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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12화 (612/741)
  • 611화

    습격자의 뒤에 의천검가가 있다는 걸 세이전이 조사하기도 전에 도진이 알 수 있었던 건 이치에 닿아 뜬 신안(神眼) 덕분이었다.

    저격을 한 놈들의 움직임에서 의천검가의 무리(武理)를 꿰뚫어 본 것이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경계를 넘어선 이라 해도 웬만해선 알아볼 수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비틀고 변형된 무리였다.

    허나 도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의천검가의 무공에 기원을 두었다는 걸 꿰뚫어 볼 수 있었으니 그 의천검가의 무인들과, 가주와 전쟁을 하며 깊이 접하였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으로 습격자들이 의천검가와 연관되어 있다는 단서를 얻고 나서는 일사천리였다.

    "목적지를 알고 나면 간단하지."

    나지윤은 씨익 웃으며 단 이틀 만에 정답을 찾아냈다.

    그러니까 심증이 아니라 의천검가가 저격 테러를 사주했다는 물증을 잡은 것이다.

    저놈들의 무공으로 볼 때 의천검가와 연관되어 있어요, 라는 주장은 냉정하게 말해 심증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테러를 벌인 자들이 사용한 장비를 구입하는 데 사용된 비용이 의천검가에서 나온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증이 된다.

    이를 통하여 은밀하게 유상균에게 연락, 의천검가 모르게 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행차한 것이 일주일 사이의 일이었다.

    한 가지 더.

    그 사이 벌어졌던 도진을 흠집내려는 움직임 또한 예상하고 있었다.

    "저격 자체는 어디까지나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않을까 싶어. 실패할 게 뻔한 일을 할 정도로 멍청한 집단은 아니니까."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명문가였다.

    그 명문가를 이끌던 장로가 저격으로 도진을 죽이겠다고 덤비는 건 너무나 말이 되지 않았기에.

    나지윤과 총괄부는 그 너머의 의도를 추론하였고 자연스레 도진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게 진짜 목적이라는 데에 도달한 것이다.

    솔직히, 상당히 위협적이면서 대처가 어려운 수작이긴 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도진 때문에 테러가 일어났고 우리에게 피해가 온다'는 주장을 격파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만약 이대로 범인을 찾지 못하고 시간을 오래 끌었다면 의도대로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색에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주장이 채 여물기도 전에 이렇게 의천검가를 수색하게 되었으니 그 의도 또한 물거품이 되었다.

    그럴 수 있도록 다 준비를 하고 왔다.

    "……."

    동근출은 무림전담타격대와 피해자의 입장이자 자격으로 온 천마신교의 무인들이 자신을 지나쳐 감히 의천검가의 본가를 수색하는 상황에 넋이 나간 채 서 있다 겨우 힘을 주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무엇이, 무엇이 잘못된 거지?'

    일을 실행한 건 의천검가에 '은혜'를 입은 자들이었다.

    몇 수 가르쳐 줌으로써 뒷골목에서 밥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어 유사시 뒷일을 처리할 때 쓸 수 있도록 키운 '충견'이었다는 말이다.

    당연히 많은 공을 들였고 의천검가에 충성을 하되 의천검가와 연관지을 요소를 남겨두지 않았다.

    몇 수 가르쳐 줬다지만 거기서 의천검가를 연상할 수 없도록 많은 공작을 가했고 설령 의천검가의 무인이라도 몰라볼 정도였는데!

    아니, 그 이전에 자금 흐름에 관하여서는 다른 곳도 아니고 대호문주가 직접 신경을 써서 진행을 하였고 물리적으로 의천검가와 절대 이어질 수 없도록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동근출은 도저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움직여야만 했다.

    본가에는.

    결코 드러나서는 안 될 것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허나 거기까지 도달하는 게 너무 늦었다.

    스윽-

    비칠거리며 걷던 동근출의 눈에 은밀히 숨겨져 있던 비밀 중 하나를 발견한 도진이 보였다.

    일견 평범한 돌벽으로 보이지만 그 벽을 이룬 벽돌 중 하나가 지극히 정교한, 무공의 이치까지 더하여 교묘히 끼워 넣은 벽돌이었다.

    그 안의 공간에 딱 맞는 것을 채움으로써 설령 고수의 기감으로도 평범한 벽돌로 보이게 한 '금고'를, 도진이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결코 발견돼서는 안 될 것이었다.

    "아, 안 돼!!"

    동근출이 본능적으로 땅을 박찼다.

    생각 이전에 몸이 움직였다.

    저것은, 저것만큼은 발견돼서는 안 되는……!

    뻐억-!

    "……!!"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던 동근출이 무형의 힘에 명치를 얻어맞고 날아가 나뒹굴었다.

    움직이기도 전에 제지할 수 있었던 도진이 일부러 지근거리까지 접근하게 두었다가 격공장을 이용하여 날려 버린 것이었다.

    일부러 저격을 시도했던 놈에게 썼던 것과 같은 수법으로 제압하였으니 단순히 명분을 챙기는 것 이상의 그림이 되었다.

    그렇게 동근출을 제압한 도진은 커다란 벽돌 사이 숨겨져 있던 책자를 찾을 수 있었고.

    [암산서가(巖山徐家) 무록(武錄) 하권(下卷)]

    도진의 눈은 깊어진 것이었다.

    * * * *

    [충격! 저격 테러를 사주한 것은 의천검가였다!]

    [의천검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

    잠잠해지나 했던 저격 사건은 그런 믿기 힘든 소식으로 인해 몇 배나 더 격렬하게 세상을 뒤흔들었다.

    비록 도진에 의해 현판을 잃고 몰락했다지만 그래도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의천검가는 여전히 명문으로 남아는 있었다.

    그런 명문이,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저격 사건을 사주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무림전담타격대 서울지부의 대장이었던 유상균이 직접 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수색을 진행하였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저격 사건만이 아니라 온갖 추악한 비리와 뒷골목에서의 범죄 증거가 쏟아졌다.

    대문파쯤 되면 앞에서는 말 못할 비리를 몇 개나 저지르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지만 의천검가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장남 이문강이 중학생 때 저지른 폭력 사건을 덮기 위해 피해자 가족을 '묻어 버린' 게 대표적이었다.

    -이딴 게.. 대한민국 정통 무가?..

    -와.. 뭐라하고 싶은데 뭐라 해야 할지 갈피도 안잡힌다 ㅋㅋㅋ

    -이거 완전 개 미친 새끼들 아니야?...ㅋㅋㅋㅋㅋㅋㅋ 와 ㅋㅋ 웃음만 나오네 진짜 ㅋㅋ

    도진에 의해 잃은 현판이 명예였다면, 이번의 사건은 의천검가의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릴 일이었다.

    실제로 의천검가는 나라에서 받은 모든 것들을 회수당했고 더 이상 무림문파로조차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아 그러니까 그게 다 김도진 음해하려던 짓이었다고? 이 미친 새끼들 댓글 부대까지 운용했던 거네

    -테러 벌여놓고 김도진이 나빠요라고 지들 스스로 주작하던 거였어? 존나 소름돋네 범죄자 새끼들;;

    -사실은 이새끼들이 흑도 대장 아님?

    동시에, 그들이 벌였던 도진의 명성에 흠집을 내려던 시도 또한 탄로났고 천마신교가 무어라 더 입장을 낼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의천검가, 답청문과 암산서가의 재산마저 가로챘던 것으로 드러나…….]

    의천검가가 몰래 답청문과 암산서가의 재산을 빼돌린 것도 이번 일로 인해 드러났다.

    "사실은, 왕실이 답청문과 암산서가를 버리지 않았던 거야."

    "……."

    "……."

    도진이 말했고 소담과 나지윤은 그저 들었다.

    밝혀진 것들을 두 사람 다 이미 들었다.

    다만 도진의 말로 직접 듣는 지금 그 의미가 더 진하게 다가왔다.

    답청문과 암산서가는 버려진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그 중간에서 왕실과 더 가까이 있던 의천검가의 탐욕스런 것들이 수작을 부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의천검가는 양지에서 떵떵거리며 온갖 패악을 부렸고, 답청문과 암산서가는 음지에서 그리도 힘들게 지내야만 했던 거다.

    "웃기네. 이렇게 드러나게 되니까."

    나지윤은 피식 웃었다.

    다만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나지윤은 이미 떨쳐낸 것이다.

    그리고 이미 큰 사람이 되어서, 이런 일로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호국 훈장은 마음에 들어."

    그저 그의 할아버지와 가문의 명예인 호국 훈장을 손에 들고 웃어보였다.

    소담도 다르지 않았다.

    예쁘게 웃으면서, 실전된 줄 알았던 암산서가의 역사와 함께 쌓이고 또 쌓였던 무리가 기록된 책자를 품에 안았다.

    초절정에 오른 소담은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었다.

    그녀가 선보일 수 있는 암산서가 무공의 오의는 '선로(仙路)'였다.

    그것은 암산서가에 전수되던 무공 중 상권(上卷)의 오의였으며 본래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암산서가의 무공이 시작되어야 했다.

    하지만 난리 중 하권이 소실되었고 소담은 가주 대리로서, 그리고 미래의 가주로서 소실된 무공을 복구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잃었던 가문의 보물을 되찾게 된 거다.

    "고마워, 도진아."

    툭.

    선조가 걸었던 길을 품은 책을 안은 채 소담은 도진의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

    무공으로서의 가치보다 가문의 역사와 명예를, 그리고 그것들을 담은 보물을 되찾은 것이 기뻤고 그것을 찾아준 도진이 고마웠다.

    고마워서,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질 않는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용감하게 한 번 부딪쳐 보고 싶은데.

    하지만.

    스윽-

    '아…….'

    어깨를 보듬어 주고 등을 도닥여 주는 단단하면서도 따듯한 손길에 결국 만족하고 만다.

    '…나중에.'

    소담은 그렇게 도진의 손길에 만족하였고 나지윤은 존재감을 지운 채 웃으며 퇴장했다.

    분위기를 깰 정도로 그는 센스없는 남자가 아니었다.

    * * * *

    의천검가의 완전한 몰락과 함께 동반되는 뒤처리를 하였다.

    범죄에 연관된 자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었고 그 외 무고한 자들에 대해서는 천마신교가 신경을 써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의 회의.

    "의천검가는 몸통이 아니야."

    나지윤이 선언했고 도진을 포함한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였다.

    이번 사건에 있어 의천검가는 몸통이 아니었다.

    …이용당하고 버려진 꼭두각시였다.

    나무를 보면 보이지 않지만 숲을 보면 보인다.

    당장 자금의 흐름만 해도 그렇다.

    언뜻 잘 숨긴 것 같지만 결국 의천검가와 이어졌다.

    중요한 건 의천검가 이외의 어떤 것도 찾지 못했다는 거다.

    의천검가가 범인이고 그 외는 알 필요가 없다는 의도를 나지윤은 분명하게 읽었다.

    "결국 의천검가에도 무형독이 침투해 있었고 놈들의 의도대로 이용당하고 이제 버려졌다는 거겠지."

    몸통이 누군지는 뻔했다.

    다만, 그 몸통으로서 활약한 개인이나 집단이 누구인지를 밝혀내지 못했으니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잠조차 줄이며 노력했던 나지윤이 말했다.

    "가까운데서부터 시작해서 조사해 봤어. 밀접했던 정계, 그리고 밀접했던 문파들. 가장 의심스럽지만 또 그래서 의심하기 힘든 문파가 하나 눈에 띄었어."

    "의천검가의 수족으로 활동하며 세력을 키웠고 의천검가가 완전히 몰락한 지금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야금야금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문파."

    "대호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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