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화
-이 시대는 법치의 시대입니다. 동시에 인권이 판단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죠.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떻습니까? 무림인이라는 게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며 법과 인권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죠?
-당장 이번의 사건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개인이 나서서 범죄자들을 단죄하면서 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입니까? 그 폭력이 정말로 정당화될 수 있습니까?
-허허. 그러면, 그 범죄자들에게 죽이지 마세요. 범죄를 저지르지 마세요, 이러면서 부탁해야 합니까?
-(하하하)
-장난하지 마세요!
국회의원들은 그런 식으로 도돌이표를 그리며 싸우고 있었다.
그것이 답답하여 네티즌들이 대신 '화끈하게' 싸웠다.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저 빡대가리가 저격 대상되면 당장 빽빽거리면서 저것들 죽이라면서 질질 쌀 듯 ㅋㅋ
-법과 인권이란다 ㅋㅋㅋ 그 법과 인권 안 지키는 새끼들 잡으라고 만든 법이 무림특별법인데 ㅋㅋ 누가 저딴 거 뽑았냐 어디 구역이냐 저기.
-소천마가 저렇게 빠르고 과감하게 대처 안했으면 정말로 일반인 사상자 발생할 수 있었고 저것들도 도망쳐서 또 범죄 저질렀을 텐데 모자란 새끼들 진짜 화나네.
-나는 어느 정도는 저 의견에 공감함.
-나도. 솔직히 좀 무서운 게 사실임 요즘. 뭐 문제 생기면 때리고 부수고 쑤시고 이러는데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잖아.
-암산서가 사람들이 좋은 일 했다고 하는데 팩트만 놓고 보면 수십 명 죽인 살인자들임.
-대가리가 꽃밭인 새끼들인가. 암산서가가 죽인 게 무고한 사람들 수십수백 명에게 피해주고 사람이 해선 안 될 일 했던 범죄자 새끼들이었는데 그걸 살인자라네 ㅋㅋ 너희 같은 새끼들 위해서 수십 년을 고생한 암산서가 사람들이 불쌍하다.
'후…….'
국회에서의 싸움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이슈로 네티즌들이 싸우는 것을 보며 길게 숨을 내쉰 도진은 이번 사건으로 무형독이 무엇을 의도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저격 사건을 사주하여 일단 더 이상 못 쓸 패가 된 의천검가를 몰락시키고 그 공백 일부를 대호문이 메꾸게 한다.
그리고 저격 사건을 통하여 촉발된 이 이슈로, 도진과 천마신교에 '오물'을 묻히는 게 목적이었던 거다.
정치판에서 시작한 논쟁이 되는 이슈는 결국 참가하는 이는 물론이요 보는 이들마저 불쾌하게 만든다.
자연스레 그 이슈의 소재에도 불쾌한 감정을 가지게 만들어 버린다.
즉.
무형독의 진짜 목적은 도친과 천마신교에 대하여 대중이 '불쾌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직접적이 안 된다면 간접적으로.
그럼으로써 천마신교의 절대적 지지자였던 대중들이 한 켠에 불쾌한 경험을 했다는 감정을 남기게 하고 소수는 아예 적대적이 된다.
이는 상상 이상으로 좋지 않은 요소다.
그리고 대처하기도 까다롭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라니까.'
화끈하게 싸우는 게 아니라 이런 식의 수작을 부려 신경을 건든다.
그러면서 꼬리조차 보이지 않으니 더욱 기분이 나쁘다.
"전형적인 무형독의 수법이야. 스케일이 크면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아주 멀리 보는."
나지윤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그냥 당해줄 생각 없으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날카로운 미소에 도진은 믿을게, 신뢰로 답하여 주었다.
그 신뢰를 나지윤을 포함한 천마신교의 인재들은 몇 배로 돌려 주었다.
진흙 싸움 속에서 천마신교는 마치 연꽃처럼 별개의 깨끗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가지도록 한 것이다.
-팩트는 천마신교는 우리 편이라는 거지.
-ㅇㅈ
-그건 이미 암묵적 동의가 있던 부분이니 굳이 말할 필요 없자너 ㅋㅋ
-까도 다른 새끼들을 까지 천마신교는 까는 거 아님.
감탄이 나오는, 어떻게 가능한가 싶은 일이었으나 그걸 할 수 있기에 나지윤이고 또 천마신교의 인재들이었다.
때문에 변수였던 전쟁이 터졌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인데.
"……."
회의를 위해 모인 자리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만큼 상상을 넘어선 변수였다.
라보르와 예무르의 전쟁은 지극히 냉정하고도 객관적으로 말해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 그것도 자주 발생하는.
그러니까 두 나라의 전쟁은 이슈는 될지언정 판을 뒤흔들 만큼의 영향력은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참전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이었고 그 나라의 움직임으로 인해 발생한 여파는 지구 전체에 미친다.
과장이 아니라 순수한 의미로.
이 충격적인 사건은 세이전이 어떻게 대처를 하기도 전에, 그야말로 '어어'하는 사이 벌어졌다.
예무르는 정확히 '대중동'의 분류에 속했다.
그러니까 러시아와 국경이 맞닿은 곳에 있는 나라였는데 그들이 전쟁을 선포하며 라보르와 같은 사상을 가진 국가와 수교를 단절하겠다 선언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을 벌이며 항상 그런 식이었으니까.
그러다 유야무야 전쟁이 끝나면 다시 문을 여는 나라였다.
그런데 이번은 그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으니 러시아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예무르의 일방적인 수교 단절로 인해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 이에 대한 책임있는 태도를 요구한다.
비록 지극히 적은 양이라고는 하나 러시아는 예무르는 물론이요 라보르와도 무역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국경이 닿은 예무르를 거쳐 라보르까지 육로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 무역이 예무르의 일방적인 조치로 막혔고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아무 말도 없다 갑자기 책임을 지라는 태도에 예무르는 당황했다.
한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예무르가 구금하고 있는 무인들은 러시아 무인 연맹 소속으로 정당한 대련을 행하였음이 증명되었다. 예무르는 당장 불법 행위를 중단하고 그들의 신병을 인도하라.
정부가 국민들을 위하여 나서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국민이 아니라 그저 '무인 연맹 소속'이라는 이유로 민감한 사항에 나서는 건 드문 일이었고 명분도 희박했다.
러시아는 심지어 내정에까지 간섭한 것이다.
그래서.
"예무르 왕실은 화를 냈어."
나라를 멋대로 주무르는 그들은 무능하면서 자존심만 강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개판으로 나라를 운영하면서 전쟁을 해댔다.
그런 그들이 갑작스런 러시아의 발언에 당황하고 겁먹었으나 오기를 부린 것이었다.
-억지부리지 마라.
라고.
거기서 더 뭘 어쩌지는 못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러시아의 권리와 무인을 지키기 위하여 행동에 나서겠다.
그리고 그 계산을 비웃듯 러시아는 선전 포고를 해 버렸다.
…여기까지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당연히 세상이 술렁였다.
-?
-??
-????????;;;
-러시아가 전쟁을 한다고? 진짜?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상상도 못한 일이었고 그 심각성이 엄청나 역으로 그리도 가벼운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러나 인터넷과 달리 현실에서는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겁게 짓눌리는 듯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갑작스런 러시아의 참전 이유에 관해선 여러가지 추측이 있는데 현재 가장 확률이 높다고 여겨지는 건 이거야."
예무르와 라보르는 일단 산유국이다.
비록 그 비중이 높지 않다지만 어쨌든 산유국으로 산유국들의 집합체인 석유 수출국 기구에 가입돼 있다.
"라보르와 예무르에 전쟁을 빌미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명분을 획득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라보르와 예무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중동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하는 것."
그러니까 '오일'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린다는 거다.
"…납득이 잘 안 되는데."
도진이 말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런 식으로 욕심을 내봐야 손해만 보는 결과밖에 보이지 않는다.
당장 러시아의 참전에 미국부터 시작하여 여러 나라가 들고 일어났다.
-러시아는 당장 전쟁 시도를 멈춰라.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강한 경고와 함께 군을 움직일 시 각종 강력한 제재를 서슴지 않겠다는 제재안이 발표되었다.
정의를 논하지 않더라도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반길 리가 없는 나라들이 심지어 전쟁을 벌이려 듦으로써 명분까지 잃은 러시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생각했다.
다른 의도가 있을 거라고.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어 블러핑을 한 것일 뿐 병력을 움직일 리는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속보! 러시아, 진군!
그리고 그 생각은, 정면에서 부정되었다.
* * * *
-러시아의 공세에 예무르의 수도 이틀만에 함락!
-미국, 강력한 경제 제재안 시행.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감정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 폭풍같은 나날이었다.
러시아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말로, 전쟁을 시작해 버렸다.
총을 쏘았고 탱크가 불을 뿜었다.
여러 이유로 러시아와 가까이 있던 예무르의 수도는 이틀만에 함락당했고 예무르와 정면충돌했던 라보르는 당황하여 병력을 물렸다.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고 술렁였다.
-이러다 진짜 전쟁 일어나는 거 아닌가?
-러시아가 미국이 자꾸 이런 식이면 총부리를 돌리겠다는 소리까지 했음;;
-세계대전이 농담이 아니게 된다고?
러시아가 모든 경고와 우려를 무시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예무르의 수도를 이틀만에 함락시켜 버렸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제재에 굽히기는커녕 오히려 미국과도 싸울 수 있다는 협박을 역으로 하고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싸움은 두 나라의 싸움에 그칠 리가 없으니 그것은 곧 두 나라를 중심으로 한 '세계 대전'이란 단어에 현실성을 부여하게 만들었다.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러시아가 진짜 전쟁을 벌일 리는 없지. 그건 다 죽는 거니까. 그래서 저렇게 배짱을 부리는 거임. 잃을 게 많은 미국이 정말로 전쟁을 벌이지는 않을 테니까. 한쪽이 막 나가면 잃을 게 많은 반대쪽은 물러날 수밖에 없음.
많은 이들이 거기에 동의했고 실제로 그런 양상으로 흘러가게 됐다.
경제 제재안 등을 발표하며 러시아를 강하게 압박하였으나 물리적인 제재는 나오지 않았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힘끼리 부딪치면서 일어날 일이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간접적으로 천마신교가 얽히게 됐다.
우선 오성과 관련된 부분.
"…러시아에서 철수하게 됐어."
오성의 회장 오군성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큰 공을 들였고 그의 성공의 발판이 되어 주었던 노보시비르스크 지사부터 시작하여 오성 전체가 러시아에서 철수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분명히 중요한 곳이었으나 세계 전체와는 맞바꿀 수 없었으니 세계의 압박에 오성은 어쩔 수 없이 당분간 러시아에서 철수하게 된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오성과 협력하여 함께 준비하던 사업 또한 무기한 보류 상태가 됐다.
오성과 천마신교만이 아닌 다국적 기업들 모두가 그 행렬에 동참하고 있었다.
거대한 나라에서 다국적 기업이, 있는 것이 당연하게 된 기업들이 철수하는 건 생소하기만 한 광경이었다.
"당황스럽군. 이렇게 급격한 변화는 말이야."
"그러게요."
오군성의 말에 도진이 동의하였다.
정말로, 당황스럽다.
이 전쟁은. 이 사건은 전생에선 없었던 것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전생과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변화도 어느 정도여야지 이렇게나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무리 그래도 당황을 감출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동안 나비의 날갯짓 정도에 그치던 것들이.
마침내 크게 변하여 태풍이 된 것만 같았다.
무언가가 벌어질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고 나지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형독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라는 그 말이.
그것을 되새기면서 도진은 해야 할 일을 해 나갔다.
"…레드슈 쪽은 어떻게 됐어요?"
"배편으로 귀국하고 있습니다."
바른 엔터는 제법 글로벌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안티체리는 영어권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었고 레드슈는 동남아 쪽에서 특히나 인기가 컸다.
이은지의 경우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일본에서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 배경으로 동남아 쪽을 공략하기 위해 오성이 레드슈를 모델로 한 광고 하나를 러시아에서 찍기로 했는데 시기가 나쁘게도 전쟁이 터져 버린 거다.
워낙 분위기가 좋지 않고 오성도 철수하게 되면서 레드슈 역시 광고 촬영을 중단하고 귀국하게 됐다.
비행기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침 머물던 곳이 항구였기에 배를 선택했다고 담당자가 보고했고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살벌한 분위기에서 러시아 영토를 가로지를 바에는 배가 낫다.
"분위기가 많이 좋지 않으니까 당분간은 비상 체제로 가야 할 거 같아요."
전쟁도 전쟁이지만 동시에 무림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때문에 거기에 관하여 진지하게 논의를 하려 할 때였다.
세이전의 무인이 급박하게 무언가를 전달하였고 나지윤의 얼굴이 굳었다.
"…왜 그래?"
도진이 물었고 나지윤이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차가워진 얼굴로 말했다.
"레드슈가 탄 배가, 무장 단체에게 점거당했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