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606화 (606/741)

605화

시베리아의 끝.

대륙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그 혹한의 땅은 본래 문명의 흔적은커녕, 인간의 흔적 자체를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한데 그런 혹한의 대지에.

쿠르르르릉-

부우우웅-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가 자아내는 소음이, 크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터더덩-!

꽈아앙-!

오롯이 자연으로 남아 있던 풍경을 파괴하는 듯한 불쾌한 소음을 내는 건 중장비들이었다.

중장비들은 이곳에서 지극히 부자연스럽게 무너져 내린 절벽의 잔해를 파내고 있었으며 그 주위로는 수많은 인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

본래 인간이 없던 이곳에, 수많은 인간들이 모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속보!) 소천마, 무너진 시베리아 절벽 아래 매몰돼…….]

눈을 의심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한국어가 맞는데 왜 이해가 안 되냐 ㅋㅋㅋ

너무도 터무니없는 소식에 사람들은 처음에 오보를 의심하였으나.

[어제 이른 아침 소천마 김도진 씨가 러시아 출장에서 현장 답사 중 사건이 일어난 것이 맞다고 공식적인 답변이 천마신교에서…….]

방속국에서 천마신교가 직접 확인해 준 내용이라는 걸 보도하면서 그것은 팩트가 되었다.

[김도진 씨는 시베리아 오지의 현장 답사 중 무형독 소속으로 추정되는 이들과 조우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돌았네;; 아니 거기서까지 무형독이 찾아갔어?;;

-시베리아 거기 원래 사람 못 사는 곳 아니냐?

-맞음. 전화조차 안 터지는 곳임;;

-아니 전화가 문제냐 ㅋㅋ 애초에 사람이 살 수가 없는 환경임 ㅋㅋ

-어떻게 보면 그래서 더 걔들 입장에선 기회라 생각한 거지. 소천마가 전화조차 안 터지는 곳에 갔으니 거기서 습격하면 딱이라 각 잡은 거겠네.

-새삼 무섭네;; 거기까지 가서 습격한 것도 무섭고 심지어 절벽 부숴서 생매장 시킨 거 아니냐;;

-뭐?

-생매장?

-꾸짖을 喝!!!!!!!!!!!!!!!!!!!!!!!!!!!!!!!!!!!!!!!

-;;;

-자고로 신앙을 잃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법이거늘!

-감히 교주님을 의심하는 것이냐!!!

-않이;;; 그래서 저기 깔렸는데도 살았다고?;;

-교주님이 겨우 저런 돌무더기가 쏟아진다고 어떻게 되실 분이냐.

-교주님 살아계신다.

-;;;;;

-아니 진짜임.

-?

-살아있다고 존재감 뿜뿜하고 있다던데?

-??????;;

* * * *

노인은, 검교흔은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김도진을 죽일 생각이었다.

기필코 그럴 생각으로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였으니 현랑전의 자신을 따르는 무인들만이 아니라 교의 자원 중 하나였던 미사일까지도 동원한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혹한의 땅에서 일어난 그 일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본래는 알려지지 않았어야 했으나.

"교주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투마전의 무인이 위성 통신을 이용하여 보낸 도진의 메시지를 받음으로써 이야기가 달라졌다.

일반적으론 통신이 불가능한 곳이었으나 만일을 대비하여 도진은 최소한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장비를 챙겨 갔고 일이 벌어진 뒤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천마신교는 비상 체제로 전환, 메시지를 보낸 위치를 추적하여 현장을 찾았고 중장비를 동원하여 매몰된 절벽을 파내는 작업에 돌입하였다.

아무리 천마신교라도 이 정도나 되는 일을, 그것도 타국에서 극비리에 할 수는 없는 것이었고 애초에 도진이 무형독과의 충돌이었고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메시지에서 언급했기에 러시아에 협조를 구하면서 대대적으로 정보가 퍼져 나갔다.

만약.

여기서 도진이 죽었다면 이 사건으로 무형독은 더욱 무시무시한 악명을 쌓았을 것이다.

절대고수인 소천마마저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절대적인 집단으로서.

허나 도진은 죽지 않았으니.

꿀꺽-!

현장을 찾은 기자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오오오오…….

살을 에일 듯 시린 혹한마저 멀게 느껴지도록 만들어 버리는, 소천마의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말이다.

도대체 어찌 사람이 이 정도나 되는 존재감을, 그것도 아득하기만 한 일대를 뒤덮은 무너진 절벽의 잔해들마저 뚫고 발산할 수 있단 말인가.

때문에 현장을 직접 찾아온 이들은 역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형독이 아무리 상식을 벗어난 짓거리를 한다 해도, 감히 소천마를 죽일 수는 없을 거라고.

실제로 이렇게나 아득하기만 한, 심지어 눈 덮인 잔해를 파헤치는 작업을 진행 중임에도 천마신교와 관련된 이들 중 누구도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교주에 대한 경이만이 보일 뿐.

그리고 일주일.

그들의 경이에 답하듯 일주일동안 소천마의 존재감은 단 한 시도 무뎌지지 않았고 이내.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10일에 가까운 시간동안 아득한 아래에 매몰되어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대를 가득 채우는 존재감을 발산하며, 당당하게 잔해를 걸어 나온 소천마는 옅게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 * * *

무형독에 의해 무너진 절벽 아래 매몰되었던 소천마가 무사히, 당당히 걸어 나온 장면은 세계에 대서특필되었고 이후 있었던 소천마의 인터뷰 또한 당연히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무형독의 무인들과 만나 싸웠고, 그들이 절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문명은커녕 인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혹한의 땅에서 있었던 습격을 도진은 말했고 실제로 잔해 속에서 몇 구의 무인의 시체를 찾음으로써 신빙성이 더해졌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돌게 되었다.

-무형독이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던 건, 인류가 이룩한 문명이 닿지 않은 곳에 숨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는 도진이 정보가 퍼지는 걸 막지 않은 목적이기도 했다.

천외천, 사실은 '이단'이었던 노인을 만났던 장소가 도진에게 그 가능성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나지윤 또한 그 가능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해."

본래, 제아무리 흑도라 해도 거점은 필연적으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조달할 수 있는 영역 내로 한정된다.

그들 또한 사람이며 오히려 집단을 이루고 쉽사리 구할 수 없는 것들을 소모하기에.

최소한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조달 가능해야만 집단으로서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무형독에 대한 수색도 그런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조금, 그 전제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은 단체를 넘어 나라마저 뒤에서 조종하려 들 만큼 대단한 집단이었다.

그러니까 반대로. 보통은 결코 집단의 거점이 될 수 없는, 문명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곳에 거점을 두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커다란 손해를 감수할 수만 있다면 그런 곳에마저 은밀히 물자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그들에겐 있었다.

그 가능성을 천마신교만이 아닌 무형독에 대적하는 나라들이 모두 힘을 합쳐 수색하는 세계적인 스케일로 도진은 그림을 그렸고 정보를 퍼뜨렸던 거다.

그리고 도진의 의도에 따라 그런 인류의 문명이 미치지 않는 곳들을 무형독에 대적하기 위해 모인 국제 기구에서 조사대를 꾸려 조사하자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 중심이 바할라였고 운영비의 상당 부분이 바할라에서 나오는 만큼 승인은 시간 문제였다.

"그리고 우리도 독자적으로 따로 시베리아를 조사해 봐야 할 거 같아."

"솜이 때문에?"

"어. 적어도 거기까지 가는 동안 둘러봤던 곳들에서는 솜이가 반응이 없었거든."

굳이 천외천과의 만남에 솜이를 데려간 건 솜이가 '러시아'라는 단어에 크게 반응하였기 때문이다.

'기승전무형독'인 거 같긴 하지만, 솜이를 포함하여 무려 세 마리나 되는 영물 설표가 한국에서 사건을 일으킨 데에는 무형독이 분명히 관여되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도진에게는 있었다.

즉. 솜이가 반응하는 곳을 찾을 수 있다면 또 하나 무형독에 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오문주를 찾아야 할 거 같아."

"하오문주?"

"어. 안에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거든."

* * * *

전서린과 솜이를 구하기 위해 잔해 아래 남은 도진은 즉시 통신기로 메시지를 보냈다.

간략하게 상황을 알렸으니 즉시 움직일 것이고 구조대가 올 것이다.

길게 보면 2주는 버텨야 할 것 같았는데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숨구멍'을 만들어 두었고 토사와 섞이긴 했으나 이곳의 환경상 녹아 사라지지 않을, 쌓인 눈도 그렇게까지 좁지 않은 공간에 있다.

공기와 물이 있으니 초절정인 전서린과 경계를 넘어선 도진, 그리고 영물인 솜이에게 2주는 절망할 만큼의 시간이 되지 않는 것이다.

눈을 녹인 물로 목을 축이고 무(武)에 대한 명상과 운기행공을 하는 것으로 버티면 된다.

그리고 지금은.

"하오문주가…… 황실의 적통을 이었다구요?"

이야기를 해야 했다.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이야기에 도진이 되물었다.

심상세계의 위지혁마저 동요할 만큼의 내용이었다.

전서린은 깊어진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는, 그분의 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예상을 한참 넘어선 범위였다.

"제 기억 속에 있던 곳은…… 황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황실의 적통을 이은 황녀가 계셨으나 목숨을 위협받으셨으니 오늘 보았던 자들, 천마신교의 이단 세력이 그리도 강성했던 것입니다."

"……."

사료조차 남지 않았던 황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고 역시나 사료조차 남지 않았던 천마신교의, 그것도 이단마저 명맥을 계속 이어오고 있었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다.

"황녀께서는 피신하셔야만 했고 이단의 칼날이 향하지 않도록 대역을 세웠으니 그것이 저였던 것입니다."

납득가는 부분이 있었다.

하오문주에 대해 '지극히 고귀한 분위기였다'는 내용.

그리고 전서린에게도 범상치 않은 기품이 느껴졌던 이유.

황녀를 대신할 대역이었으니 당시 어린 나이였다 해도 보는 순간 납득할 만한 기품이 어려 있어야만 했을 것이다.

"황녀께서는 다행히 무사히 피신하셨고 다른 길로 도주하였던 저 역시 목숨을 건졌던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라고 표현한 건 그녀의 기억이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정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세한 부분도 여전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합니다. 교주님께서, 황녀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도진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제가, 황녀님을 만나야 한다구요."

"예. 제가 기억을 일부나마 되찾을 수 있었던 건, 교주님께서 진실된 천마신교의 후예라는 걸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진실된 후예."

"예. 저의 기억은 인위적으로 봉인되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건을 만족했을 때에 풀리도록 되어 있었는데, 참된 천마신교의 후예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을 듣는 것이 조건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음……."

-지극히 고등한 술법이다. 허나 불가능한 술법은 아니다. 특히 본인이 동의하였다면 훨씬 수월해진다.

장호가 말했다.

현대에선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으나 이미 무형독을 통하여 차라리 마법이 아닌가 싶은 술법마저 경험한 도진이었다.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허나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더 많았다.

"…황실과 천마신교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을 텐데요. 어째서 황녀와 제가 만나야만 하는 건가요?"

이단이 황실을 위협한다고 하나 황실에 있어 천마신교는 그 이념으로 인해 이단이든 아니든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관계였다.

적의 적은 동지, 라는 논리를 대기에도 지금 황실과 도진 사이엔 그리 접점이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했던 도진은, 이어지는 말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으니.

"황녀께서, 가장 위대했던 천마와 존재가 지워진 공주님의 후손이시기 때문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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