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632화 (632/741)
  • 631화

    무림특별법에 관한 논쟁은 실시간으로 활활 타오르는 큰불이었다.

    그런 불에 다른 것도 아니고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은 사건이 터졌으니 소천마 김도진이, 귀족가의 자제인 벨토 로번을, 때려눕힌 것이다.

    해가 뜨자마자 유럽이 뒤집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뭐라고?

    -소천마가 망나니 벨토 줘팼다던데?

    -? 실화?

    -나도 구라인 줄 알았는데 실화였음 ㅋㅋㅋ

    -아니 미친 ㅋㅋㅋㅋㅋㅋ

    -빠꾸없이 참교육하는 소천마는 도덕책;;;

    -일간하오문 가봐라 지금 목격자 익명 인터뷰까지 떴음.

    그야말로 갑자기 불이 크게 번져 눈곱조차 떼지 못하고 헐레벌떡 구경을 가는 모양새로 네티즌들이 뉴스와 기사, 커뮤니티의 게시글을 찾아다녔다.

    - - - -

    [네. 제가 창문으로 봤는데요, 벨토 로번씨가 무섭게 소리치면서 수행원분에게 폭력을 휘두르더라구요……. 근데 수행원님은 입장상 방어만 하시던데 그게 너무 안쓰러워서……]

    [네. 소천마님이 나서주셔서 다행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 - -

    여러 곳으로 퍼진 인터뷰는 소천마가 옳다는 내용이었고 대다수의 네티즌들도 거기에 동의했다.

    -벨토 로번! 또 너냐!

    -저놈이 유럽 귀족 망신은 다 시키고 있어.

    -근데 병원도 안 가고 걍 집에 처박혔다면서. 소천마가 딱 한 대만 때렸대.

    -소천마한테 한 대 맞으면 원래 저승행이긴 한데 친구의 인터넷 친구가 목격하기를 워낙 가볍게 때려서 흔적도 없었대.

    -친구의 인터넷 친구는 에라이 ㅋㅋㅋ

    사고뭉치. 비호감. 망나니.

    벨토 로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최악이었고 그에 따라 여론도 최악이었다.

    무림특별법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일단 벨토 로번은 욕먹을 놈이라는 거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의 호출에 집의 복도를 걷는, 도진이 봐주어 맞는 순간에나 아프고 정신을 잃었지 맞은 흔적조차 없는 벨토 로번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Fuck. fuck. fuck!!'

    술이 웬수다.

    몇 번을 반복했는지 셀 수조차 없는 소릴 되뇌인다.

    술에 떡이 되었고 판단력이 흐려졌다.

    그래서 이번에도 해선 안 될 실수를 했고 아버지에게 호출을 당했다.

    똑똑.

    "…들어와."

    조심스레 노크를 하자 절로 몸이 떨리게 하는 낮고 무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달칵.

    "아버지."

    문을 열고 들어가 노크를 할 때보다 훨씬 조심스레, 두려움을 담아 벨토는 아버지를 불렀다.

    "엎드려."

    "……."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곤 느낄 수 없는 살벌한 명령에 벨토는 대꾸하는 대신 그대로 엎드렸다.

    빠악! 빠악! 빠악!

    그리고 넓고 고풍스런 방 안에서 울려 퍼지는 무자비하게 살을 두들기는 몽둥이의 타격음과 호통.

    "너는! 사람이 아닌 짐승과 다름이 없다!"

    "그렇게나 조심하라고 일렀거늘!!"

    "…죄송, 합니다."

    무술을 익히지 않았다면 피멍이 드는 걸 넘어 살이 터질 정도로 무자비한 매였다.

    여기에 무자비한 매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잔혹한 '비난'.

    어릴 적엔 너무나 아팠으나 계속되어 딱지가 앉은 벨토 로번이었기에 그저 죄송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벨토도, 로번 가의 가주인 로번 공작도 몰랐다.

    이런 것들이.

    바른 길로 갈 수도 있었던 벨토 로번을 망친 것을.

    아이를 어긋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부모의 잘못된 훈육이라는 것을.

    "일어나."

    "……예."

    벨토는 머뭇거리며 일어났다.

    평소보다 '훈육'이 훨씬 짧았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의 일을 파티에서 이야기 할 것이다. 잘 처신하도록."

    이는 새벽에 있었던 일이 마냥 마이너스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수 있도록 새벽에 급히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럴 수 있도록 로번 공작이 단단히 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너는 알려준 대로만 말하면 된다. 스스로 판단하지 마라. 무언가 좋은 생각이 들었다 싶어도 결코 그걸 입 밖에 내지 마라. 알려준 대로만 해라. 알겠지?"

    "……예. 아버지."

    * * * *

    오후.

    '티파티'의 마지막날이었다.

    오늘로 파티가 끝나고 내일부터 진지한 분위기에서 무림특별법에 대해 날선 토론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

    새벽에 있었던 사건이 그것을 하루 앞당기게 만들었다.

    파티 장소가 회의장으로 바뀌면서 음식 대신 오로지 목을 축일 간단한 음료만이 자리에 놓였고 무림특별법의 찬성파와 반대파가 마주 앉아 대립하였다.

    사건의 당사자인 소천마 김도진과 벨토 로번을 두고 귀족파가 시작부터 날선 목소리로 말했다.

    "소천마. 당신은 로번가의 사적인 영역에 제멋대로 개입하여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인지하고 계십니까?"

    "네."

    "……."

    너무나 간단한 인정에 공격했던 귀족이 오히려 멈칫거리고 말았다.

    그 사이 도진이 말했다.

    "사적인 영역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수행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먼저 폭력을 행사한 이를 상대하는 것도 폭력이라면 맞습니다."

    "……."

    뭐라고 말해야 하는데.

    대꾸할 말이 바로 생각나지 않아 말문이 터억 막히고 만 귀족이었다.

    뻔뻔하게 나갈 수만 있다면 무어라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엔 그동안의 파티와 달리 소수지만 각계의 인사들이 참관하였고 심지어 생방송은 되지 않지만 편집하여 방송하기 위한 녹화마저 되고 있었다.

    그래서 말문이 막혀 버린 귀족 대신 더 노련한 이가 나섰다.

    본래 이런 일에 있어 전문인 로번 백작이 당사자의 아버지라 한 발 물러서고 그와 비슷한 평가의 웰론 백작이 바톤을 넘겨받았다.

    "그것은 지극히 당신을 변호하기 위한 편협한 시선이로군요."

    도진의 시선이 웰론 백작에게로 옮겨갔다.

    "편협한 시선이요."

    슬쩍, 비뚤게 올라간 입꼬리가 웰론 백작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서늘했다.

    허나 그렇다고 입을 다물 수는 없었기에 웰론 백작은 멈추지 않았다.

    "수행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하셨는데, 벨토 로번의 행위는 언뜻 그렇게 보일 수 있었으나 그를 수행한 수행원은 훨씬 윗줄의 고수로 그의 행위는 결코 폭력이나 위협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술에 취하여 조금 억지를 부린 것이었고 수행원은 그것을 타일러 본가로 데려가는 의무를 수행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한데."

    "거기에 소천마, 당신이 끼어들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졌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로번가의 명예가 실추되었고 수행원 또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벨토 로번과 그의 수행원이 앞으로 나섰다.

    두 사람이 꺼낸 이야기는 웰론 백작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술에 취하여 못난 모습을 보여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을 모시는 과정에서 그것이 위협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둘의 증언 이후 웰론 백작이 도진을 압박하였다.

    "당사자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소천마. 당신이 잘못한 것입니다."

    굳이 무림특별법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책이니까.

    이것만으로도 '무림인이 함부로 나섰는데 무림특별법 때문에 그에 대한 잘못을 물을 수 없다'는 여론을 만들기엔 충분하다.

    저편의 귀족들은 그런 생각이었고 그를 위한 논리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 역겨워서.

    도진은 슬쩍. 웃고 말았다.

    "그렇군요.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공기가, 분위기가 바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세상에 도진의 심상이 반영되어 귀족파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웰론 백작이 억지로 얼어가는 듯한 혓바닥을 움직였다.

    "…소천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 보군요."

    "네. 그런 식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저열한 논리에 어떻게 동의하겠습니까."

    "저, 저열!"

    "무슨 말을!"

    귀족들이 흥분하였다.

    하지만 그 흥분은 도진의 싸늘하게 이어지는 말에 더 날뛰지 못하고 열을 잃었다.

    "수행원이 더 윗줄의 고수라 받아줄 수 있다고 해서, 술에 취하여 폭언을 하고 주먹질을 하는 것이 폭력이 되지 않는다구요? 당신들에게 있어선 그것이 용납되는 행위입니까?"

    "귀족이라 함은, 나라를 지키는 전사에서 기원한 것이 아닙니까.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검을 들고 휘두르는. 그것이 폭력이 되지 않도록 경계할 줄 아는, 명예를 아는 이들이었을 텐데요."

    "그런데 지금 당신들의 논리는 무엇이죠? 그것이 명예를 아는 귀족이 할 수 있는 소리인가요?"

    "우리를 지금 모욕하는"

    "아뇨. 당신들을 모욕하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 스스로입니다."

    "……!"

    "귀족이 먼저가 아닙니다. 사람이 먼저인 겁니다. 귀족은 귀족일 수 있도록 명예를 알고 그것을 지킬 수 있어야만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는 겁니다. 그렇지 못한 이를, 그 누가 귀족으로 존중하여 준다는 거죠?"

    '신분'으로서의 귀족을 도진은 완전히 부정해 버렸다.

    가해자이면서 스스로를 오히려 정당화하고 기만하려 드는 뻔뻔한 자들을 적나라하게 지적하였다.

    그리고 쉽사리 나오지 않는 대꾸에 역시나, 예측대로 흘러가는 걸 확인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닳고 닳은 귀족이란 자들이 겨우 이런 말에 제대로 된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얼굴만 찌푸린다고?

    심지어 은밀하게 발언하려는 이를 옆에서 말리는 자들까지 있었다.

    조금만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면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공세를 이어가는 것이 보통일 것이고 이것이, 귀족파가 원하는 그림이었다.

    따로 믿고 있는, 그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패를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유럽엔 '가장 명예로운 공작'이 있다.

    유럽의 혼란기.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힘에 취해 날뛰던 무림을 제압했던 가장 명예롭고 또 가장 강한 공작이.

    그는 무림인을 힘에 취한 위험한 강도라고 평했고 그런 강도들을 직접 때려잡은, 도진이 말한 '명예로운 전사'였다.

    동시에 최고로 명예로운 귀족인 공작의 신분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무림특별법에 찬성하는 도진과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 것이다.

    요 몇 년 사이엔 크게 활동하지 않아 존재감이 옅어졌다지만 주류가 되는 중장년 사이에서는 여전히 유럽의 귀족을 상징하는 살아있는 전설이자 귀족이면서 유럽을 대표하는 무림인이기도 한 그는 무림인의 힘을 경계하는 성향을 띠었다.

    바로 그런 인물이.

    "에번드윅 공작님 드십니다!"

    오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귀족파 일부에 연락을 넣었다.

    "에, 에번드윅 공작님?"

    "이렇게 갑자기?"

    에번드윅 공작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요하며 웅성거렸다.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은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으니 생긴 동요였다.

    오직 소수, 오늘 그의 방문 소식을 전해듣고 이 논쟁을 조율하던 귀족파의 일부 귀족들만이 이겼다는 표정으로 여유가 있었다.

    '어리석은 놈들.'

    에번드윅 공작.

    유럽 최고의 귀족이자 무림인으로서도 경계를 넘어선 고수.

    그는 말 그대로 유럽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고 민중을 움직일 거대한 상징이기도 했다.

    그가 한 마디만 한다면.

    귀족파에 힘을 실어준다면 이 자리의 형세는 완전히 역전될 것이고 여론 또한 그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무림인이 귀족을 때린 이슈로 열린 이 자리에서 에번드윅 공작은 당연히 그들의 옆에 설 것이었다.

    뚜벅. 뚜벅.

    고급스런 구두로 바닥을 밟으며 에번드윅 공작이 안에 들어선다.

    윤이 나는 하얀 머리카락을 올백으로 넘기고 여든에 가까운 세월이 느껴지는 그는 그러나 생명력으로 넘치고 있어 세월이 비껴간 것만 같다.

    차려입은 정복의 가슴팍엔 훈장이 몇 개나 수놓여 있어 화려하지만 본인의 기세가 그 화려함마저 죽일 정도로 강렬하다.

    에번드윅 공작.

    그는 자신의 기세를 억누르지 않았고 삽시간에 회의장을 가득 채워 침묵을 명령했다.

    스윽.

    그리고 그 침묵에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마주하는 소천마 김도진.

    격돌하는가.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고.

    "오랜만이군, 소천마."

    "네. 에번드윅 공작님."

    처억.

    두 사람은 웃으며 악수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