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644화 (644/741)

644화

충격적인, 믿을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했던 회견의 내용은 우선 속보로 핵심만 간략하게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회견이 끝난 지금 정리된 기사를 준비해야 할 타이밍에 기자들은 또 속보를 내야 했으니 이번 사건에서 소천마 다음으로 핵심 인물이었던 한유성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금화의 부회장.

사실상 회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무림에서도 금군(金君)이라 불리며 한국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

소천마 이전 대통령 이상으로 한국을 대표하던 인물.

그런 사람이 사실은 무형독의 간부였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세계의 관심이 한유성에게 몰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한유성이 사라져 버렸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긴급히 구성된 태스크 포스의 책임자가 버럭 소리쳤다.

무림전담타격대 소속의 무인들만이 아닌 무림맹의 무인들까지 모인 자리였으나 워낙 충격적인 사안이라 소리친 이나 그걸 듣는 이들이나 예의를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소천마 쪽에서 완벽하게 제압했다며?"

"……예."

그들은 소천마를 대표로 하는 천마신교에게서 한유성의 신병을 인도받았다.

그리고 그때의 한유성은 겉보기에 내공 한 톨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제압당한 듯 보였다.

-가능한 선에서 더 완벽한 조치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소천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다만 그 제안을 이행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말만 믿고 확실한 근거 없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금화의 부회장'에게 근육이완제 등의 조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때문에 그 이상의 조치는 하지 않고 우선 격리 병동에 입원시킨 뒤 촘촘하게 요원들을 깔아두는 선에서 지켜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 상태서 지금 세상을 뒤집어 놓은 소천마의 기자 회견이 진행되는 사이.

-하, 한유성 부회장이 사라졌습니다!

한유성 부회장이 사라졌다는 보고가 들어와 버린 것이다.

관련된 모든 이들의 얼굴이 핏기가 싸악 빠져 하얗게 돼 버렸고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상황에 패닉에까지 빠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곧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만 한다는, 아주 조금만 과장을 해도 목숨이 걸려 버리는 사태에 필사적으로 대처를 시작했다.

"경계에 빈틈은?"

"…없었습니다."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은 건 찔리는 게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말로 빈틈이 없었나 철저하게 의심을 했기에 있었던 텀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침실 안에 인원을 배치하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그보다 확실하게 사각지대 없이 CCTV를 설치했다.

한유성은 경계를 넘어선 고수.

사람보다 오히려 CCTV를 설치하는 게 더 확실했기에 한 조치였다.

일부러 창문이 없는 특수 목적의 1인실을 썼고 유일한 출입구인 문 앞에도 CCTV와 함께 정예 요원을 배치했다.

그뿐인가.

거기서부터 이어지는 모든 경로에 무림전담타격대와 무림맹의 정예를 철저하고도 정교하게 배치했으니 누구 한 명에게만 문제가 생겨도 전체가 인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유성 본인에게나 제약을 걸지 않았을 뿐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런데 한유성이 사라졌다.

그것도 CCTV로 보고도 못 믿을 형태로.

그들은 무려 100배나 느리게 당시 CCTV 화면을 반복 재생해 보았다.

정신을 차린 듯 한유성이 눈을 떴고 돌연 이불을 뒤집어 썼다. 그리고.

훅-

이불이 꺼지며 한유성이 사라졌다.

이게 전부였다.

이불을 덮었는데 사람이 사라졌다.

마술도 특수 효과도 아닌 분명한 현실이었으며 제아무리 눈이 빠져라 화면을 살펴도 무엇 하나 보이는 게 없다.

"…금화가 순간이동 기술을 숨겨 두고 있었나?"

"……."

하도 답답해서 그런 헛소리를 하는데 누구 한 명 동조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멘탈이 깨져 버렸고.

[속보. 한유성 부회장, 실종.]

아예 공개적으로 실종을 알리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 * * *

-한유성 부회장이 증발한 거면 무형독이 개입한 거 아님?

-ㅇㅇ 그것밖에 없음. 얘들이 그 주술로 어떻게 어떻게 했겠지.

-진짜 어이없네 ㅋㅋㅋ 얘들 사실 차원이동한 마법사 아님? 그거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데

-병실에서 증발했고 못 찾는 거 보면 농담 아니라 진짜 마법사 같음.

-어느 쪽이든 이렇게 되면 빼박이네..

-그러게. 한유성이 무형독이었다니;;; 솔직히 진짜 충격이다. 한유성이 뭐가 부족해서..

-오히려 한유성이라서 그런 걸수도 있지.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자너

-ㅇㅇ 한유성도 결국 추악한 부르주아 새끼였다는 거지.

한유성이 증발했다.

동시에 소천마의 기자 회견 내용이 퍼지면서 여론은 그에 대한 비난 일색이 되었다.

금화의 비밀 연구 시설 안에 있던 이들이 모조리 목숨을 잃고 그걸로도 모자라 '주술'에 이용당했고 심지어 거기에 이미 오래 전 살해당한 한동군 회장마저 포함돼 있었다.

충격적인 건 한동군 회장의 아들인 한유성이 아버지가 그렇게 살해당했음에도 오히려 범인인 무형독에 동조하였고 간부 자리에까지 있었다는 주장이 소천마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주장에 관해 영상을 포함하여 천마신교가 모은 여러 증거가 나왔으나 이걸로 그 주장이 사실로 즉시 인정될 수는 없었다.

워낙 충격적인 내용이었고 '금화'라면 당연히 반박 자료를 내놓을 것이었으니까.

진실 공방이 이어져야 했고 여론이 갈리는 것이 수순이었다.

한데.

금화는 입장을 즉시 내지 않았고 병실에 있던 한유성이 증발해 버렸으니 대번에 여론이 소천마의 주장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탄로난 진실에 도주한 것으로 보였으니까.

금화의 이름은 시궁창보다 더럽고 낮은 곳으로 떨어져 버렸고 이제 누구도 겉으로는 금화의 '이사'를 반대하지 않게 되었다.

실질적인 모든 문제를 떠나 사실상 오너가 무형독의 간부였고 그들의 이득을 위해 기업이 이용되었으니 국민 대다수가 금화를 인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여론에 따라 신성불가침이나 다름없던 금화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연일 진행되는 가운데 천마신교 내부는.

"…그냥은 안 죽네, 진짜."

"그러게."

완전 승리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함정과 거기에 섞여 있던 또 다른 함정을 격파하였고 예상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 세력 또한 마냥 손해만 보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금화가 몰락했다.

완벽하게 대중에 배척당하고 있었고 강도 높은 조사를 받는 중이다.

한데 이런 와중에도 러시아로의 본사 이전은 진행중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금화는, 세계적인 대기업은 매력적이었고 요즘 막 나가기 시작한 러시아는 국제 사회의 눈치도 보지 않고 금화를 받아주었던 덕분이다.

한국은 그렇게 금화를 잃게 됐고 상당히 휘청였다.

재계 서열 1위의 대기업이 빠지는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큰 것이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얼마나 나라가 아파야 할지 모른다.

그나마 다시 정력적으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오군성과 오성이 상당 부분을 지탱해 주어 충격을 덜 수 있었던 게 위안이다.

즉.

무형독 입장에선 상당히 큰 패 중 하나였던 금화가 망가졌으나 그를 통하여 천마신교가 있는 한국을 뒤흔든다는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여기에 한유성의 실종이다.

도진은 장호의 가르침을 장소유와 함께 수련하며 더 높은 영역에 이른 침기로 한유성을 제압해 두었었다.

내공을 사용할 수 없었을 테고 몸 또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조치하였으니 외부의 조력 없이 자력으로 탈출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무림전담타격대와 무림맹이 합동으로, 철저하게 감시하는 영역 내에 들어온 불순한 자들은 일절 없었으니 그 실종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되었고 현장의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을 정도였다.

허나 천마신교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회견 후 도진은 따로 은밀하게 현장을 찾아 단서가 없나 기감을 펼쳐 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알 수 있었으니 한유성이 있던 병실의 기(氣)의 농도가 다른 곳보다 제법 짙었다는 것이었다.

본래는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겠지만 함께 했던 장소유 덕분에 바로 정답을 알 수 있었다.

"…포털입니다."

"포털을."

"예. 그자들이 포털을 열었고 그 포털을 이용해 한유성을 빼돌린 것입니다."

포털을 연 순간 해당 장소의 자연지기 농도가 높아진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흐르듯 저쪽 세계의 훨씬 농도가 짙은 자연지기가 이쪽으로 흐르며 주변보다 기의 농도가 짙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 양쪽을 다 오래 경험한 장소유는 두 세계의 기 사이에 있는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여 포털의 흔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포털까지 썼단 말이지.'

한유성은 도진에 의해 침기로 제압당해 일반인만도 못한 상태였다.

그런 한유성을 구하기 위해 이단 세력이 저쪽에서 한유성을 '마커'로 삼아 포털을 열었다.

포털은 한유성이 누워 있던 침대 위이면서 동시에 이불 아래였으니 CCTV에도 보이지 않았고 한유성은 이불을 덮어쓴 뒤 즉시 포털을 통하여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포털을 닫았다.

저쪽의 붕괴 현상은 임의로 장소를 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이 포털로 변하는 것이라면 이쪽 세계의 발생 지점은 임의로 지정이 가능하다.

이것은 그러니까.

이단 세력은, 한유성을 구하기 위하여 일회용의 포털을 열었던 것이다.

"한유성이 생각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던 걸까?"

"가능성이 없진 않아."

도진의 말에 나지윤이 그렇게 답했다.

솔직히 이단 세력이 그리 쉽게 소모할 수 없는 포털을 희생해서까지 한유성을 구할 줄이야, 라고 생각하는 도진이었다.

금화의 부회장이자 경계를 넘어선 고수라는 타이틀을 보자면 한유성은 비할 자가 드문 대단한 인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경험한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었으나 만족하여 주저앉았고 실전 경험도 없고 의지도 박약하여 빛 좋은 개살구, 혹은 금을 겉에만 발랐을 뿐 속은 싸구려에 불과한 인간이었다.

그러니 그토록 허무하게, 강대한 힘을 가지고도 허무하게 패배한 것이었고.

여기에 이단 세력의 주술 수준과 병적인 정보 통제를 생각하면 설령 한유성이라도 정보 발설에 관한 금제를 걸었을 거라 생각했다.

말단은 아무것도 모르고 무언가를 알 수준이 되면 결코 그것을 토설할 수 없게 조치를 취하는 것이 무형독, 이단 세력이었다.

지금껏 몇이나 되는 말단을 생포하였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최소한이라고는 하나 몸통에 근접한 것처럼 보이는 존 스미스 또한 여전히 진술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무형독은 그들을 방치하였다.

이런 사례들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경계만 하고 있었던 것인데…….

다른 건 몰라도 포털만큼은 한유성을 무림전담타격대 쪽으로 넘긴 천마신교가 커버할 방법이 없었다.

허나 그런 만큼 이단 세력에게도 포털은 비장의 수단이라 할 만큼 귀중한 것인데 그걸 써서 한유성을 살린 것이다.

무인으로서의,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한유성이 아닌 다른 어떤 가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이단 세력은 함정을 팠다.

"대담하게 행동했지만 포털은 감췄지."

"응."

놈들은 CCTV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정말로 대담하게, 사실상 치트라 할 수 있는 포털을 사용해서 한유성을 구했다.

'이쪽 세계'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상도 못할 수법이었고 포털의 존재 자체는 감췄으니 두 눈 뜨고 코 베인 격이다.

여기서 천마신교의 선택지 중 하나가 포털의 존재를 공개하는 것이다.

주술사의 존재마저 공개하였고 미 국방부가 인정하면서 여러가지 '헛소리'가 헛소리가 아닌 현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시점이다.

그렇다면.

사실 지금 전쟁을 부추기는 것이 그저 무형독이라는 세력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침략을 준비하는 세력이며 그들에게 쳐들어 갈 방법이 있다고 공론화 할 수는 없을까.

지금 천마신교엔 위서린과 장소유를 포함한 '저쪽'의 세력이 있으며 포털을 실제로 열 수도 있다.

그것을 증명하는 건 어렵지 않으며 일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각 분야의 능력도, 소천마 김도진과 천마신교에겐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생각의 흐름이 바로 이단 세력의 함정이었고 도진은 그 계획을 통째로 알고 있었다.

무얼.

우호법 홍괴산이 아주 잘 정리하여 머릿속에 새겨 두고 있었던 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