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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42화 (642/741)

642화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처음에는,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리 없으니까 분명히 살아 계실 테고 그렇다면 기필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면서 포기하는 법을 강제로 익히게 된 뒤로는 하나 둘 포기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다 포기하지 못하고 단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장소유는 그렇게 바라였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기쁘고 또 기쁘고 그저 기뻤는데 그러다 보니 또 욕심이란 것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 만다.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계속 할아버지가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것이 욕심임을 안다.

할아버지는 정말로 돌아가신 거다.

다만 영혼이 남아 세상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준 이의 영혼에, 심상세계에 남았고 그 기적에 무수한 기적이 또 모여 이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처음부터 시간 제한이 있던 홍괴산의 심상세계가 완전히 무너지면 이 기적은 끝을 고하고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 단 하나 남은 가족과 함께 하길 바라는 것을 어찌 그저 욕심이라 치부하고 바로 지울 수 있겠는가.

'…괜찮아.'

준비조차 없이 갑작스런 이별을 하였고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되었는데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 정식으로 헤어질 수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이 기적과 같은 만남이 슬픔이 아닌 기쁨이 되어야 해.

할아버지의 진전을 이은 사람이, 할아버지가 깃든 사람이 곁에 있으니 이제 더 이상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버티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잖아.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는 장소유였으나 끝내 감정을 다 억누르지 못한다.

그런 장소유에게, 도진이 말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아."

눈을 마주한다.

혼자였던 자신의 곁에 서 준 사람은 그렇게 눈맞춤을 하면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 할아버지의 뜻을 전하였다.

"홍괴산도 성공한 술법이잖아요. 스승님은, 장호 스승님은 그런 홍괴산보다 훨씬 더 대단하신 술법사이기도 하시니까요."

그러니까.

"분명히, 다시 만날 수 있게 될 거예요."

그것은 예언이나 확신보다 더 강렬한 힘이 담긴 위로이자 선언이었다.

기필코 그것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게 되는 절대적인 약속.

그것이 장소유의 욕심이 아닌 바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었고 미소를 그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네."

* * * *

홍괴산의 심상세계가 무너지고 도진과 장소유가 눈을 떴다.

그와 함께 두 사람을 격리하고 있던, 현실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강렬한 법기(法氣)가 이내 허공에 녹아 흩어지고 주변을 인식할 수 있었다.

"소지존."

"네, 다 잘 끝났어요."

위취련의 조용한 목소리에 도진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옅어졌으나 안개가 다 흩어지지 않고 주변을 채우고 있는 가운데 진법으로 인해 떨어졌던 위취련과 위연서, 한유아가 있었고 점혈로 재워 놓은 한유성이 짐짝처럼 널브러져 있다.

하지만 여기에 홍괴산이 깃들었던 한동군의 육체는 보이지 않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야말로 비장의 수단 그 자체, 였나.'

도진은 그 이유를 장호를 통하여 바로 알 수 있었다.

장호는 홍괴산에게 죽음을 선고하였으나 그것으로만 끝내지 않았다.

놈의 심상세계가 다 무너지기 전에 최대한 놈의 기억과 지식을 가진 술법으로 빼낸 것이다.

본래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놈의 정신이 무너져 무방비 상태였고 심지어 놈의 심상세계 안이었기에 생각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챙길 수 있었다.

그 정보 안에 놈의 비장의 수단이었던 심상세계가 있었으니 상상 이상으로 공을 들였던 한동군의 육체는 곧 비장의 술법을 발동하기 위한 일회용의 법구(法具) 그 자체이기도 했던 거다.

일전 침기를 무효화하는 '침기진'의 발동에 술법을 새긴 꼭두각시를 이용했던 것처럼 놈은 강시를 단순히 강시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술진을 발동하기 위한 법구로도 사용하는, 나쁜 쪽으로 대단한 술법사였다.

'그럼…….'

"움직이죠."

"예, 소지존."

도진은 생각을 정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홍괴산'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

한동군의 육체에 깃든 것은 어디까지나 홍괴산의 정신이었지 홍괴산 본인이 아니었다.

술법으로 영혼을 보내 꼭두각시를 부렸던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아직 홍괴산 본인과는 심상세계를 포함하여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었던 게 된다.

바로 그 홍괴산을 지금 잡으러 간다.

-놈은 대단한 술법사이지만 영혼을 보내는 술법의 사용에는 필연적으로 거리의 제약이 있게 마련이다.

-그날의 크루즈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특히 자신의 심상세계로 타인의 정신을 가두는 술법은 더욱 거리의 제약이 강하다.

장호의 조언에 따라 도진은 약해졌으나 아직 정지하지 않은 운해이몰진을 신안으로 읽으며 거침없이 나아갔고 이내.

타다다닥-!

도주하는 흉측한 거인 하나를 볼 수 있었다.

2미터를 훌쩍 넘는 키에 흉악할 정도로 가득 들어찬 근육은 앞서 보았던 것과 같은 홍괴산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강시가 되지 않은,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이지를 잃고 새겨져 있던 명령만을 수행하기 위해 커다란 철 상자를 들쳐 메고 도주하는 중이었다.

또 하나의 핵인 놈이 유지하고 있는 운해이몰진이 일행의 감각을 어지럽힐 수 있었다면.

그는 도주에 성공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도진부터 시작하여 심지어 한유아마저도 약해진 운해이몰진에 현혹당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투웅-

"꺽."

고통도 공포도 느끼지 않는 괴물은 그러나 도진의 주먹 한 방에 완벽히 무력화되어 엎어졌다.

살아 있는 생명인 이상 침기가 깃든 경력(勁力)에 육체가 기능하지 않게 되면 무력화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괴물을 무력화시킨 도진이 바닥에 나뒹구는, 철저하게 봉인된 철 상자의 뚜껑을 갈랐다.

합금이라 하지만 천마기로 이루어진 수기(手氣)를 버틸 정도는 아니었고 내부가 드러났다.

"이건……."

도진을 제외하고 모두가 슬쩍 눈을 크게 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이야?"

"네. 다만 확실하게 죽은 사람이에요."

철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건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생긴 청년.

"홍괴산이 자신의 몸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평생 공을 들인 육체에요."

실제로 홍괴산은 바깥 활동 대부분을 이 육체로 했었다.

그 말은 곧, 이 육체는 홍괴산 본인은 아니라는 거다.

진짜 홍괴산은…….

"저쪽."

"저, 거?"

"네. 저쪽이 진짜, 홍괴산이에요."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 건, 도진이 침기로 망설임없이 파괴한 '괴물'이었다.

반전이라면 반전이지만 알고 보면 그리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몸을 개조하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었거든요."

홍괴산은 무공에 소질이 없던 자신의 몸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것을 강시술과 육체 개조에 손을 대면서 자신의 몸에도 성과를 적용함으로써 개선하려 했던 거다.

다만 그 결과는 눈앞에 보이는 대로 실패.

괴물과 다르지 않은 몰골이 되었다.

비유하자면 성형 실패를 다시 성형으로 극복하려다 완전히 중독된 말로다.

그는 그렇게 실패한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장소유를 온전히 가지기 위하여 연구한 술법으로 아예 다른, '상등품'의 육체로 갈아 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 철 상자 안의 실패를 밑거름 삼아 공을 들이던 육체다.

만약 홍괴산이 살아 있었다면 더 '똑똑하게' 도주하였겠지만 심상세계에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남은 텅 빈 육체가 만약을 대비하여 남긴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게 방금이었고 실패로 돌아갔다.

사아아…….

두 개의 핵이 모두 무력화되며 홍괴산이 펼쳤던 운해이몰진이 완전히 소멸하였다.

그와 동시에.

삐이이-

특수한 방식으로 내공을 운용하여야만 들을 수 있는 고주파가 울렸으니 미리 정해둔 긴급 통신이었다.

도진은 즉시 휴대폰을 꺼내 내용을 확인하였고.

"흐응."

입꼬리를 스윽 올렸다.

* * * *

황궁.

본래 명나라를 지배하던 황족과 황제의 거처였던 그곳은 나라와 함께 황족이 멸족하며 불탔던 곳이었으나 더욱 장엄한 형태로 재건축 되었으니 이제 이름을 바꾸어 천마전(天魔殿)이라 불리었다.

이단 세력이 스스로를 정통을 이어받은 천마신교라 칭하였고 그 안에 기거하였으니 황제의 옥좌가 있던 곳에는 이제 '천마'가 자리한다.

그 천마의 앞에, 무선(武線)이라 불리던 이가 부복하고 있었다.

용이 새겨진 주렴 너머의 천마가 말했다.

"그래, 우호법이 실패하였다고."

"……예."

"과연. 하늘이 내린 우리 교의 대적자로군. 우호법이 실패하다니."

우호법, 홍괴산.

천마신교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좌우호법 중 한 명으로 그 능력 또한 천마신교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혈교 출신임에도 그 정도나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천마신교의 우호법이 될 수 있었다.

허나 그런 우호법이 단독으로, 멋대로 행동하다 목숨을 잃었음에도 보고하는 무선은 물론이요 조직의 가장 위에 서는 이조차 동요하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였다.

"후임을 준비하도록. 교육하겠다."

"예!"

홍괴산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들의 수장인 천마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천마는 또한 은혜를 입을 이에게 모두 전수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 세계의 천마요 신이었으며 천마신교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민중이, 무인이, 저쪽 세계의 훨씬 진보한 지식을 습득한 지식인들이 변함없이 그를 천마이자 신으로 숭배하는 이유였다.

무선은 그런 신에게 더욱 고개를 숙이며 고하였다.

"대적자에 관한 작업도, 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존명!"

* * * *

바깥에서 대기하던 투마전과 독마전의 무인들이 금화의 비밀 시설에 진입하여 뒷정리를 하는 사이 도진은 휴대폰을 켰다.

세상은, 인터넷에 올라온 짧은 영상 하나로 인해 난리가 나 있었다.

-흉악하기 짝이 없구나, 무림인이란 것들은.

한동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화면은 한동군의 모습 대신 목이 잘린 시체들을 비추고 있었다.

-망설임없이 불쌍한 자들의 목을 잘라 버렸어. 살인귀가 따로 없구나.

그 말과 함께 도진의 일부를 비추는 것으로 짧은 영상이 끝났다.

영상의 원본이었고 그것이 음지에서 빛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모자이크 된 영상은 아예 지상파의 뉴스 기사에 업로드가 되어 있다.

-..이게 뭐지?

-목소리는 한동군 회장님 아니야? 저 시체 뭐냐?.. 페이크 영상?

-아니 실화임. 금화 홈페이지에 업로드 된 거거든.

-? 금화 미친 거임? 아니 이 경우엔 소천마가?..

-시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냐?

-한동군 회장이 비난하던 멍청한 것들한테 보여준 거잖아. 무림인이란 결국 이런 놈들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사람 죽이는 놈들이라고.

-니들이 그렇게 추앙하는 소천마도 저렇게 쉽게 사람을 죽여 버리는 인간이었다는 거지.

-또또 건수 잡았다고 분탕 종자 새끼들이 날뛰네. 어차피 얼마 못 가서 ㅎㅎㅈㅅ 하고 사라질 새끼들이.

-그러게 ㅋㅋㅋ

-앞뒤가 어찌됐든 저게 정당화 될 리는.. 없을 거 같은데?

그것은, 그저 짧은 영상이었으나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뒤흔드는 영상이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너무나 치명적인 영상이었고 그 영상의 주인공이 소천마 김도진이었기에 천마신교에 더욱 독이 되는 영상이었다.

아니라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 말하지 않아도 소천마를 믿을 사람은 믿을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제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을 이들은 믿지 않을 것이기도 했다.

한 마디의 모함을 해명하기 위해서 산더미만큼의 증거를 제시해도 믿지 않을 이들은 믿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것은 졸렬하면서도 지극히 효과적인 수작이었으나.

스윽-

도진은 오히려 씨익, 웃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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