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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13화 (613/741)
  • 612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범인을 찾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개중 유명한 것을 몇 개 꼽자면 가까운 자를 의심하라는 것과 그 사건으로 인해 이득을 얻는 게 누구인가를 짚어 보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라 이번 사건에서 의천검가를 이용하여 도진을 저격하려 했던 범인, 무형독의 주구로 대호문을 나지윤은 용의선상에 올리고 조사를 하였다.

    "대호문."

    "확신은 아니야. 하지만 내 직감은 대호문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어."

    나지윤이 조사하고 정리한 자료를 보여주며 말했다.

    "일단…… 대호문은 적당히 완벽하게 용의자가 아닌 것처럼 보여."

    묘한 단어 선택이었으나 이어지는 설명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의천검가와의 의리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의천검가의 대리로 야금야금 안면을 트면서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었지."

    "덕분에 의천검가가 완벽하게 몰락한 지금 더 이상 자신들을 지켜주는 간판이 없어 많은 걸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파고들면 포기할 건 깔끔하게 포기하고 얻을 수 있는 건 다 챙겨서 오히려 덩치와 영향력이 커진 걸 알 수 있지."

    어차피 대호문은 의천검가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니까 '양지의 의천검가'였기에 가능했던 부분은 깔끔하게, 체하지 않게 모조리 버리고 보이지 않는 부분의 이득에 집중했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의리를 지키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챙겼다.

    "…이렇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문파로 보이지."

    대호문은 근본이 양아치 심부름 센터다.

    그러니까 오히려 너무 깔끔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그것까지 계산한 행동일 거다, 란 거지?"

    한유아의 말에 나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스크린을 채웠던 자료가 바뀌었다.

    "의천검가가 몰락하고 대호문의 구조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들어온 인원도 있고 나간 인원도 있어요. 바로 거기서, 이렇게. 나간 인원 중 행방이 불분명한 사람들이 있죠."

    평범한 인원 교체만 있었던 게 아니어서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대호문이 흑도에 절반쯤 발을 걸친 문파니까 자연스러운 세력 개편 과정이라고 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반대로 그것이 정답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 중에 무형독이 있을 확률이 높을 거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이 부분은 일반인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정보 단체를 위한 함정이다.

    바할라에서의 일이 있었기에 이해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오성아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유도한 거고 실제로는 전혀 숨지 않은 대호문이 무형독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

    나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그런 느낌이 든다는 거지만요."

    검토하고 고민한 자료는 죽거나 행방불명된 이들이 정보를 조작하여 의천검가가 의심받도록 하였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미끼라는 인상이 강하다.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드네, 얘들은."

    오성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나지윤은 호전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만큼, 그렇게 수작을 부려야 하는 처지에 있다는 거겠죠."

    "지금껏 무형독이 요리조리 잘 빠져 나간 것 같지만 들킨 것도 많고 포기한 것도 많아요. 그게 죄다 도마뱀의 꼬리처럼 보였지만 아닐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꼬리의 길이에도 재생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고 사실은, 꼬리처럼 보이는 몸통을 우리는 잡았을지도 모르잖아요?"

    "흐응, 그러네?"

    "그러니까 계속 물어뜯을 생각이에요."

    자신있게, 호전적으로 말하는 나지윤의 분위기가 전염되어 내부는 조금 달아올랐다.

    그리고 나지윤은 거기에 냉정함을 섞듯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서 말했다.

    "한 가지 더 걸리는 게 있어요."

    도진이 물었다.

    "뭔데?"

    "무형독의 행동 방침이 바뀐 거 같아."

    "행동 방침이?"

    "어. 지금껏 무형독은 이런 식의 이지선다도 걸지 않았어. 무조건,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완벽히 모습을 감추려고 했었지."

    "응, 그렇네."

    "하지만 이번 일도 그렇고 곳곳에서 들리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어. 녀석들은 목적을 위해서 어느 정도는, 꼬리가 잡히는 것까지 용인하고 있어."

    그에 담긴 의미를 읽은 이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네. 무형독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어요."

    * * * *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스팸 문자와 여론 조사 명목의 스팸 전화, 교통 방해와 소음 공해가 점점 더 늘어났다.

    그런 시기에 도진은 본업과는 다른 이유로 바쁜 낮의 실크 로드를 방문하였으니 전서린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전서린은 양지로의 진출을 선언한 하오문의 상징이었고 그 거대한 문파의 근본적인 변화의 중심에 있었기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대선이라는 한국의 지각 변동에 시기를 맞추어 실크 로드의 체질 개선 또한 노리고 있었기에 짧은 휴식을 이용한 이번 만남은 실크 로드 내에서 이루어졌다.

    "어서오세요, 교주님."

    언제나와 같은 기품이 묻어나는 한복 차림의 전서린은 그 외모 또한 고귀하게 아름다웠다.

    허나 도진의 눈은 속일 수 없어서 그 완벽함 속에 감춘 피로와 다크 서클을 숨기지 못했다.

    "고생하시네요."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니 고생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초절정이라 해도 사람이다.

    도진이 알기로 일주일 동안의 수면이 한 시간이 채 되지 못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니 아무리 고수라 해도 피로할 수밖에 없다.

    일반인이라면 이미 과로로 쓰러져 입원해 있었을 거다.

    그런 전서린의 휴식 시간을 이용한 만남이었으나 도진은 휴식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그녀의 사명감에 대한 실례가 될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하오문주님의 연락은, 아직이죠?"

    "예. 송구스럽게도 그렇습니다."

    전서린이 하오문주에게 연락을 넣은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다.

    허나 아직 답신은 받지 못하였으니 연락이 정말로 간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차라리 이쪽에서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에 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정말로 스승 위지혁과 주려취 공주의 후손이라면 무조건 살아 있어야 했고 도진은 그녀를 돕고 싶었으니까.

    다만 이렇게 연락이 되지 않는 건 물론이요 세이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조금 답답한 게 사실이다.

    우물쭈물.

    그렇게 고민하고 있자니 전서린의 묘하게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태도가 걸려 도진이 시선을 향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아, 아닙니다. 그저 만족하실 만한 답변을 드리지 못한 게 송구스러워서……."

    "그렇게까지 어렵게 대하지 않으셔도 괜찮은데요."

    기억이 어느 정도 돌아온 뒤로 전서린의 태도가 과할 정도로 정중해졌다.

    '천마신교 교주'라는 이유만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울 정도로.

    그래서 시선에 의문이 담긴 도진이었고 전서린은.

    "아니될 말씀이십니다. 교주님은 황족이시지 않습니까."

    "……네?"

    도진이 눈을 크게 뜨고 반문하게 만들 만한 폭탄 발언을 하였다.

    위지혁과 장호마저도 심상세계에서 '이게 무슨 소리지?'라는 감정을 내비쳤고 전서린이 다급히 설명하였다.

    "주려취 공주님의 신분이 유지되었으니 자연스레 위지혁 교주님께서는 부마도위가 되십니다. 그리고 지금 황실은 그 지위를 인정하며 직계 제자까지를 황실의 범주 내에 두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교주님께서는 황족이 되시는 겁니다."

    부마도위(駙馬都尉)는 임금의 사위를 뜻한다.

    그러니까 존재는 지워졌으되 신분은 박탈당하지 않은 공주 주려취와 혼인하였던 위지혁은 천마이면서 동시에 부마도위였고 지금 황실은 부마도위를 황족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사부일체(師父一體)라 하여 아버지와 사부를 같은 선상에 두었으니 사부의 직계 제자는 아들과 같으므로 직계 제자까지를 황족으로 인정한다.

    …라는 이야기였다.

    -허허…….

    심상세계에서 위지혁이 말 그대로 허허 웃었다.

    도진 또한 얼떨떨한 기분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알고 보니 황손?' 같은 느낌이고 실감도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서린의 진지함이 그것이 현실이라는 걸 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교주님께서는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오문은 황실에 충성하는 이들이 일군 문파. 교주님께도 충성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전서린은 진지하게 선언하였고 그런 전서린의 모습에 도진은 이 순간, 하오문을 상대로 이리저리 잴 필요가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게 됐다.

    그래. 처음에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접촉해 온 하오문과 전서린을 의심하는 건 자연스러운 절차였고 이후 보인 여러가지 정보들이 신뢰와 의심을 계속 저울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전서린은 분명하게 진심이었고 하오문주에게 연락하는 과정에서 본 이들 또한 황실에 대한 충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연한 건가.'

    가장 낮고 더러운 곳의 오물을 뒤집어 쓰면서도 그 충심이 바래지 않았고 비밀을 결코 누설하지 않은 채 이내 하오문이란 문파를 일궈낼 만큼의 신념을 가진 이들이다.

    -이렇게나 강한 신념을 왜곡할 수 있는 주술은 없다.

    도진의 그 생각에 장호가 보증을 더하여 주었고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전서린을, 전서린을 중심으로 한 하오문을 완전히 믿기로 한 것이다.

    "서린 씨가 진심이라는 걸 알겠어요. 앞으로는 함께 하도록 하죠."

    "아……!"

    전서린이 눈을 크게 뜨고 감동한 얼굴이 되었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도진에게 완벽하게 신뢰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가 하오문의 간부이기에 알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도진보다 오히려 더 스스로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서 진심을 보이고 또 보여 신뢰를 쌓는 수밖에 없다 생각하였고 드디어.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도진은 그렇게 감동한 전서린에게 조금 짓궂게 말했다.

    "제가 황족이라는 걸 알려 주시는 필살기를 쓰셨는데 이건 당할 수밖에 없죠."

    "아, 아닙니다. 그것은……!"

    "하하. 장난이에요."

    * * * *

    시간은 계속 흘러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기.

    평소 조용하기 그지없는 강원도의 무림인 교도소가 술렁이고 있었다.

    도주와 은신의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기 위하여 교도소 주변 일정 거리까지는 풀 한 포기조차 없도록 하여 시야가 탁 트인 도로를 따라 달려온 차에서 내린 이들의 존재가 그렇게 만들었다.

    "……."

    특히나 엄정한 근무 기강을 확립하여 평소 침 삼키는 행동조차 조심하는 이들의 시선이 방문자에게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웃으며 인사하는 청년의 뒤로 선남선녀가 함께하고 있다.

    대선 관련 이슈로 시작하여 이곳에서 모범적으로 복역하고 있는 암산서가와 답청문 무인들의 특별 사면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 시기에.

    "안녕하세요."

    '소천마…….'

    소천마 김도진, 비봉 서소담, 그리고 세이전주 나지윤이 면회를 위하여 방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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