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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41화 (641/741)

641화

홍괴산은 천마신교에 의해 멸망당한 혈교(血敎)의 잔당이었다.

황실이 천마신교에 씌운 누명인, 사람을 산 채로 해부하느니 피로 목욕을 한다느니 하는 인간 같지 않은 짓거리를 실제로 행하던 이교도가 바로 그들이다.

때문에 천마 위지혁은 가차없이 혈교를 멸망시켰으나 살아남은 잔당들은 오히려 그렇기에 음지에서 더욱 잔악해졌다.

그리고 그 잔악함에 성악설(性惡說)을 증명하는 것처럼 어릴 적부터 녹아든 것이 홍괴산이었다.

무공에는 특별한 재능이 없던 그는 그러나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주술에 소질이 있었고 특히 진법과 독에 능하였다.

그 재능을 살려 암암리에 이름을 떨치며 혈교의 장로가 된 홍괴산은 혈교가 이단 세력의 천마신교에 흡수되면서 더욱 악마적인 수단으로 재능을 갈고닦았고 장소유라는, 광적으로 집착하게 된 존재가 생기면서 재능 이상의 영역에 도달하였으니 그 영역의 정수가 바로 이 심상세계다.

장소유를 가지고 완벽하게 지배하여 제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의 육체를 철저할 정도로 파고들었으며 정신과 심상마저도 연구하였다.

술법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발전한 시대였음에도 광적인 집착으로 도달한 홍괴산의 경지는 두 사람을 제외하면 비할 데 없이 독보적이었고 그 독보적인 공부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것이 '심상세계'란 말이다.

그저 감각을 기만하는 하찮은 수법이 아니다.

그의 심상세계에 대상을 가둬 버리는, 감히 상상도 못할 영역에 이른 '천지조화'에 비견해야 할 수법.

이곳에서의 그는 신(神)이었다.

무엇도 그의 지배 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천지가 제 것인양 날뛰던 이단도, 감히 그를 거부하고 도망치기 바쁘던 장소유도 제 아래서 그저 우두커니 서 있지 않은가.

그런데.

"형님, 이 새끼 웃는데요?"

"냅둬. 술법 성공해서 기쁜갑지."

이것들은 뭐란 말인가.

그가 구현한 적 없는, 그의 지배 하에 있지 않은 불순물이 어느새.

그의 뒤에 있었다.

용의 머리 위에 선 그의 뒤에!

"…누구냐."

이성마저 뚫고 나온 물음에 두 노인은 아무렇지 않게 답하였다.

"천마."

"사신."

"……."

명료한 단어임에도 즉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히 머리에 입력이 되었는데 읽히지가 않는 것이다.

허나 두 노인은 홍괴산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완벽하게 외면해 버리고서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

두 노인은 도진과 장소유의 앞에 있었다.

도진과 위지혁은 조용히 장호와 장소유를 지켜 보았다.

"…할아, 버지."

"그래. 아소(兒昭)."

일견 딱딱한,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크나큰 감정이 장소유에게 눈앞에 선 이가 거짓없이 분명한.

그녀의 할아버지 장호임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후욱-

가장 빠른 선을 따라 거리를 좁혀 장소유가 장호의 품에 안겼다.

눈앞에 있음에도 그 존재를 인식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할아버지는, 그러나 지금 분명한 온기와 존재감으로 장소유를 안고 보듬어 주었다.

"…미안하구나."

그리고 귓가에 스며드는 목소리에, 영민한 장소유는 모든 것을 이해하였다.

이해하고 말았다.

-……스승님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녀가 혼자가 아닐 수 있게 해 주는 사람이 했던 말.

그것이 거짓이 아니며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할아버지와 그 사람이 선택한 최선이었다는 걸.

"네놈들은 무어란 말이냐!!"

캬오오오오오오-!!

세상을 뒤흔드는 고함 소리는 홍괴산의 것이었다.

이곳은 그의 심상세계.

결코 있어선 안 될, 그가 이해하지 못할 불순물의 등장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도진은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두우우웅-!

그리고 자신의 기세로 선을 그어 홍괴산의 소음과 감정이 뒤에 닿지 못하도록 하였다.

"눈치가 있으면 좀 닥치고 있지 그래?"

"건방진 이단 따위가!!"

이를 드러내며 홍괴산이 소리친다.

그의 분노는 곧 이 세계의 분노.

캬아아아아아-!!

그가 만들어낸 괴물들의 대군이 해일처럼 덤벼들었다.

"갈가리 짓이겨 주마!!"

현실에서야 강대한 힘을 떨쳤다 하나 이곳은 심상세계.

이단 따위가 감히 대적할 수 없다고, 그는 믿었으나.

두웅-

아니었다.

오롯이 그의 것이었던 세계가 침범당한다.

천마군림(天魔君臨).

도진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가 도진의 의지로 물든다.

그리고 도진의 의지 하에 놓인 세계가, 홍괴산의 피조물을 이 세상에서 배제한다.

소거(消去).

세계를 채운 자연지기에 깃든 도진의 심상이 구현되고 해일의 선단이 지워졌다.

믿을 수 없는 현상에 홍괴산의 입이 쩌억 벌어졌으나 이제 시작이었다.

천격(穿擊).

치솟았던 해일의 몸통은 하늘마저 꿰뚫는 일격에 기세를 잃었고.

천괴(天壞).

꿰뚫린 하늘이 무너지며 그가 만들어낸 '세계를 멸할' 온갖 괴물과 영물들의 대군이 붕괴하였다.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다……!"

대군과 함께 쩌적, 금이 가 버린 정신으로 홍괴산이 중얼거렸다.

심상세계.

그의 세계이며 이곳에서 바깥의 힘은 의미를 잃는다.

오직 강렬한 의지와 지식으로 구현한 것만이 이곳에서 의미와 힘을 가질 수 있거늘.

이 술법을 만들고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통달한 그조차 무려 3년을 매진하고서야 기틀을 닦을 수 있었는데 어떻게!

저 이단이 이곳을 제 세상인양 날뛴단 말인가!

물론, 그는 알지 못했다.

도진에게 있어 심상세계가 현실보다 오히려 편한 곳이라는 걸.

정신을 가속하여 보낸 시간까지 따지면 현실만큼이나 오래 심상세계에 머물렀으며 그렇게 보낸 모든 시간이 매순간 한계를 넘어서는 수련이었다는 걸.

그래서 이 심상세계에서라면, 현실의 온갖 제약에서 벗어나 알고 있는 모든 이치를 펼쳐낼 수 있다는 것을.

"이럴 리가 없단 말이다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오-!!

제 눈으로 본 것을 부정하며 홍괴산이 덤벼들었다.

소거당하고 짓눌렸던 괴물과 영물들이 다시 살아나 덤벼들었고 하늘을 뒤덮었던 거대한 용마저 아가리를 쩌억 벌린 채 쇄도했다.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홍괴산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이 복구되어 버리는 걸 보는 이는 본래 절망해야만 한다.

허나 도진은 아니었다.

전부 다, 아는 것이다.

스으으…….

도진의 의지 하에 놓인 공간에 또 다른 기운이 더해진다.

그것은 사신공의 침기(沈氣)다.

본래 하나로 섞일 수 없는 천마기(天魔氣)에 사신공의 침기가 더해진 것이다.

심상세계이기에 가능한 현상.

그리고 그렇게 구현된 공간은.

캬아, 악.

침범한 모든 것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는다.

천마기의 공격성과 강대한 기운을 침기에 더하여 '죽음'을 선고한다.

이 선고는 절대적이며 설령 영물의 정점에 있는 용이라 하여도.

스으으-

"허어억!"

예외가 될 수 없다.

주둥이부터 소멸하는 용에 홍괴산이 경악하여 뒤로 나뒹굴었다.

심지를 굳건히 하여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 심상세계에서 그런 한심한 꼴을 보였으니 그가 만든 것이 유지될 리가 없다.

홍괴산이 자랑하던, 그의 심상세계에 가득 채웠던 모든 것들이 형체를 잃었다.

그러나 이런 격변마저도 장호와 장소유에게는 닿지 않았으니 도진의 의지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것이 무너질 뻔 했던 홍괴산을 다시 한 번 자극하였다.

"이다아아아아안!!"

시뻘겋게 물든 눈으로 소리치는 그의 주위로 다시 한 번 영물과 괴물의 대군이 펼쳐진다.

장소유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요 일그러진 소유욕의 구현.

그래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에.

스윽-

장호가 나섰다.

"스승님."

"잘 보도록 하여라."

조용히 말하며 장호가 걸었다.

사락.

그리고 곁에 선 장소유가 도진의 손을 붙잡고 그 등을 함께 바라보았다.

캬아아아아아아-!!

미쳐 날뛰는 영물과 괴물의 대군 앞에서 장호는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연에 녹아들더니 이내 존재했다는 걸 기억하는 것조차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

무흔잠영(無痕潛泳)에서 시작하여 부지역(不知域)에 이른 것이다.

사아아…….

그리고 침기가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캬, 캬각-

시작은 괴사(壞死)다.

스며들어 생체 기능을 서서히 죽여 나간다.

무수한 대군 사이에서 그것은 처음에는 무시할 수 있는 영역이었으나 이윽고 그 규모가 커지며 개체에서 무리를, 이윽고 군(軍)을 집어삼킨다.

사아아아…….

죽음(死).

그것이 구현되어 홍괴산의 군대를 휩쓸었고 항거할 수 없는 공포가 된다.

허나 이내.

사아아…….

그 새까만 침기마저 모습을 버리니 오로지 죽음만이 남는다.

죽음이란 본래 그렇지 않던가.

죽음에 이르는 현상이야 극명하다지만 그 끝인 죽음은 결코 화려하지 않고 잔혹하지도 않다.

그저, 그것만이 남는다.

그러니까 저항의 대상이 될 수조차 없다.

따닥. 따닥.

홍괴산은 그저 이를 부딪쳤다.

그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의 본능이 죽음을 거부하여 그 어느 때보다 두터운, 생존 본능으로 이루어진 장벽이 만들어졌으나 그마저 죽음이 선고되어 소멸하였다.

'사, 사신.'

이것이 사신(死神).

무림을 넘어 세계에 유일하게,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을 선고하던 절대자.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규모가 축소되었다지만 질적인 부분에서는 전성기마저 능가했던 혈교가 왜 발호하지 못하였는지.

그런 혈교마저 흡수할 정도로 강대했던 '천마신교'가 왜 침묵하였는지.

삐걱이는 고개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거부하여 다가오는 사신을 회피하였고 거기에는.

"하. 하하하하."

죽음보다 선명한 마(魔)가 있었다.

천마라고 하였던가.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죽음보다 선명한 마라니.

고금제일천마(古今第一天魔) 위지혁.

그 외엔 생각할 수조차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에 담게 되는 것이 소천마, 김도진이다.

'하늘이란 놈은 없는 게 확실하군.'

고금제일천마의 진전을 이은 놈이었다.

한데 그에 그치지 않고 사신의 진전마저 한몸에 이었다고?

이 세상에, 저런 게 있어서 될 리가 없다.

저런 게 있다면.

나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천마이자 사신이 될 놈의 손을 단단히 붙잡은, 그가 갈망하고 또 갈망하였던 장소유를 그 품에서 빼앗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훅-

시야가 사라졌다.

아니, 빼앗겼다.

"그 더러운 눈으로 나의 손녀를 담는 걸 허락하지 않으니."

"나, 나는."

"내 손으로 너를 단죄할 수 있음이 기쁘구나. 자비를 베풀어, 제자와 손녀의 거름이 되도록 해 주마."

성대를 빼앗겼다.

그리고 하나, 둘.

죽음이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고 홍괴산은 공포에 절규하였다.

기필코 죽음에 이르는, 그러나 그것이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는 공포를 모든 감각을 잃고 내면에서만 감당하여야 했다.

그렇게 천천히 선고된 죽음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제자 도진과 손녀 장소유가 두 눈에 담고 있었다.

쩌적- 쩌저적-

세계가 붕괴한다.

세계의 주인인 홍괴산이 더 이상 그것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필연적으로 술법은 깨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이별을 의미했다.

"할아, 버지."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느니라. 그리고 나의 제자가, 나를 대신하여 너를 지켜줄 것이니."

"아소. 너의 곁에 항상 내가 있으니 이 만남이 너에게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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