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629화 (629/741)
  • 628화

    [오형숙 의원, 실언에 비난 쇄도.]

    [믿을 수 없는 실언을 방송 중 한 "의원님"]

    오형숙 의원이 또 한 번 구설에 올랐다.

    국정 감사에서 크게 체면을 구기고 조롱당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한 번 크게 실수를 한 것이다.

    -마! 술도 팔고! 여자도 팔고! 어!

    -내 귀를 의심했다 ㅋㅋㅋ

    제아무리 케이블이라지만 생방으로 송출되는 설명회에서 국회의원이 내뱉기엔 너무나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본래 생방송하면 이런 류의 사고를 대비하며 말만 생방이지 시간차를 두고 송출되는데 이게 하필 인터넷으로도 동시 송출을 해서 그런 안전 장치가 없었다.

    물론,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것이 적절하면서도 통렬한 '사이다'였다면 오히려 지지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거 앎? 하오문이 다른 간판 내걸고 치안 유지 할 때 평가가 전국 1위였음.

    -가난한 사람을 문파 차원에서 지원하고 학교 폭력 근절에 밤중에 흑도 양아치들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했음.

    -? 뭐지? 왜 완벽함?

    -그것이.. 하오문이니까..(끄덕)

    오형숙이 핏대를 올리며 비판했던 '기만을 위한 문파'가 웬만큼 정파로 이름 높은 문파들조차 대기 힘들 만큼 완벽하게 치안 유지 계약을 수행했던 것이 밝혀지며 꼴이 우습게 된 것이다.

    심지어 숭무지부주 전서린이 오형숙에게 모욕당하는 중에도 그와 같은 스스로의 선행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잘못을 인정하였기에 더욱 대비가 되었다.

    쿵. 쿵. 쿵. 쿵.

    이런 시기에 느리지만 힘이 잔뜩 담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오형숙 의원의 사무실에 들어서는 건 머리를 가지런히 올백으로 넘긴 정장 차림의 장년 남성이다.

    "대, 대표님!"

    웬만한 이라면 꿈쩍도 안 할 오형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신분을 입에 담았다.

    대표. 그러니까 무려 그녀가 소속된 당의 대표가 방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짜아아악-!!

    듣는 이의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당대표가 오형숙의 따귀를 후려쳤다.

    "잠시들 나가시게."

    "예, 예."

    직원을 포함한 불필요한 이들을 치우고 당대표와 오형숙만이 남았다.

    안면이 벌겋게 부은 오형숙이 고개를 숙였다.

    자존심? 폭력? 그딴 건 이 상황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기껏 기회를 줬는데, 내가 등신이었어. 그지?"

    "죄송합니다."

    "너. 뱃지 좀 떼야겠어."

    "대, 대표님!!"

    "아가리 닫고 당분간 조용히 있어. 영원히 보낸다든? 그냥 조용해질 때까지 잠수 좀 타고 있으라고."

    오형숙은 대표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었다.

    또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그래도 자리는 지켜야 되지 않겠냐고 항변하기엔 두 번의 실수가 너무 치명적이었다.

    무엇보다.

    국회의원이라기보단 뒷세계의 거물이 어울리는 성격의 그가 너무 무서웠다.

    그리하여.

    [오형숙 의원, 사직서 제출.]

    [오형숙.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면서 백의종군하겠습니다"]

    오형숙이 퇴장하였고 그녀가 속했던, 무림특별법 개정의 목소리를 높이던 당 또한 침묵하면서 한국의 소요는 완벽하게 가라앉은 듯 보였다.

    "부회장님께서도 같은 의견이라고 말씀 전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오형숙의 따귀를 날렸던 당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넘겼다.

    고급 요정에서의 은밀한 자리.

    당대표의 속내는 결코 좋지 않았다.

    '말단 따위를…….'

    정치에는 돈이 든다. 아주 많이.

    그러니까 정치와 경제가 깊은 관계를 맺는, 정경유착이라는 것이 필연적인 것이다.

    그와 그의 당은 무려 금화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가 아닌 안민선이 당대표였을 때부터 금화와 아주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대한민국 제일 여당과 대한민국 재계 1위의 그룹이 유착하는 건 필연적이다.

    한데 안민선이 몰락하고 천마신교가 득세하면서, 대한민국 제일 여당은 이제 금화의 톱인 부회장은커녕 그 아득히 아래의 말단이 당대표에게 '부회장님 말씀'을 전달하러 나올 정도로 몰락하고 말았다.

    때문에 쓰리기 짝이 없는 그의 속을 달래듯, 말단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회장님께서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으시니까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으시다구요."

    "예. 그러니 이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인 것이지요."

    * * * *

    한국은 무림특별법과 관련한 논란이 거의 가라앉은 듯 보였다.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는, 옳다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었고 반대의 목소리는 미미했다.

    일본이야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또한 같은 입장이다 보니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오늘 새벽 라바단의 수도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무림특별법 개정을 강행한 정부와 무림인의 충돌로 인해 긴장이 높아진 가운데……]

    -뭐냐 저거;

    -이게 진짜 충돌이 일어나네..

    라바단.

    남미의 작은 독립국.

    그 독립국에서 무림특별법 개정을 밀어붙였던 독재 정부와 그에 대항하여 모인 무림인들이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무림특별법 정도 되는 중요한 법이면 예고부터 시작하여 최소 몇 달 진통을 앓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라바단은 그런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아니었고 독재를 위협하는 무림인을 탄압하기 위해 법 개정을 시도하다 무림인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소비온의 내전이 발발하여 국경이 차단되었습니다.]

    [소비온 국민들은 실질적으로 흑도 문파가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며 외부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소비온. 그 존재조차 모르는 이가 대부분인 작은 나라.

    약소한 나라는 그렇기에 모든 면에서 부족하였고 강대한 흑도 문파가 대놓고 나라를 쥐락펴락하였다.

    그러다 무림특별법에 관한 논란을 계기로 국민들이 들고일어났고 이내 내전이 발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작은 나라부터 시작하여 세상은 말에서 그치지 않고 '전쟁'이, 정말로 벌어지기 시작했고 불길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지금은 먼 나라 뉴스겠지만 곧 모두가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도진은 이대로라면 그 미래가 확정된다는 걸 알았다.

    '이미 많은 놈들이 들어왔겠지.'

    전쟁은 '사소한 것들'을 무시하게 만든다.

    그 사소한 것들 안에는 신분이 포함되어 있으니 은밀히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와 전쟁의 불씨를 키우는 이단 세력이 적지 않았다.

    어떤 이는 선동꾼으로, 어떤 이는 자금을 대는 장사꾼으로.

    또 어떤 이는 용병으로.

    하오문이 협력하면서 세이전은 그렇게 이 세계에 스며들어 암약하는 이들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결코 메울 수 없는 차이를 만들던 비밀. 그들이 다른 차원에서 온다는 걸 알게 되면서 무형독은 더 이상 하오문과 힘을 합친 세이전의 눈을 피할 수 없었고 많은 것들을 드러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걸 알아챘으면서도 놈들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놈들은 이제 사리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는 멈출 수 없을 만큼, 불씨는 커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커진 불씨가 세상을 태울 정도가 되어 버리면.

    모든 것이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도진은 그런 미래를 막기 위하여.

    "어서오세요, 오빠!"

    햇빛에 아름답게 빛나는 금갈색 머리카락의 릴리가 반겨주는 영국의 땅을 밟았다.

    * * * *

    아시아가 빠르게 무림특별법에 관한 태도를 정리한 데 비하여 아메리카와 유럽은 서로 다른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무형독이, 이단 세력이 원하는 것이 그런 대립에 의한 불똥을 이용,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기에 대립이 오래가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긴 대립은 결국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이 미워하기 위해 미워하는 태도를 취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도진은 그것을 막기 위하여 우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럽의 '다과회'에 참가하고자 영국 땅을 밟은 것이었다.

    영국.

    유럽의 핵심 나라 중 한 곳이며 웨일스 후작가가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리고 그 웨일스 후작가는, 천마신교의 혈맹이다.

    "그러고 보면, 오빠가 우리집 오시는 건 처음이네요?"

    "응, 그러게."

    "제가 구석구석 다 소개시켜 줄게요!"

    "고마워."

    신이 난 릴리를 따라 도진이 함께 걷는다.

    릴리 아디나 웨일스 후작 영애.

    영국에서 모르는 이가 거의 없는 아름다운 영애와 아무런 숨김없이 걷는 소천마는 필연적으로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는데 심지어.

    "클로에. 군것질 좀 하고 들어갈까 하는데. 괜찮아?"

    "예. 괜찮습니다."

    프랑스의 잔 다르크라 불리는 덴젤 공방의 후계자.

    클로에 덴젤까지 함께 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화제가 되었다.

    [소천마, 공주님들과 함께 나들이?]

    [소천마, 유럽 연합의 파티에 참가 예정.]

    단순한 방문이어도 크게 화제가 될 조합이었다.

    웨일스 후작가의 영애, 그리고 덴젤 공방의 후계자와 유럽을 걷는 천마신교의 소천마라니.

    한데 이번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무림특별법에 관해 논하는 자리에 참가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수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환영하는 이와 거부하는 이가 나뉘었다.

    -그는 유럽의 아주 중요한 친구지. 참석하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어디까지나 친구일 뿐 유럽 사람이 아니잖아. 외부인을 유럽의 중요한 이야기에 부르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회의엔 참가하지 않는다고 했어. 어디까지나 다과회에만 얼굴을 비춘다고 했으니 문제없겠지.

    -아, 그랬어? 그 정도면 뭐.

    이번 유럽 연합 회의는 며칠 간의 파티 이후 열리게 되어 있었다.

    회의 전 친목을 다지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필요에 따른 합종연횡이 빈번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도진은 그 합종연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중인 둘째날의, 화려한 파티에 참여하기 위하여 호텔 앞에 섰다.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도시의 끝자락에 위치한 클래식한, 그러나 거대하여 위엄마저 느껴지는 건물이 강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다.

    이 호텔의 연회장에서 파티가 열린다.

    레드카펫이 깔린 길 좌우로 수많은 카메라가 몰려들어 있어 웬만한 이라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지만 클로에를 에스코트한 도진은 그 웬만한의 범주에 들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드레스를 입고 화려하게 꾸민 클로에는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운 공주님을 능숙하게 에스코트하여 안에 입장했다.

    -오오…….

    여기저기서 감탄이 새어 나온다.

    특히 젊은 귀족, 사업가 남성들이 클로에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프랑스 최고의 공방인 덴젤 공방의 후계자.

    명장의 기술은 물론이요 경계를 넘어선 무인의 무공에 명예와 재산까지도 한몸에 담게 될 아리따운 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 관심을 가진 이들 중 한 명이 빠르게, 용감하게 다가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덴젤 영애. 로번 가의 벨토라 합니다."

    태도는 정중하고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러나 클로에는 그를 전혀 반기지 않았으니 오히려 불쾌함을 내비쳤다.

    다른 게 아니다.

    그가, 벨토가 의도적으로 도진을 무시하고 자신에게 먼저 인사했기 때문이다.

    클로에가 도진의 제자인 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응당 스승이자 천마신교의 교주인 소천마에게 먼저 인사하는 게 예의거늘.

    벨토는 그런 이유로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클로에에게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소천마께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나 보군요. 귀족이신 덴젤 영애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이 제 나름의 예의라 생각했는데."

    너는 귀족이 아니잖아.

    그런 의도를 담아 모두에게 들리도록 벨토가 말했다.

    도진은 벨토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클로에. 모르면 그럴 수 있지."

    "?"

    벨토는 도진의 말에 시선을 향하며 생각했다.

    소천마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도를 담은 발언인 걸까.

    그렇다면 환영이다.

    어디 감히 귀족도 아닌 것이 여기서 그런 발언을.

    "반갑습니다. 광산 김가 36대손 김도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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