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화
도진은 이 현대에 천마신교가 부활하였음을 선포하였고 소천마로서 자신을 드러내었다.
허나 그렇게 세상에 자신과 천마신교를 드러내며 기대했던, 또 다른 천마신교의 맥을 이은 후예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터무니없는 사기꾼 두엇이 찾아온 것 이외엔 그 어떤 성과도 없었으니 이렇게 생각했다.
아, 더 이상 천마신교의 맥을 이은 자들은 없나 보다.
설령 그 무공을 이었다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역사가 있는지는 모르는 이들뿐인가 보다.
언뜻,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천마신교와 소천마의 이름을 알리지 않았을 때에도 독마전과 투마전을 만났고 심지어 용마, 광룡군의 후예와도 인연이 이어졌었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세상에 그 이름을 드러낸 지금 더 많은 천마신교의 후예들을 만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허나 꼭 그렇게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확률의 이야기이기에 이름을 알리지 않았을 때에도 적은 확률이나마 인연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적은 확률이 기적처럼 계속되어 만나야 할 이들을 다 만난 뒤였으니.
이름을 알렸으나 찾아오는 이가 없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었는데.
휘오오오오오-!!
혹한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알려지지 않은 땅에서.
도진은 또 하나의 천마신교의 맥을 이은 집단과 조우한 것이다.
시리게 빛나는 검신(劍身)은 현랑전 무인들이 사용하는 검의 특징이다.
그것을 활용하여 상대의 시야를 함께 공격하는 방법들이 초식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인 현랑검공(賢狼劍功), 본래는 혈랑검공(血狼劍功)이었던 무공은 피를 탐하는 늑대의 형상이 깃든 것이었다.
그렇게 현랑전을 잘 알고 있던 도진이었기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우선은.
우선은 명확하게 그들의 무공을 보고 판단하기 위하여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여 움직임을 보았다.
그리고 확신했다.
피냄새와 살기가 짙은, 현랑검공이 아닌 혈랑검공에 가까웠으나 그것은 분명히 천마신교의 맥 중 하나인 현랑전의 것이라는 걸.
그래서 천마기를 일깨웠다.
가감없이 풀어내 일대를 가득 채웠고 천마신교의 교주임을 증명하는 군림하는 걸음으로써 그들을 무릎 꿇려 제압하였다.
그들이 진실로 현랑전의 후예라면.
이토록 선명하게 그 진전을 이은 천마신교의 후예라면 천마기를 알아보고 군림하는 걸음을 알아볼 거라 생각하였다.
허나 그리 되지 않았다.
"이단 따위가, 감히 그 이름을 쉽게 입에 담는구나."
하늘 밖 하늘에 가까운 무인인 노인은 천마신교의 맥을, 그중에서도 현랑전의 맥을 이었음을 부정하지 않았으면서도 그리 말하며 냉소하였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소천마에게 이를 드러낸 늑대를 닮은 검을 내뻗었다.
카아아아앙-!!
인간과 인간이 휘두른 검과 검이 격돌하였는데 마치 트럭끼리 부딪친 듯한 여파가 일대를 휩쓴다.
그에 일대의 무인들을 무릎 꿇렸던 무형의 압력이 해소되었고.
타앗-!
그들은 거침없이 몸을 날려 전서린과 솜이를 다시 공격하려 들었다.
"……."
노인만이 아닌 그들까지도, 소천마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혹은 모르거나.
호흡을 고르고 있던 전서린이 다시 바빠졌고 솜이가 이빨과 발톱을 드러냈다.
그리고 도진은 노인과 인간을 넘어선 시간에서의 검격을 교환하면서 왼손을 떨쳤다.
꾸우우웅-!
"……!"
도진이 후려친 왼손에서 시작된 보이지 않는 거력(巨力)이 수세에 몰리려던 전서린을 구했다.
전서린을 호렵진에 따라 몰아치던 무인들 중 일부가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에게 얻어맞은 듯 갑자기 터진 경력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격공장(隔空掌).
허공을 격하고 원하는 지점에 경력을 터뜨리는 장법이었다.
이 현대에서는 구현할 수 있는 이가 없다고 알려진 상승의 수법.
"……."
노인은 자신과 쉼없이 검을 나누면서도 그런 고등 수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여력을 보인 도진의 모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살기(殺氣)를 흩뿌렸다.
후웅-!
그런 노인의 곁으로 열 명의 현랑전 무인이 합류하여 합격진을 형성했다.
마치 본능에 따라 움직이듯 찰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호렵진은 소수가 다수를, 혹은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기 위한 합격전이다.
노인은 그만큼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전서린을 노골적으로 노림과 동시에 합공을 하여서라도 도진을 '죽이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
꾸욱-
도진은 백설을 강하게 쥐었다.
콰아아아-!!
막대한 내공이 일렁이며 마치 맹수의 발톱처럼 휘둘러진 무인의 검을 단번에 깨부쉈다.
꽈아앙-!!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천마기에 휩쓸린 무인이 포탄처럼 쏘아졌고.
터엉-!
호렵진을 이루고 있던 무인들 일부가 힘을 합쳐 그것을 해소하였다.
그리고 진의 중심에 있는 노인이 도진이 검을 회수할 틈도 주지 않고 찰나의 순간을 노려 준비한 힘을 폭발시켰으나.
효아(哮牙).
폭렬권(爆裂拳).
꽈아아아아아앙-!!
도진이 내지른, 폭발하며 몰아치는 거대한 벼락과 같은 주먹에 오히려 큰 손해를 입고 밀려나고 말았다.
'괴물, 같은……!'
노인은 뿌득, 이를 갈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만큼의 내공이, 눈앞의 이단에게서 쏟아져 몰아치고 있었다.
경지는 비등하다.
그렇게 판단하고 준비하였다.
그냥은 버틸 수 없는 혹한의 환경에서 이틀을 두어 적게나마, 그러나 그들의 수준에선 치명적인 격차가 생기도록 소모를 의도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목숨을 바쳐 따르는 정예 무인 서른을 준비하였다.
한 손이 열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전서린을, 그리고 소중히 여기는 듯한 영물을 노리면 신경이 분산될 수밖에 없고 비등한 경지인 자신을 앞에 두고서 무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는.
무조건 김도진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전투는 그가 의도한 구도가 되었다.
허나 한 가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치명적인 변수가 있었으니.
오오오오오오-!!
저 새파랗게 젊은 이단의 내공이 끊이지가 않는다.
꽈아앙-!
격공장을 아낌없이 쏘아 전서린을 몰아넣는 무인들을 후려쳐 나뒹굴게 한다.
말이 절정이지 혹독한 수련을 거친 노련한 무인들을 내공의 힘으로 후려쳐 저항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위력을 격공장으로 내는 데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내공이 소모될 것인가.
꽈아아아앙-!
여기에 진법을 이루어 가하는 묵직한 공격을 특별한 기예도 없이 그저 힘으로 분쇄해 버리는데 그 일격 일격에 채 다 해소하지 못하고 계속 쌓일 만큼 어마어마한 경력이 실려 있다.
심지어 노인이 나설 때면 아까의, 노인마저 간담이 서늘해졌던 무지막지한 주먹이 튀어 나왔다.
"커흑!"
결국 버티지 못한, 노인을 제외한 무인들이 해소되지 못한 충격에 나뒹굴고 다시 도진과 노인만이 마주보며 소강 상태가 되었다.
'…….'
파르르…….
노인이 미미하게 손을 떨었다.
격렬한 소모에 진법의 힘으로 싸웠음에도 자신은 기세가 조금 무뎌지고 말았는데 새파란 나이의 이단은 일말의 흐트러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찌 저 나이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양의 내공을 보유할 수 있단 말인가.
처음과 그대로. 마치 바다와 같이 끝이 보이지 않아 압도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노인을 압도하며 도진이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분명히 현랑전의 진전을 이었습니다. 특히 당신은, 현랑진검(賢狼眞劍)을 온전히 수습했네요."
현랑진검은 현랑전의 전주가 된 낭마(狼魔)의 무공이다.
그런 무공을 온전히 수습한 이가 천마신교를 모를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
노인은 도진을, 소천마를 적대하였고 살기를 전혀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 나를 적대하는 건가요? 그리고 어째서, 나를 이단이라 부르는 건가요?"
노인의 입매가 일그러졌다.
"이단을 적대하는 데에 이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다시, 노인은 도진을 이단이라 칭했다.
도진은 머릿속에서 정리한 가능성을 말하였다.
"…당신은, 내가 무공을 거두었던 이와 가까운 사이였나 보군요."
"……!"
노인의 눈이 커지며 놀람이 번졌다.
그것은 무엇보다 명확한 인정이었다.
"그 사람을 이야기할 때 당신은 감정을 숨기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굳이, 나에게 그 사람의 무공을 거둔 이유를 물었죠. 그래서 신경쓰고 있었습니다. 한데."
도진의 눈이 주변을 훑었다.
태세를 정비하고 있는 현랑전의 무인들이 스쳐갔다.
"이렇게, 상복을 입고 복수를 하러 온 걸 보면 아주 많이 가까운 사이였다는 거겠죠."
"……."
백색의 무복은 검과 달리 현랑전의 상징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백색의 무복을 갖춰 입고 왔으니 그것은, 무인으로서의 생을 마감한 자에 대한 추모일 것이었다.
"이들은 천외천의 무인들이 아닐 테니 당신이 복수를 위하여 동원한 무인들일 테고 현랑전의 소속이겠죠."
천외천이 그 노인의 복수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천외천이 아닌 그 노인과 지극히 가까운, 이를테면 가족과 같은 사이라면 개인의 차원에서 복수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복수를 하려드는 이가.
낭마의 무공을 이은, 현랑전주였다.
도진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당신들이 천마신교의 역사를 모르고 천마신공을 모를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인은 현랑진검을 온전히 수습하였을 뿐 아니라 내공과 초식의 운용 양면에서 현대의 수준을 완벽히 넘어서 있었다.
그만큼이나 완벽하게 무공이 전수되었는데 무공의 역사가 전수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네가 천마이자 천마신교의 교주라고 뻔뻔하게 계속 주장하는구나."
노인이 도진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도진이 물었다.
"당신들에겐, 아니라는 겁니까?"
"아니지. 절대로 아니지! 사사로이, 삿되게 힘을 휘둘러 무인의 목숨을 앗는 마귀가 어찌 천마일 수 있고 천마신교의 교도일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저 이단일 뿐이다!"
그가 분노했다.
도진이 사사로이, 포악하게 힘을 휘둘렀다 비난하였다.
"…그 자는 아들의 결코 해서는 안 될 범죄를 방치하였습니다. 방관하였습니다. 그것을 넘어 오히려 보호하려 들었죠. 그런 자를 처단하는 게, 사사롭고 또 삿된 것이라 말하는 건가요?"
"그 아이는 훌륭하고 신실한 교도였다. 그런 교도의 단전을, 삶을! 네놈이 멋대로 거둔 것이다. 그것은 오직 교주님만이 엄정하게 판단하여 결정하여야만 하는 일이거늘!"
"그렇군요."
"……!"
노인이 흡, 숨을 삼켰다.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도진에게서, 영혼마저 압도하는 듯한 어떤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절대적인 어떤 결론이 아득한 차원에서 내려진 듯한 감각이었다.
도진의 시선이 새하얀 무복을 입은 무인들을 일일이 거쳐 노인에서 멈추었다.
"당신들은, 천마신교의 교도가 아니었군요."
"뭐, 라?"
"겉껍데기는 이었으나 그 정신은 잇지 못했군요. 그리고, 잘못된 이를 교주로 두고 있군요."
두우우웅-!
천마기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천마기로 채워진 세상이, 비로소 그들을 적대하기 시작했다.
그 세상의 중심에서.
도진이 선고했다.
"당신들은, 이단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