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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37화 (637/741)
  • 636화

    아침이라 하기에는 아직 이른 새벽.

    갑작스럽고도 충격적인 소식에 총괄부의 회의실에 도진과 나지윤, 그리고 오성아와 한유아가 모였다.

    잡다한 부분은 모두 미뤄두고 나지윤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공정당 당대표 고주단. 무형독의 꼭두각시였어."

    고주단은 별 거 없는 인물이었다.

    딴에는 아랫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포악한 성격이었으나 성향을 떠나 '인물'이었던 안민선 같은 급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는 인간이었으니 만약 일전의 사건으로 안민선을 포함한 당의 주요 인물들이 다 쓸려나가지 않았다면 당대표 같은 건 엄두도 못냈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꼭두각시. 안민선은 무형독의 끄나풀과 '대화'라도 가능하였으나 능력에 비해 과한 욕심을 가진 그는 그 과함을 무형독이 끈으로 이용하여 조종하는 꼭두각시였다.

    그런 꼭두각시가 죽었다.

    [고주단 당대표를 살해한 건 정의검가 출신의 무인들.]

    [무인에 의한 국회의원 살인사건. 무림특별법에 대한 논쟁 다시 불붙나…….]

    정의검가 출신의 무인들에게.

    모두가 잠들었던 새벽 붙은 불씨는 알아챈 순간 마치 화약고가 폭발하듯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며 커지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제아무리 몰락했다지만 그래도 제1야당의 당대표를 다른 이도 아니고 정의검가 출신의 무인들이 살해하였다.

    믿기 힘든 내용이었고 그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동기는 증오였고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야."

    무림의 명문이면서 동시에 정계의 명문이었던 만큼 정계의 많은 자리에는 정의검가 출신의 인물들이 있었다.

    본래는 그것이 든든한 배경이었으나 소천마 김도진과의 일이 있었던 뒤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대한민국 최고의 불명예를 상징하는 가문이었고 가문이 이런 꼴인데 가주는 두문불출 안에 처박혀 수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악화일로를 걸었다.

    여기에 그들의 라인인 안민선 일파도 몰락하였으니 그들은 비빌 언덕을 잃은 것이다.

    그렇게 평소 고까웠던, 강력했던 정의검가 출신 인물들이 약해지자 그들을 노리던 이들의 축출을 위한 괴롭힘이 시작되었고 이내 살인 사건까지 터졌다.

    "증오는 사람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생각을 극단으로 밀어 버리니까."

    일견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나 도진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다. 쌓이는 증오는 사람을 평소 결코 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게 만든다.

    -니들은 무림특별법 찬성해야 하지 않냐?

    -니들 계속 거들먹거리려면 무림특별법 있어야 하잖아.

    -이제 빽도 뭐도 없는데 그거라도 없으면 불쌍해서 어쩌냐.

    그런 식의 조롱이 계속되었고 비례하여 증오가 쌓인다.

    그리고 쌓인 증오는 사람의 인내심을 증발시켜 버리니 그것은 이성의 마비를 가져오고 사람을 본능에 처박는 것이다.

    이성이 마비된 그들은 조롱의 내용이었던 무림특별법을 반대하는 이들을 목표로 삼았고 죽였다.

    그렇게 고주단이 포함된 많은 사람을 죽인 정의검가 출신 무인들은 당연히 체포되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저항하여 뽑아든 칼부림에 의한 유혈이 낭자하였고 그것을 담은 영상이 유포되면서 봉합되었던 무림특별법에 대한 논쟁이 다시 터져 나왔다.

    -사람 찔러 죽이고 잘라 버리는 무기 든 사람을 자유롭게 두는 게 진짜 옳냐?

    -법으로 막아봐야 어차피 범죄 저지를 놈들은 저지르잖아. 무림특별법이 문제임?

    -적어도 그걸 개정하면 대놓고 무기 들고 설치는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더러운 놈들이야. 진짜."

    도진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무형독, 이단 세력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상황이 결코 달갑지 않다.

    분열되고 격화되어 전쟁으로까지 치달아야 하는데 정반대로 안이하다고 할 만큼이나 평화롭다.

    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하여 벌인 수작이 그야말로 더럽다.

    살해당한 건 고주단 한 명이 아니다.

    그는 당대표였고 당연히 혼자 움직이지 않았으니 경호 무인들도 있었고 수행원들도 있었다.

    정의검가 출신의 무리들은 그들 모두의 목숨을 앗아가는 어마어마한 흉악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고 심지어 출동한 무림맹의 무인들과 무림전담타격대에도 희생을 내었으니 이토록 논란이 컸고 무림특별법에 관한 논쟁도 다시 격화되었다.

    심지어 수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유성 부회장, 고주단 당대표와 만남을 가지려다 피습당했다?]

    [한유성 부회장 피습 사건은 무림특별법을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무인들의 응징?]

    한유성 부회장이 의문의 무리에게 피습당한 건 사실로 밝혀졌다.

    다름 아닌 고주단 당대표를 만나러 가다가.

    그리고 피습의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무림특별법의 폐지나 개정이 필요하다 주장하는 고주단 당대표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졌던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문제가 더 커지게 됐다.

    무림특별법에 찬성하는 강경파 무인들 중 일부가 고주단이 대표로 있는, 무림특별법에 반대하는 공정당에 금화가 힘을 실어주는 게 고까워 일을 벌였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개소리가 따로 없다, 그런 강한 말이 나와야겠지만 이번 사건을 뒤에서 부추겼고 또 불길을 부채질하는 무형독의 공작으로 이야기는 그렇게 흐르지 않는다.

    "한동군. 유명한 무림회의론자였지."

    한동군.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의 대기업이자 다국적 기업인 금화의 창업자 한정선의 아들로 현 회장이다.

    그는 작은 회사였던 금화를 세계적 기업으로 일구어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고 대한민국에선 위인 중의 위인으로까지 불리던 사람이었으나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으니 몇 가지 흠결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무림인과 무림에 대한 시선이었다.

    -무림과 무공이란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그들은 결국 깡패에 불과하다.

    -깡패를 우대하는 건 결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에번드윅 공작 이상으로 그는 무림을 좋지 않게 보았고 강경한 발언을 했었다.

    단순한 의견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인으로서 그는 점점 더 커지고 발전하는 무림을 회의적으로 잘못 보았고 그 때문에 무림과 관련한 사업에서 크게 뒤쳐지고 말았던 것이다.

    뒤늦게 부랴부랴 자신의 발언을 정정하고 공격적으로 무림 업계에 투자하였으나 효과는 크지 않았고 굳건하던 재계 서열 1위의 위상마저 흔들렸다.

    만약.

    그의 아들이 한유성이 아니었다면.

    그 한유성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 무림에서 이름을 떨치지 않았다면 실제로 지금의 금화는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다.

    이 일 때문에 한동군은 회장이면서도 전면에 잘 나서지 않고 한유성이 이른 나이부터 부회장으로 금화의 실질적인 얼굴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깥에 보이는 금화의 모습이고 실제로는 한동군이 여전히 회장으로서의 권한을 온전히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동군은 뒤로는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고 있었으니 안민선 일파는 물론이요 그녀와 함께 몰락한 공정당에 후원을 계속하였다.

    금군 한유성이 무림인이면서도 공정당과 인연을 계속하고 있는 건 그런 배경이었고.

    "눈이 돌아간 정의검가 출신 무인들에게 힘을 보태 준 강경파 무인들이 그런 한유성을 습격했다는 거지."

    충격적인 사건에 달려든 기자들에게 무형독이 이렇게 소스를 던져 주었고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런 시기에 습격자들이 오히려 무림특별법의 유지에 독이 되는 짓을 '왜' 했냐는 건 의미없는 물음이다.

    본래 미친놈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미친놈인 거다.

    물론 이번 일의 경우엔 이단 세력이 개입하여 벌어진 일이긴 했지만 실행의 주체는 미친놈이니까.

    중요한 건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서 나온 한동군 회장의 선언이다.

    러시아로 본사를 이전하겠다니. 무어라 형언할 단어조차 찾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가 무림회의론자였고 이번에 아들이 강경파 무인들의 습격을 받은 것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다 해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문제는 이어지는 그의 발언이었다.

    [무림인은 여전히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도를 추구하는 무인, 그리고 칼을 들이미는 강도.]

    [나의 아들을 상처입힌 건 그런 강도들이고 세상에는 여전히 강도의 얼굴을 다른 얼굴로 감춘 자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무림특별법을 찬성하는 나라에서 더는 살 수 없다.]

    무림특별법에 부정적이었던, 과거의 의견을 다시 피로하면서 한국을 떠나겠다 선언한 것이다.

    이는 당연히 커다란 반발을 불러왔고 수많은 이들이 한동군 회장에게 비판을 넘어 비난마저 하게 만들었다.

    -이래서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늙는 것들이 위험한 거임.

    -아니 아들 습격당해서 충격받은 건 알겠는데, 그동안 무림 인정한다고 해놓고 얼굴 싹 바꾸는 거 보니까 존나 추하긴 함.

    -아 ㅋㅋ 그래 러시아로 꺼지고 앞으로 무림에 뭐 팔지도 마라. 그러면 인정해준다.

    -님들 그러다 한국 망함;;

    -? 천마신교도 있고 오성도 있는데 한국이 왜 망함. 저어어어어어얼대 안 망함. 그러니까 금화 이제 꺼지셈ㅋㅋㅋ

    -금화가 꺼져야 하면 한유아 여신님도 포함되는 거 아님?

    -? 유아 여신님은 천마신교인데 뭔 개소리임?

    -아 고렇네?

    [한동군 회장. "진심으로 한 이야기. 나는 주워담을 말을 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비난에 한동군 회장은 물러나지 않고 정면에서 받아쳤다.

    상황은 점점 더 격화되었고 금화가 정말로, 말뿐이 아닌 '이사'를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되자 한국의 심각한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재계 서열 1위의 다국적 기업이 한국을 완전히 떠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무형독 짓이겠지?"

    "확실하진 않지만 확신의 영역이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이전의 나지윤이 확실하지 않지만 확신의 영역이라고까지 할 만큼 이는 무형독이 벌인 일이 확실했다.

    잠잠해진 한국의, 나아가 세계 전체의 무림특별법에 관한 논쟁의 불씨를 키울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그를 위해 결코 가볍지 않은 패인 금화를 망가뜨리는 것조차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번 일로 결정날 테니까 말야."

    "그래."

    위서린과 장소유를 통하여 들었다.

    이것이 무형독의, 이단 세력의 '천하대계(天下大計)'라는 걸.

    그들이 이 세계에 넘어와 수십 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준비해 온 것으로 이 세계를 차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천하를 대상으로 한 계책이었다.

    도진으로 인해 완벽하지 않게 된.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파탄은 각오한.

    계책을 위해서라면 금화 정도야 아무렇지 않게 소모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그거다.

    "금화 전체가 무형독의 것이었을까?"

    도진의 말에 나지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야."

    금화는 무형독인가.

    나지윤은 여기에 관해서는 바로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그랬다면 위서린과 장소유에 의해 알게 된 것들로 즉시 판별할 수 있었을 테고 그 전에라도 낌새를 보였을 거다.

    그러니까 무형독, 이단 세력인 건 금화 전체가 아닌 금화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소수라 보아야 했다.

    그리고 그 추측을 확인하여 주는 정보가 예상치 못한 루트를 통하여 전해졌으니.

    "…후배."

    회의를 하던 중에 한유아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이렇게나 중요한 이야기 중에 꺼낼 만큼 그것은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이었으니.

    "한유성이 보낸 메시지야."

    다름 아닌 한유성이 보낸 메시지였다.

    그것은 철저한 익명성과 보안을 보장하는 앱을 통하여 발신된 것이었고 그 내용은.

    - - - -

    한동군 회장. 무형독 소속.

    강원도. 감금 상태. 도움 요망.

    한유아. 길을 알 것.

    - - - -

    금군 한유성의 SO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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