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605화 (605/741)
  • 604화

    쿠오오오오오-!

    생명을 불사르며 덤벼드는 노인을 포함한 서른한 명의 무인은 그야말로 필사적인 맹수였다.

    오로지 도진을 죽이기 위하여 모든 것을 걸었으니 이번만큼은, 그에 담긴 뜻도 식도 온전하여 결코 쉬이 대할 수 없었다.

    허나 도진은 그들을 마주한 이 순간 온 정신을 그에 쏟을 수 없었으니 들은 것이다.

    콰아아아.

    너무나 빨라 오히려 소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거대한 질량을 가지고서 음속을 초월한 속도로 가까워지는 '어떤 것'이 내는 소리를.

    그것은.

    꽈과과과과광-!!

    미사일이었다.

    하나둘이 아닌 십여 개의 미사일이 머리 위 절벽에서 폭발하였고 거대한 잔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미사일에 비하면 그 위력이 턱없이 부족했으나 오히려 그랬기에 거대한 잔해가 비처럼 떨어지게 됐다.

    이대로면 모두 생매장 당할 판이었으나 노인을 필두로 한 무인들은 일말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여기가 자신들의 무덤이라는 듯, 모두 다 알고서 덤벼들고 있었다.

    '…….'

    폭격의 스위치를 누른 건 도진과 전서린, 솜이가 머무는 곳에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주었던 온몸을 꽁꽁 싸맨 무인이었다.

    참전하지도 않았으나 도망치지도 않은 채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 이 한 번의 역할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또한, 끝까지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꾸욱-

    도진은 백설을 쥐었다.

    찰나가 마치 끝없이 늘어나는 것만 같았으나 그럼에도 분명하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으니 행동해야만 했다.

    물론. 언제나 그러했듯 망설임은 없었다.

    쿠우웅-!

    진각을 밟음과 동시에 천마기가 포효하고 세상을 가득 채운 기운이 공명한다.

    백설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무인이 아니더라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거대한 기운이 어리고.

    구웅-!

    쏘아졌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세상에 새로운 지평선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듯한 선(線)이었다.

    세상을 둘로 나누는 무형의, 그러나 절대적이고 거대한 궤적.

    그러하니 그 뜻을 간결하게 말하자면 절세(絶世)였다.

    퍼걱-!

    서른 하나의 무인은 그 선에 저항하지 못하였다.

    검으로 막은 자는 검이 바스라졌으며 팔로 막은 자는 팔이 부러졌다.

    하지만.

    '……!!'

    그들은 베이지 않았다.

    세상을 둘로 나눌 뜻을 담았으나 동시에 거기에 불살(不殺)의 뜻이 깃들었기에.

    베지 않고 때렸다.

    그들은 그저 항거할 수 없는 충격에 도진에게 닿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어야 했고.

    "너!!"

    노인이 채 다 마르지 않은 생명을 토해내듯 외쳤으나 도진은 몸을 돌려 버렸다.

    그들이 원한 건 도진의 검에 죽는 것이었다.

    죽어서, 그 무게나마 도진에게 지우려 했다.

    하지만 도진은 그들의 마지막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들어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감히 죽음을 결정하고 타인에게 지울 자격이.

    그러니까 그들은 그저.

    떨어지는 잔해에 생을 마감하는. 딱 그 정도의 벌로 죽음을 허락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야 할 일을 위하여 도진은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그야말로 거대한 잔해가 하늘을 뒤덮고 떨어지고 있었다.

    도진이 천마검공에 담는 심상 중 천괴(天壞),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연상케하는 인간이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재앙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

    허나 놀랍게도.

    도진은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 천마신공과 부지역(不知域)에 이른 사신의 무공이 그것을 가능케 하였다.

    하늘을 뒤덮으며 떨어지는 크고 작은 잔해 사이에는 틈이 있다.

    그 틈은 점과 점을 이은 선이 되어 이윽고 면을 이룬 뒤 시간이 깃드니, 도진은 잔해 사이를 빠져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진은 그렇게 빠져나가는 걸 선택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혼자일 때 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지금 이 자리엔 도진만이 아닌, 전서린과 솜이가 함께 있었다. 십여 걸음 떨어진 곳에.

    마치 심상 세계에서 시간을 최대로 가속한 것처럼 찰나를 늘여 보고 느끼고 판단하고 있지만 실제 쓸 수 있는 시간은 단번에 줄일 수 있는 그 거리를 좁히는 것만으로도 탈출이 불가능할 만큼 짧았다.

    그러니까 도진은 홀로 탈출하는 대신 천마기를 최대한으로 일깨웠다.

    오오오오오오-!!

    천지가 떨어울리며 도진에게로 모든 기운이 집약되었다.

    그 흐름을 이용하여 손을 펼친 도진이 전서린과 솜이를 끌어당겼다.

    흡자결(吸字訣).

    말 그대로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내공의 운용이 일대를 가득 채운 자연지기의 흐름에 따라 전서린과 솜이를 도진의 품까지 강하게 끌어당겼다.

    "아."

    도진의 품에 부딪치듯 닿은 전서린이 목소리를 내었으나 굉음에 묻혔다.

    솜이는 본능적으로 도진의 품속이 안전하다는 걸 아는 것처럼 파고들었다.

    그리고 도진은 허용치를 넘은 기운의 집약에 떨리는 백설을 강하게 쥐었다.

    모두 함께 살기 위해선, 감히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이 재해를.

    쳐내야 했다.

    꽈아아아아아앙-!!

    * * * *

    타닥. 타다닥.

    키보드 소리와 먹물의 내음이 공존하는 곳에서 무선(武線)은 생각했다.

    '검 장로. 왜 그러셨소.'

    검 장로. 본래 이름은 검교흔으로 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사람이었다.

    때문에 굳게 믿었거늘, 너무나 '인간적인 이유'로 터무니없는 잘못을 저질러 버렸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경계를 넘어선 자들의 교화였다.

    저도 모르는 사이 교가 원하는 사상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교화'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즉.

    천외천(天外天) 또한 회(會)의 거대한 계획 아래 탄생한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경계를 넘어선 자들을 교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에게 임무를 맡겼으니 검교흔 장로였던 것이고.

    일이십도 아니고 수십 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진행한 일이었고 그만큼 교에 신실하면서도 능력 있는 자를 엄격히 선별하였으니 그에 선택된 사람이 검교흔이었다.

    때문에 전혀 생각지 못했다.

    친동생도 아니고 의동생과 그 아들에 관한 일로 독단적으로 이단을 죽이려 터무니없는 일을 벌일 것을.

    이로 인해 그 무공도 무공이지만 교에서도 모르는 것들을 알고 있을지 모를 이단의 지식을 천외천을 통하여 살피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천외천에도 무형독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이단이 알게 되었으니까.

    그뿐인가. 수십 년을 공을 들인 천외천을 통하여 진행하던 일들도 포기해야만 했다.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피해였다.

    안 그래도 중요 인물인 오군성에 관한 일마저 훼방을 당했다.

    그 전에는 유지은이 있었고.

    유지은은 이단 쪽에 마음이 기울어 아예 영입조차 할 수 없었다.

    오군성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단을 한 번 만나더니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버려 기껏 공들인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유지은은 정의검가와 이어져야 했고 오군성은 오성 그룹은 물론이요 나아가 한국과 러시아까지도 이어져야 했던 특히나 중요한 인물이었다.

    '참으로, 그 꺼림칙한 이야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놈이로구나.'

    김도진. 놈은 단순한 이단이 아니었다.

    교의 전설에 언급되는 이단이 있었다.

    악랄한 성격과 무공으로 천마의 이름을 잇지 못하게 되자 이내 이단이 되어 교주의 자리를 찬탈하려 들었던 자가.

    교주인 천마마저 어렵사리 처단했을 정도로 무공만큼은 대단했던 그 이단의 흔적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만 것이다.

    그걸로도 모자라 당당하게 혹세무민하며 천마신교와 소천마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더 이상 이렇게 숨어 있을 순 없다.'

    대계를 앞당긴 교주님의 판단에 무선은 경의를 표했다.

    이대로 두면 이단이 얼마나 더 기세를 높일지 모른다.

    이단의 존재가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대계를 어그러뜨리고 있었다.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 * * *

    '…….'

    전서린은 멍하니 눈을 떴다.

    눈을 떴는데, 주변이 어둡고 아스라했다.

    일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그녀는 곧.

    "……!!!"

    정신을 잃기 전 일을 떠올리고선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요."

    냐아앙-

    허나 곁에서 들려온 차분한 목소리에 튀었던 심장을 감정과 함께 진정시키며 고개를 돌렸다.

    "교, 주님."

    희미한 빛에 비치는 도진의 모습을 눈에 담은 전서린이 조심스레 불렀다.

    평소와 달리, 도진의 기세가 공허했기 때문이다.

    그 걱정을 읽은 도진이 옅게 웃었다.

    "괜찮아요. 조금 무리를 한 거 뿐이니까."

    그래. 도진은 조금 무리를 했다.

    자그마한 파편부터 시작하여 터무니없이 거대한 낙하물들을 인간의 몸으로 상대했으니 그것이 어찌 무리가 아니겠는가.

    찰나의 순간 전서린, 솜이가 무사할 만큼의 공간을 낙하물을 부수거나 꿰뚫어 확보하는 건 위지혁에겐 가능한 일이었으나 아직 도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자연지기를 다룰 수 있다 해도 말이다.

    때문에 도진은 그 낙하물을 '아주 조금 쳐내는' 것을 택했다.

    점과 점을 이어 선을 긋고 그것들로 이루어지는 면을 만들었다.

    여기에 시간을 더하여 낙하물을 아주 조금 쳐내는 것으로 그것들이 쌓이는 사이에 작은 공간을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남은 건 하나, 그 방법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찰나에 여러 낙하물들의 궤도를 비틀어야 했고 도진은 그에 필요한 충격을 가하기 위한 검기와 격공장을 쉼없이 쏟아냈으니 이는 현대를 기준으로 화경의 고수가 열 이상 전력으로 쏟아낸 내공의 양에 필적했다.

    본신의 내공만이 아닌 자연지기를 끌어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으나 역시, 아무리 연신극기공으로 단련한 도진이라도 그 경계를 넘어선 영역에서도 터무니없는 출력에 과부하가 걸리고 만 것이다.

    물론 인간이 했다기엔 믿을 수 없는 이적을 이룩한 대가로는 터무니없이 싼 편이었다.

    허나 전서린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 일어난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이틀 정도 얌전히 수련하면 오히려 예전보다 더 좋아질 테니까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본래 근육을 키우는 것이 근육을 찢고 그것이 회복되는 과정인 것처럼, 연신극기공으로 육체를 제련한 도진에게 있어 이런 과부하는 근육의 운동에 다름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평소의 수련이 다른 방향으로는 이것보다 더한 과부하를 건다.

    전서린은 그런 도진의 진심이 담긴 말에 안도하였다.

    스스로의 안위보다 더 큰 안도. 그리고 그 전의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격렬한 반응에 도진은 의문을 가졌다.

    안면을 텄고 필요에 의해 이곳까지 함께 왔으나 도진과 그녀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한 협력 관계'였다.

    한데 지금 전서린의 반응은 그 정도를 한참 넘어섰으니 의문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 의문을 읽은 전서린이.

    "교주님."

    "예."

    "한시라도 빨리, 하오문주를 찾아야 합니다."

    "하오문주요?"

    "예."

    "어떤 이유입니까."

    "기억을, 일부 되찾았습니다. 하오문주께서는…… 황실의 적통을 이은 분이십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