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99화 (599/741)
  • 598화

    공장의 인수와 재정비 사업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모든 직원이 설명을 듣고 남기로 하였으며 바뀌는 체제에 동의했다.

    더 나은 조건과 환경을 제시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기존의 수주받은 물량을 처리하고 나면 교육 기간과 유급 휴가를 포함하여 2주의 시간동안 리모델링 후 새로운 시스템에 따라 공장을 가동하기로 했다.

    천마신교의 계열사로 기능해야 하니 리모델링 이외 추가적으로 부서를 신설하는 등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았는데 오성아는 물론이요 한유아와 화온의 인재들이 잘 일 해 주어 잡음 없이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화온의 사람들은 본래 한유아가 금화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하기 위하여 모았던 인재들이다.

    비록 금화의 힘이 워낙 대단하였고 처음부터 너무 불리한 싸움이어서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으나 그렇다 해서 폄하당할 만큼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니 급격히 성장한 천마신교 곳곳에서 한유아를 필두로 하여 삐걱이는 부분이 없도록 활약해 주고 있다.

    배경석과 인신매매단 쪽은 '원인 모를 상태 불량'으로 인해 병원에서 머무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다고 한다.

    도진이 주입한, 칼집을 내며 주입한 침기(沈氣)가 잘 스며들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증상들이었다.

    무려 사신의 내공으로 은밀하게 대상의 몸에 스며들어 그 기능을 죽이는 것이 침기다.

    도진은 그것을 주입하며 의도적으로 느리게, 아주 느리게 효과를 발휘하도록 하였으니 놈들은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부분에서의 서서히 진해지는 절망을 느끼며 아주 오래 살 것이다.

    그렇게 공장의 일과 배경석을 포함한 놈들의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던 12월 중순에 도진은 기다리고 있던 천외천의 편지를 받았으니 그 내용이.

    [소천마 김도진. 하오문의 전서린과 함께 만나기를 원한다.]

    였다.

    의외라면 의외인 내용이다.

    "전서린과 함께 오라니. 무슨 의도일까?"

    도진은 곁에 앉은 나지윤에게 물었다.

    나지윤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니 이런 경우 또한 가정해 보았었고 바로 대답이 나왔다.

    "너에게 천외천의 존재에 대해 알려준 게 전서린이란 걸 알고 있었을 거야."

    "음."

    도진은 은밀히 전서린을 만났고 그녀를 통하여 천외천에 대해 들었다.

    이후 오군성을 만났을 때 천외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태도를 보였으니 '합리적 추론'이 가능해진다.

    결과를 보고 과정을 끼워 맞췄다, 고 하기엔 천외천의 정보력과 영향력이 그리 허술하지 않았다.

    "전서린이 천외천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을 테니 더더욱 그렇겠지."

    "그렇네."

    천외천은 자신들이 드러나길 바라지 않는다.

    그를 위해 여러가지 '작업'을 하는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차별적으로 손을 뻗지는 않으니 그게 역으로 독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외부에 자신들의 존재를 발설하지 않을, 괜히 건드렸다가 하오문과 척을 지게 될 전서린을 가만히 두었던 거다.

    "하지만, 설령 영입 대상이 된 너라 해도 외부인에게 그걸 발설했으니 이번 기회에 한 번쯤은 직접 대면해서 경고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뭐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우리에게 나쁜 일은 아닐 거야."

    천외천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그로 인해 크게 마찰이 생기고 싸움이 일어나는 등의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반대로 일이 잘 풀려 도진이 전서린과 함께 천외천이 알고 있는 정보나 자료를 접하게 되면 이 부분은 플러스가 된다.

    이 또한 가정이지만 전서린이 정말로, 무형독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정보를 도진 또한 함께 알게 될 테니까.

    도진은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오문주에 관해 조사해 봤는데."

    나지윤이 화제를 바꾸어 하오문주를 언급한다.

    전서린을 데려온 것이 전대 숭무지부주이며 그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당연히 하오문주와 이어질 터이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데, 그 얼굴에 평소와 다르게 부정적인 감정이 숨겨져 있어 도진이 조금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찾을 수가 없다는 것밖에 찾을 수가 없었어."

    "음."

    찾을 수가 없다.

    그것은 천마신교에서 정보를 도맡은 나지윤에게 있어 스스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내는 말이었다.

    "하오문주. 30대 초중반 동양의 미녀로 알려져 있으나 사진은 물론이고 자세한 용모를 그린 그림조차 없어. 애초에 정말로 여자인지, 30대 초중반의 나이가 맞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지."

    "대면한 사람들은 그녀는 지극히 고귀한 분위기여서 직접 마주한 순간 얕보던 마음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한 다리 건너의 이야기였어."

    행적 이전에 '하오문주'라는 인물에 대해서조차 확실한 정보가 없었다.

    그녀를 직접 대면했다는 이들이 흘린 정보를 통하여 '30대 초중반 동양의 미녀'라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는데 객관적인 증거가 없어 확신하지 못할 정보였다.

    "…무형독의 몸통을 찾는 느낌이었어."

    그리 말하는 나지윤이 떠올렸을 가능성을 도진이 소리내어 말했다.

    "하오문주가, 무형독일지 모른다는 가능성?"

    "…아주 낮은 확률이라고 보고 있어. 하오문의 행보나 드러난 행적은 무형독을 오히려 적대하고 있으니까."

    그 부분은 확실했다.

    시궁쥐라고 경멸당하는 하오문은 그러나 나지윤이 그 행적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미묘하게 무형독을 적대하고 있었다.

    허나 세상엔 절대라는 게 없으니까.

    아무리 찾아도, 파고 또 파도 꼬리조차 찾을 수 없는 하오문주의 행적이 무형독을 찾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기에.

    나지윤은 그 가능성을 떠올린 것이었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다만 어디까지나 낮은 가능성으로서의 긍정이다.

    본디 정보 단체의 수장은 설령 이름과 얼굴이 알려져 있다 해도 막상 '얼마나 알고 있나'를 되짚어 보면 '어?' 하게 된다.

    알려진 것 이상, 그 외의 것들을 단 하나도 모른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천마신교 소속으로 지극히 유명한 나지윤도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세계 최고의 정보 단체로 꼽히는 하오문의 하오문주에 대해 막상 짚어 보니 아는 게 없으며 조사해 보아도 '알려진 것' 외에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어도 이상한 게 아니다.

    나지윤은 흥, 웃었다.

    "조금 오기가 생겨서. 더 파볼까 싶은데, 괜찮을까?"

    그 말에 도진도 씨익 웃고선 말했다.

    "우리 지윤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닭살 돋게. 그래도 땡큐."

    * * * *

    그날 새벽.

    하루를 마무리하는 연신극기공의 수련을 마친 도진은 홀로 소주를 홀짝이는 나지윤을 볼 수 있었다.

    새벽에 혼자 술을 마시는 나지윤이라는 지극히 희소한 요소들이 도진의 감각을 자극하여 찾아가게 만든 것이다.

    나지윤은 그렇게 다가온 도진의 모습에 스윽 웃었다.

    "힐링 중이야."

    "이게?"

    "어. 가끔은 알콜로 기름칠을 해 주면서 느슨하게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법이거든."

    "술 취해도 논리적이네?"

    "직업병이야."

    별 거 아닌 이야긴데 둘은 낄낄 웃었다.

    그리고 콜라를 가지고 와 떡하니 앉아 육포를 탐내는 도진에게 나지윤이 혼잣말하듯 말했다.

    "사실은 조금, 자신감이 대단했었거든."

    "답청문은 모든 족쇄에서 벗어났고 바할라라는 엄청난 날개까지 달게 됐으니까. 그 어떤 정보 단체라 해도 이제 밀리지는 않을 거라는 그런 자신감이 있었어."

    답청문의 노하우에 바할라의 노하우, 그리고 끊이지 않는 자금력이 더해져 탄생한 것이 세이전이었으니 충분히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그런데. 무형독에 관해서는 이도 들어가지 않았고 심지어 같은 정보 단체인 하오문의 문주에 관한 정보도 전혀 찾을 수 없었지. 그게 좀, 화가 났어."

    나지윤은 정보 단체의 수장으로서, 천마신교 세이전의 전주로서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었다.

    한데 거기에 상처를 입었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었던 거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도록 이렇게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위하여 평소 입에 대지 않는 소주를 깐 거고.

    도진은 그렇게 소주를 홀짝이며 말하는 나지윤의 모습에 씨익 웃었다.

    "원래 잘난 애들이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너도 양심없는 타입이었구나?"

    "뭐?"

    "아니, 그렇잖아. 무형독도 그렇고 하오문도 그렇고 걔들 입장에서는 그 정도 되려고 얼마나 피똥을 싸고 돈이랑 사람을 갈아 넣었을 텐데, 이제 겨우 스물 하나 되려는 애송이가 턱밑에서 문을 쿵쿵 두드리고 있는 거잖아."

    "……."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차겠어. 그런데 정작 그렇게 문을 두드리는 애는 내가 지금 이것밖에 안 되나 답답해 하고 있으니 걔들은 내가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나 얼마나 자괴감 들고 괴롭겠어."

    "하."

    나지윤이 푸후 웃었다.

    "그게, 그렇게 되나?"

    "그렇지. 솔직히 나였으면 이 재수없는 놈 얼굴값 한다고 욕했을 듯."

    "…걔들이 아니라 네가 은근히 나 먹이는 거 같은데."

    "알콜로 인한 심신미약에 의한 착각이야."

    "괜히 술 먹었네."

    "억울하면 알콜 대번에 몰아낼 수 있는 고수가 되자."

    "내가 오늘부터 잠 30분 더 줄이고 내공 수련한다."

    "에이. 그래도 잠은 더 줄이지 마. 피부 상할라."

    "그런 소린 소담이한테 가서 하라고, 임마."

    "소담이는 덜 자도 예뻐서 괜찮아."

    "돌겠네."

    그날.

    도진은 평소보다 30분 수면 시간이 줄었으나 웃으며 일어났고 나지윤은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숙면을 취함으로써 숙취없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 * * *

    천외천과의 만남은 12월 말로 정해졌다.

    장소는 러시아의 '흑색(黑色) 구역'이다.

    흑색 구역이라고 하니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하게 흑도의 세력이 강한, 국가의 영향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을 뜻한다.

    다만 흑색 구역이라 해서 모두 흑도가 차지한 것은 아니니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국가이고 개중 춥고 황량하며 넓은 영토 중 일부만 흑도가 차지한 형국이다.

    즉.

    워낙 영토가 거대하다 보니 국가의 영향력이 미미하면서도 흑도가 기생하지 않는, 제대로 된 길도 없는 곳이 많으니 세간의 눈을 피해 만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남은 문제는 유명해도 너무 유명한 도진이, 그러니까 소천마가 자연스럽게 러시아를 방문하기 위한 명분이었는데 이것도 간단히 해결이 되었다.

    [소천마, 오성과의 협업을 위하여 러시아로 출국 예정.]

    바로 요즘 동맹 관계가 굳건해지고 있는 오성의 러시아 지사 방문 일정을 잡은 것이다.

    러시아는 오성의 중요한 시장이었는데 그곳에서의 협업을 논하기 위한 소천마의 출국은 큰 뉴스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럼으로써 천외천과의 만남을 숨길 수 있었다.

    천외천에 소속된 오군성과 이야기하여 만든 명분이었으나 그저 명분만은 아니어서 실제로 협업을 위한 스케줄을 소화하며 그 후 천외천의 인물들과 만나기로 계획을 잡았다.

    그리하여, 도진은 이틀 뒤로 다가온 러시아 출장에 대비하여 짐을 싸고 있었다.

    전생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해외로의 출국이었으나 이번 생에서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짐이란 것도 옷가지와 세면도구 정도로 심플하게 캐리어 하나에 다 담길 만큼 간략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자연스럽게 집 안에 녹아든 상미가 솜이와 함께 있었다.

    냐아앙-

    가능하면 산책을 빼먹지 않는 도진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울 때면 상미가 맡아 주다 보니 상미의 어깨 위에 있는 솜이의 모습도 자연스럽다.

    "나 없는 동안 잘 부탁할게."

    "네, 오빠."

    일주일 동안 한국을 비울 예정이니 그동안 솜이의 산책을 포함한 케어는 상미가 맡게 되었다.

    가끔씩은 그 운동을 겸한 산책에 소담이나 유지은이 끼기도 했으니 솜이가 심심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러시아에 가는 거니까 솜이도 데려갈까 싶긴 했는데."

    냥?

    가볍게 이어가던 도진의 말이 솜이의 날카로운 반응에 끊겼다.

    상미의 어깨 위에서 고롱거리던 솜이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러고선 풀쩍 뛰어 도진의 앞에 서더니 꼬리를 바짝 세웠다.

    평소 없었던 반응에 도진은 이유를 추측하였고, 짐작가는 것을 말해 보았다.

    "러시아?"

    하아아아악-!

    그리고 처음으로, 솜이의 하악질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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