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화
나라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이 멸망하는 듯한 재앙이었다.
국소적인 붕괴가 다발하였고 대부분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 소멸하였다.
그것은 쓰나미와 같아서 너무나 거대한 그것이 다가오는 걸 자각한 순간 필사적으로 달려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재앙으로 모든 것을 앗아 버렸다.
그 안에는, 국가와 양립할 수 없어 변경의 십만대산에 자리잡았던 천마신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뿐이랴.
국소적인 붕괴가 다발함으로써 명나라는 나라를 유지하지 못할 만큼의 혼란을 겪었고 종말이 도래하였다며 이단이 창궐하여 결국 황실마저 소멸하였다.
한데.
그런 세상의 멸망을 가져온 붕괴 중 일부가 놀랍게도 다른 세상과 이어지는 '문'이 되었다.
"이쪽의 말로 하자면 포털의 존재가 밝혀진 건 50년도 더 전입니다."
천마신교의 이단 세력이 그것을 먼저 알았고 이쪽 세계에 뿌리내린 것이 50년보다 더 되었으니 그렇게 추측한다고 장소유는 말했다.
"하지만 포털은 완벽한 것이 아니어서 처음엔 그것이 단순한 붕괴 현상인지 포털의 역할을 하는 것인지 들어가 봐야만 알 수 있었고 그나마도 오래 유지되지 않고 며칠을 못 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음."
이단 세력이 이 세계로 와 최소한의 기반을 닦을 때까지의 시간을 생각하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60년이고 70~80년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의 과거라면 자체적으로 납득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의문은 의문. 나지윤이 물었다.
"일방통행만이 아닌 양방 통행이 가능한 포털도 있었고 얼마간 유지되는 포털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쪽 사람이 저쪽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넘어가기도 했겠군요."
장소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초기에는, 그렇게 사고로 넘어온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두 이단 세력에 붙잡혔고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군요."
애초에 그 당시는 이쪽 세계든 저쪽 세계든 '포털'이란 것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다시피 했다.
이쪽은 어떤 신비한 현상으로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취급될 뿐이었고 저쪽은 이단 세력이 정보를 독점했으니까.
포털로 인한, 그리고 포털을 통과한 사람들에 의한 변수는 없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지윤은 그리 생각하고서 더 질문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다 듣고 나서 하는 게 옳았으니까.
"포털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면서 이단 세력은 우리의 세계를 떠나 이곳에 정착, 나아가 지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아득히 발전한 이곳의 '과학'을 배우고 도입하였습니다."
세계의 붕괴와 함께 비정상적인 속도로 발전하게 된 술법. 여기에 과학까지 더해지면서 이내 그들은 하나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으니.
"그것이 포털의 안정화였습니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양자역학을 조금 논해야 했다.
본래 포털을 통과하였을 때 도착하게 되는 곳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처음 통과한 이가 어느 산의 중턱에 떨어졌다면 다음에 통과한 이는 도시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나기도 했다.
붕괴로 인하여 이쪽과 저쪽이 이어졌지만 어디까지나 '차원'이 이어졌을 뿐 그것이 완벽하게 '얽힌' 건 아니었다고 한다.
때문에 완벽하게 얽히지 않은 연결은 도착지가 확정되어 있지 않았고 이내 시간이 지나 차원이 복구되면서 사라지는 것이라 했다.
무엇보다 개개의 편차가 있었으나 영혼의 소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작게는 일부의 기억 상실로 끝났으나 심하게는 말 그대로 영혼을 잃고 빈 껍데기, 육신만이 남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명확하게 밝혀진 건 고수일수록 그 소실이 적다는 것이었는데 그렇다 해도 기억을 잃는 건 도저히 감수하기 힘든 리스크였다.
이런 문제들을 아직 완벽하지 않은 '과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이것을 이단 세력은 술법을 더함으로써 풀어냈다.
"특별한 술법으로 서로가 포털을 통하여 인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서로를 인지하여 장소를 특정하고 얽힘을 강하게 한다. 본래 한시적이어야 하는 연결을 서로를 인지하고 있는 양측의 술법사를 이용하여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쳐내고 한 마디로 하면 그러니까 이거다.
이단 세력은 출발지와 도착지가 확정되고 통행에 리스크가 없으며 사라지지 않는 포털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존."
나지윤이 말했고 장소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곳이 이단 세력이 보유하고 있던, 유지에 성공한 첫 포털입니다."
무형독의 본거지 중 한 곳으로 추측되는 흔적이 있던 곳이다.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허나 그곳에서 포털을 발견하진 못하였으니 그것을 숨기기 위하여 이단 세력이 망설임없이 폐쇄한 것이었다.
"그자들은 이제 단순한 붕괴와 포털이 될 수 있는 붕괴를 구분할 수 있고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는 기술과 기반을 닦았으니까요."
여기에 더하여 그들이 원하는 곳에만 포털을 열 수도 있었다.
애초에 붕괴라는 것 자체가 저쪽 세계의 현상이고 그중 극소수만이 포털로 '변질'되는 것인데 이 변질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이 원하지 않는, 포털의 존재가 이쪽에 알려지는 일을 완전히 차단해 온 것이다.
좋지 않은 정보.
하지만 그 뒤를 이은 것은 천마신교에 지극히 좋은 정보였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그런 포털을 구분하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일방적인 방어만이 아닌,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도진의 말에 장소유가 예, 하고 답했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우리는 이 포털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없습니다."
이단 세력이다.
"그자들은 포털이 되는 붕괴를 감지하고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때문에 지극히 열세인 우리는, 치밀하고 은밀하게 계획하여 그들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순간에만 포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장소유가 위서린이 보낸 소식을 그토록 긴 시간이 지나서야 받아볼 수 있었던 이유였다.
저쪽에 있던 장소유는 포털의 사용이 자유롭지 않았고 겨우 기회를 잡아 이곳에 넘어와서야 편지를 접할 수 있었다.
인구가 대폭 감소하였지만 현대의 과학 기술과 술법이 더해진 감시망을 이용하여 고립된 커다란 대륙을 이단 세력이 넓고 치밀하게 감시하고 있다.
심지어 포털을 통과하는 순간 짧은 순간이나마 통과자는 무방비가 되니 기습적으로, 몰래 통과하는 수법도 쓸 수 없었다.
"기습을 통하여 그들의 감시망을 훼손하고 그렇게 생긴 공백 안에서만 은밀하고 빠르게 포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가지 열세인 요소가 있었으나 그래도, 이것은 지극히 좋은 이야기였다.
일방적으로, 이쪽의 터전이 전장이 된 채 공격당하던 상황에서 반격의 수단이 생겼으니까 말이다.
더더욱. 그것은 전쟁의 불씨를 퍼뜨리고 있는 근원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소천마. 당신께서, 이단을 참(斬)하셔야 합니다.
위서린과 장소유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질문드려도 될까요?"
"예."
장소유의 말이 끝나고 나지윤이 물었다.
"그 포털을 통하여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은 얼마나 되나요?"
"포털의 규모를 키우면 백 명이라도 이동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나 되는 규모로 포털을 고정하면 이단 세력에 즉시 들키게 될 것이고 안정성도 낮아져 위험합니다."
"규모를 축소한다 하여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포털은 오래가지 않아 들키게 될 테니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통과한다 하여도 서른 명을 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나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물었다.
"여러 군데서 동시에 포탈을 열어 진입하는 건 가능할까요?"
"예.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포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고 그나마도 동시에, 저희가 원하는 곳에 포털이 될 수 있는 붕괴가 일어날 거라고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흐음."
"안전한 포털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을까요?"
"전수해 드릴 수는 있으나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이어진 질문에 장소유 또한 즉답하였다.
"이쪽 세계에는 술법의 개념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숫자의 개념이 없는 사람에게 대학 전공 수준의 수학을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대번에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결국.
이 문답을 바탕으로 결론 내리자면 저쪽 세계의 이단 수괴가 있는 본거지를 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기 위한 포털을 자유자재로 열 수는 없고 그나마도 한 번에 소수만이 통과할 수 있으니 조금씩,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충분한 전력이 갖춰진다는 게 된다.
…이래서야 진행이 어렵다.
모두가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고 바로 그때.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장소유가 말했다.
"이단 세력 내에서 포털을 총괄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홍괴산. 이단의 교주 바로 아래 좌우호법 중 우호법으로 지금 이쪽 세계에 넘어와 있습니다."
"홍괴산."
이름을 말하는 도진에게 시선을 맞추며 장소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날 배에서 저를 습격하였던. 소천마께 당하여 도주하였던 바로 그자입니다."
도진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자다.
그 얼굴은 모르지만 얼굴보다 분명하고 선연하게 추악한 그의 영혼을 기억하고 있다.
장소유를 상처입힌, 기필코 찾아 그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할 주술사.
그가 바로 이단 세력의 중요 인물이었던 것이다.
"홍괴산에겐 이단 세력의 포털 제어 시스템을 단번에 정지시킬 수 있는 킬 스위치(Kill switch)가 있습니다."
"킬 스위치."
"예.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모든 안정화된 포털을 파기하며 시스템 또한 정지시킬 수 있는 수단입니다."
교활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파는 법.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이것을 통하여 하루 정도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은밀히 은폐 술진 안에 둔 포털이 있는데 제어 시스템만 무력화하면 이것을 이용하여 대규모의 인원이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황실과 저쪽 천마신교의 잔존 세력은 포털 제어 시스템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 은폐 주술을 개발하였다.
다만 이 주술은 어디까지나 포털 자체만 감춰주고 사람이 넘어가는 순간의 파동은 감춰주지 못해 사용하는 순간 감시망에 걸린다고 하였다.
황실과 천마신교의 잔존 세력은 이 은폐 주술을 이용하여 포털 하나를 감춰 두었으니 만일을 대비한 보험 중 하나였다.
장소유는 이것을 이단 세력의 심장에 박아넣을 치명적인 비수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홍괴산에게 킬 스위치가 있다면 교주와 좌호법에게는 다시 시스템을 복구할 수 있는 복구 프로그램이 있어 감시망의 무력화는 길어봐야 하루에 그치겠지만 그 시간으로 충분했으니 앞서 있었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절대로 누출되어선 안 될 정보일 텐데, 어떻게 아시게 된 건가요?"
나지윤이 물었다.
그녀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결코 알려져선 안 될 정보를 그녀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장소유 또한 기분나빠하지 않고 답하였다.
"그자가, 홍괴산이 저에게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진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이단의 공격은 점점 더 거세졌고 열세에서 이윽고 제가, 황녀가 아니라는 것마저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저항 세력의 상징적인 인물이었으니 무려 사신의 손녀였던 것이다.
그 사신의 무공에 매료되었고 또 탐을 낸 자가 바로 홍괴산이었다.
그리고 사신의 무공에 그치지 않고 이내 장소유란 인간 그 자체를 탐내고 집착하였으니 기어코, 그 광기가 사신공의 근간이 되는 침기를 상쇄하는 술법의 완성으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날. 술법이 발동되고 찰나에 뻗었던 꼭두각시의 검.
그 궤적이 장소유의 심장을 노리지 않았던 이유는, 술진이 철저하게 사신공의 소유자를 포획하기 위해 기능하였던 이유는.
놈이, 주술사가 감히 장소유를 욕심내어 산 채로 잡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자의 함정에 빠져, 그자가 제 머릿속에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
"제 영혼을 제압하여 장악하려 들었지만 격퇴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은밀히 그자의 지식을 훔칠 수 있었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장소유의 말대로라면, 이것은 더없이 치명적인 조커였다.
"그자는 분명히 저를 노릴 것입니다. 그러니, 저를 노리는 그를 역으로 노려 킬 스위치를 획득하는 계획을 세웠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