로 함께할 이들이 모였다.

    진천대의 진천공(震天功)을 이은 암산서가의 서소담.

    한천검공(翰天劍功)을 이은 윤상미.

    독마전(毒魔殿)의 위취련과 위연서.

    불사마(不死魔)의 불사마공(不死磨功)을 이은 클로에 덴젤.

    도진에게서 천마신교의 진전을 이은 이들이 1차로 위서린, 그리고 장소유와 함께 포털을 넘어가게 되었다.

    무거운 고요가 내려앉은 공간의 가운데엔 기이한 술진과 부적으로 둘러싸인 장소유가 있었다.

    눈을 감고 법기(法氣)를 일으킨 채 입술을 작게 달싹이는 그녀는 저쪽 세계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귀에는 들리지 않는, 술진과 부적으로 만들어낸 통로를 이용하여 법기로 주고받는 일종의 전음.

    이 전음을 통하여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마커로 삼아 포털을 잇는 것이 기본이다.

    다만 지금은 이미 활성화된 포털을 은폐하였던 주술을 해제하고 사용하기 위한 작업을 위하여 대화하고 있다.

    모든 준비를 끝낸 장소유가 눈을 뜨고 나직이 말하였다.

    "시작하겠습니다."

    "네."

    도진이 답하였고 장소유가 손에 들고 있던 홍괴산의 킬 스위치를 발동하였다.

    화륵-

    법기로 일으킨 불이 작게 일어나며 붙어 있던 괴황지가 타올랐고 그것으로 킬 스위치가 발동하였다.

    츠츠츳-

    무언가 기이한 기운이 퍼져 나갔지만 여기서 그 외의 어떤 변화를 관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저쪽 세계에서는 발전소가 멈춘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났을 터.

    지체하지 않고 장소유는 다시 눈을 감았고 법기가 마치 크게 일어난 불처럼 강렬하게 허공에 일렁였다.

    츠츠츠츠츳-!

    '……이게.'

    도진의 신안(神眼)이 깊어지며 드러난 포털을 담는다.

    지금껏 전혀 인지하지 못하였던, 인간이 인지하기엔 너무나 아득하였던 어떤 '벽'이 포털을 통하여 경계를 넘어서고 그 너머로 확장하는 도진에게 인식된 것이다.

    필설로 형용하기엔 그것이 너무나 깊고 거대한 이치를 담고 있다.

    볼 수는 있으나 무엇인지 인지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다.

    다만 현대의 과학이 논하던 '블랙홀'이 단편적으로나마 그것의 위상을 설명할 수 있게 하였다.

    츠츠츠츠츠-

    검은색이 아닌 푸른색의 포털. 마침내 드러난 다른 세계로의 길.

    "……."

    마침내, 세계 단위의 싸움을 시작해야 할 순간이었고 그에 걸맞는 무게를 가진 긴장감이 내려앉는다.

    저벅.

    그 긴장감을 가르며, 도진이 첫 걸음을 내딛었다.

    "갈까요?"

    "응."

    그리고 그 뒤를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따랐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천마신교의 출진이었다.

    * * * *

    스륵-

    그것을 무어라고 해야 할까.

    온통 푸른 공간이 마치 물 속을 통과하는 듯한데 현실적인 감각이, 피부에 와닿는 감각이 전혀 없다.

    그리고 다음 순간.

    휘이이…….

    찰나에 완벽하게 잃었던 현실의 감각이 온몸을 스치고 도진은 저쪽 세계, 무림의 땅 위를 밟고 있었다.

    "아……."

    저도 모르게 흘린 목소리의 근원으로 시선이 향한다.

    포탈의 너머. 발을 딛고 선 곳.

    본래의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은 무성한 수풀 사이 공터에 고난의 흔적이 가득한 무복을 걸친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특유의 문양을 새긴 무복을 통하여, 느껴지는 무공의 특색을 통하여 도진은 그들이 천마신교의 교도임을 바로 알았다.

    그것도 현랑전(賢狼殿)의 무인들이었다.

    이단이 아닌, 피냄새가 짙은 혈랑(血狼)이 아닌 현명한 늑대의 후예들.

    그러나 도진은 바로 미소지을 수 없었으니.

    "천마의 후예를 뵙습니다."

    "천마의 후예를 뵙습니다."

    고개 숙여 예를 갖추는 그들에게서 불안을 보았기 때문이다.

    도진보다 차라리 뒤에 선 위서린과 장소유에게 예를 갖추는 느낌이 강하다.

    그것은 도진에게서 확신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허나 도진은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생면부지의 도진을 그 자리에서 천마라 믿고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건 차라리 맹신(盲信)이요 광신도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천마신교는 그런 맹신도이자 광신도의 집단이 아니다.

    진실로 믿을 수 있는 사람.

    가장 앞서 걷는 그 등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어야 처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위지혁의 제자인 도진에게는 그래야만 할 의무가 있었다.

    쿠르르르르-!

    "아……!"

    허나 그러기 전에 요란한 소음이 공터를 때렸다.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고 이내.

    푸르르르…….

    수풀을 헤치며 기마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게 빛나는 갑주를 두른 말과 무인들의 기세가 흉흉하고 또 위협적으로 일행을 찍어누른다.

    철컥-!

    그들이 일제히 거대한 창을 겨누었다.

    항거할 수 없는 폭력이 돌진을 예고한다.

    "키, 키히힛."

    철저하게 짓이긴다.

    그것을 기대하는 번들거리는 눈들.

    어차피 심문은 그 뒤에 숨이 붙어 있는 몇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지옥철마대."

    현랑전의 무인 중 하나가 그들의 이름을 짓씹듯 입에 담았다.

    지옥철마대(地獄鐵馬隊).

    '천마신교'에 반기를 든 이단자를 이름 그대로 지옥으로 끌고 가는 철마를 탄 악귀들.

    '오늘이, 나의 차례구나.'

    그는 오늘이 목숨을 걸어야 할 날이라 생각했다.

    먼저 간 동료들이 그러했듯.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 당당하게 맞서 싸우다 생을 다할 날이라고.

    저벅.

    하지만 그는 곧 어떤 이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 걸음 소리는 크지 않았다.

    지옥철마대처럼 거대하고도 흉포한 기세를 담고 있지도 않았다.

    저벅.

    하지만, 하지만 본능적으로 그 등을 응시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있었다.

    어두운 밤 산길을 걸어야만 하는 이가 길잡이가 되어줄 선명한 별을 보는 것처럼.

    추위와 불안에 떠는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따스한 온기처럼.

    저벅.

    그리고 이내 그 온기가, 세상을 가득 채운다.

    "아아……."

    그는 환희하였다.

    천마신교의 교도인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두웅-

    천마의 군림하는 걸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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