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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10화 (610/741)
  • 609화

    무림인에게 있어 가장 밀접한 현대의 위협은 총이었다.

    수십 년의 고련을 찰나에 무위로 만들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현대의 화기(火器).

    때문에 무림인들은, 무림(武林)은 동시에 현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화기에 대처하기 위한 연구에 금력(金力)과 인력(人力)을 아끼지 않았으니 수많은 방법과 심지어 전용 무공까지 탄생하였고 개중 무공의 범주에서 가장 널리 퍼져 보편화된 것이 화약의 감지였다.

    화기의 근본은 화약이다.

    총알이란 것도 화약을 폭발시켜 탄두를 상대에게 명중시키는 것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살기(殺氣)를 느낀다는 '그저 무림틱한' 방법 대신 화약을 감지한다는 무림틱하면서도 과학적이고 또 보편화 될 수 있는 방법을 발전시킨 것이다.

    무림인은 감각을 단련하고 내공으로 그것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를 활용, 후각을 증폭하여 화약 특유의 냄새를 감지함으로써 화기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고 위치가 특정되면 무공으로 대처가 가능해지는 거다.

    총기를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이론과 단련법이 필수 과목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한국의 경우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소위 말하는 육식계, 흑도와 무력으로 충돌하는 경우 학생이라도 필수적으로 관련 과목을 이수하도록 하였다.

    그에 따라 당연히 도진도 화약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무공을 알고 있었으니 그 수준은 단순히 아는 걸 넘어 천마심공에 적용하여 수백 미터 안의 화약을 감지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2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의 골목 그늘에 은신한 남자가 소지하고 있는 총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딴에는 살기를 억누르고 있었으나 사신 장호의 후예인 도진에게서 감추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렇게만 보면 그저 간단히 제압하면 될 것 같지만…….

    '무형독?'

    도진이 그런 단어를 떠올리게 할 만큼, 감각 안에 잡힌 것들이 범상치가 않았다.

    일단 한국에서는 총기를 소지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안 그래도 엄격했던 총기 규제가 무림의 영향으로 더욱 엄격해졌으니까.

    흑도마저도 그것을 소지함으로써 얻는 이득보다 손해가 크다는 판단으로 웬만한 규모 이하는 알아서 포기할 정도다.

    그런 총기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특이한데 거기에, 중화제 처리까지 하였다.

    중화제의 효과는 간결하다.

    화약의 냄새를 웬만한 무림인은 맡지 못할 정도로 지워준다.

    관리가 엄격한 물건이라 당연히 쉽게 구할 수 없어 웬만한 수준의 집단이 아니고서야 손에 넣지 못한다.

    도진의 감각에는, 그런 처리를 한 총기를 소지한 이들 일곱 명이 철저하게 계산한 동선에 따라 자리잡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무형독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뭘 노리는 거지?'

    허나 의도를 바로 짐작할 수가 없었다.

    중화제를 쓰고 철저하게 사선(射線)을 계산하여 저격하면 나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아니, 무형독이 그런 수준일 리가 없는데.

    '……!'

    도진은 그런 고민을 일단 뒤로 미루었다.

    타아앙-!

    소음기가 달린 지정사수소총이 도진을 향하여 격발됐기 때문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의 움직임부터 이미 읽고 있었기에 대처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도진의 표정은 날카로웠다.

    그 사선이, 도진만이 아닌 소담에게까지 이어져 있었으니까.

    이미 소담에게 전음으로 이야기를 하였고 그녀 또한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즉시 반응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저격수의 행위에 관대해질 수는 없다.

    "……!"

    찰나에 저격수와 눈이 마주쳤고 그가 경악하여 눈을 치뜨는 걸 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총알을 그대로 받아쳐 우선 총을 부술까.

    도진은 그런 판단을 하였고.

    '……!'

    퍽!

    다음 순간 총알은 도진의 얇은 코트 끝자락을 뚫고 카페의 나뭇바닥에 박혔다.

    도진이, 찰나를 쪼갠 순간에 총알을 파악하고 받아치는 대신 피하는 것으로 대처를 바꾼 것이다.

    '이건.'

    "뭐야?"

    무언가가 날아와 박힌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파인 바닥에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꽈과과과광-!

    콰차앙!

    "으아아아악?!"

    이어진 고막을 찢을 듯한 총성과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비명을 지르며 카페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다섯 발이나 되는 저격이 연이어 카페의 창문을 부수고 바닥에 꽂힌 것이었다.

    공포에 질린 이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려 했고 도진의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았다.

    일부러 소음기를 제거하고 쏘았다.

    혼란을 유발함으로써 도진을 더욱 불리하게 만들려고.

    그리고 피해낸 다섯 발의 총알은 앞서 첫 발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탄환'이었다.

    -호신강기를 부수는 술법.

    도진의 정신을 더욱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장호의 말대로였다.

    도진을 저격한 탄환에는, 믿을 수 없게도 호신강기를 부수는 술법이 담겨 있었다.

    사실 호신강기를 부수는 무공 자체는 고대 무림에서 드물지 않은 편이었다.

    그 시대엔 초절정 정도만 되어도 무공의 힘을 빌어 호신강기를 구사하는 무인들이 있었으니 그 '방패'를 깨기 위하여 '창'이 개발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인 것이다.

    문제는.

    그 호신강기를 부수는 공능을 담은 '술법'이 도진을 저격한 총알에 담겨 있었다는 거다.

    그래, 술법.

    날아드는 총알을 쳐내 저격수에게 되돌리려 했던 도진이 방법을 바꾸어 찰나에 회피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손에 두른 호신강기로 총알을 쳐내려 했으나 총알에 담긴 술법으로 인해 호신강기가 파훼당하고 손을 꿰뚫릴 뻔 했다.

    만약 그것이 내공에 의한 것이었다면 감히 천마기로 이루어진 도진의 호신강기를 깰 수 없었을 거다.

    허나 그것이 술법이었기에, 보통이 아닌 아주 높은 수준의 술법이었기에 일단 회피를 택했다.

    그리고 그런 도진의 행동에 확신을 가진 것인지.

    꽈과과광-!

    연달아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들었다.

    "꺄아아아악!!"

    "사, 살려 줘!!!!"

    창문이 깨지는 소리. 귀를 찢는 총성.

    결국 내부가 패닉에 휩싸였고 도진은 결론을 내려야 했다.

    '제압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 즉시 움직였다.

    두웅-!

    천마군림(天魔君臨).

    도진의 내부를 휘도는 천마기가 세계와 연결되고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패닉에 빠졌던 이들을 강제로 진정시켰다.

    쿠웅-!

    이어지는 진각은 카페의 바닥을 이루고 있던 나무 바닥재를 날카로운 창과 같은 형태로 조각내고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것을, 도진이 주먹으로 강하게 쳐냈다.

    꽝-!

    마치 포탄을 쏘는 것과 같은 소리와 광경이었고 다음 순간 나뭇조각은.

    푸우욱-!

    "컥."

    가장 첫 탄환을 쏘았던 저격수의 총을 부수며 그 복부에 파고들었다.

    '이런, 괴, 물 같은……!'

    그는 고통만큼이나 커다란 경악에 짓씹듯 그리 생각했다.

    무려 230미터나 떨어진 곳의 은밀한 곳에 숨어 저격을 했는데 그걸 알고 있었다는 듯 격발한 순간 눈이 마주쳤고 채 네 발을 쏘기도 전에 역으로 저격을 당해 총을 잃고 복부가 꿰뚫렸다.

    그리고 온몸을 벌벌 떨며 나닥에 나뒹굴었다.

    -저격에 실패시 주변 인물들을 노리고 쏘아 틈을 만들어라.

    후속 명령을 따를 수가 없었다.

    가혹한 훈련을 거듭한 그는 복부가 꿰뚫린 정도로 이리 되지 않아야 했으나 나뭇조각에 깃들어 있다 그의 몸에 침투한 천마기가 그렇게 한심한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와 같은 명령을 받은 요원들도 곧 다르지 않은 몰골이 되었다.

    총을 쏘기 위해선 사선을 확보해야만 했는데 그 선이 역으로 도진의 공격 루트가 된 것이다.

    부지역에 이른 도진이 선을 긋는 점의 위치를 조절하여 나뭇조각에 머리가 꿰뚫린 자는 없었으나 그것이 어깨가 되었든 복부가 되었든 쑤셔박혀 천마기가 내부를 휩쓰는 순간 이미 끝이었다.

    다만 유일하게 한 놈만큼은 무력화되지 않았으니 첫 저격이 실패한 순간 미련없이 몸을 돌려 도주했기 때문이다.

    물론, 도진은 그 도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미 도주 루트까지 철저하게 확보해 둔 뒤 습격을 한 듯 놈의 움직임엔 거침이 없었으나 도진을 따돌리기엔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실시간으로 점과 점을 이어 선을 그리고 면을 이루어 최적의 루트를 달린다.

    평범한 이들의 눈에 그것은 차라리 축지법에 가까웠고 총기를 챙겨 달아나던 습격자 따위가 뿌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까득-!

    비현실적이라 해야 할 만큼 실시간으로 단축되는 거리에 놈은 이를 악물더니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도진이 아닌 주변의 일반인을 겨냥하였으나.

    꽝!

    무형의 기운에 턱과 손목을 동시에 얻어맞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정신이 아득해져 가루가 되어 버린 손목의 통증마저 멀게 느껴진다.

    그 상태에서 그는 생각했다.

    '격, 공장. 이런 말도, 안, 되는……!'

    * * * *

    저격 사건은 즉시 속보로 대한민국에 퍼져 나갔고 이내 외국마저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벌건 대낮에, 그것도 대한민국이란 선진국 반열에 든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서 사건이 벌어졌으니 어마어마한 충격을 준 것이다.

    -이게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김도진이 영화 찍은 게 아니고?

    -교주님이 니 친구냐?

    -교주님을 붙이도록.

    -;;;광신도색기들 안 보이는 곳이 없누;;;

    다만 일간 하오문을 포함한 커뮤니티의 댓글 분위기는 제법 가벼운 편이었으니 사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던 덕분이다.

    오히려 열광하는 분위기가 더 강했다.

    -와 진각;;

    -개쩔어;;;

    그 와중에도 동영상을 촬영하는 이가 있었으니 거기에 도진이 진각을 밟아 바닥을 부숴 나뭇조각을 띄우고 저격수들을 역으로 제압하는 장면을 담아 업로드한 것이다.

    -전나 멋있어. 이러니까 비봉이 같이 빙수를 먹지;;

    -아..ㅋㅋㅋ

    결국은 웹상에서의 가십거리였다.

    그러니까 흥미 위주의 의견이 대다수일 수밖에 없었는데 반대로 현실에서는 제법 심각한 분위기였으니 천마신교 내 회의도 다르지 않았다.

    "무형독이겠지."

    "응. 아마도."

    도진의 말에 나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도진을 상대로 이런 미친짓을 사주할 놈들은 무형독 외에 후보가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 교주님이 당할 리는 없을 텐데도 이런 짓을 한 이유는…… 완전히는 모르겠네."

    오성아가 말했다.

    일단 짚고 가야 할 건 이 저격에 도진이 당했을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는 거다.

    중화제까지 써 냄새를 지웠다 해도 살기는 감추지 못할 테고 다 떠나서 감각의 영역 내에 총알이 들어온 순간 반응해도 도진은 늦지 않게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의 무인이었으니까.

    경계를 넘어선 영역의 고수 정도 되면 저격보다는 차라리 철저하게 화력으로 짓누르는 게 정석으로 통했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하게 저격으로 도진의 목숨을 노린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의도하고 벌인 사건이라는 게 된다.

    천마신교는 그 저격 너머의 의도를 파악해야 했고.

    "아, 그거 말인데요."

    도진이 그를 위한 아주 중요한 정보를 현장에서 획득했었다.

    나지윤을 필두로 하여 오성아와 한유아, 도진을 노린 사건에 분노한 소담부터 시작하여 천마신교의 구성원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사주한 놈들이 의천검가라는 건 파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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