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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34화 (634/741)
  • 633화

    도진의 유럽행은 여러가지 화제를 낳았다.

    다른 무엇보다 유럽의 '가장 명예로운 귀족'이자 조금 더 젊은 식으로 표현하자면 '리빙 레전드'인 에번드윅 공작과의 친분이 가장 회자되었다.

    발트 에번드윅 공작.

    유럽 혼란기 이름을 떨쳤던 귀족이자 영웅.

    그리고 그 영웅에 대적하던 '악당'이 다름 아닌 무림인들이었기에.

    그들이 비록 흑도로 분류되는 이들이라 하여도 적지 않은 수였고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들을 저질렀기에 발트 에번드윅은 무림인을 곱게 보지 않는 인사였던 것이다.

    한데 바로 그 발트 에번드윅이 칩거를 깨고 나와 무림특별법을 논하기 위해 모인 이들의 파티장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무림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소천마의 편을 들고 친분을 과시했으니 어찌 술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발트 에번드윅은 자신의 성에 소천마와 그 일행을 초대하였고 함께 여가를 즐기는 장면을 일부러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였으니 소천마에 대한 지지 선언.

    그리고 무림특별법에 반대하던 귀족 다수가 발트 에번드윅을 따라 입장을 바꿈으로써 유럽의 여론이 확연히 기울었다.

    -공작님이 선택하셨으니 우리는 따라야지요^^

    -암요.

    특히나 중장년층의 지지는 유례없이 굳건하였고 소천마를 동경하는 젊은층의 목소리도 이 시대에서는 결코 작지 않았다.

    -와 ㅋㅋㅋ 에번드윅 공작님이랑 소천마가 손을 잡아?

    -아 ㅋㅋㅋㅋㅋㅋ 이건 같은편이지만 좀 반칙 같음 ㅋㅋㅋㅋ

    -귀족파 : 아시발망겜;;

    -ㅋㅋㅋㅋㅋ 아 밸런스 패치 안한다고 ㅋㅋㅋ

    -꼬우면.. 아시죠? 귀족파 탈퇴하샘ㅋㅋ

    -실제로 탈주해서 이쪽으로 넘어온 귀족이 적지 않음ㅋㅋㅋ

    이와 같은 현상은 당연히 한국에서도 크게 다루어졌고 소위 말하는 '국뽕 드링킹'으로 흉흉한 소식 속에서 한줄기 즐거움이 되었다.

    [라바단 유혈 사태, 결국 전쟁으로 번져…….]

    [소비온 내전, 주변국까지 끌어들이며 장기화 조짐 보여.]

    라바단의 수도에서 일어났던 유혈 사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전이 되었다.

    그리고 내전이 일어났던 소비온은 흑도에 점령당한 정부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주변국들이 군대를 파견하면서 불길이 점점 번지는 형상이다.

    작았던 불이 진화되기는커녕 점점 커지며 주변을 삼켜나간다.

    이러는 중에 러시아와 예무르의 전쟁 여파 또한 간단치 않아서 미국, 인도 등 큰 나라의 신경전이 팽팽하여 지켜보는 이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세계가 긴장 상태에 접어들었으나 한국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웠으니 일상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한국의 서울.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천마전을 중심으로 한 천마신교의 부지 내 외부 연무장에서.

    꾸우우웅-!

    묵직하게 일대를 울리는 황금의 색을 띠는 기운이 있었다.

    비록 온전한 형상을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초식의 묘리에 따라 깃든 강맹한 기세가 찬란히 빛나는 용(龍)을 연상케 한다.

    전서린.

    아니 이제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 위서린이자 주서린인 황녀가 펼치는 그것은 도진이 심상세계의 수련에서 견식한 적이 있는 무공이다.

    후오오오오-

    막대한 양의 황금빛 내공이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와 신공(神功)의 묘리에 따라 포효하는 용의 기세를 일으킨다.

    황룡무상신공(黃龍無上神功).

    황실 무공으로 오직 황족에게만 허락된 그 신공이 차원을 넘어 도진의 앞에 선 황녀를 통하여 펼쳐지고 있었다.

    황족이기에 가질 수 있는 막대한 내공을 십분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이 무공은 깊이에 있어서는 아쉬운 면이 있지만 그래도 신공. 결코 익히는 것이 쉽지 않거늘.

    -제법 잘 익혔구나.

    심상세계에서 도진을 통하여 지켜보는 위지혁이 옅게 웃으며 말하였다.

    자신의 후손. 그리 멀지 않은.

    자신의 흔적과 아내였던 주려취의 흔적이 의식하지 않아도 묻어난다.

    사실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희대의 천재인 위지혁이 보기에 그것은 결코 잘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필수불가결한 막대한 내공조차 갖추지 못했지만.

    아이의 재롱을 기꺼워하듯 위지혁은 도진을 통하여 보는 위서린의 부족함을 결코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려 하였다.

    자신의 제자를 통하여.

    쿠오오오오오-!!

    황룡의 발톱이 도진의 상반신을 노리고 휘둘러진다.

    스윽-

    도진은 그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부드럽게 피하면서 위서린의 안에 파고들었다.

    '아.'

    숨과 가슴이 닿을 듯 가깝다.

    도진은 스승을 닮은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손을 들어 부드럽게.

    슥-

    뻗은 위서린의 팔을 교정하여 주었고 전음으로 말하였다.

    -번천조(飜天爪)의 정수는 직접적인 공격이 아닌, 그 투로를 따라 일어나는 간접적인 기세에 있습니다.

    -설령 황룡의 발톱을 피하여도 그로 인해 일어나는 번천의 기세가 상대를 옭아매고 또 찢는 것이지요.

    -이렇게요.

    콰아아아아아-!!

    그저 단조로웠던 황룡의 발톱이 천변지이를 일으킬 것처럼 강맹하게 일대를 장악한다.

    그리고 그렇게 완전히 변모한 초식을.

    퍼퍼퍼퍼퍼퍽!

    어느새 귀신처럼 다시 앞에 선 도진이 다 받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을 위서린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반복된 것이었으니까.

    너무나 자상하고 따듯하게.

    도진은 그녀와의 지도 대련을 해 주었고 이렇게 초식을 받아주기까지 하였다.

    그것이 위서린은 너무나 생소하였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따듯하였다.

    마치 삼촌이 있었다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주고 지켜주는 삼촌이 있었다면 이러할까 싶은 따듯함이었다.

    분명히 자신보다 연하인데. 알게 된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줄을 타는 듯한 관계였는데.

    기억을 되찾고 자신이 위서린이자 주서린이란 걸 알게 되고서부터.

    눈앞의 소천마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두근두근.

    가슴이, 콩닥거려서 또 생소하다.

    그렇게 잠시 딴생각을 해 버려서.

    훅-

    "아."

    스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네."

    코앞까지 다가와 자상하게 웃는 소천마에게 위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느새 저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져 있었다.

    내공과 체력을 많이 소모한 것을 자신보다 먼저 소천마가 챙겨 준 것이었다.

    '이상해.'

    혼자서 하는 게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자신이 결정하고 책임지고 타인을 이끄는 게 당연한 삶을 살았어서.

    이렇게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또 이상하다.

    "많이 늘었어요. 역시 스승님의 재능을 물려받은 게 확실해요."

    그리고 이렇게 대견하다는 듯 해 주는 칭찬까지도.

    "고마, 워요."

    물론, 싫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세계로 넘어온 고금제일천마, 자신의 선조님인 천마 위지혁님의 진전을 이었다는 것만이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일진대.

    어떻게 이렇게나 깊은 친밀감이 느껴지는지 신기하지만 위서린은 깊이 고민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냥, 이게 너무나 좋았으니까.

    다만.

    "그, 그럼 저녁에 뵐게요."

    "네."

    이 분위기에 취하면 취할수록 부끄러워서, 이렇게 도망가는 일이 많아져 조금 걱정이다.

    그것마저도 흐뭇하게 지켜보던 도진은 이내 위서린이 사라진 뒤.

    사악-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러나 아득히 높은 차원에서의 묘리를 따라 뻗은 손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았다.

    "……."

    도진의 손에 그 손보다 작은, 새하얀 손이 잡혔다.

    잡힌 손과 자연스럽게 깍지를 껴 도망치지 못하게 하였고 이내 손의 주인, 장소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으으-

    그리고 이어지는 건 내공의 대결.

    서로가 가진 사신공의 침기가 일어나 맞잡고 깍지 낀 손을 통하여 얽혀 든다.

    본래 서로를 공격하여야 하는 기운인데.

    두 기운은 전혀 그러지 못하고 당연히 함께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공존하였다.

    그것이, 장소유가 온기 속에 감싸인 것만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해 주었다.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져 혼자 서 있었는데.

    누구도 의지할 수 없었고 속내를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비슷한 처지였던 위서린은 동생이었으니까. 지켜줘야 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어야 했다.

    그래서 몰래 갈구하고 있었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혼자가 아닐 수 있게 해 줄 사람을.

    그런 사람이.

    거짓말처럼 나타나 버렸다.

    맞잡은 손보다 더 진실되게.

    서로의 영혼이 떨어질 수 없을 만큼,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되게 얽혀 있는 지금의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러길 바라는 사람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오늘도 무승부네요."

    "……네."

    자연스럽게 얽혔던 침기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깍지꼈던 손이 풀렸다.

    그것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저녁, 같이 먹어요."

    "네."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일상을 말하는 이 사람이 앞으로도 곁에 있을 거라는.

    그런 확신을 줌으로써 아쉬움을 채워 주었다.

    * * * *

    한국으로 귀국한 도진은 일상 안에 위서린과 장소유를 더했다.

    다 배우지 못한 데다 기억을 봉인하면서 함께 봉인해 버려 정체되었던 위서린의 황룡무상신공을 봐 주었고 장소유와는 부지역에 이른 사신공끼리의 대련을 하였다.

    정확히는 동시에 진행한 일이었는데, 도진은 위서린의 무공을 봐주면서도 장소유의 기습을 허용해서는 안 되었고 장소유 또한 기습에 이르기까지 위서린에게 자신의 존재가 들켜서는 안 되는 룰이었다.

    스승들을 대신하여 스승들의 후손을 보듬는 도진은 진심이었으니 마치 새로이 두 사람의 가족이 생긴 것만 같았다.

    도진이 그와 같은 마음가짐이었으니 위서린과 장소유 또한 금방 도진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위지혁과 장호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도진과의 거리를 좁히고 또 이곳의 천마신교에 녹아드는 동안.

    무형독의 뿌리가 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는 천마신교의 이단 세력에 대한 이야기 또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세상의 붕괴와 함께 세상의 법칙 또한 어그러지면서 술법이 급격히 발전하였습니다."

    장소유가 말하였다.

    저쪽, 그러니까 무림에서는 본래 사마외도로까지 취급되었던 술법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고.

    그 수준은 놀라울 지경이어서 이쪽 세계에서는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마법'이라 해야 할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경험해 보았습니다. 저를, 그리고 유아 선배를 습격했던 술법사의 수준은 상식을 벗어나 있었죠."

    놈은 무공의 수준 또한 낮지 않았는데 술법은 그 이상으로 뛰어났었다.

    한데 그런 그조차, '평범한 고수'의 수준이라고 장소유는 말했다.

    "이단의 주축이 되는 술법사들은 그 이상입니다. 상상을 넘어설 정도의, 이곳에서 말하는 마법이라 해야 할 만큼의 상궤를 벗어난 술법마저 쓸 수 있습니다."

    장소유를 습격했던 술법사가 떠오른다.

    그 자리에 오직 정신만을 보내어 원격으로, 경악스럽게도 사신공의 침기를 상쇄하는 술진을 발동시켰던 자.

    확실히 그것은 상궤를 벗어나 있었고 그런 술법사에 대한 대비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완성된 것입니다. 이 세계와 저쪽 세계를 오갈 수 있는, '포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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