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622화 (622/741)
  • 621화

    국정감사(國政監査).

    직역하자면 말 그대로 국정을 감사하는 행사다.

    국회의원들이 형사의 위치에서 행정부를 필두로 한 국가 기관들에 대한 감사와 감찰을 진행하며 사회적인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데 이번에는 그 포커스가 무림특별법에 맞춰진 것이었다.

    그렇게 될 만큼,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큰 논쟁이 될 만큼 하이재킹 사건이 기폭제로 작용하였다.

    시작은 예무르와 라보르의 갈등.

    다툼으로 인해 사람을 죽인 자를 처벌하겠다는 예무르의 판단에 라보르가 반발하였고 전쟁으로 번졌다.

    냉정하게 말해.

    여기까지는 '별일'이 되지 못했다.

    허나 여기에 러시아가 끼어들면서, 심지어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으로 번지면서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문제에 무림특별법이 엮이고 만 것이다.

    무림특별법은 한국만의 법이 아니다.

    비록 디테일에 차이는 있으나 크게는 국제법이었고 그 국제법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세계적인 논쟁으로 불이 번졌다.

    -무림인이란 이유만으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용인된다니,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가? 난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

    -동의해. 세상은 지금 완전히 미쳤어. 살인자가 정당화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 결코 정상이 아니야.

    -극단주의자들 납셨네. 이번 일은 지극히 특수한 경우이고 무림특별법은 세상을 발전시킨 법이라는 게 몇 번이고 증명 되었지.

    -사람의 목숨은 그 자체로 존귀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야. 그걸 하찮게 만드는 법이 세상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헛소리도 정도껏이어야지.

    -낡아빠진 논리네. 사람의 목숨이 그 자체로 존귀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면, 그런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빼앗는 놈은? 한둘이 아니라 수십을 빼앗는다면?

    -목숨을 빼앗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지.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인권을 유린하고 훼손하는 놈들은? 그놈들의 목숨과 인권 또한 존중해야 하나?

    -그들 또한 하나의 생명이고 인권이야.

    -닥쳐 역겨운 새끼야. 하나의 역겨운 인간 이하 때문에 수십, 수백의 생명과 인권이 훼손되고 위협받는데 그것도 생명이고 인권이라고? 난 너같은 새끼를 저주해. 너같은 새끼들 때문에 나의 친한 친구가 죽고 말았지.

    -가해자의 인권을 부르짖는 놈들의 목소리 때문에 교도소에 처박히지 않은 놈이, 내 친구를 죽였다고!

    -알량한 자기 만족과 나는 선하고 훌륭하다는 우월감 때문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옹호하려 드는 것들이 세상엔 너무 많았지. 나는 그래서 소천마의 그 발언이 잊히지가 않아. 용서란 피해자가 해야 하는 것이지 타인이 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인류가 한 발 더 나아간 증거가 난 무림특별법이라 생각하고 있어. 그 법을 폐지하고 생명을 존중한다고 지껄이는 놈들을 나는 절대로 지지하지 않아.

    초기에는.

    무름특별법을 옹호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세상이 되었으니까.

    인권이니 생명이니 운운하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더 옹호하는 역겨운 논리가 통하지 않았다.

    그런 옹호 논리로 인해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수많은 불행들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당장 러시아를 규탄하고 예무르의 편에 서서 전쟁을 돕는 이들마저도 무림특별법을 부정하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전쟁에서는 예무르의 편을 들어도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러시아의 편을 들었다는 말이다.

    한데 그것이.

    예무르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인해 흐름이 바뀌었다.

    -무림인이 위협을 가할 때, 법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나?

    그런 물음이 던져졌고 답은 부정적이었다.

    실제의 경우, 무림인이 이유없이 일반인에게 위해를 가하면 가중처벌을 받는다.

    그것이 결코 가볍지 않아서 무림인들은 오히려 더 조심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내에서 살 의향이 있는 무림인에 한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나가 버린 무림인의 위협에 대해서 공권력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회의론이 나온 것이었다.

    -당장 이번 예무르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를 봐. 미국마저 속수무책이었지. 그리고 여기에는 극단주의자들마저 당당히 활보할 수 있도록 해 준 무림특별법이 있었다는 말이야.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의 진지한 논의는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해.

    -아니, 여기 뭐냐. 왜 이렇게 물타기들을 하고 있지? 저번에도 그랬지만 왜 극단적인 사례만을 가지고 무림특별법을 손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여론 조작하려는 세력들이야?

    전쟁, 러시아, 하이재킹.

    세계를 몇 번이고 뒤흔든 사건에 섞여 무림특별법에 관한 이야기는 기름을 부은 듯 폭발하고 또 번져 나갔고 결코 인터넷 안에서의 논쟁으로는 끝날 수 없는 영역까지 커지고 말았다.

    무림맹이 성명을 내고 예무르가 목소리를 높였으며 러시아 또한 가만있지 않았다.

    무림인을 범죄자로 여기지 말라.

    무림인의 월권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피해자의 입장인 우리를 전범 취급할 텐가.

    시끄럽고 또 시끄러운 가운데 사람들의 신경을 팽팽하게 만들었고 이 여파에서 한국도 벗어날 수 없었다.

    [오형숙 의원, "무림인에게 주어진 특권이 이 사태를 만든 것이다" 강경 발언]

    친 무림파인 여당에 반대하기 위해 부르짖는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이내, 국정감사에서 그것을 공개 논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소천마 김도진, 비봉 서소담. 무림특별법에 대해 말한다.]

    도진과 소담이, 참고인으로 나서는 게 확정되면서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ㄷㄷㄷ...

    -와, 교주님 이제 국회도 가는 거임? ㄷㄷ;;

    -잘은 모르겠지만 국정감사 생방송을 본방사수하게 생겼네 ㅋㅋㅋ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소천마 김도진과 천마신교는 무림특별법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무림특별법은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살인마저 인정하는 법이었으니 천마신교의 교리를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법이었다.

    그리고 그 법에 대해 지금 가장 격렬한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계속 비판의 목소리를 내 온 것이 다름 아닌 오형숙 의원이었기에.

    사람들은 도진과 오형숙 의원의 격돌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당사자인 도진은…… 그런 오형숙 의원에 대해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 않았다.

    대신 그 너머를 총괄부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분열을 의도하는 것 같은데."

    도진의 말에 나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것만은 확실해."

    일련의 사태.

    그것이 무형독의 세상의 의견 분열을 노린 물밑에서의 수작에 의한 결과라고 천마신교는 생각했다.

    이런 식의 의견 분열을 의도하는 건 생각보다 더 간단했고 무형독이라면 스케일을 세계 단위로 키우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문제는 이것을 발판으로 무엇을 꾸미고 있냐는 거다.

    나지윤은 고민하는 얼굴로 말했다.

    "어떤 의견을 등에 업고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드는 게 확률이 높겠지. 그리고 그건."

    "…지금껏 자신을 철저하게 감춰왔던 무형독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

    지금 이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일이 될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이었던 변화는 태풍이 되었다.

    그리고 그 태풍은 이미, 도진의 삶을 영향권 내에 두고 있었다.

    "우선 우리 교주님은 국정감사를 잘 마치고 오면 돼."

    무거운 분위기를 흩어 버리듯 오성아가 멋지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한유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하든, 후배가 하는 모든 게 무형독을 방해하는 일이 될 테니까."

    도진이 하하 웃었다.

    "네. 그럼 일단 그것부터 하도록 하죠."

    * * * *

    국정 감사의 날이 밝았다.

    도진은 소담과 함께 정장 무복을 차려입고 국회로 향했다.

    "조금, 긴장 되네."

    머리를 땋아 올린 모습이 평소의 몇 배나 되는 단아함을 자아내는 소담이 속삭였다.

    곁에서 걷는 도진이 약하게 웃었다.

    "처음이니까. 긴장하는 게 당연하지."

    처음.

    그 단어에 소담이 긴장을 녹이며 미소지었다.

    "응, 그렇네. 처음이네."

    처음은 소담에게 있어 특별한 단어였으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라는 낯선 장소에서 발언하는 일에 긴장했지만 그것이 도진과 함께 하는 처음이라는 걸 인식한 순간.

    거짓말처럼 긴장은 사라지고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다.

    무림특별법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분명히 나를, 암산서가를 공격할 거다.

    며칠 동안 총괄부와 세이전에서 의논하여 예상되는 이야기들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였으니 그 답변을 그들의 면전에 통쾌하게 던져줄 각오를 소담은 다졌다.

    찰칵찰칵!

    플래시는 자제하였으나 셔터음이 마치 총알 세례처럼 들릴 정도로 쏟아진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선 바깥에서 밀려드는 기자들의 소리가 또한 청각을 자극하였지만 도진과 소담은 미리 준비된 다른 길을 이용했기에 그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국정감사 회의장]

    안에 들어서자 대기하고 있던 양복 차림의 남자가 안내했고 그를 따라 회의장 앞에 섰다.

    도진과 소담이 대상이었기에 소리 낮춰 수근거리는 소리는 일절 없었지만 시선만으로도 그 이상의 관심이 느껴진다.

    뜻을 알 수 없는 시선부터 시작하여 노골적인 적대감까지.

    그것들은 회의장 안 지정된 좌석에 앉는 순간 최대치가 되었다.

    이 공간의 시선만이 아닌, 커다란 카메라 너머 렌즈의 시선마저 느껴지는 듯하여 웬만한 이라면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 한 마디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국정감사가 시작된 뒤로는 더했다.

    "먼저 한국 무림맹의 맹주직을 맡고 계신 고동석 맹주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예."

    무림에서는 물론이요 사회에서도 잔뼈가 굵은 50대의 남자.

    무려 한국 무램맹의 맹주직을 맡고 있는 남자마저 그 얼굴에서 긴장이 엿보였다.

    "그러니까 무림맹이 이름만큼의 역할을 못 하니까 치안 유지 계약이라는 제도가 더해진 게 아닙니까!"

    "그것은……."

    "무림인끼리 제 식구 감싸기 같은 부작용이 나오는 걸 부정할 수 있습니까? 대답하세요!"

    그리고 그 긴장은 괜한 것이 아니어서 마이크를 잡은 의원.

    오형숙의 맹폭에 한국의 무림맹주 고동석은 쩔쩔매고 있었다.

    '개같네, 진짜.'

    50 넘은 나이를 먹고 하기엔 상스러운 말이지만 그것만큼 자신의 속내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 없었다.

    무림맹이란 단체가 있는데 왜 무림인들을 아우르고 있지 못하냐, 그렇게 유명무실하니 치안 유지 계약이란 이름으로 그 지역의 무림인이 연고지 무림인을 감시하는 어이없는 체계가 나온 게 아니냐는 소리를 하고 있다.

    전형적인 현실을 모르고 지껄이는 소리인데 정작 거기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애초에 너희들이 무림인의 권한이 커지는 걸 경계해서 견제하고 있는데 우리가 무슨 힘이 있냐는 말은 할 수도 없다.

    안 그래도 하고 있는 일이 많다, 세세한 것까지 모두 볼 여력이 없으니 대신 토착 문파가 치안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말을 하면 또 거기에 꼬투리를 잡아서 떽떽거릴 게 뻔하니 최소한의 반응만 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 있는 시선이 많으니 괜히 실언하지 않도록 사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나대지 않음으로써 무림맹주에까지 올랐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국정감사를 넘기기로 정하였고 이내 '너는 흔들어라 나는 힘 빼고 있을 테니'의 태도가 되었다.

    "……."

    무자비하게 고동석을 두드리던 오형숙도 고동석이 그런 태도를 취하자 공격을 멈추었다.

    때리는 대로 맞아주는 건 좋은데 이런 식이어서야 효과가 없다.

    그녀가 원하는 건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적'을 세워 스타가 되는 것인데 이래선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형숙은 그 시선을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한 이들 중 한 명에게 향한 것이었다.

    "…암산서가 가주 대리, 서소담 씨에게 묻겠습니다."

    그리고 말했다.

    "서소담 가주 대리. 암산서가가 했었던 암살은 정당한 것이었습니까?"

    흡!

    지켜보던 이들이 숨을 삼켰다.

    저도 모르게 그렇게 숨을 삼킬 만큼, 방금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시선은 소담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암산서가 가주 대리 서소담은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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