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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39화 (639/741)

639화

"……."

한동군 회장, 아니 본래 한동군이었으나 이단 세력의 호법인 홍괴산의 '실험물'로 전락해 버린 것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던 실험물의 제어가 흔들릴 정도로, 방금 도진의 발언은 홍괴산을 놀라게 한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그래서 그것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위임을 알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돌아올 답은 하나뿐이었다.

"너 따위가, 감히 나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거라 믿은 거야?"

조롱.

한동군 회장의 껍질 안에 깃든 홍괴산의 영혼이 입술을 짓씹었다.

그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천마의 이름을 계승한 진정한 후예로서 도진이 이치에 닿아 신안(神眼)을 떴음을.

그리고 그 신안에 장호의 가르침이 깃들어 주술마저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음을.

그리하여 홍괴산이 한동군의 육체에 깃들기 위하여 술법으로 연결한 영혼의 끈을 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도진은 한동군 회장의 온갖 술법과 과학으로 개조된 육체를 보는 순간 이미 한동군 회장은 죽었고 거기에 홍괴산이 깃들어 괴뢰(傀儡)로 이용하고 있다는 걸 꿰뚫어 보았다.

뿌득-

한동군의 육체가 이를 악물었다.

"가소, 롭구나."

짓씹듯 말을 뱉어낸 홍괴산이 억지로 여유를 되찾으며 이죽였다.

"그래. 네놈이 그렇게나 광오한 태도를 보일 정도의, 우리 교의 대적자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네놈과 함께 있던 것들도 네놈처럼, 여유로울 수 있을까?"

그가 여유를 되찾게 만드는 건 진법을 이용하여 떨어뜨린 일행이다.

"이곳은 네놈을 잡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나의 역작이지.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홍괴산은 비할 데 없는 절대적인 세력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도진을 잡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함정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흥.

도진은 코웃음을 쳤다.

그것은 일행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나온 것이었다.

"이단 세력의 스토커 따위가, 내가 믿는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고? 이건 좀 웃겼어."

* * * *

갑작스런 안개에 휩쓸려 어딘지 모를 곳까지 떠밀려 왔다.

한유성은 그런 상황에 맞추어 연기를 때려치고 기습을 시도하였으나.

"헉!"

그보다 먼저 날아든 날카로운 공격에 숨을 삼키며 몸을 물렸다.

"무슨."

"웃기지도 않는 연극을 계속할 생각이냐?"

그리고 기습을 끊는 것과 같은 모양새로 묻는 위취련에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쓸데없이 눈치만 빠른 년이군."

"그 추악한 몰골만큼이나 버릇이 없는 아해로구나."

전혀 흔들리지 않고 고요한 바다와 같은 위취련의 모습이 한유성의 심기를 더욱 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끌 것도 없이 준비한 패를 꺼내들었다.

쿠웅!

그 발걸음부터가 중장비를 연상케하는 흉악한 육체의 두 무인이 짙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 한유성의 앞에 섰다.

앞서 보았던 한동군 회장과 같은, 결코 자연적으로는 가질 수 없는 그 육체는 홍괴산의 작품이다.

본래 그들은 동의하지 않았던 실험에 의한 결과.

그러나 의심받은 신앙심을 증명하기 위하여 목숨이 보장되지 않는 과학적·주술적 실험을 감당해야만 했고 이내 살아남아 얻은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대력이귀(大力二鬼)라고 하더군. 알량한 무공을 믿는 네년따위는 단번에 둘로 찢어 버릴 테지."

무림의 시대. 소위 말하는 '피지컬'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내공의 힘이, 무도의 이치가 그것을 압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인식마저 찢어발길 수 있는 '경계를 넘어선 피지컬'이 깃든 것이 그들 대력이귀의 육체였다.

본래 초절정에 이르렀던 무공에 화경에 이른 무인의 육체 능력마저 압도하는 힘이 깃든 그들은 과연 한유성이 신뢰할 만한 패였다.

하지만.

"큭큭. 너무 겁먹지 마라. 본좌는 너를, 너희 귀여운 것들을 죽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부드러운 침대 위에서 한껏 귀여워해 줄 것이니라."

"너희 이단의 수괴가 말하였다지. 결코 죽이지 않겠다, 고컥."

그 비장의 패 중 하나는 당당하게 등장했던 모습과 기세, 그리고 가진 능력이 무색하게도 두터운 손으로 목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였다.

"무, 무끄르륵."

동료의 모습에 당황하여 한 발 물러섰던 나머지 하나도 같은 몰골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귀신처럼 그들이 앞에 선 위취련이 꽝, 진각을 밟으며 쌍장(雙掌)으로 둘의 단전을 후려쳤다.

꽈직!

"꺼, 꺼어억."

목을 부여잡고 저항하던 둘은 단전이 꿰뚫리자 채 두 호흡도 버티지 못하고 독에 잡아먹혀 바닥에 널부러졌다.

그렇게 단숨에 대력이귀를 독물로 만들어 버린 위취련이 싸늘하게 말했다.

"감히 소지존의 말씀을 삿되이 입에 올렸으니 죽어 마땅하니라."

"……."

어느새 물러선 한유성의 얼굴이 단단히 굳었다.

맹렬히 내공을 돌려 독을 막을 수 있었으나 애초에 자신이 느끼기도 전에 앞에 있던 둘을 중독시키고 참살해 버린 위취련의 능력은 예상을 한참 넘어서 있었다.

화경(化境). 경계를 넘어선 무인일 줄이야…….

"더 할 테냐?"

오연히 선 위취련의 싸늘한 시선에 한유성은 표정을 바꾸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건방질만 하네. 하지만!"

콰아아아아-!!

한유성이 강하게 말한 순간 거기에 호응하듯 안개가 요동쳤다.

위취련의 뒤에 있던 위연서와 한유아가 내공을 끌어올려 중심을 잡아야 할 만큼 그것은 거센 물리력을 동반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래서는 안 됐어."

후오오오오오-

한유성이 내뿜는 기세를 중심으로 안개가 휘돈다.

마치 운해이몰진과 한유성이 일체화한 듯한 모습이었으며 실제로 그랬다.

"이 진법의 중심은 나거든. 그러니까, 이 진법의 힘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거지."

느껴지는 전능감에, 경계를 넘어선 감각으로도 다 헤아리기 어려운 기운의 흐름에 한유성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말이 경계를 넘어섰다지 그래봐야 미물에 불과한 존재라는 걸, 역으로 경계를 넘어서면서 알게 된다.

한낱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기운은 자연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없다는 걸 아는 데서부터 화경은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유성은 위취련의 신위를 보고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제아무리 예상을 넘어섰다 해도, 여전히 미물이니까.

후오오오오-!

한유성의 의지에 따라 진법을 따라 흐르던 기운의 일부가 안개에 깃들어 거인의 주먹처럼 휘둘러졌다.

꽈아아앙-!!

포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땅이 터져 나갔고 위취련은 맞상대하는 대신 몸을 훌쩍 물렸다.

한유성이 그것을 추적하여 연신 안개를 휘둘렀다.

꽝! 꽈앙! 꽈아아아앙!

"하하하! 아까의 자신감은 다 어디갔지?!"

미물이 맞상대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기운이다.

화경이라고 으스대봐야 이 힘에는 맞설 수 없다.

그뿐인가.

이 안개 속에는 대력이귀만큼은 아니어도 홍괴산에 의해 개조된 것들이 얼마든지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저것들이 무엇을 하든! 승리는 확정되어 있다.

그런 생각으로 힘과 승리에 취하여 그것을 마구 휘두르던 한유성의 시선이 문득, 물러서 있던 제 동생에게 닿았다.

히죽.

입술이 혐오스러운 곡선을 그린다.

"한유아."

"……뭐야."

"그만 슬슬, 주제 파악을 하는 것이 어때?"

"……."

꽈아아앙-!!

안개가 채찍처럼 땅을 후려쳤다.

그것은 정확히 한유아의 옆 공간을 가르며 대지를 부서뜨렸다.

그녀로선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내공량. 힘의 과시였다.

"똑똑하잖아, 너. 어릴 적에 그 똑똑한 머리에 단단히 입력시켜 줬잖아. 너는 내 거라고. 내가 부리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고."

"반항은 그쯤하고 얌전히 여기.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한유성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건 자신의 발밑이다.

그것은 단순한 조롱이나 모욕이 아니다.

홍괴산에게 배운, 비록 얕다지만 사람을 지배하기 위한 술법과 기술이었다.

어릴 적부터 한유아를 지배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부리기 위하여 한유성은 그런 '술법'을 어릴 적부터 꾸준히 부려왔던 것이다.

파르르…….

한유아가 몸을 떨었다.

인간 또한 동물. 어릴 적부터 새겨진 '공포'는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법이다.

감히 주제 파악도 못하고 모욕을 주었던 한유아에겐 그에 합당한 벌을 줄 생각이었던 한유성은.

"풋."

"……?"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반응에 일순 입을 벌리고 말았다.

한유아가. 하찮은 것이.

"아하하하하하!"

그를 비웃었다.

공포가 아닌 웃음으로 몸을 부르르 떨던 한유아는 그렇게 크게 한유성을 비웃고선 당당하게 시선을 마주하고서 말했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뭐, 라?"

"어릴 적엔, 아니 커서도 응, 그랬지. 한유성이란 인간이 사실은 무서웠어. 절대로 못 이길 것 같았어."

스스로의 약함을 고백한다.

한유성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음을 솔직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그런 고백에 이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한유아의 모습이 너무나 당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 그렇네. 한유성. 너, 진짜 '개허접'이구나?"

"……무."

"너, 나보다 몇 살이나 많은데 저어어어언혀 그렇게 안 느껴지네. 경계를 넘어선 고수인데 저어어어어언혀 센 거 같지도 않구. 진짜 찌질하고 한심해 보여서 웃기네? 푸후후."

그녀의 곁에는 있었던 것이다.

한 살 연하인 주제에 너무나 어른스러워 저도 모르게 기대게 만드는.

그렇게 기대면 세상이 무너져도 그녀를 지켜주고 따스한 품에서 안심하게 만들어 줄.

그 어떤 위협에도 그녀가 결코 두려움에 떠는 일 없이 당당하게 맞설 용기를 가지게 해 주는 사람이.

그러니까 눈앞의 이 한심한 남자가 무어라 하든, 그녀가 흔들리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 한심한 남자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건방진!"

물론 그것도 한유아를 겁먹게 하지 못한다.

"아, 미안미안. 알고 있어. 이게 사실은 아아아아아주 불합리한 비교라는 거. 우리 후배랑 비교하는 건 정말로 불합리한 거라는 거 잘 알아. 근데."

한유아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한테는 그래도 되잖아?"

"빌어먹을 년이!!"

입을 쩌억 벌리고 소리치며 한유성이 거대한 기운을 움직였다.

거인의 채찍처럼 떨어져 내리는 기운은 한유아가 받아낼 수 있는 영역을 한참 넘어서 있었다.

그러나.

스읏-

어느새 한유아의 앞에 선 위취련의 두 손이 신비하게 그것을 받아냈고 뒤틀어.

꽈아아앙-!!

엉뚱한 곳에 처박히게 만들었다.

"건방진 년이이이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의 한유성이 쉼없이 거대한 기운을 몰아쳤다.

꽈앙! 꽈과과과광!!

그러나 그 어떤 기운도 고요하게 선 채 신묘한 이치에 따라 두 손을 움직이는 위취련에 범접하지 못했다.

"왜! 왜! 왜!!"

경계를 넘어선 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평정심이 무너진 못난 꼴의 한유성에게 위취련은 '네놈이 그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라고, 조언해 주지 않았다.

그럴 가치가 없었기에.

한유성은 그 성정을 떠나 부정할 수 없는 기재였고 그것은 경계를 넘어설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던 거다.

경계를 넘어설 재능이 있었으나 거기에 만족해 버렸고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것을 갈고닦으려 하지 않았고 이렇다 할 경험조차 쌓지 않았다.

그래. 그것은 나태에 절어 있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분에 넘치는 기운은 오히려 독이 되어 위취련이 너무나 간단히 읽어내고 그 힘의 방향을 비틀 수 있는, 위협은커녕 우스꽝스러운 허우적거림에 불과했다.

터엉-!

"컥."

위취련이 깊게 후려친 경력이 거대한 힘을 거슬러 가 한유성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속을 진탕시켰다.

한쪽 다리가 휘청이고 드러난 그 틈을, 쇄도하여 거리를 좁힌 위연서가 두들겼다.

두웅-!

"꺽."

명치를 후벼파는 듯한 충격은 흩어지지 않고 내부를 헤집는다.

이어서 쏘아지는 한유아의 손.

'금황, 조.'

한유성은 대번에 그녀의 수법을 알아보았다.

금황조.

'금화의 영애'라는 허울에 걸맞도록 던져 준 무공.

천민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내겠지만 금화의 기준으로는 보물이 되지 못할 물건.

훤히 아는 무공이었고 한유성은 본능적으로 쇄골을 노릴 그 공격을 피하고자 했지만.

짜아아아악-!

그것은 투로를 따라가는 대신 통렬하게, 한유성의 싸대기를 까올려 버렸다.

'개…….'

평생 겪은 적이 없는 지독한 치욕에 한유성은 그 한 글자를 떠올리며.

쿠당탕!

바닥을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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